아침 식전 부터 야쿠르트 하나 꼭 찍어 빨아대는 3호가
전날 먹은 하드 막대기로 '스틱맨' 만들었다고 주고 갔다.
사실상 서울 첫 나들이.
1, 2, 3호에게 포켓몬 카드 사주고 전철을 탔다.
이번 한국 방문엔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서울대 정문에 내렸다. 떡볶이 튀김 먹던 간이 식당자리에 육중한 건물이 들어섰다.
차로 북적대는 입구가 낯설다. 철교문이 한없이 육중해 보였는데 가녀려 보인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묵직한 콘크리트 다리도 없어졌다.
"여기 왜 왔어?" "어, 아빠가 만든거 이거 보려고" 20 여년 만이다.
1988년 딱 30년 전, 내가 추모비를 디자인하고 여러분이 함께 세웠다.
여러 의미를 담고, 독창성도 따져가며 고민을 했던 모양이었다.
친근감 있게 사람 키 크기로 했는데 아이들이 그걸 느끼기엔 이래저래 멀은 듯 하다.
밑둥엔 이끼와 흙먼지가 덮혔다.
구석 곳곳엔 거미줄이 쳐졌다. 5월, 국화 한송이 쯤은 있을 줄 알았는데.
주변 나무에 매여진 낡은 리본. 언제 것일까...
옛 도서관을 찍어 누른 듯한 새 도서관 건물에 추억도 짓눌리는 듯 했다.
거대해진 도서관을 뚫고 나와 잠시 쉬며
5월이면 유난히 북적댔던 아크로가 한산하다.
학생회관, 전공 수업 보다 더 몰두했던 동아리 활동.
번듯하게 디자인 된 안내판에 오른 '서클' 이름. 나 땐 학교서 감추기 급급했다.
공연도 모임도 갖던 미대 '아크로'는 사람 발길이 닫지 않은지 오래인지 잡초로 뒤덮혔다.
족구도 하며 놀던 마당도 자갈이 가득. 북적대던 사람의 흔적이 많이 사라졌다.
먼지 펄펄 날리던 운동장은 인조잔디로 덮혀 말끔해졌지만,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은 곳곳에 만들어진 가게였다. 구내식당 말곤 '장터국수' 하나 봤던 내겐 역시 낯설다.
다시 학교로 돌아간 선후배를 만나볼 의욕도 없이 버스 정류장에 왔다.
정류장에서 올려봤다. 모양도 재질도 제각각 뽑내는 건물 틈을 다니니 숨통이 막히는 듯 했다.
말 없이 걷기만 하던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들이 버스에 오르니 생기가 돈다.
시인과 소설가는 아이 이름를 동규라 했단다. 두 동규는 같은 고등학교, 대학에 다니고 한 학교에 근무한다.
깔깔 대는 1, 2, 3호. 무거웠던 내 마음이 금세 풀어진다.
쉴겸 놀겸 찾은 동네 도서관.
3호는 책 읽기 보다는 칠하고 만들기
집에 들어가기 전 '오늘의 하드' 하나씩. 빰빠래, 설레임, 보석바.
*
기대와 설레임을 갖고 갔던 모교였습니다.
다니면서 크게 애정도 갖지 못했고,
마음만 무겁게했던 학교여서 외면해 왔습니다.
문득 이쯤에선 만나볼만 했단 생각이 들었는데...
사반 여세기의 세월이 너무 길었는지
첫 사랑을 만난 듯한 실망감만 가득했습니다.
그대로 가슴에 묻어 두고 갔을 것을 하는.
그렇게 비유하고 보니
밉다고 했는데 사랑했었나 봅니다,
서울 가셨네요.
좋은 시간 많이 보내고 오세요.
같이 있으면 1,2,3호 에게 하드라도 하나씩 사줄 텐데, raincheck은 언제나 살아있습니다.
예, 서울 왔습니다. 이제 시차 적응이 얼추 되서 더 좋은 시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드라면 금방 넘어 올 것 같은데요^^ 감사합니다!
20여년만에 인생의 큰 의미가 있는곳을 다녀오셨군요. 뜻깊은 시간이었으리라 믿어요!
크고 작음을 두지 않고 가슴에 묻어두고 지났던 기억인데 요즘들어 문득 가보고 싶더라고요. 적응이 안되서 힘들었네요. 너무 오랜만에 갔다 왔나 봅니다.
결국 보석바를 먹은거군요 ㅎㅎㅎ
저 어릴때 가장 좋아햤던게 보석바였어요.
오하이호님은 서울대 출신이신가요. 생각대로 똑똑하셨군요.
ㅎㅎ
아 그리고 요구르트는 뒤로 먹어야 제맛이죠.
저도 보석바 좋아했습니다. 하하 워낙 종류가 많아서 아이들에게 제가 좋아했던 것들 하나 둘씩 권하는데 큰애는 그게 제일 좋았나 봅니다. 물론 빰빠래, 설레임도 좋아했고요.
오하이오님 서울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고 계시군요!!
이 날만큼은 즐겁지 않았지만 이후로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12년 만에 노래방도 갔네요. ㅎㅎ
삼호 표정이 좋네요 ;)
세월가면 다 그런 걸까요? 저도 올만에 학교 갔다가 그랬습니다 ㅡ 새로운 건물들과 시설들 사이에 제가 기억하던 공간에 미안할 정도더군요 ㅡ 첫사랑 같은 거, 맞나봅니다... ㅎㅎㅎ 사람도 공간도 시간 속에서 그렇게 되겠지요 ...
한국에서 행복한 시간 보내고 오세요~
공감과 인사 말씀 감사합니다. 당장 건물 하나하나만 보면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 설계 했다는 데 멀리서 통째로 바라보는 제 마음은 너무 아렸네요. 이 아픔이 쉽게 가시지는 않겠지만 즐겁게 지내다 보면 예전 처럼 금방 잊을 것 같아요. 행복하게 지내다 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서울서 태어나 서울서 30년을 넘게 살았는데 한 번도 못가본 서울 대학교네요.. 뭐 지리적으로만 먼게 아니라 실력으로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기에...ㅎㅎ
아이들과 함꼐한 모교 방문이었는데 실망감을 안고 오셨다니 좀 아쉽지만..그래도 의미는 깊었을 것 같아요. 다음 나들이는 더 좋은 추억으로 남길 수 있길...
실망이 컸지만 아이들에겐 새로운 추억의 시작이었으라 생각해요. 어쩌면 훗날 아빠와 갔던 이길 저길이 달랐다며 오늘 제가 가졌던 아쉬움을 가져도 기쁠 것 같긴 해요.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정말 많이 컸어요.. 특히 3호... 오하이오님 아이들 크는 사진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도 많이 컸구나..느끼고.. 아... 난 그 만큼 나는 세월을 먹었구나.. 많이 느낍니다... 한 번도 만난적 없지만 아이들 보니 반갑네요... ㅎㅎㅎ
예, 많이 컸지요. 요 며칠 코딱지만 했던 친구 딸래미가 대학을 갔느니 취직을 했느니 하는 소리를 듣고 보니 우리 애들도 그만큼 컸구나. 나는 그만큼 나이가 들었구나 했습니다. 왠지 점점 물러날 자리를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앗, 동문이시네요.
저도 몇 년전에 가봤는데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저도 역시 도서관에서 이질감 많이 느꼈습니다.
동아리 이름 몇 개는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저 비석이 분명히 제가 학교 다닐때도 있었을텐데, 가본 기억이 없네요.
우리 123호도 아빠 유전자 많이 받아서 똑똑해지세요~
서울대가 을메나 좋은 학교인지 알때 쯤이면 절로 아빠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겠지요.
일단은 돼지바 맘껏 드시규~
감사합니다. 어떤 이유로는 아이들이 아빠를 존경한다면 그 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듯 하긴 합니다. 아직 돼지바는 못 먹었는데... 내일은 꼭^^
오하이오님 글에서는 항상 향수가 느껴집니다. 중학교때 과외선생님 따라 놀러갔을 때가 생각나네요.. 어렴풋이 나는 기억으로는 도서관앞 학생식당에서 2천원짜리 샌드위치를 먹은 기억이 나는군요. 선생님이 봉천동쪽에 사셨는데.. 한번은 같은반 애랑 싸워서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 Wild 하던시절..) 집에는 못들어가고 과외 선생님 집으로 피신(?) 갔던 기억이 납니다. 몇십년(;;)이 지난 지금도 언니같이 지내는데.. 아직도 전설처럼 그 이야기를 하십니다... ㅎㅎ
제가 다니던 시절에는 그 샌드위치가 700원에서 점점 올랐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얼마일까요.... ㅎㅎㅎ
하하.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싸우다니요. (멋진 걸요?) 멋진 언니 선생님을 만나셨네요. 저도 알바를 참 오래 했는데 그만큼 기억에 남는 오빠형샘이 었는지는 자신이 없네요. 그 언니 선생님 참 부럽습니다^^
원래 여자들끼리 싸우면 더 무섭죠..... 그렇던 저를 놓지 앉으시고 사람만드시고 중1때부터 고3때까지 쭈욱 가르쳐 주셨어요 ^^ 대학 합격소식들을 때도 같이 계셨었죠. 제가 은인처럼 모십니다 ^^; 오하이오님께도 분명 그런 제자분들이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오하이오님,마음이 조금이해가 되내요.
내가다니던 그 시절의추억과 장소가 많이 변하고 내가 추구하고 쫒던 이상이 많이 달라지게되니
괜히 울적해 지곤 했구요 .아무튼 1.2.3 호가 즐겁게 지내고있는 사진을 보니 미소가 지어지네요.
이해 말씀 감사합니다. 뭔가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이해된다 하시니 괜히 울컥 해집니다.
오하이오님! 요즘 요구르트는 저렇게 거꾸로 생겼나요?
1,2,3호를 먼저 보기전에 남성화장품 관련 댓글 읽다가 두리뭉실님이
클리니크 1,2,3 쓴다해서 오버랩 되었네요 ㅎㅎ 엉뚱 엉뚱 ㅋㅋ
괜스레 씁쓸해지네요. 추억을 새기며 나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니까요.
건강한 여행 되세요!
2년여 전에 처음 봤더 요구르트 입니다. 기존 것 보다 크고 앞뒤가 바뀐 이건 '얼려 먹는 용'으로 나온거라네요. 종종 얼려 먹었는데 얼리고 나면 먹기 힘들었죠. 정말 기가 막히다 했습니다. 건강한 여행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진을 올리실때마다 아이들이 부쩍 부쩍 크네요
마모의 연예인들~
큰 아드님은 어느새 청년티도 좀 나네요
ㅎㅎ
그렇지요. 정말 한참 클때다 하는 말을 저도 실감하게 되네요. 큰 애가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려고 하나 봅니다. 가끔 제가 긴장도 하게 되고요.
아이들끼리 같이 자라면 한국말을 더 쓰게되나요 아니면 자기들끼리는 영어를 쓰게 되나요?
한국 방문하는 횟수가 잦을수록 한국말을 더 잘 배워볼려고 한다고들 하더라구요.
아무래도 아이들끼리 있으면 말을 더 하게 되는 것 같긴 한데, 한국말을 더 하는 것과는 별개인 것 같습니다. 집에선 혹은 가족끼리는 한국말을 쓰게 하지만 아이들이 부지불식간에 영어를 쓰는 빈도가 많아져서 그때 마다 주의를 주지 않으면 오히려 영어만 능숙(?)해 질 것 같아요. 한국을 방문 하는 것은 한국말을 배우고 써야겠다는 마음가짐을 일으키는 데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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