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 231223
최근 한국의 정치 뉴스에 루쉰(魯迅, 노신)이 소환됐습니다. 정치 참여 출사표를 던지듯 한 (전) 장관이 한 말, "세상 모든 길은 처음에는 다 길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가면 길이 되는 거죠."는 루쉰의 단편 소설 '고향'에서 인용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사오싱(绍兴, 소흥) 루쉰 생가를 떠 올리고, 다시 오랜만에 다시 '고향'을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은 기억하는 곳과 달리 삭막하고 낯설게 변했습니다. 바뀐 현실을 보여주던 소설의 마지막에 지은이는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과 이사해 살아갈 자신의 처지를 비교합니다.
나도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배 밑바닥에 부딪히는 잔잔한 물소리를 들으며, 난 내가 나의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룬투(지은이 옛 친구)와 나는 이미 딴 길을 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어린아이들의 마음은 아직 하나로 이어져 있다. 홍얼(지은이 조카)이 바로 쉐이성(룬투의 아들)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난 그 애들이 또다시 나와 같은 단절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 마음을 잇기 위해 모두 나처럼 괴롭게 이곳저곳 떠도는 생활을 하는 것도 절대 원하지 않는다.
또 그 아이들이 모두 룬투처럼 괴롭고 힘들어서 마비된 것 같은 생활을 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괴로워하면서 생활을 포기하고 방탕하는 것도 역시 바라지 않는다. 그 아이들은 마땅히 새로운 생활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아직 경험한 적 없는 그런 생활 말이다!
나는 희망을 생각하면서 갑자기 무서워졌다. 룬투가 향로와 촛대를 달라고 했을 때, 나는 그를 속으로 우습게 여겼다. 그가 아직도 우상을 숭배하고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 말하는 희망 역시 내가 만든 또 하나의 우상이 아닐까?
단지 그의 희망이 가까운 현실에 있고, 나의 희망은 멀리 있는 이상이라는 차이일 뿐이다.
나는 몽롱해하면서 펼쳐지는 파란 바닷가 모래사장을 보았다. 짙은 쪽빛 하늘엔 동그란 황금빛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것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란 게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머리로 짐작하고 알아 느끼던 것이 지금은 그대로 가슴을 누릅니다. 저는 한국을 떠나서도 매해 가다시피하는데도 고향 '서울'이 점점 낯설어집니다. 제 고향은 소설과 달리 더 발전하고 번듯해지는 데도 지은이가 느꼈을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소설 파일을 댓글( https://www.milemoa.com/bbs/board/5057578#comment_10559941 )에 첨부합니다.
아래는 원글
항저우를 벗어나는 여행길 출발을 기념해 카메라를 꺼내자 순식간에 렌즈에 김이 서렸다.
늘 타고 내리전 전철역, 못 보던 장식물(?)이 생겼다. 내 재촉에 졸지에 공산당원이 된 1호.
공공 장소에 이런 식으로 증명사진 촬영 용으로 만들어 두면 좋겠다 싶었다.
전철에서 내려 찾아가는 시외버스터미널. 호텔직원이 준 메모만으로 찾기가 쉽진 않았다.
물어 도착한 터미널. 기차와 마찬가지로 표를 사려면 여권이 필요하다.
이전 기차표를 구하지 못한 경험을 살려 아예 버스로 가기로 했다.
기차와 달리 한가한 버스. 지정 좌석이 있었지만 마음대로.
항저우를 남북으로 가르는 쳉탕강을 건너 남쪽으로.
1시간여 달려 사오싱(绍兴)에 도착했다. 기차로 20 여분만에 도착했으면 싱거울 뻔했다.
터미널로 마중 나온 에벌린, 만나자마자 3호가 에벌린에게 고무줄로 모형을 만들어 보인다.
여행 직전 지인의 소개로 알게된 에벌린 가족은 이날 처음 만났다.
제일 먼저 루쉰(魯迅)의 생가로 갔다.
루쉰이 가난했으리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이렇게 큰 집에서 살았으리라고도 생각 못했다.
루쉰의 집과 서당 사이의 수로.
'세가지 맛'을 지닌 서당. 이 세가지는 경서, 사서 그리고 제자백가를 뜻한다고 한다.
서당 루쉰의 자리. 듣고 보니 의자며 책상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다.
더위에 그 큰 집들을 걷던 아이들이 지쳤다.
집 구경을 마치고 기념품 가게로. 딱히 쇼핑할 생각은 없었지만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이끌려.
출구엔 루쉰의 소설속 인물 '쿵이지'를 상표로한 안줏거리(?)를 팔았다.
늘 안주 삼았던 '콩'을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쿵이지 동상.
아이들은 그다지 즐기지 않았지만, 에벌린의 엄마가 사준 그 콩 한봉을 받아들고 먹을때.
자연스레 쿵이지가 마셨던 사오싱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가게 어디에나 잔뜩 쌓여있는 사오싱주.
[루쉰 생가]
*
이 사진들은 지난달 중국 여행 중 찍었습니다.
(현재 여행을 다 마치고 집으로 잘 돌아왔습니다.)
당분간 여행 중 못 꺼낸 여행 사진들을 정리해서 올려볼 생각입니다.
오오 제가 일번 댓글이네요. 처음 사진보니 후끈한 열기가 그냥 느껴집니다. 애들 데리고 다니시느라 애쓰셨네요.
예, 다니는 동안 더워서 좀 고생을 했는데, 요즘 한국 날씨 보면 덥다고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네요. 무엇보다
그 유명한 아Q정전의 작가 루쉰
마모에서 또하나 배우네요...
예, 맞습니다. 전 읽을게 별로 없던(?) 시절이라 열심히 찾아 읽었는데 요즘은...
소흥에도 다녀가셨군요. 루쉰 생가도 생가지만은 그동네 관광지 어디에서나 느껴지는 취두부냄새가 리마인드 되는 글입니다 ㅋㅋㅋ
예, 항저우까지 가서 안가볼 수 있나 싶어 두번의 시도 끝에 다녀왔습니다. 하하. 정말 그 두부 냄새가 남다르게 많이 나긴 하더군요.
하하 공산당원 증명사진 재밌네요..^^
근데 에벌린과 나란히 앉은 2호.. 왠지 둘이 잘 어울립니다...? ㅎㅎ 다음 스토리(?)가 기대되네요!ㅎ
그러게요. 중국사람들에겐 또 다른 느낌으로 보여졌을지 텐데,
우리에겐 재밌는 놀이기구였습니다.
길 가다 말고 한참을 여기서 놀았네요.
에벌린이 나이에 비해 키가 커 보이는데, 나이는 막내보다 1살 어립니다.
그래서 그런지 막내와 쉽게 어울리고 친해지더군요. ^^
루쉰이면 아큐정전 인가요? 근데 정말 멋지네요
예, 아큐정전입니다. 고택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다 됬고 저 사오싱주 항아리들이 탐나네요. ㅋㅋㅋㅋㅋ
듣기로는 보통 담그던 항아리는 저기 보이는 것 보다 크다고 하네요. 타지방 사람들은 그 큰 항아리로 몇 통을 바로 사서 배로 실어 나르기도 한다는데, 그러지 못해 좀 아쉬웠습니다. ㅎㅎ.
소설파일(루쉰고향.pdf)을 첨부합니다. 복사해 두었던 소설을 다시 읽으며 나름대로 교정하고 다듬었지만, 흠도 있고, 또 원문의 뜻을 그대로 반영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추가) 파일을 첨부했는데 댓글에는 첨부 목록이 드러나지 않아 본문에 올리고 대신 링크( https://www.milemoa.com/bbs/index.php?module=file&act=procFileDownload&file_srl=10559962&sid=796bf5d9d05f220af82c787c47db0b77 )를 옮겨 적습니다.
인용해주신 부분이.. 가슴을 누른다는 말이 너무 와닿습니다. 공유해주신 파일 잘 읽겠습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도 타향에 살며 가서 고향을 보는 심정이 100년의 세월을 지나도 비슷했나 봅니다.
타이호때문에 쑤저우와 우시가 유명한데 샤오싱도 구경할곳들이 많더라구요. 부유한 강남의 도시라 명사의 유적들도 많구요. 상하이보다 쑤저우, 항저우 그리고 샤오싱에 더 정이가네요.
그렇네요. 드라마 '다모'에도 나왔네요. 명대사(?) 로 기억되는 '아프냐, 나도 아프다'로 묻혔 던 것 같아요. 다시 찾아 보니,
"장성백. 모든게 끝났다.순순히 오라를 받거라! 니 앞에 보이는 건 천길 낭떠러지뿐이다. 니 놈은 길이 아닌 길을 달려온게야!"
"길이 아닌 길이라니? 길이라는 것이 어찌 처음부터 있단 말이오. 한사람이 다니고, 두사람이 다니고,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법. 이 썩은 세상에 나 또한 새로운 길을 내고자 달렸을 뿐이오."
소설에서는 길을 희망으로, 드라마는 길이 혁명을 뜻하는 게 다른 듯 하지만 장성백에게 혁명은 희망이고, 소설 속 나에게 희망은 새로운 변화된 삶이니 곧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어 결국 같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덕분에 드라마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만화책을 다시 꺼내 봅니다.
이 멋진 대사를 날린 드라마 장성백에 대응하는 만화(원작)의 천승기는 완전히 다른 야비하고 잔인해 보이기만 한 인물이었더라고요.
저도 상하이보다는 수저우, 항저우가 더 좋더라고요.
잠시 소흥 살 적에 전동 스쿠터 타고 가본 곳중 하나가 나오니 반가워서 지나가다 댓글 하나 남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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