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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여행기]
추석을 기념하며

사리 | 2018.09.22 12:07:26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며칠 동안 예전에 썼던 글이 다시 회자되었나 봅니다. 

몇 개의 질문에는 대답할까 싶었지만 

그때 기억에 덧붙여서 이야기하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맨스플레인도 할말은 많지만... 

얼마전 그 맨스플레인 하시던 (문제가 되었던) 그 언니와 

얽힌 또 다른 사건이 있지만 그냥 생략해보려 합니다. 

추석 선물로 최근 여행기를 쓸까 했지만 

시간이 남루하여 그러진 못할 것 같고 

2014년 말즈음 다녀오고 쓴 글을 붙입니다. 

 

다들 추석 즐겁게 보내시길. 

 

몇 달 전 호치민에서의 일이다. 그곳에서 만난 한 스승은 메콩강 하루투어를 꼭 가고 싶다며 졸랐고 나는 두번이나 간데다가 지겹기 그지없는 그 투어를 가고 싶진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동행했다. 세월호 이후 배 타는 것에 뭔가 아련한 공포도 있었고 흙탕물인 메콩강의 땡볕에서 찐덕찐덕 하루를 보내는 게 마뜩치는 않았다. 현지 여행사에 예약을 잡았는데 우리팀은 두명의 중국인과 두명의 베트남인을 빼고 모두다 한국 사람이었다. 

 

볼 것 없는데 볼 게 있다고 계속 우기는 투어프로그램을 따라가다보니 어느덧 점심. 칠십에 가까운 한 아저씨와 그의 아내 그리고 아내의 여동생. 그리고 두 명의 이십대 중후반의 한국 여성과 함께 식탁에 앉았다. 칠십에 가까워 보이는 아저씨는 내가 그 세대를 분류할 때 "이명박꽈"로 분류하는 사람이었는데 뭔가 거침이 없고 큰 조직에서 우두머리를 했다는 브래그가 있으며 호방하게 영어를 아주 짧은 문장으로 하고 무례하기도 하며 주도권을 잡고 다른 사람 신상을 털고 충고질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약간 수줍은 아내는 내가 "교총 아줌마"로 분류하는 성적이 잘 나오는 아이는 똑똑하고 착한 아이이며 그렇지 않은 애들은 문제아로 낙인 찍지만 아직 세상의 떼는 덜 탄 수줍음이 있고 한번도 여당을 찍는데 망설임과 현대사에 대한 의심이 없었던 그런 부류의 아주머니였다. 동석한 이십대 중의 후반으로 보이는 살짝 통통한 여성은 기본적으로 신경질과 짜증이 몸에 베인 사람이고 자기가 배낭여행자라는 이상한 정체성을 심하게 갖고 있으며 현지 사람들을 은근 무시하는 태도이고 꼰대를 혐오하나 지 또한 다른 꼰대질을 하는 부류로 보였고 다른 하나는 어른들을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인이 박히도록 살았는지 나근나근 예예하면서 직장생활을 할 것 같은 모범생이었다. 

 

이명박 아저씨는 난데 없이 두 처자의 신상을 털기 시작했다. 신경질녀는 이런 꼰대 난 너무 잘 알아라는 식으로 짜증을 내며 직장 관두고 오래 여행 중이라고 밝혔고 나근나근녀는 대형병원 간호사인데 휴가 내서 혼자 여행왔다고 했다. 이명박은 역시나 이틈을 놓치지 않고 왜 직장을 관뒀냐 꾸짖기도 하고 여자들끼리 이렇게 다니느니 빨리 남자 물어서 시집 가라고 종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차가운 콜라 한잔이 마시고 싶어서 직원에게 콜라를 주문했는데 혼자 여행 다니지 말고 남자 물라던 이명박 아저씨는 대뜸 내 방향을 보면서 자네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가를 물었다. 나는 그저 직원에게 "다이엍 코크 플리즈.."라고 했을 뿐이다. 다이엍 코크 플리즈라는 이 말이 뭐가 그랬는지 이명박에게는 미국 유학생임이 털렸고 직원에게 콜라 가격을 물어보고는 일반 가게보다 오백원 비싼 걸 갖고 식당 직원에게 목청껏 "오.. 잇이즈 투 익쓰펜씨브"를 연달하던 신경질녀도 더이상 잇이즈 투 익쓰펜씨브를 외치는 걸 관두었다. 

 

이명박 아저씨의 화살을 나에게로 왔다. 어느 학교를 다니느냐 해서 학교를 말했더니 캠퍼스까지 묻기 시작했고 전공을 묻더니 요즘 가장 중요하다는 인문학 박사니 미래가 창창할 것이라며 오만 이상한 말을 늘어 놓는다. 그의 부인 교총 아줌마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방긋 웃으며 본다. 이명박 아저씨는 다시 그 처자들에게 고개를 돌리더니만 "먼데서 찾지 말고 쟤 물어. 쟤가 딱이네"라며 혼자 사랑의 스튜디오를 만들고 있었고 나보고는 이 둘 중에 누가 나은지 얼른 골라보라고 한다. 

 

나는 이 상황을 빨리 어떻게든 어색하고 조용하게 바꾸고 싶었다. 밥도 거의 먹은 상태였지만 빨리 저 이명박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싶었다. 그냥 수줍은 얼굴로 "제가 이혼한지가 얼마 안돼서요..."라고 말했다. 동행했던 분은 국을 먹다 뿜으려고 했다. 두 처자는 눈이 똥그래지면서 나를 쳐다보았고 그 이명박도 잠깐 당황한 듯했다. 내 작전이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또 볼 사람도 아닌데 내가 이혼남이면 어떻고 트랜스젠더여도 뭔 상관이겠는가. 그렇게 나만의 평화로운 침묵이 테이블에 찾아왔고 그 어색함이 너무 좋았다. 

 

"얘들아. 잘 됐다. 반값에 왔네. 저렇게 반값에 왔을 때 확 물어 버리는 거야. 잠깐 어디 갔다 온 거 흠도 아닌데 반값이 된 거니 얼마나 좋냐. 쎄일할 때 빨리 낚으라고!" 

 

이명박 아저씨는 그 잠깐의 침묵 동안 이혼 반값 세일론을 생각했던 것이다. 당해낼 수가 없었다. 난 졸지에 이혼한 것도 모자라 반값 매물로 교배 시장에 나온 수컷이 됐고 그 여자들은 반값일 때 사는 게 좋을 암컷이 됐다. 

 

 

서둘러 남은 밥 먹으면서 나름 내 세대 순발력과 재치로는 상위 일프로에 들 거라고 자부했던 나는 역시 저 이명박들을 당해낼 수가 없다고 다시금 깨달았다. 우리가 2008년 이명박을 사대강을 그리고 소고기 수입을 막을 수 없었던 그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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