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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비오는 날 아주 짧은 생각의 흔적

세계속으로 | 2018.09.27 22:10:36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어렸을 때 비가 오면 마냥 좋았지만

 

마흔이 되고 나서는 사실 비는 나의 온몸을 필요 이상으로 쑤시게 만든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려는 듯.

 

아니면 내가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려는 듯.

 

그러지 않아도 지고 가는 삶의 무게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기는 하지만은.

 

비가 오면 몸부터 걱정해야 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조금은 서글퍼진다.

 

 

 

 

어렸을 때는 일부러 비를 맞으면서 이 동네 저 동네를 돌아다니곤 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비가 오는 날에는 동네 구석을 지나가다 결국에는 꼭 학교엘 갔다.

 

지금은 초등학교로 불리지만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앞에는 비가 오면 물이 크게 불어나곤 했다.

 

학교 얘기를 조금 하자면 내가 다니던 학교는 매우 작은 편에 속했다.

 

한 학년에 가장 많게는 4반까지만 있었는데 운 좋게도 5학년 때 한번 4반이 된 적이 있었다.

 

왜 운이 좋았냐고 물으면 학생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좋았다.

 

다른 친구들은 모르겠지만 학생 수가 적었던 그 학년의 기억이 나에게는 더욱 선명하게 남아 있다.

 

왠지 모르게 서로에게 가깝게 남아 있던 기억들이 나에게는 좀 더 진하게 베어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내가 좋아했던 아이가 그 반에 있어서였을까.

 

 

 

 

비가 와서 삼천포로 빠지는가 싶다.

 

 

 

 

어쨌든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날의 그 장소가 어김없이 생각난다.

 

작았던 학교 그리고 학교 건물 양쪽으로 나 있던 난간을 거쳐야 내가 있던 2층 5학년 4반 교실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통과해야 하는 난간으로 가기가 쉽지 않았는데 가는 길에 있는 도랑물이 어김없이 곧잘 크게 불어났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보수하지 않으면 막아놓았을 그 길이 그때는 당연하게 여겨졌다.

 

어떻게 보면 그 길을 즐겼던 것도 같다. 비가 오늘 날이 주는 생동감을 온몸으로 맞았으니까.

 

그렇지만 오후반이라 학교에 오래 남아 있어야 했을 때는 조심해야 했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젖은 양말을 오래 신기가 싫었다.

 

발을 감싸고 있는 마르지 않는 물기가 비가 오는 날의 즐거움을 상쇄하곤 했다.

 

그래서 오후반일 때는 항상 바닥에 끌면서 들어 다녔던 실내화 주머니를 가슴에 품고 조심스럽게 물길을 건너던 기억이 난다.

 

"책가방은 젖어도 실내화는 안 된다."

 

공부에 관심이 있을 리 없던 때라 책은 젖어도 실내화가 젖으면 곤란했다.

 

 

 

 

오늘 밖에 쉬지 않고 비가 내리고 있다.

 

그리고 비는 나를 그때의 기억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비오는 날에 커피는 참 잘 어울린다.

 

그러나 비오는 날의 커피는 비오는 날 그때의 나로 데려가 주지는 않는다.

 

그때의 내가 커피를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비오는날 신발을 보면 비를 맞고 뛰어노는 그때의 내가 생각난다.

 

그때의 나에게 말해줄까 싶다.

 

 

 

 

"조심해 양말이 젖으면 곤란하다구."

 

 

 

 

언제 없어질까 이런 향수가.. 잠깐 생각하지만

 

30년이 지났다.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한 걸 보면, 아니, 아직도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걸 보면 나는 아직도 어리구나 생각이 든다.

 

비가 오는 창밖을 보고 있는 내 아이들을 보면

 

그 옆에 함께 창밖을 보며 서 있는 나를 본다.

 

세월의 흔적과 냄새는 다르지만

 

그렇게 또 별반 다르지 않구나

 

이렇게 늙어가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주저리고 있는 동안에

 

옆방에 있는 아내는 문자를 보내온다.

 

그리고 그 문자가 나를 금새 지금으로 데려다 놓는다.

 

 

 

 

"여보 나 신발 사도돼?"

 

 

 

 

신발.

 

조금 다른 느낌이다.

 

향수가 달아날까 얼른 사주고 잊어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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