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3월7일은 기형도 시인의 30주기 였습니다.
언론에서도 갑작스레 시인을 불러냈고 저도 오랜만에 시집을 꺼내 들었습니다.
시인의 모교인 연세대학교에서는 심포지엄도 열렸다고 합니다.
대학 동문인 윤동주 시인과 비교하는 연구가 발표되었다고 합니다.
미국 까지 들고온 시인 10주기 추모 전집에 아주 작은 사연이 있습니다.
전집 발간에 참여했던 시인의 후배에게 '사전 판매' 안내를 받았습니다.
나와 다른 세상에 있는 존재 같던 시인이 시인이 지척에서 만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세상은 암울했고, 하루하루가 비참했던 20대 내가
시인의 고통에 위로 받고 마음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전집에는 시 뿐만 아니라 산문과 사진들도 실려있습니다.
자신의 시를 정서하길 즐기고, 시인이 타자 한 시를 보고 좋아하셨다는 대목에선 웃음도 났습니다.
저는 타자기가 아닌 워드프로세서로 반듯하게 프린트된 내 글을 보고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섭니다.
책을 덮고 처에게 물어 봤습니다. 기형도 시인 아나?
처도 시인이 시집을 갖고 있습니다. 유고 시집이자 사실상 유일한 시집입니다.
시인이 이 시집 발간 직전 뇌졸증으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드문드문 밑줄 쳐진 시집을 보니 처도 20대를 그렇게 지나왔나 봅니다.
고통에 공감하고 위로 받았던 그 시들이, 이젠
안타깝고 안쓰럽게 읽힙니다.
시인이 힘든 시대에 던져졌던 것 같아서요.
어쩌면 29세로 멈춘 시인의 젊음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20대들의 고통은 여전 한걸 보면요.
기형도 시인을 아시는군요. 제가 처음 이분의 시를 읽고 감동을 받은 시는 “우리 동네 목사님” 이라는 제목의 시였습니다. 저작권에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번 올려볼게요.
제 어린 시절 동네 교회 목사님 같아요. 우리 동네에서 '배운 분'은 국민학교 선생님 한분과 목사님이었어요. 교회가 아니라 마을을 위해 봉사하셨던 분이고, 교회를 다니나 안다니나 동네 사람들이 많이 묻고 의지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렸을 때 와설까
공대 나와 그럴까
한국 시는 도저히
냉면인지 잔친지
줄 바꾸면 시첼까
\n빼면 시첼까
알아보고 싶지만
구글은 딴소리만
!
저는 어렸을 때 미국에 와서 그런지 아니면 이과 성향이라 그런지 한국의 시는 어떻게 리듬을 타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시는 냉면처럼 줄(면)을 길게 가져가는 국시(국수의 전국적 방언)를 산문이라 부르고 잔치국수의 줄처럼 토각토각 끊어만 놓으면 시라 부르는 건지요.
카톡이나 SNS포스팅처럼 줄만 계속 바꿔 주면 시의 문체인가요 그렇다면 줄바꿈(\n : newline character)만 없애면 그 시는 운율이 죽어 시체가 되나요.
알아 보고 싶지만 검색으로는 쉽게 찾을 수 없네요. 누가 기본적인 것 설명해 주실 분 없으신가요?
국어는 언어적 특성상 영어처럼 음절의식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영시에서처럼 ryhme이나 meter의 압운을 활용한 기교가 잘 쓰이지 않습니다. sonnet, ballad 같은 형식을 통한 리듬은 한국 시조에서나 찾을 수 있어요. 대신 음절이 아닌 어절이나 어휘의 반복을 통해 심상을 일으키는, 형식화시키기 힘든 기교가 많죠. 개인적으로 국어에서 가장 발달되고 대중화된 시 형식은 가요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는 거의 자유시나 산문시라 무엇이 시라고 정의하는 건 참 어렵습니다.
저는 기형도의 시보다는 산문을 더 높이 평가합니다.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시인 중 하나로 꼽히는 분이기도 합니다.
말씀하신 그 과대 평가가 어떤 건지 궁금하네요. 문학사에 주요하게 거론되거나 과대 평가 논쟁이 있을 만큼 명성이라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긴 합니다만.
2006년 기사이지만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0880 이런 조사가 있었고요. 물론 고은이 압도적인 1위지만요. 명성 걱정을 할 만큼 인지도가 없는 시인은 아닐겁니다.
시인세계라는 계간지에서 과대평가된 시인에 대한 특집을 싣기도 했습니다. 경향신문 발췌:
기형도는 우발적 죽음으로 신비로움이 덧씌워진 측면이 있다. 문학평론가 홍기돈은 ‘죽음의 후광을 넘어서기 위한 단상’이라는 글에서 “1990년대 한국문학을 들끓게 했던 주제는 단연 ‘죽음’이었고 죽음으로 덧칠 된 기형도(와 ‘입 속의 검은 잎’)는 90년대 문학을 열어젖힌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고 썼다. 그는 "한 시인의 우발적 죽음을 필연으로 수용하는 현상은 그 사회가 처한 조건과 관계 맺는다"면서 "사회에 은연 중에 유포되어 있는 죽음의 분위기가 기형도의 죽음과 공명하였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났고, 그런 공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기형도의 죽음은 우리 문학계에서 마치 신탁과도 같은 영향력을 갖게 된다"고 분석했다.
죄송합니다만 제시한 내용으로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시인 중 하나로 꼽히는 분'이란 평가를 저는 납득할 순 없습니다.
먼저 설문의 참여자나 결과가 모두 '한국 문학사'를 대표하지 못합니다. 설문 구성원도 '젊은 시인'이라고 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명의 주관적인 판단입니다. 그걸 두고 한국 문학사를 운운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게다가 이 설문이 2005, 6년 그러니까 10년도 더된 설문이란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다. 대상에 오른 시인들은 당시에 인기가 있거나 명성이 있는 시인들이고, 사료적 판단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지금 설문을 다시 한다면 적어도 기형도 시인은 거론되지 않았을 거라 확신합니다.
'꼽히는 분이기도 하다'는 현재에도 그렇다는 말인데, 설문이 진행된 이후로도 문학사는 진행 중이고 그렇다면 판단은 지금을 기준으로 과대평가가 됐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이 글을 올리기 전 없는 것 없는 마모 게시판을 검색해 봤는데, 결과엔 기형도라는 이름으로 걸리는 게시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사후 10년 이후 30년이 되서야 언론에 이름을 들이미는 정도입니다. 과거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의 평가가 그런겁니다. 그런데 이런 정도로 미미한 시인을 두고 그 자료를 근거로 '문학사적 과대 평가 운운'은 시인에게 영광일 수도 있겠지만 참 뜬금없다고 봐요. 그리고 고은 시인 등 앞선 과대 평가자가 있었지만 '가장' 과대 평가됐다는 것도 애초 부정적으로 보려는 본인 감정이 많이 들어간 표현 같네요.
다음은 설문자들이 과대평가라고 기준한 이유도 한번 따져봐야 합니다.
당시 인기 요인을 김현의 평론과 요절로 봤다는 겁니다. 부정을 저지른 것도 아닌 이런 이유가 부정적으로 거론 되는 것도 웃긴 일입니다만, 구체적인 부정적 평가로는 작품의 폭이 넓지 않으며 비전이 암울하다 입니다. 전 예술 작품의 폭이 넓어야 좋은 작품이라고 전재하는데 동의할 수 없고요. 그 폭의 판단 역시 매우 주관적입니다. 비전이 암울하기 때문에 나쁜 작품이라는 평가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당시 젋은 시인들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고리타분한 기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란 판단입니다. 이게다가 제시해주신 "사회에 은연 중에 유포되어 있는 죽음의 분위기가 기형도의 죽음과 공명하였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났고"는 당시 기형도 시인이 잘 팔린 이유를 설명한 것이지 문학사적 과대 평가에 대한 근거는 아닌 것 같네요.
시인은 살아 생전 제 시집 한권 만져 보지도 못하고 죽었어요. 그리고 나온 시집이 인기가 있어 좀 팔리니 과대평가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생겼다가 시집도 유행처럼 지나고 대중에게선 기억에서 조차 사라진 지금 , 누가 기형도 시인이 한국 문학사에 가장 과대 평가된 시인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그 때는 그래도 과대평가라고 악악대던 사람들이라도 있었는데 하는 게 오히려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됐던 기형도 시인에 대해서 아는 분을 보니 반갑습니다.
시보다 산문을 더 높게 평가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이유로 그리 평가하게 되셨는지, 산문은 또 시와 무엇이 다르다고 느끼셨는지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다른 분의 감상을 듣고 제 감상도 나누면 서로의 문학적 소양을 넓혀가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 기대가 됩니다.
제 표현이 과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저 당시에 한국에서 젊은 문학도들과 많이 어울렸고 당시에 기형도 시는 유행과 같았습니다. 적어도 2010년까지는 그랬습니다. 군대와 관련된 글이 있는데 제가 군대 가기 직전이라 가장 동했던 글이기도 했죠. 요즘은 어떤지 제가 알 방법은 없습니다. 그냥 글 쓰는 친구들 사이에서의 문학적 평가는 어릴 적 인기에 비해 박하다는 개인적인 느낌이 있을 뿐이죠.
수식어는 제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아무리 표본이 적은 조사일지언정 '가장 과대평가된 시인'을 꼽을 때 이름이 들어가고 여러 매체에 보도된 것만으로도 무시할 정도는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006년의 저 조사에서 하루키가 한국 문학사에 영향력은 크지만 과대평가된 문인 1위로 꼽히는데 (하루키 작품을 깔보는 게 당시의 분위기) 요즘은 재평가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문인 사이에서의 평가라는 건 언제나 주관적이고 언제나 의미 없기 마련이죠.
김수영 시인의 산문이 시보다 좋았다고 흔히 얘기하는 게 그 분의 시가 위대했음을 말해주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ㅎㅎ
그런 역설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전 그 판단에 반대하는 건 아니고요, 그렇게 말씀 하시는 분들을 많이 봐서 모두 같은 이유는 아닐텐데 싶어서 단순한 호기심이 생기긴 하더라고요.
한 때 시도 읽고 했었을 때는 기형도 시인의 시도 보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제 기억을 샅샅이 뒤져봐도 기억이 안나네요.
제 기억이 말라버린건지, 아니면 제 추억이 말라버린건지, 그것도 아니면 제 삶이 매말라버린건지 모르겠네요.
TV 드라마를 시간에 맞춰서 챙겨보던 시절,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소설과 시와 유럽 영화에 대해 소고하던 시절, 사진을 찍고 인화되기 까지 며칠을 기다리면서 사진이 나오길 기다리던 조금은 느리고 불편하던 시절이 가고, 스트리밍으로 보고 싶은 것을 휙휙 넘기면서 보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손전화기와 대화를 하고, 사진을 연사로 찍고 바로바로 지우는 바쁜 시절이 오니, 이제는 시도 추억의 한편으로 뭍혀가나 봅니다. 적어도 제 삶에서는 말이지요.
시잘못인 저도 20대에 연영과 다니던 시절 기형도 이름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그 시집을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인 이름부터 엄청 좋았어요.
쉽지 않은 시들이었지만, 지금 '우리 동네 목사님'을 읽으니 시에서 시골동네의 모습과 교회의 모습들이 그려지네요.
와, 생활에 밑줄을 그려야한다!! 엄청 좋네요!!
예, 한때 젊은 이들 에겐 참 인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꼭 기형도 시인의 시집 뿐만 아니라 시집이 베스트 셀러에도 자주 오르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어요.
기형도 시인을 잘 알지 못하지만, 이름만 들어도 좋았던 그런 시인, 더불어 문지사도 참 반갑네요~~
요즘 대형 유명 출판사들도 없어지던데 문지사는 여전한지 모르겠습니다. 발행될때 마다 이곳 시집 열심히 사 모았던 기억이 나네요.
기형도라 해서 어디 섬인가했네요;;;;
파리에 계신줄 알았는데, 무사귀환 하셨나보네요!!
예, 지난주에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오하이오님 덕분에 좋은 시 몇 편 잘 감상했습니다. 첫번째 시 “엄마 걱정” 읽고나니 어릴 적 생각도 나고, 내용은 서로 관련이 없지만 왠지 모르게 함민복 시인의 “눈물은 왜 짠가”가 떠오르네요 :)
보다 뻔한 흐름이라고 짐작을 했으면서도 결국 눈물을 찔금 거렸어요. 엄마는 별다를 것도 없지만 늘 감동을 주는 분 같아요. '눈물은 왜 짠가' 받고(?) 저는 '우동 한그릇'이 떠올랐습니다.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뻔한 신파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따금씩 덜컥 덜컥 잡힙니다 ㅎ 우동 한 그릇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책으로 나오긴 했는데 이전에 인터넷 이전 피씨통신 시절 퍼져서 잔잔한 감동을 줬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땐 '실화'라는 말머리 때문에 더 감동을 주었던 것 같긴 한데요. 소설로 밝혀지긴 했습니다. 마침 저도 다시 읽어 보려고 검색하니 한 블로거가 올린게 있어서 링크 남깁니다. https://blog.naver.com/kgn1012/221449405420 촉촉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엄마 걱정'이라는 시는 자이언티 노래 가사같네요
어렸을 땐 절대 안읽던 시가 나이드니까 조금씩 읽혀요;;;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
그런데,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니.... 안타까워요.
시에 대한, 시인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저 내 가슴을 울리고, 그 시를 다시 읽으면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애틋한 거지요.
쇼팽 발라드 1번의 무거운 첫 음이 내 가슴을 때리듯,
기 시인의 이 시 첫 구절이 내 영혼을 울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빈 집>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저 내 좋았던 기억에 세간이 평도 좋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나 봅니다.
빈 집의 첫 구절을 보니 소설이 하나 떠 오르네요. "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
아직 읽진 못했는데 지난해 한국에 갔을때 사들고 들어 올 걸 그랬다 싶어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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