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20도를 훌쩍 오르며 올들어 가장 더운 일요일
어쩌다 우리 놀이터가 된 텅빈 동네 대학 주차장.
아이들이 제 바퀴를 신나게 굴릴 때 나는 나대로 신났던 오후.
세상을 담박에 흐려 버리는 묘기를 부리는 날
선명했던 풍경을 쉽게 지울 수 있던 건
렌즈를 빼고 작은 구멍이 뚤린 '핀홀'로 사진을 찍었기 때문
오래전에 사서 한두번 쓰고 팽게쳐둔 '존플레이트(Zone Plate)' 핀홀
전날 집 주변을 찍으며 테스트 하다
화창하기 그지 없는 이날에 써먹기에 딱 알맞다 싶어
아이들이 스케이트에 스쿠터를 챙길 때 나는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
활보하며 담은 텅빈 대학 풍경
정적 없어 쓸쓸해 보였던 풍경이 화사하게 보이니
마음이 가벼워지자 피식 새 나왔던 웃음.
그때 기억, 세상이 선명하고 깨끗한 사진을 찍겠다고 달려 들 때
심사가 뒤틀려 반대로 가겠다며 샀던 핀홀 어댑터를 샀던 치기.
아마도 세상이 높게(고 선명) 가니 나는 낮게 가겠다고 했었던 듯.
세상이 지나 다시 보니 거기에 높낮이가 있었던 것은 아닌 듯.
그저 다른 것. 기구의 쓸 모가 다르고, 찍고 보는 사람의 취향이 다른 것.
한참을 놀던 케이트를 벗는 아이들. 더불어 내 놀이도 끝나고 선명해진 세상.
레전드 포켓몬 잡으러. 텅빈 대학이었건만 우리 앞엔 이미 모인 사냥꾼들.
쓰신 글이 한편의 시를 본 듯하네요. 촛점이 안맞는 듯한 화질처럼 찍이는 핀홀도 처음 봐서 신기합니다. 좋은 날씨에 삼형제가 재밌게 노는 걸 보니 왠지 제 마음도 흐뭇해지네요.
그저 말이 짧았는데 높게 평가해주신 것 같아 감사합니다.
핀홀 카메라의 경우도 그 구멍을 어떻게 뚫는가에 따라서 비춰지는 상이 달라 보이기도 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건 존플레이트도 그 변화를 준 것 중에 하나인데, 원리를 알려고 노력했습니다만( https://en.wikipedia.org/wiki/Zone_plate ) 여태 본 적없는 수식까지 나와서 포기했습니다. 야튼 기회가 닿으면 다른 종류 핀홀도 사 보려고 합니다.
생각의 전환이 돋보이는 글과 사진이네요. ^^
텅빈 교정에서 여유가 느껴집니다. 캘리는 이제 학교 트랙/공원도 다 폐쇄했다네요. 아이들이랑 길 건너 공원에 한번 가야지 하다가 이제 산책갈 곳도 마땅치 않아졌어요. ㅠㅠ
사진으로나마 맑은 공기를 들이마신 것 같아 속이 조금 뚫리는 느낌입니다. ^^
시작은 반항이었던 것 같은데 전환이라고 아주 좋게 말씀해주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여기는 날씨가 풀리면서 거리를 걷고 달리고, 자전거 타는 사함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아직(?) 강제적 격리 수준의 지침이 없어서 그런것 같은데요. 그래도 이전과 달리 닫힌 생활에 불평도 있었는데, 말씀 들으니 이 만큼도 고맙게 여기며 즐겨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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