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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병원 이야기

참울타리 | 2020.04.19 20:18:30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두 가지 암을 짊어지고 계시던 50대 여성 환자분. 환자 보호자와 환자가 계속 치료를 하자고 하니 의미 없는 치료는 계속되었다. 전신에 퍼진 말기 암과 또 다른 구강암 때문에 제대로 말씀도 못 하시고, 가쁜 숨을 내쉬며 있는 이 분에게 내가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까? 삼리터나 되는 복수를 뽑고 나서도 이 분의 증상은 좋아지지 않는다. 고통 속에서도 항상 환한 미소를 잃지 않으시는 이 분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선 호스피스과에 연락하고 남편분과 아주머니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 20여년간의 암투병이었다. 몇 년 사이로 계속 눈에 띄게 안 좋아지는게 보였단다.

 

 “지금 상황은 말기암에 구강암까지 겹쳐서 부인분께서 식사를 제대로 못하셔서 극도로 쇠약해진 상황이예요. 배에 구멍 뚫어서 튜브로 영양공급을 시도하려고 했는데 복강내에도 암이 가득 차고 또 복수가 심해서 방사선과에서 튜브 삽입을 못했어요. 영양을 혈관주사로 공급하는 것은 감염이나 혈전 등의 부작용으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예요.”

 

 남편에게 그녀가 굶어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주지시키기가 참 어려웠다. 

 

“주말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월요일에 결정 내릴께요. 그 때까진 혈관주사로 영양 공급해 주세요.”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전화로는 더더욱 어렵다. 코비드 때문에 보호자 방문이 금지된 이 상황이 더 아쉽다.

 

 다음날 아침. 떨어지지 않는 어려운 발걸음을 옮겨 회진을 했다.

 

나 : 오늘은 좀 어떠세요?

“그냥 그래요...”

나 : 남편분 보고 싶으시죠? 자녀분 있으세요?

“자녀는 없어요. 남편 보고 싶어요.”

 

 집에서 온갖 걱정과 상상으로 부인을 생각하고 계실 남편분이 떠올랐다. 자녀도 없이 더군다나 남편도 없이 쓸쓸히 죽음을 맞고 계신 상황에 마음이 아팠다. 병원 어드민에 전화했다. 아직 호스피스 결정이 내려진 환자가 아니지만 마지막 삶의 나날들을 병원에서 타인들과 보내는 건 옳지 않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원칙적으로 안 되는 거라고 곤란해 하는 수퍼바이저에게 이렇게 하는게 옳은 것이라고 남편이 환자 방문할 때 그에게 마스크 씌우고 체온 재고 아주머니 옆에 있게 하는게 옳은 일이라 밀어부쳤다.

 

 그 날 오후 아저씨는 병실에서 아주머니의 퉁퉁 불어버린 사지를 연신 주무르셨다.

 

나 : “와이프분 오랜만에 뵙는 거죠?”

아저씨 : “저는 복수만 뽑고 퇴원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나 : “치료를 계속하고 싶어하시는 거 같아서 방사선과에 연락해서 튜브까지 꽂아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암이 너무 퍼져서 그것도 안 되네요. 아주머니가 너무 힘들어 하셔서 제가 위에 이야기 해서 방문이 가능하도록 했어요.”

아저씨 (아주머니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이제 그만할까? 힘들...지?

아주머니 : “나 더이상 고통스럽고 싶지 않아. 이제 그만할래.”

 

 시간이 좀 지나고 아저씨가 아주머니와 집으로 호스피스 퇴원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리셨다. 또 환자 분 방문을 두드렸다. 너무 병 진행이 빨라서 집에서는 아주머니를 돌봐드리기 힘드실꺼라고 전문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시는 것이 낫다고... 말씀드리려고. 결국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는 걸로 케이스는 일단락 되었다.

 

 어려운 질문을 할 차례다. 호스피스 기다리시는데 심폐소생술 여부에 대해서도 여쭈어 봐야 하기 때문이다.

 

나 : “여태껏 잘 버티셨고 지금까지 심폐소생술을 하시는 걸로 원하시는 걸로 알아요. 호스피스 병원 결정을 하셨는데 혹, 심장이나 폐 기능이 멈췄을 때 심폐소생술을 아직도 하고 싶으세요?”

 

 나는 혹 이분 코드가 떴을 때 생기 잃은, 말라서 뼈가 다 들어나 보이는 이 분의 육체에 더 큰 충격을 주고 싶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은 더 큰 고통과 부러진 갈비뼈만 남기고 끝나는게 대부분이다.

 

아저씨 : “자기야. 어떻게 하고 싶어?”

아주머니 : “나... 고통 없이 가고 싶어.”

 

 아저씨는 아주머니의 기운 없는 얼굴을 자신의 가슴팍에 파

묻으며 심폐소생술 금지에 동의하셨다...

 

 의사이기 전에 나도 사람이고 이 같은 광경에 울컥하여 병실에서 울어버릴 뻔 했다. 아저씨가 경험해야 할 이별의 아픔이 내 맘에 전해져서 내 마음 또한 저며왔다. 아주머니가 지금쯤은 좋은 곳에서 더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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