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글

MileMoa

검색
×

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드라마 - 부부의 세계 (16화 완결 후 업데이트)

후지어 | 2020.05.03 03:31:14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스포 아주 많습니다~)

 

(2020년 5월 17일)

아... 어렵습니다.

글을 쥐어짜서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렇게 쓸 말이 없는데 업데이트를 해야할까 하는 마음도 있지만,

이왕 시작한 것, 마무리는 지어야지 싶어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결말이 최악은 아니었습니다.

이태오의 몰락, 예림의 독립 및 카페 창업, 다경의 새로운 공부 등이 다소 관습적이어서 아쉬웠습니다.

선우의 독백, 예림의 편지, 뜬금없는 동식의 이야기 등 직접 '대사'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면들은 다소 게으름이 보였습니다.

30%의 시청자가 보는 드라마니까 너무 어렵게 마무리를 지을 수는 없었겠지요. 이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복수와 용서, 독단적인 정의, 혼자만의 노력, 완전무결한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다 등등의 겉으로 드러난 메시지를 제외하고,

16화에서 숨은 그림 찾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첫 장면. 도어락 누르는 소리, 그리고 이태오가 집에 오면서 지선우 가족 3인의 행복했던 한 때가 먼저 그려집니다.

마지막 장면 역시 도어락 누르는 소리, 준영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집에 오면서 선우의 안도하는 모습으로 끝을 맺습니다.

 

너무나 역설적이게도, 이 두 장면이 말해주듯이, 선우는 완벽한 가족에 대한 갈망이 강한 인물입니다. 다경의 집에서 깽판을 쳐도, 이태오의 몰락을 위해 여회장과 손을 잡아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태오에게 "그럴 수 없다는 것 잘 알잖아!" 라고 못을 박아도, 마음 한 켠에는 3인의 완전한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여지가 항상 존재합니다.

단적인 예로, 제혁-예림 커플의 재결합 파티에서 선우와 준영은 흰 옷을 입고 있고 태오가 멀리서 바라 보는데 검은 옷입니다. 다음에 3인이 함께 만나서 식사하는 장면에서 태오의 옷은 여전히 검은 색이지만 선우는 회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선우의 마음은 태오의 그것과 조금 더 닮게 되었고 여전히 grey area에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지요. (이 장면 외에도 작품 전체에서 흑백의 대비로 인물의 심리를 나타내는 장면은 여러 번 등장합니다. 사소한 옷 색깔로 우기지 마세욧, 라는 태클이 혹시 들어올까봐 소심하게 말씀 드려요 ^^)

 

식사 자리에서, 태오는 철 없는 소리들을 늘어놓고 준영은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흘립니다. 아빠가 너무나 미운 마음이 한 켠에 있지만, 다른 한 켠에는 저렇게 우기는 아빠가 가엾고 자신의 처지가 불쌍하고 그럼에도 함께 살 수 없음에 대한 슬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건 지선우의 눈물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선우와 태오가 부둥켜 안고 울 때에는 그냥 사라져 버리지요. 애가 사라졌는데 선우는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1년 내내 기다립니다.

얼핏 보면 뭔가 부자연스러운데요, 이 사실 자체가 준영이 무언가의 상징이라는 걸 말해줍니다. 자식으로서의 준영이 아니라 선우의 어떤 일부를 상징하는 준영.

다시 돌아온 자신의 일부는 무엇일까요? 마지막에 읊조리는 독백에 드러나듯이, 한 뼘 성장한 지선우일 것입니다.

완벽한 가정을 위해 종종거리며 열심히 노력하던 자신.

내가 옳다고 믿고 누군가를 단죄하려던 자신.

나는 피해자이고, 그러니 무슨 짓을 해도 정당화가 된다며 오만하던 자신.

이 모든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부쩍 성장하여 "부부간의 일이란 결국 일방적 가해자도 완전무결한 피해자도 성립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라는 깨달음에 이르는 지선우. 그리하여 스스로를 구원하게 된 지선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P.S. 한 작품의 결말이 모두에게 박수 받기는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실망하신 분들도 계시리라 봅니다.

작품을 감상하고서 이런 비평 글을 쓰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는 훨~씬 쉽습니다. 무엇보다, 비평은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재미있는 건 작품 그 자체이지요. 부끄럽고 재미없는 이 글보다 훨~씬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 준 제작진, 배우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

(2020년 5월 10일)

 

아무도 기다리지 않지만 13, 14화 업데이트를 할까 합니다. ^^

오늘의 주제는 <지선우 탐구생활>.

특히, 많은 시청자들께서 감정이입을 하면서 보는 캐릭터이기에 가장 관심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이 명제를 먼저 던지고 시작하지요. "지선우는 아주 불완전한 인간이다."

 

많은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들은 상당한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여주는 보통 가난한 것 빼고는 매력있고 부지런하고 상대방을 잘 배려하고... 남주는 보통 약간 특이한 성격적 결함 빼고는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만한 조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지요.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이 되지 않으면 그 드라마는 당연히 망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보통은 '완벽함'에서 한두 개가 빠지는 인간형을 드라마 주인공으로 내어 놓습니다.

드라마의 이러한 문법에 익숙해 있기에, 우리는 무의식 중에 지선우가 하는 행동들은 옳은 것이라고 정당화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지선우는 이런 전형성에서 아주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첫째, 자식(준영)에게 절대 좋은 부모가 아닙니다.  태오가 반백수 시절에 애 키우는 건 거의 태오에게 맡겨 두었습니다. 오죽하면 준영이 처음 이혼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아빠랑 살래!" 라는 반응을 보였을까요? 준영과 둘만 살면서도 자주 늦게 들어오고, 도벽이 있는지 정신과 의사 윤기와 상담을 받는지도 아주 늦게서야 알게 됩니다. 준영과의 대화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식사, 공부, 학원에 대한 게 거의 전부입니다. 박인규와 나쁜 소문이 퍼질 때에도 준영에게 자세히 설명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환자였다면서 거짓말로 둘러댑니다. 준영을 완전 애 취급 하는 것이지요. 준영이 잘못할 때에도 뭔가 이야기를 들어보려 하지 않고 윽박지르거나 다그치는 방향입니다. 준영을 사랑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그 방법이 아주 서투릅니다. 부원장직을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 뒷바라지 해주는 게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준영에게 "널 위해서 이러는거야" 라고 말은 하지만, 준영 입장에서는 한참 부족한 엄마입니다.

 

둘째, 지선우는 한 인간으로서 지탄받아 마땅할 짓을 여러 번 합니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지선우는 한 명도 아닌 두 명과 간음을 저지른 상간녀입니다. 손제혁과 하룻밤을 보냄으로써 아무 죄도 없는 고예림을 고통에 빠져들게 합니다. 전남편이지만, 엄연한 남의 남편인 이태오와 또 하룻밤을 보냅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각각의 부인 앞에서 "네 남편과 잤다" 며 폭탄 선언을 해버립니다. 태오에게 없었던 일로 하자며 잊겠다고 해놓고서, 그걸 못참고 다경 앞에서 얘기해 버리는 것이지요. 아... 우리 지선우를 어디까지 이해해 줘야 하는 건가요? ㅎㅎㅎ

 

여기까지 읽으셨는데도 여전히 지선우를 옹호하고 싶고,

그녀가 불쌍해서 고통에 공감하고 싶고

그 모든 건 상처입은 한 영혼의 복수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이 드라마는 아주 잘 만든 드리마입니다.

아주 불완전한 인물이 주인공임에도,

이 모든 그녀의 단점과 악행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는 이 드라마는,

시청자를 제대로 낚고 있다고 감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P.S. 14화 여다경의 대사, "완벽해"는 1화 지선우의 첫 대사 "완벽해"와 쌍을 이루고 있지요.

완벽함에 대한 집착이 불행을 낳는다, 이것이 이 드라마 메시지 중의 하나이기도 하겠지요. 그런 한편, 제 귀에는 "완벽한" 주인공을 버림으로써 이렇게 사랑받는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 는 작가의 말로도 들렸습니다.

 

-------------------------------------------------------------------------

(2020년 5월 3일)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들 나름의 견해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크게 두 가지가 있으면 예술이라고 봅니다. 새로움 그리고 깊이.

한 작품의 깊이는 '감추기와 드러내기'로 흔히들 표현하지요. 두번 세번 볼 때마다 새롭고, 작가나 감독이 숨겨놓은 그 무언가를 찾는 즐거움이 있는 작품, 기꺼이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부부의 세계>는 이 깊이는 다소 부족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매 회 '새로움'에 감탄을 하게 만들고 예상을 깨는 전개에 머리가 아득해지는 경험은 이 작품을 예술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게 만듭니다.

까짓것, 예술이 아니면 또 어떻습니까? 다 떠나서, 이 드라마, 재밌습니다.^^

 

재밌는 이유는 새롭기 때문입니다.

<부부의 세계>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뻔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미 학습된 전형이 머리 속에 있지요. "이 상황에서는 A 아니면 B를 하겠지.." 라며 예상을 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C 라는 행동을 해버립니다. 그런데 그게 다소 낯선 행동들이기는 하지만, 전혀 설득력이 없다거나, 캐릭터의 연속성을 깬다는 느낌은 또 별로 들지 않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이 드라마의 새로움을 발견합니다.

 

또 하나의 새로움은 행동의 동기에서 발견됩니다.

옛날 작품입니다만, 한국 드라마가 한 단계 진보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작품으로 저는 <발리에서 생긴 일>을 꼽습니다.

가난한 여성과 재벌가 남성의 연애라는 뻔하디 뻔한 소재 속에서 이수정 (하지원 분) 이라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캐릭터를 창조해 냅니다. 가난하지만 너무나 착해서 재벌가 남성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런 여인이 아니라, 이 남자를 꼭 잡겠다는 의지, 내가 가질 수 없으면 너도 못가지게 할거야, 라는 악의까지 갖고 있는 여자 주인공, 그러면서 정재민 (조인성 분)이 옥탑방을 찾아오면 급히 화장을 고치는 이수정은 지금도 제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 입니다.

이 드라마 이후로 '욕망'을 행동의 동기로 전면에 내세우는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지요. 콩쥐같은 착한 여성 캐릭터는 완전 촌스러운 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부부의 세계>의 지선우 (김희애 분)와 이태오 (박해준 분)는 어떨까요? 무슨 마음으로 저런 행동들을 하는 걸까요?

표면적으로 드러난, 둘 사이에서 옥신각신하는 자식(준영)에 대한 사랑일까요?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지선우가 처음에 한 대사, "완벽해" 처럼, 단지 완벽한 울타리를 꾸미고 싶은 소시민적 욕망일까요?

그저 모른 척 하고 넘어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일까요? 오늘 12회의 하룻밤... 글쎄요...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이거다'라고 단정지어 말하기 힘들다는 것, 어느 하나 때문도 아니고 이 모든 이유들이 뒤섞여서 그 캐릭터가 그런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아주 입체적인 인물들을 그립니다.

생각해보면 현실의 '나'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내 마음을 나도 모르는데, 누군가가 "너 이런 이유 때문에 그런거지?" 라고 물어보면 일견 한 방에 정리되는 듯 하면서도 꼭 그런 것만은 아닌데... 하는 느낌. 때로는 이기심 때문에, 때로는 부모로서의 당위 때문에, 때로는 자유로운 영혼이기에, 나 스스로 모순된 행동을 하는, 그 모든 게 바로 '나'가 아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부부의 세계>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미덕 한가지 짚고 넘어갈까 합니다.

그것은 도덕을 내려놓았다는 점입니다. 교훈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여담입니다만, <스카이 캐슬>의 마지막 회가 그렇게 혹평을 받았지요. 자극적인 소재로 독한 이야기를 실컷 풀어놨지만, 마지막 회에서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라면서 다들 착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작품을 완전히 망쳐버리는 선택을 한 것이지요. 도덕과 교훈을 무시하기에는 신드롬이 일 정도의 시청률의 압박이 너무 컸다고 생각합니다.

불륜 드라마는 흔히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고 하지요. 어느 한 캐릭터를 악역으로 만들고 그/그녀를 욕하게 만드는 것, 이 자체가 도덕적 판단을 전제로 합니다. <부부의 세계>는 첫 회부터 막장의 끝을 보여줍니다. 남편의 친구, 부하 직원, 심지어 내 친구까지 모두가 남편의 내연녀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시청자가 수용할 수 있는 이야기 폭을 갑자기 극한까지 밀고 가버린 것입니다. 이 넓혀진 장 속에서 이제는 못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급기야, "너가 다 망친 거야.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까지 나옵니다. 이 장면에서 이태오를 욕하면 이 드라마를 온전히 즐기기 힘듭니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이 벌이는 여러 사건들, 그리고 그 동기들에 주목한다면 훨씬 풍부한 감상을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P.S. 저의 힐링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온 남자 배우 두 사람이 주연과 조연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부부의 세계>에서는 손재혁 역의 김영민 배우가 11, 12회에서 완전 포텐 터진 연기를 보이고 있네요. 이제는 이 배우 얼굴만 봐도 빙그레 웃음이 나옵니다. ㅎㅎㅎ

 

댓글 [36]

목록 스크랩

마일모아 게시판 [114,643] 분류

쓰기
1 / 5733
마일모아 사이트 맞춤 구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