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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병원 이야기 - 2

참울타리 | 2020.12.25 23:39:19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저는 언제서부터인지 크리스마스에도 일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된 것이 되었습니다. 겨울이란 계절적인 특성으로 병원에는 환자 수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지요.

 

 오늘은 평소보다도 더 많은 수의 환자를 보는 크리스마스였습니다. 겨우내 코비드 환자의 폭발적 증가로 의료진의 환자 부담이 커진 탓이지요. 

 

 오늘은 비코비드 병동 당번입니다. 평소와 같이 환자 차트 리뷰를 마치고 각 병동으로 회진을 돕니다. 80세 초반의 할아버지가 뇌출혈로 병원에 실려오셔서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Step down unit (일반 병동보다는 더 중한 환자가 입원해 있는 병동)으로 얼마 전 오셨습니다.

 

 자발 호흡을 하지만... 신경학적으로는 손상이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환자분은 소리에 반응해서 눈을 미약하게 뜨는 정도고 가족들을 알아보거나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뇌손상으로 가래를 제때 뱉어낼 수 있는 능력도 손상을 입어서 간호사 선생님의 석션 횟수가 점차 늘어가는 상황이었어요. 폐는 이미 흡인성 폐렴으로 손상을 입어 많은 양의 산소가 없이는 산소포화도를 유지시키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크리스마스 날이지만 할아버지의 와이프, 할머니께 전화를 드립니다. 메리크리스마스라는 말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할아버지 상태에 대해 업데이트를 해 드립니다.

 

"Given his extensive damage to his brain, I'm afraid to say that he may not have a meaningful recovery."

 

 할머니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으신 듯 계속 담담하시다가 제가 호스피스에 대해 설명을 쭉 드리고 comfort care를 권유하는 단계에 다다르자...

 

 흐느끼며 말문을 여십니다. 할아버지가 이제 더 이상 회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잘 아신다며 호스피스 케어에 대해서도 동의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만... aggressive care를 중지하고 comfort care (환자분의 통증이나 고통을 줄여주는 치료)로 바꾸기 전에 할아버지를 보고 싶으시답니다.

 

 할아버지 상태를 보아하니 comfort care로 바꾸면 오늘이라도 돌아가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흐느끼며 말씀을 이어나가십니다. 지금도 고통 속에 있을 수도 있는 할아버지를 생각했을 때, 자신의 이런 선택이 할아버지보다도 자기를 생각해서 내리는 다소 이기적일 수 있는 선택이란 것도 아신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임종을 지켰으면 좋겠다는게 지금 자신의 가장 큰 바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코비드 전이라면 무척 간단한 문제였습니다. 오셔서 병동 룰 대로 지내시면되니까요. 특히나, 호스피스 환자에 대해서는 방문시간도 다소 관대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병원의 방문자가 전면 금지되는 코비드가 창궐하는 시대의 겨울입니다.

 

나 "Let me see what I can do. I will make it happen."

 

 수화기의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할아버지를 볼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이 묻어나옵니다. 병원 방문자 관리를 맡는 간호사분한테 연락합니다. 이 방문이 이 환자분의 치료에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그 분께 여러 번 주지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대답은 안된다고 아주 강경하게 나옵니다.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긴합니다. 얼마 전 일주일 한 번 방문 가능에서 코비드 상황이 아주 심해지자 전면 면회 금지로 바뀐터라 예외를 인정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할아버지 상황에... 묘수를 찾아냅니다. 완화 의료팀과 미팅을 잡으면 예외적으로 환자 방문이 가능해졌던 것을 기억해 낸 것입니다. 완화 의료팀 nurse practitioner분께 전화하고 상황을 설명합니다. 오늘 크리스마스고 너무 갑작스럽지만 이 가족에게 이 면회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인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오늘 꼭 미팅을 잡아서 방문을 가능하게 하고 싶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결과는... 삼십분도 안 되어서 미팅 시간이 잡히고 환자분 따님과 와이프분이 할아버지를 뵈러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제가 어떤 과정을 통해 그 만남을 가능하게 만들었는지. 아마도 모르실겁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내가 소중한 누군가에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선물로 줄 수 있있습니다. 전화를 끝내고 무언가 마음이 꽉 차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몸은 힘들지만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가 된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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