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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델타변이가 창궐하는 남부의 어떤 병원 이야기…

참울타리 | 2021.08.31 18:55:17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리플로 감사의 말씀을 전해주시는 분들께 제가 일일이 답글을 달면 제 글이 너무 오랫동안 토잉될 거 같아. 한 글자 남겨봅니다.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고 고마워 하는 감정이야 말로 행복의 가장 기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은 누군가의 마지막 나날들을 같이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서로 감사한 기억으로 기억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좋은 건 사랑하는 가족들 곁이지만 그럴 수 없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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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여행/마일리지 포인트 사이트에 다소 우울하기까지한 병원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는 것이 한 구석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또 늘어나는 환자 수에 정신 없다는 핑계로 업데이트가 늦었습니다.

 

 이번 델타변이를 코비드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의 팬데믹이라고 하지요. 병원에서 입원 환자 추이를 보면 그것을 정확하게 뒷받침합니다. 제가 일하는 병원에서는 백신 접종자와 비접종자의 입원 환자수를 구분해서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케이스를 나누는 것이 제 경험으로 제한되는 문제가 있긴 한데, 요즘 코비드 환자 100여명 본 케이스 중에 백신 접종자가 입원한 케이스는 네 명 내지 다섯명 정도입니다. 산소 치료가 필요한 것이 입원의 가장 큰 기준이니... 적어도 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은 비접종자라고 하는 편이 맞습니다.

 

 백신 맞았는데도 코비드에 걸려서 입원한 제가 본 다섯 케이스 중에서는 80대 환자가 대부분이었고 한 분은 60대였는데 폐암 말기 환자로 실험적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면역이 극도로 약화된 분 정도였습니다. 이 케이스들 중에 기관삽관까지 필요했던 케이스는 한 두 케이스 정도입니다.

 

 기존 웨이브랑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백신 비접종자들 중에 젊은 환자 입원 비율이 눈에 띄게 늘어난 점입니다. 델타변이가 독감 정도의 독성으로 약독화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에 게시판에 나왔는데... 그건 맞지 않는 내용 같습니다. 임상적으로 보는 입원 환자의 위중증도는 기존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20대 30대 40대 등등 비교적 젊은 사람들도 죽어나갑니다. 의사들도 사람인지라... 백신이 이렇게 널려있는 나라에서 백신 맞을 충분한 기회가 있었는데 이렇게 코비드에 걸려들어와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보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무지에서 비롯한 것이든 오해해서 비롯한 것이든... 백신 접종 여부를 물어보면 안 맞았다고 이야기 하는 환자들의 얼굴에서 후회의 감정을 읽습니다. 거기에 저는 이번에 나아서 나가면 꼭 백신 맞으시라고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49세 흑인 환자분이셨습니다. 비만이 꽤 심한... 베가스에서 남부에 있는 이 도시까지 비지니스 때문에 잠깐 방문했다가 코비드 걸려서 8월 초에 입원하셨던 분입니다. 제가 같은 캠퍼스의 다른 병원에서 일할 때에도 이분 안부가 걱정되어 매번 챠트를 열어 보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또 이 분을 치료할 기회가 다시 생겨서 고농도의 산소를 달고 코비드와 투병하고 있는 아저씨를 만나봅니다. 

 

나: "3주 전에 저 봤는데 기억하시겠어요?"

환자분: "워낙 많은 의사를 봐서 잘 기억나진 않아요."

나: "저는 아저씨 잘 기억하는 걸요. 아직도 잘 견디고 계셔서 기뻐요."

 

 첫 몇 일간은 아주 천천히 좋아지는 것 같아보입니다. 그래봤자 큰 차도는 없지만 아저씨를 응원해 봅니다. 오일째 되는 날, 상황이 급격하게 안 좋아집니다. 다시 찍은 흉부 사진에는 큰 폐기종이 생겼습니다. 양압기를 오래 달고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코비드로 생긴 염증 때문에 폐에 구멍이 나버린 겁니다.

 

나: "폐기종이 생겼고 지금 산소 요구량은 기관 삽관 없이 줄 수 있는 가장 최대치예요."

환자분: "저는 아무렇지도 않고 괜찮은데요?"

나: "지금 어마어마한 양의 산소를 공급 받아서 증상이 없는 것 뿐이지. 이거 없이는 조금도 못 버티세요. 제가 가족분들에게 연락드려도 될까요?"

 

 3주 전에 처음 뵈었을 때, 환자분 허락을 맡고 유일하게 가족으로 등록된 누나한테 전화로 환자 상태를 알린적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상황이 안 좋아져서 가족한테 전화하려 하니. 누나 걱정한다고 자기가 직접 전화한다고 하십니다. 3주 전... 기관 삽관 옵션에 대해서 이야기 했을 때, 받고 싶진 않은데... 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번에도 다시 어려운 이야기를 꺼냅니다. 이 다음 단계는 기관 삽관인데 이렇게 염증이 심각하게 진행된 코비드 폐렴 환자들의 열의 아홉은 호흡기를 떼지 못하고 사망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환자분은 그게 유일하게 지금 살 수 있는 방법이라면 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중환자실팀이 옵니다. 저보다 더 강하게 이야기 합니다. 벤틸레이터를 뗄 수 있을 가능성이 없다고... 그리고 누나한테 전화하니 평소에 벤틸레이터에 의존해서 살고 싶지 않았다고 확인해 줍니다. 결국은... 한 시간만에 누나와 페이스 타임을 하던 도중 돌아가셨습니다.

 

 그 날 제가 돌본 81세 백신 맞은 할아버지는 코비드 때문에 폐색전이 오긴 했지만 산소포화도가 아주 좋아져서 2리터의 산소만 달고 따님집으로 퇴원합니다. 백신 맞으셔서 그 정도만 앓으시고 지나갔다는 제 말에. 따님 격하게 공감하십니다.

 

 산자와 죽은 자. 81세와 49세... 정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일들을 겪고 나니. 마음이 아픕니다... 49세 아저씨는 제가 초반에 꼭 이번에 낫고 나서 백신 맞으세요 라는 다짐까지 받고 한 동안 못 뵈다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제가 돌보는 상황에서... 갑자기 돌아가시니 마음을 추스리기 힘들 정도로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의학을 조금 안다고 생명에 대해 조금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만이었음을 요즘 하루 하루 배워나가는 중입니다. 그 동안 백신 안 맞아서 안 좋아지는 케이스들을 보면서 어디나 널려 있는 백신을 맞지 않았으니 어느 한 편으로는 자업자득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분들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었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었음을 깨달으며... 다시 한 번 마음 다 잡아봅니다. 어찌되었거나 불쌍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고 그래도 그들을 낫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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