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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누구나 있을만한 미국 이민기...

rlambs26 | 2022.02.24 10:53:12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누군가 말했습니다. 사연없는 이민자 없다고.

저 역시... 사연까지는 아니지만, 그 별 것 아닌 이민 길이 희한한 에피소드 세개가 좀 연달아 발생을 한 케이스입니다.

그냥 보고 웃으시라고 이렇게 한 번 남겨 봅니다.

 

1. 가족 이민

 

홀어머니와 남동생과 살다가 저는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습니다.

훈련소 마치는 날 면회를 오신 어머니께서 동생을 데리고 미국 여행을 보름 정도 다녀오신다고 하더군요. 저에게 언제 가서 언제 온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저는 후반기 교육을 받았고, 6주후 자대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날짜를 보니 어머니는 동생과 함께 미국 여행 중일 상황이었습니다.

신병 대기를 하고 있는데, 인사과 원사님께서 전화 카드를 주고는 집에 전화 통화를 하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같이 있던 다른 신병들과 함께 공중전화 박스에 가서 카드를넣고 전화를 했죠. (네, 당시에는 공중 전화 카드라는게 있었드랬습니다.) 

 

문제는 집엔 아무도 없을테고. 고민 끝에 큰 외삼촌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외삼촌의 첫 마디가 꽤나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야, 너네 엄마 미국에서 직장 얻었데."

 

"응? 보름 여행하고 오시는거 아니었어요?"

"우리도 그런 줄 알았는데, 거기서 직장 잡았데. 우리도 지금은 거기까지 밖에 몰라..."

 

지금처럼 이메일에 카카오톡이 있던 시절이 아니니, 국제전화로 확인 할 수 있는 내용은 한계가 있으니 어머니가 한국의 집이며 정리를 하기 위해 들어오셔서나 내용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겁니다.

 

"그...럼 나는?"

 

전화 카드를 주셨던 원사님이 묻습니다. "가족들에게 안부 전했냐?"

 

"그..그게..."

"왜? 무슨 일 있어?"

"어머니께서 이민 가신답니다."

"뭐냐, 너 버리신겨?"

 

제가 뭐 그리 효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버림 받을 짓을 한건 분명히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나중에 자초지종을 들으니, 어머니께서 LA에서 휴스턴까지 동생과 또 아는 지인들과 여행을 가서 휴스턴의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 분께서 어머니가 하실 수 있는 일자리를 소개해줬고, 영주권 스폰서까지 가능하게 해주겠다고 해서 순식간에 이민이 결정되어 버렸다는겁니다. 어머니도 생각지도 못했는데, 예전부터 한국 떠나 살고 싶어하셨던지라 옳다구나 하고 덥썩 잡으신겁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집 정리하러 한국에 오셨고, 어머니께서는 무작정 제 부대까지 찾아 오셨습니다.

자대배치 100일이 안된 저는 당연히 휴가는 물론, 외박도 안되고, 원칙적으로는 면회도 안되는 것이었지만, 마침 제가 인사과에 발령이 나있었고 저를 가엽게 여기신 (혹은 충격에 탈영이라도 할까봐 걱정하신) 인사과장님께서 중대장님까지 설득하여 청원 휴가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얼결에 면회 오신 어머니랑 그냥 같이 집에 왔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제 차편까지 이미 표를 끊어 놓으셨더랍니다. 

휴가 안보내주면 사정사정 하실 생각이었다고... (아니 군대가 무슨 학교도 아니고...그런 생각을 잘도..)

뭐가 어찌되었건 어머니께서 그러실 일 없이 저는 휴가를 나왔고, 제가 휴가 복귀한 뒤 얼마 안되어 어머니는 미국 휴스턴으로 이민을 가셨습니다.

 

아, 동생이요.

동생은 그냥 두고 혼자 들어 오셨었습니다. 

그래서 제 동생은 친구들에게 "나 미국 여행가"라고 인사를 하고 헤어져서는 거의 15년쯤 뒤에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15일 후에 볼 줄 알았던 친구들을 15년 후에보게 된 것이죠.

 

시간은 흘러 제대할 날이 되었고. 저는 고민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다니던 학교를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갈까. 그냥 한국에 혼자 계속 살까. 아니면 미국으로 그냥 갈까.

 

한국에서 다니던 대학의 전공에 정말 흥미를 못 느끼고 있던터라, 사실 결정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가서 새롭게 공부를 해 보는 것이었죠.

 

당연히 어머니의 비자 덕을 볼 수는 없고, 저는 저대로 유학 준비를 해서 (일단은 ESL로)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한국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그리고 휴스턴으로 가는 일정을 기대하고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런데...

 

 

2. 비행기 소동

 

나름 대단한 각오를 가지고 갔습니다. 

휴스턴에 도착하면 바로 적응하리라. 바로 열심히 공부하리라...등등.

그래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13시간을 절대 잠에 들지 않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래저래 휴스턴 도착하면 밤 시간인데, 바로 잘 수 있어야 시차 적응 빨리하고 뭔가 빠르게 할 수 있다는 결의였죠.

 

정말 안잤습니다. 아시아나로 샌프란시스코로 오고 UA였던가 컨티넨탈이던가 뭔가로 휴스턴을 가는 티켓이었죠.

그 당시의 저는 그룹으로 해외여행은 가봤지만, 미국은 처음이었고. 이렇게 혼자 여행은 당연히 해본적 없고.

비행기 관련 준비도 제가 직접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누군가 나 대신 일처리를 해 줄 사람이 있었기에...이건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일단 순조롭게, 기분 좋게, 영화도 보고, 와인도 한 잔 마시면서, 맛있는 기내식도 먹으면서 샌프란시스코에 왔습니다.

하지만 찾아간 갈아탈 비행기의 키오스크에서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제가 탈 비행기가 취소가 되었다는겁니다.

당시 제 영어 실력으로 그 이유까지는 들을 능력이 안되고, 취소가 되어서 티켓을 바꿔 준다고 하는 내용만 겨우 들었습니다. 당연히 제가 원하는대로 뭘 바꿔달라고 할 능력은 없고, 그냥 주는대로 받아 들었습니다. 

 

보니까 티켓이 2장입니다. 하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피닉스. 그리고 한시간 뒤에 휴스턴 가는 비행기를 타는 라인이었습니다.

집에 알려야 하는데, 당연히 당시는 휴대폰이 있던 세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공중 전화 부스를 찾았는데... 

아니...이거 대체 어떻게 사용하는겁니까?

 

이거저거 해보다가 어찌어찌 컬렉트 콜 하는 방법이 눈에 들어와서 그걸로 했습니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비행기가 바뀌었고, 도착 시간도 바뀌었다고 설명을 드렸죠. 

여기까지는 무난했습니다. 가족들이 시간 맞춰 공항에 나올테니까요.

 

그렇게 저는 피닉스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졸려도 너무 졸린겁니다. 

비행기가 이륙도 안했는데, 눈꺼풀이 마구 내려옵니다.

아무리 아무리 참아도 안됩니다.

그렇게 잠이들고...

 

눈을 떴는데...

아직 땅입니다. 분명히 한참 잔 것 같은데.

옆 사람에게 물어보니, 출발 시간이 한시간이 넘게 지났습니다.

비행기가 딜레이가 된겁니다.

 

어라? 내가 바꿔타야 하는 비행기는 도착 한 시간 후 출발인데?

 

어렵게 어렵게 옆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나 비행기 갈아타야 하는데 어쩌지?

아, 나도 갈아탈 비행기 놓질 것 같아. 일단 피닉스 가서 알아봐야 할 것 같네...

 

뭔가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갑자기 미아가 된 느낌입니다.

비행기 밖으로 나가서 다시 한 번에 휴스턴 가는 비행기를 타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는 한 시간 30분이 지나 이륙했고, 당연히 그만큼 늦게 피닉스에 도착했습니다.

물론, 휴스턴행 비행기는 이미 떠났죠.

 

망연자실한 저를 위해 제 옆에 앉아있던 친절한 백인 아저씨가 같이 키오스크에 가자고 합니다.

그 아저씨가 제 티켓을 들고는 대신 에이전트에게 가서 막 뭐라뭐라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더니 "Hey, you can go home!!!" 하면서 밝게 제게 옵니다.

다시 손에는 티켓이 2장이 들려있었습니다.

한 장은 라스베가스 가는 티켓. 그리고 다른 한 장은 베가스에서 휴스턴으로 가는 티켓.

 

뭔가 무지하게 당황했지만, 일단은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도착시간이 기존의 저녁 8시에서 새벽 4시인가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집에 전화를 해야겠는데, 동전이 없었습니다.

어쩌나 했더니, 이 아저씨가 또 저를 위해 애써 주셨습니다.

 

"이 불쌍한 친구가 집에 전화를 해야하는데, 코인이 없다고 합니다. 조금만 도와주세요!!!"

 

...민망할 틈도 없이, 주변 사람들이 와서는 동전을 몇개씩 주고 갑니다.

순식간에 제 손에 동전이 한웅큼 생겼습니다.

그러고 나니 민망해서 고맙다고 하고는 전화기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니 이놈의 미국 동전들은 뭔가요?

왜 숫자가 없는거죠?

이게 대체 얼만거죠?

그리고 공중전화는 대체 얼마를 내면 걸 수 있는건가요? 

또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컬렉트 콜로 다시 집에 전화했습니다.

받지를 않습니다. 저 데리러 공항 갔을 시간이었거든요.

 

이제 베가스 행 비행기 탑승시간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제게 그때까지의 베가스는 "타락의 도시"였습니다. (제가 꽤 순진했거든요)

지금이라면 왠 떡이냐며 놀러가겠지만, 당시에는 무서웠습니다. 가면 마피아 만나고 막 그러는 줄...

 

한 가지 다행이었던 것은 당시 제 고모님이 피닉스에 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연락을 드리면 제가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전화번호를 모릅니다.

휴스턴에서는 전화를 안 받고 있구요.

...고민 중에 전화기 밑에 전화 번호부 그러니까 Yellow Book이 보였습니다.

혹시 여기에 고모부 이름이 나오지는 않을까 뒤졌습니다.

다행히도 제 작은 고모부 이름과 같은 Hyung S. Kim(가명입니다.)이 두명이 나옵니다. 대체 둘 중에 누굴까.

박사셨는데, 보니까 두 사람 중 한 사람 주소에 Dr.이 붙습니다. 아...박사 표시를 이렇게 하나...

(네, 지금은 그게 Drive 표시인거 잘 압니다. 그럼요!)

 

그래서 컬렉트 콜로 전화를 했습니다. 혹시 엉뚱한 사람이 받으면 쪽팔려서 어떡하지?

 

그런데 건너편에서 그립던 고모부 목소리가 들립니다. 컬렉트컬 교환원이 "XXX가 너와 통화하고 싶어하는데, 컬렉트컬 억셉트 하겠니?"라고 묻는 소리가 들리고 제 고모부가 "Yes"라고 답해 주십니다. 저는 이미 "고모부, 고모부, 저 피닉스에서요"라고 소리를 치고 있었지만, 고모부에게는 제 목소리가 아직 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고모부와 연결이 되었고, 저는 바로 "고모부 저 살려줘요!!!!!"라고 외쳤습니다. 

 

베가스행 비행기는 포기하고 고모가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1시간쯤 지나서 고모와 고모부가 도착을 하셨고, 저는 정말 울 뻔했습니다.

두분이서 다시 비행기 티켓을 다음날 휴스턴 가는 직항으로 바꿔 주셨고, 저는 고모님 댁에서 하루를 잘 수가 있었습니다.

들어보니, 피닉스에 부는 더스트 스톰때문에 모든 비행기가 연착이 된것이었더라구요.

 

가서는 휴스턴에도 전화통화를 해서 안심을 시켜드리고.

저는 제 사촌 동생들과 이런 방식으로 십수년만에 만나고.

피닉스에서 한 여름에는 찬물을 틀어도 미지근한 물이 나오는 것도 경험을 하고.

 

다음 날 휴스턴으로 와서 결국 가족의 품에 안겼습니다.

 

 

3. 맥도날드에서 주문하기

 

휴스턴 도착 다음 날 동생과 맥도날드에 갔습니다.

역시 미국하면 맥도날드, 맥도날드 하면 미국이죠.

그래도 이런 주문을 어떻게 하는지는 대충 연습을 해둔터라, 자신있게 #1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기대했던 바로 다음의 질문이 따라왔죠. "To go or here" 

이건 공부했던 겁니다. 바보같이 "Or" 이렇게 답하면 안되죠.

자신있게 "Here"했습니다.

 

다음 질문이 이어집니다.

"What would you like to drink?"

콜라라고 하면 안된다고 배웠습니다.

영어로는 Coke이라고 해야죠.

자신있게 답할 수 있죠 이정도는.

혀도 좀 굴리는 겁니다. 이럴 때는...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칵 플리즈"

그러니까..."Cock, please..."

 

제 동생이 옆에서 "형 미쳤어??"

그러더니 종업원에게 "Oh he meant coke..."

뭐라뭐라 이야기를 합니다.

 

나중에 뜻 이야기를 듣고...

저는 집에서 여러번 이불을 걷어 찼습니다.

아직도 그 때 그 제 주문을 받던 여 종업원의 동그란 눈이 떠오릅니다.

 

이미 20년도 더 지난 일인데도 말이죠.

 

여러분들도 이민 오시면서 또 오셔서 겪은 에피소드들 다 하나쯤은 있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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