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추상미술을 잘 아나 봐요. 전 하나도 몰라서 뭘 봐야 하는지를 모르겠어요."
"글쎄요. 작품을 알아야 보는 건 아닐 텐데요." 태어나서 손에 필기구를 쥘 수 있을 때면 제일 먼저 그리던 것,
( https://www.milemoa.com/bbs/board/6355957 )
미술이란 말도 없던 아주 오래전에도 그리던 것도 추상미술이고
같은 모양에 색깔과 무늬로만 이뤄진 넥타이도 추상미술인데도 다들 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무늬, 색깔, 질감만으로 척척 골라내는 벽지도 추상미술 가득하고
넥타이는 뭐가 좋은지 몰라 처가 주는 걸 맨다면서도 차의 모양, 그것도 일부만 봐도 어떤 차인지 구분해내는 친구가,
미술을 공부하고도 그저 '빨강'으로 보이는 립스틱의 차이를 구분하고 호불호를 따지는 평범한(?) 사람이,
추상미술을 몰라서 감상할 수 없다고 하면 "글쎄요" 할 수 밖에요.
저는 앞서 미술 감상은 '관계 맺기'라고 했습니다.
혹시 몰라서 못 본다는 미술관의 추상미술 작품은,
일상에서 만나는 많은 추상미술과의 관계와 달리 그저 '불편'했던 것은 아닐까요.
"아이들은 자기 경험과 기분에 맞춰 보더라고요. 앞으로도 그게 불편하지 않게, 잘못된 방법이라고 여기지 않도록 북돋워 주려고요."
그렇군요. 제가 추상미술을 거부(?)한 이유는, '불편해서'가 맞는 것 같습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이해하는 척'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상생활의 예를 들어주시니, 추상미술이 이미 우리 생활속의 일부분이었네요. 생각해보니 제가 추상미술을 무조건 싫어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칸딘스키'와 '미로'의 작품은 아주 좋아하거든요. 뭔가 복잡하면서도 깔끔/참신한 느낌이 좋더라구요.
'이해'라는 말을 들으니 어떤 기분인지 잘 알 것 같습니다. 사실 이 글들의 시작을 자극한 몇가지 말들 중 하나가 '이해'였습니다. 대학교때 교양 미술 강의 제목이 '미술의 이해'이기도 했는데,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제 지금 보니 너무나 많은 분들이 미술을 이해하려고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음악이나 영화 등 다른 예술 처럼 미술은 이해 이전에 감상, 느끼는 걸 목적으로 한다는 게 덮힌 것 같아요. 그래서 불편한 관계가 맺어지고, 그러면서 말씀하신 것 처럼 '좋다' '복잡하면서도 깔끔하다, 참신하다'는 감상 정도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문화가 만들어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 여름 아이들과 미술관을 좀 다녀보면서 아이들이 그림과 어떻게 관계맺는지 한번 지켜보고 싶습니다. 제가 너무 앞서 나가는것일수 있는데 추상미술을 넘어서는 현대미술 (특히 데미란 허스트의 괴기한 동물박제들)도 미술감상의 범주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에겐 어쩌면 추상미술이 보고 할 이야기 많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적 친구들과 구름이며 산 모양 보고 여러 모양을 상상하면서 각자 본 것을 이야기 했던 제 기억을 떠올리면요.
허스트의 작품을 기괴하다고 보셨군요. 바로 답변 드리자면 의심할 여지 없는 미술 작품이고 감상의 대상이 되겠네요. 요즘은 미술도 다른 분야와 비슷하게 장르(음악, 영화, 무용 등과) 구분이 애매할 정도로 다양한 미술 작품이 만들어 지고 있는데다 이미 30년이나 된 허스트의 (그) 작품은 이제 클래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추상미술도 '입체파'에서 부터 연원을 따지면 100년이 넘은 양식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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