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은 자신의 책 '담론'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책’이 강의실을 떠나 저 혼자서 무슨 말을 하고 다닐지 걱정이 없지 않습니다. 책은 강의실보다 작고 강의실에는 늘 내가 서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하면 모든 텍스트는 언제나 다시 읽히는 것이 옳습니다. 필자는 죽고 독자는 끊임없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는 `저자의 죽음`을 이야기 했던 바르트(Roland Barthes)의 생각과도 같다고 합니다.
여기서 책을 미술로, 독자를 감상자로 바꾸어도 그 의미가 바뀌지는 않겠죠. 이 말대로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시대와 공간을 달리해 만들어졌던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작가의 뜻이 고스란히 반영되어서는 아닙니다. 새로운 감상자가 새롭게 봐주면서 작품의 생명력을 길고 넓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겠죠.
논리적이고 현학적 평론(혹은 그 같은 감상) 보다, 투박하더라도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낸 감상은 작품의 생명력을 더 더해준다고 생각해요. 논리적 평이 주류를 이른다면 감상의 다양화와 대중화를 억눌러 작품 생명의 한계를 짓는다고 생각하거든요. 논리적이고 현학전인 평을 주도하는 분들은 대체로 미술을 감상보다는 탐구를 대상으로 삼는 분들(미학자나 미술사가, 비평가들 등)인데, 보통의 감상자들조차도 그 틀에 갇히는 걸 봐 왔습니다. 보고 느낀 감정이 잇지만 그걸 논리적으로 지식을 더해 표현해야 한다면 말수도 줄 수밖에 없을 것 같고요. 때로는 논리에 치중하다 보면 느낌에 솔직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게 되기도 하고요. 결국 감상자는 논리와 현학의 틀에 갇히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미술을 비롯한 예술 작품의 가장 큰 의미는 `감상`의 대상일 것입니다. 더러 분석의 대상으로 삼거나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잘 짜인 `미술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분들은 감상자의 투박한 감정도 존중해야 하고, 감상자는 솔직한 자기감정 표현에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해야겠죠.
미술이 아닌 와인이긴 합니다만 감상의 예가 될 것 같아 옮겨왔습니다.
만화 '신의 물방울' 주인공이 포도주를 마시자 퀸의 음악이 들리는 듯했다는 순간입니다.
`파워풀`하고 녹아내리는 듯한 맛이 프레디 머큐리의 달콤하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연상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포도주를 마실 때마다 풀밭에도 가고, 어릴 적 살던 집이며 기억하는 모든 곳을 끌어냅니다. 언뜻 봐선 포도주가 환각을 유발하는 마약으로 느껴질 정도이긴 했습니다만 감상은 그런 것 아닐까요. 미술 작품을 보고 떠올려지는 내 속의 무엇이 있을 때 `감상 잘했다`라고 하는 거겠죠.
그런데 포도주 좀 마신다는 친구에게 그거 어땠냐고 물으니, 드라이하니 마니, 타닌이 어떻고 바디감이 어땠고 할 때 저는 친구 입을 막고 싶죠. "분석 말고, 난 네가 어떻게 느꼈는지가 궁금한데…."
제가 초현대 미술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굳이 왜 내가 감상 해야하지? 내가 작가의 맘을 어떻게 알고 ...그리고 현대미술은 저사람은 유명한데 왜 이사람은 하나도 안유명하지? 유명한 화가의 그림에는 와인처럼 바다감이 좋고 무게도 있고 발란스도 좋고 한데 그렇지 못한 사람의 그림은 아닌가? 그걸 누가 정하지? 그래서 예술은 어려운가 봅니다..ㅎㅎㅎ
너무 무식한 소리면 죄송합니다. 하하.
제가 우디알렌 영화중에 가장 좋아하는 scene 이에요. 여자의 미술 감상이 죽여줍니다. 그 담 우디알렌의 대사들은 뭐 천재같아요.
https://youtu.be/DS1YYtQ_LLY
역설적이게도 제가 현대(추상)미술을 좋아하는 이유와 Monica 님께서 싫다고 하시는 이유가 같네요.
전 작가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것 같아서 좋거든요. 그림에 이야기를 담거나 의도가 뻔한 그림은 알려주려고 하고 주장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불편할 때가 있는데 보통의 추상미술 작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거든요. 제목도 '무제'인 것도 많아서 제 생각을 자유롭게 해줘요.
유무명의 불균형은 현대미술만 아니라 근대 중세 고대 미술도, 심지어 연기자, 가수 등 대중 예술에서도 흔히 노출되는 것 같은데요. 나이가 들어선가 이 불균형은 적당히 받아들이고 무시할 수 있는 깜냥은 된 것 같습니다.
살아오면서 우디앨런에 대한 호불호가 여러번 바뀌었는데 천재같다는 말은 수긍이 가네요. 미술 감상은 부족한 영어 실력때문에 자막 없이 알아듣긴 힘들어서 찾아봤어요.
Museum Girl : It restates the negativeness of the universe. The hideous lonely emptiness of existence. Nothingness. The predicament of Man forced to live in a barren, Godless eternity like a tiny flame flickering in an immense void with nothing but waste, horror and degradation, forming a useless bleak straitjacket in a black absurd cosmos.
Allan : What are you doing Saturday night?
Museum Girl : Committing suicide.
Allan : What about Friday night?
잭슨 폴록의 그림을 보면 대체로 생동감과 활기가 느껴지는데 암울한 감상이 가득한 이 그림은 뭔가 싶었어요.
https://www.jackson-pollock.org/guardians-of-the-secret.jsp
그림을 찾아 보고나서야 처음부터 여성이 '꺼져라' 했던 말이란 걸 알았어요.
마지막 앨런의 대사도 말씀대로 정말 기발했어요. ㅎㅎ
https://cfileonline.org/art-marketplace-arneson-covers-pollock-in-massive-work-now-on-sale-contemporary-ceramic-art-cfile/
그림을 찾자가 같은 그림을 조각으로 만든 작품이 있다는 것도 알았네요.
미술 이야기하는 게시물이었으니 마저 올립니다.
글과 그림들 잘 보고 생각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댓글을 통해 보니 이미 잘 보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괜한 글 같기도 한데, 환기라도 되었으면 좋겠네요.
제가 즐겨보는 '지식브런치'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는데 마침 '무제'에 관한 이야기를 하셔서 매우 흥미롭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yJqyvHJ2Cyg
그렇네요 때마침 이런 이야기를 올린 유튜브 채널이 있네요. 덕분에 잘 봤습니다.
"정리하자면 작가가 무제라는 타이틀을 달았다는 건 작품에 이름 붙일 권리를 관객에게 넘겼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현대미술을 만나면 내 마음대로 작가이 의도를 생각해보고, 내 입맛대로 제목도 붙여 보는 즐거움을 기꺼이 누리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드리고 싶었던 말이네요.
너무나 와닿는 말이라 혹시나 저도 모르게 이 방송을 봤나 해서 업로드 날짜를 보니 오늘(8일)에 올라온 거군요. 다만 이 방송이 기존 처럼 현대미술을 '이해'의 대상으로 전제하는 것은 제가 지금까지 이해가 아니라 (1차적으로) 감상의 대상이라 주장과는 차이가 있네요.
와인을 마시면서... 저런 감정 느끼는것도 신기하네요 ㅋ
미스터초밥왕에서 유명한 오버하면서 소름돋는 장면 보는거 같아요 ㅎ
몇일전 음식의 맛은 결국 다 다른게 아닌 1 로 똑같은맛인데 내가 배가 얼마나 고프냐 내가 어디에 있냐에 따라 맛값이 달라지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한적이 있네요. ㅎ
생각하게되는 좋은글 감사해요.
고맙게 봐주셔서 저도 감사드립니다..
일본 음식 만화 보면 정말 엄청나게 과장된 표정을 자주 나오더라고요. 먹고 하늘을 날아가는 건 정말 자주 나왔던 것 같고요. ㅎㅎ 저는 와인마시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적이 없어서 그런지 과장이 심하다 생각은 하면서도 다른데 이입하고 감상하면서 갖던 생각을 떠올리면, 와인도 그럴 수는 있겠다 싶긴해요.
저도 같은 음식도 환경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경험을 많이 했네요. 이를테면 라면만 해도 그렇죠. 군대 시절, 캠핑이나 등산해서 먹는 라면은 늘 맛있었던 것 같고요.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공감하는 분들이 많은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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