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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인생 계획에도 없었던 좌충우돌 미국에서의 20년 삶 2

용벅 | 2023.07.15 22:22:05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엘에이로 입성한 후 1년 정도 남짓 흘렀고, 나름대로 친구들도 좀 사귀고, 안정이 될 무렵.....갑자기 뉴욕행을 결정했다. 한국에서부터 워낙 퍠션에 관심이 많았었고, 튀는걸 좋아했었던 나였기에 당시 헤어스타일도 Afro 머리를 하고 있엇고 (파마가 아니었고 매일 아침 헤어왁스로 스타일을 만들어야 했음), 등에 매는 백팩이 아닌 손으로 들고 다니는 가방, 한때 유행이었던 아디다스 트랙쟈켓 등등 Hot 한 아이템은 다 가지고 있었다. 

 

나이도 어리고, 나의 앞을 가로막을 장애물이 없었던 시절, 도전이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뉴져지에 있는 학원에 등록하고 무작정 동부행 비행기를 탔었다. 당시 항공기는 Air Tran 항공사 보잉 717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번에도 역시 학원을 통해서 숙소와 공항 라이드를 예약을 했었다. 미국 국내선에서의 이동이었기에 이민국 입국 심사같은건 없었고 무사히 통과하여

Newark 공항밖으로 나와서 무사히 밴에 탔다. (엘에이에 살 당시에는 셀폰은 만들지 않았었고, 동부로 이사하기전 엘에이에서 친하게 지냈었던 친구들과 그리고 또 그녀와의 연락을 위해서 셀폰을 만들어서 갔다. 아직까지 내 첫 셀폰 번호는 기억하지만, 그녀의 번호는 오랜세월의 흔적과 시간이 지나 앞자리 세자리  310 뿐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덕분에 예약해 두었던 공항밴 기사님과 무사히 연락이 되어 이번에는 손쉽게 약 45분정도의 라이드 끝에 숙소에 도착했다.

당시에는 구글맵도 없었고, 전화기로 인터넷도 안되었기에 미리 찾아본다는 건 상상히 되지 않았고, 직접 가봐야 눈으로 확인할수 있는 시대였다. 

 

45분을 달려서 도착한곳은 Downtown Newark 에 위치한 YMCA 빌딩이었고 나름대로 10층이 넘는 고층 빌딩이었다.

약간 흥분한 상태였던 나는 캐리어 두개를 끌고 입구문을 힘차게 열었다. 동시에 빌딩 로비안에 있던 모든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이 되었고, 다들 신기한듯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그렇게 많은 흑인들을 본적이 없기에 깜짝 놀랐었다. 99%흑인이었고, 나머지는 스패니쉬계. 나 혼자만이 동양인이었다. 

Front Desk 앉아있던 흑인 남자는 덩치가 산만했었지만, 상당히 친절한 사람이었다. 내 이름을 말하고 조회를 시작했지만, 예약이 되어 있지 않았다고 말했으며, 또 다시 공항에서의 이민 심사 악몽이 떠 올랐다.

 

일단 당일요금만 받고 다음날에 다시 확인해보자면서 안내를 해주었다. 다른 YMCA 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그 빌딩은 한층은 여자층, 또 다른 한층은 남자층으로 나누어 쓰고 있었다. 당시 결제 금액은 한달에 $400 이었던걸로 기억한다. 1-2평 정도의 크기에 책상하나 침대하나 있었고, 화장실, 샤워실, 주방은 모두다 공용으로 쓰고 있었다. 그렇게 뉴져지에 무사히 도착해서 그녀와의 통화로 마무리하고 동부에서의 첫날을 마쳤다. 

 

몇일후 학원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번에 영어 레벨 테스트에서는 최상위 등급을 받았었다. 1년동안 열심히 공부한 결과가 반영되어 뿌듯했다.

그동네는 브라질 분들이 많이 사는 동네였고, 내가 묵고 있는 숙소에서 버스로 약 30분정도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학원 스케쥴은 아침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였기에, 수업후에 할 알바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뉴욕 맨해튼(큰물?) 한인타운에서 해보자라고 생각을 하여, 맨해튼 32가 한인타운에 "We're Hiring" 또는 "알바 구함" 이라고 붙어있던 싸인을 보고 무작정 들어가서 물어보기도 하고, 한인타운내에 있는 PC방에서 한인커뮤니티 사이트를 확인하여 알바를 구하고 있엇다. 

 

그렇게 몇일 찾아다닌후에 한인타운에 있던 노래방 한군데 면접을 붙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비슷한 나이또래 남자 3명이 있었고, 여자 한명이 있엇다. 우리는 정말 사이좋고 재밌게 일을 하였으며 환상의 팀웍을 발휘했었다. 노래방을 워낙 좋아하던 나였었고, 공짜로 노래도 부를수 있었기에 일석이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하여 나의 하루 스케쥴은 오전 8시-오후1시 : 학원 오후 2-밤 11시 : 알바가 되었다. 당시 알바가 끝나고 집에오는 퇴근길 선곡은 다이나믹 듀오의 1집 앨범 "택시 드라이버"를 들으면서 집으로 왔었다. 군대에서 후임중 한명이 CB Mass 개코 지인이었고, 후임을 통해서 힙합이란 장르에 빠지기 시작했다. 내 Afro 헤어스타일도 그에 한몫 한듯하다. 

 

그리고, 엘에이에서 살때와 마찬가지로 이때도 아침은 과자 한봉지나 군것질 거기로 때웠고, 점심은 학원 끝나고 맨해튼 나가면서 조각 피자 한조각,

너무 배고픈 날에는 노래방 아래 있던 식당에서 김치찌게 투고 (당시 $9) 를 해서 먹었다. 노래방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청소 (오픈전에 청소 1시간반) 와

다양한(?) 진상 손님들이었다......일하고 있는데 옆에 와서 앉아보라는 아줌마들, 노래방 안에서 애정행각을 하시던 손님들 등등 세상엔 여러종류의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알바가 끝난후 기차를 타고 다시 뉴져지로 가면 거의 밤 12시가 다 되었고, YMCA 길 건너에 있는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투고하여 자기전에 먹고 자곤 했엇다. 그리고 알바를 쉬는날에는 YMCA 빌딩에 위치했던 GYM 에 가서 이웃사촌인 흑인들과 Work Out 을 같이 하면서 친해지기 시작했다. 왠지는 몰라도 같이 운동하면서 정도 많이 느껴졌고, 생각보다 괜찮은 친구들이었다. 또한 학생이었기에 근처에 있던 Rutgers University 도서관에 가서 틈틈히 공부하기도

했엇다. 당시 나의 목표는 FIT에 입학하여 Fashion Merchandise 를 전공하는게 목표였다. 알바도 없고 학원도 쉬는날엔 근처에서 열렸던(?) Rap Battle 에 가서 구경하면서 고개도 까닥까닥 흔들곤 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당시에는 사촌동생이 시애틀에서 항공정비를 공부하고 항공사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가끔 연락하면 자꾸 시애틀로 와서 항공정비 공부할것을 권유했지만 나는 퍠션이 하고 싶다고 했었고, 항상 거절을 했었다. 그 당시에 또 축구에 빠져있었어서, 약간의 여윳돈이 생기면 유니폼을 사서 모으기 시작했엇다. 철이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알바 동료들, YMCA 빌딩에서 같이 살았던, 그리고 운동 같이 했던, 뉴져지 학원 등등), 너무나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그 사람들이 있음으로 배고픔보다는 행복함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에 전화한통 오지 않던 엄마에게 오랜만에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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