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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인생 계획에도 없었던 좌충우돌 미국에서의 20년 삶 13

용벅 | 2023.07.20 02:35:21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OPT 가 끝나기 한달전 그녀와의 일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작은 이벤트를 준비한다. 장소는 Metropolitan에서 운영하고 있는 "The Met Cloisters" 예전에 그녀와 데이트 할때 한번 가본 곳이었고, 이벤트를 하면 잘 어울릴것 같아서, 미리 사전답사를 하고 어디서 어떻게 이벤트를 할지 생각을 하며 둘러본다. 혼자 작은 금은방에 가 콩알만한 반지를 샀고, 이미 연습을 해보고 기도를 하면서 밤에 잠이 든다. 

 

1주년이 되던 당일날 우리는 처음 만났던 똑같은 장소인 MoMa에서 만나 작품을 감상하고 같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으며, 뜬금없이 난 "Met Cloisters"가 가고 싶다고 그녀에게 말한후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같이 올라갔다. 사전 방문 했을 당시에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우리 기념일날은 4월임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화창하고 좋았어서 사람들이 가득차 있었고, 내가 계획했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계속 안절부절 하고 있었고, 계획했던 작전을 언제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 계속 생각하느라 그녀가 무슨 말을 계속 하고 있었는데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었고, 아무리 곰곰히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끝날때즈음 되어서 야외로 나가보니 사람이 없고 조용했다. Security 아저씨가 저 멀리 혼자 산을 보고 있길래, 재빨리 가서 나의 작전을 단숨에 얘기하고 내 전화기를 주면서 프로포즈 하는 동영상을 녹화해 달라고 부탁드렸고, 그녀가 야외 정원으로 나오자마자 난 무릎을 꿇어 바로 프로포즈를 신청하고 영화에서 흔하게 나오는 대사를 읊으면서 프로포즈를 했다. 그녀는 너무나 깜짝놀랐고, 눈물을 글썽 거렸으며 바로 대답을 했다. 나중에는 옷을 이쁘게 입지 않고 나왔다면서 투덜투덜되는 모습이 귀여웠다. 프로포즈 하는 모습을 지나가던 갤러리 손님들이 보고 박수를 쳐준다. 아저씨와 갤러리분들 모두에게 감사했다. 무사히 작전을 마치고 우리가 즐겨가던 "Hillstone"에 가서 저녁을 먹고 세상에서 한번뿐인 이벤트를 무사히 마무리 하고 뿌듯해 했다. 

 

그후 한달이 지나 OPT 기간이 끝났기에 나는 또 그녀와 이별을 하고, 같이 일했던 동료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며 헤어진다. 더이상 미국에 머무를 방법이 없었기에 마음을 내려놓고 한국으로 귀국한다. 엄마 수술 이후 14년 동안 한번도 한국에 안 들어갔더니,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으며, 우리집도 이사를 간 상태여서 찾아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가족들과 예전 고등학교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진후에 난 또다시 취직 준비와 한국 자격증 준비에 돌입한다. 2015년 5월에 한국에 들어가 4개월동안 자격증을 따고, 토익점수를 획득하고, 영어 말하기 시험(?)에서 최상위 성적을 받은후에 구직활동을 시작한다.

 

지금 생각해봐도 한국 정비사 시험이 미국에서보다 훨씬 더 어렵고 용어 이해가 어려웠다. 한국은 항공사가 손에 꼽을만큼밖에 없어 선택의 폭이 좁았으며, 거의 대부분 면접을 봤는데도, 참 적응하기 힘들었었다. 운이 좋게 그 중 한군데 붙어서 11월부터 첫 출근을 시작하였었고, 9월경에 여자친구가 한국에 방문하여 제주도 여행을 함께 갔었는데, 우리 둘다 백팩하나메고 자전거 여행을 계획했다. 4박5일 여행이었고, 그 여행이 나의 제주도 난생 처음 여행이었는데, 아무것도 모른채 Sleeve 가 없는 반팔티를 입은채 여행을 했고 바로 다음날부터 피부가 새까맣게 타버려 여행 내내 너무나 따가왔었던 기억이 있다. 첫날은 숙소도 안잡고 여행중 들어가기로 해 김녕펜션 근처로 숙소를 골랐었는데, 그 동네에서 인생 일몰도 보고 정말 최고의 여행이었다. 제주도 공항에서 출발하여 서귀포까지 자전거 여행, 그리고 마지막날엔 한라산을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이 여행이 우리 여행중 아직까지는 최고의 여행으로 손꼽힌다. 

 

한국에서 회사생활을 하는동안 다행히 특별한 사건사고는 없었으며 한국에서의 회사생활은 너무나 재밌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회사에서 하는 회식이 그렇게 재밌을수가 없었고, 또한 내 또래 동료들이 많이 있어서 일을 힘들었지만 정말 즐겁게 회사생활을 했었다. 또한 회식후 부장님들과 또래 직원들과 노래방에 갈떄마다 나는 히트를 쳤으며, 그 이후로 나는 별명이 "xPD"가 되었다. 노래방 갈때마다 "조PD 의 친구여" 를 완벽히 불러서 그런 별명이 붙여진 듯 하다. 그렇게 일년여쯤의 시간이 흘러 나와 여자친구의 결혼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가족들과 회사 동료들 그리고 친구들의 축복아래 결혼식을 올렸다. 

 

정말 고마웠던 점은 미국회사의 마지막이었던 라과디아 지점 전직장 동료들에게 연락을 했는데 매니져와 슈퍼바이져가 내 결혼식까지 비행기를 타고 나타나 주었다. 결혼식 전날 도착하기로 되있었던 그들은 기상악화로 지연이되 결혼식 당일날 도착을 하였고, 우리와 함께 폐백절차도 경험하고 사진도 같이 찍은후 우리 네명이 웨딩카를 같이 타고 이동을 했으면 나는 전통 한국 바베큐집의 근사한 식사를 대접했다. 다음날이 신혼여행이어 오래는 있지 못해 사과를 한후 헤어졌다. 다시한번 이 글을 통해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결혼 후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으며, 다시 미국으로 들어갈 생각이 있었기에 가장 필수적인 물건들 외엔 우리는 아무것도 사 놓지를 않았다. 결혼식후 약 8개월이 지나 또 다시 가족들, 지인들 그리고 직장동료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2017년 봄 이번엔 배우자 영주권 신분으로 미국으로 다시 들어온다. 들어오자마자 예전 직장 동료들과 연락을 해서 만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Working Permit 이 나오기전까지 운동을 하고, 공부를 하고, 잡서치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6개월이 안되 퍼밋이 나왔고, 또 다시 항공사에 취직했는데 라과디아에서 일할때보단 큰 항공사였으며 이번에는 JFK 공항이었다. 당시에 맨해튼 Upper West 에 살았었는데 렌트비가 $2400 이어서 우리는 룸메이트를 한명 구했다. 집 크기는 550sqft 이었으며, 엘리베이터와 라운드리가 없는 5층 Pre war 빌딩이었다. 맞벌이었던 우리는 당시에 외식도 많이 하고 문화생활도 많이 하고 그렇게 달콤한 신혼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예전 직장동료들을 할렘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있는데, 평소에 와인 한잔 정도는 하는 와이프가 이번에는 아예 거절을 하신다. 물론 친구들이 무례하게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차리고 다음날 와이프에게 물어보니 임신테스트기를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두줄이 나왔다. 우리는 너무나 기뻐했고, 흥분을 채 가라앉히지 못한채로 OBGYN 의사를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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