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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인생 계획에도 없었던 좌충우돌 미국에서의 20년 삶 15

용벅 | 2023.07.21 19:10:14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그렇게 슬퍼하는 와이프를 달래며 새로운 집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약 이틀정도에 걸려 모든 짐을 정리했고, 아기침대 등 용품들이 와서 이제 좀 사람 사는 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달동안 쉬었고, 산후조리 해주는 이모님이 오셔서 많은 걸 도와주시고, 그분께 많은 걸 배웠다. 또 다시 한달이 지나 아가랑 와이프는 한국에 가족들을 보러 갔으며 나는 그동안 일을 했고, 땡스기빙전 즈음 해서 와이프가 돌아온다. 

 

그런데, 돌아온 이틀후 장인어른의 부고소식을 접한다. 우리 결혼식 전에 암 진단 4기를 받으셨고, 약 2년간의 힘든 투병생활 끝으로 삶을 마무리 하셨고, 우리는 그 장면을 지켜보지 못하여 당분간 죄책감이 심했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그 자리를 대체해줄 사람이 없어서 내가 어렸을때 많이 방황했었고 힘들었었는데, 정말 짧은 기간이었지만 장인어른의 따뜻한 마음과 자식들을 끔찍히 아끼셨던 그리고 나에게 그토록 잘해주셨던 장인어른을 떠나 아버지같은 분을 잃으니 나또한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산후 우울증과 장인어른의 빈자리로 와이프는 더더욱 힘들어 했으며, 그 당시가 정말 우리가 가장 힘들었을 시기중 하나였다. 

 

아기까지 생겨 뉴욕에서의 삶은 더욱더 힘들었고, 차까지 없었으므로 너무나 불편했었다. 더더욱 시애틀 생각이 났으며, 뉴욕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도중에 시애틀에서 일자리도 틈틈히 찾고 잇었다. 약 두달정도가 지난후에 리쿠루터에게 연락이 왔으나 영주권을 아직 못받아 나중에 받으면 다시 연락 해 달라고 하며 끊는다. 약 한달후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영주권이 나와 전화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온 사이트 인터뷰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호텔을 예약하여 시애틀로 날라간다. 인터뷰는 너무나 쉬웠고, 인터뷰 후 렌튼 플라잇라인 매니져중 한분이 출구까지 배웅을 해주시며 바로 연락 갈 거라고 말씀해 주셨었는데, 인터뷰 경험 중에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그렇게 무사히 인터뷰를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와 열심히 일과 육아를 하며 하루하루 살아 가고 잇는데, 갑자기 시애틀 번호로 전화가 온다. 안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 연락이 안오는지 궁금했던 나는 그분께 물어봤었고, 이메일로 오퍼레터를 보냈었는데, 그 오퍼레터가 스팸메일에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바로 스팸메일을 확인하고, 그 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한후 오퍼레터에 싸인을 하였고, 공식적으로 시애틀로 이사를 가게 된다. 시애틀로 이사가기전 와이프는 또 캘리포니아에서 다른 직장 오퍼를 받아서 약 6개월간의 이산가족 생활을 했엇다. 나는 뉴욕에서 일하며 쉬는날마다 남가주로 가족들을 보러간다. 항공사에서 일했기에 다행히 갈때마다 일등석을 타고 다녀서 좀 피곤한 생활이었지만, 편하게 다녔었던거 같다. 아마 그때 전후로 마일모마를 알게 되어 카드를 오픈하고 카드게임에 빠져서 캘리포니아에서 시애틀로 로드트립을 결정하고 약 13일정도 여행 계획을 하여 캘리포니아 그리고 뉴욕에서의 파란만장했었던 삶을 마무리하고 시애틀로 떠난다. 

 

와이프는 우리애기가 갓난 아이부터 이유식을 만들었는데, 처음부터 좋은 쟤료를 엄선하여 손수 만들었으며, 그 모습을 본 나는 정말 엄마는 대단하다고 느꼈었다. 때로는 아직도 너무하다고 느낄때가 있고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있는데, 식사 상차림을 완성했는데 애기가 다른걸 먹고 싶다고 하면 그 순간 또 바로 다른 음식을 요리하기 시작한다. 아이가 커지면서 이런 빈도는 확실히 줄었지만, 가끔 이런 모습을 보면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난 그냥 무조건 차려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먹었고, 내가 어렸을때 우리집에서 그런상황이었다면 엄마로부터의 등짝스매싱이 날아왔었으니..... 물론 항상 좋은 쟤료를 엄선하시어 우리 가족에게 일용할 양식을 매일매일 차려주시는 P2님께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을 이자리를 통해 말하고 싶습니다. 

 

약 13일간의 로드트립을 하면서 정말 좋은 추억도 많이 남겼고, 평생 자보지 못했던 5성급 호텔에서도 숙박도 많이 해보고 친절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중간중간 4일에 한번 정도 주방이 있는 곳에서 머물기도 했었는데, 이유인즉슨 아기 이유식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하여 시애틀로 무사히 입성하여 약 7주간의 트레이닝 클래스를 시작하였고, 다시 시애틀로 왔으니 예전에 같이 축구를 했던 미국 친구들한테 연락을 한다. 스케쥴을 잡고 장소를 확인한후 그 친구들과 약 7년만의 재회를 하였고, 이날 시합은 밤 9시 경기였는데, 나는 약 5년만에 뛰는 경기였고, 비가 내리고 으슬으슬한 날씨였기에 와이프는 나보고 오늘은 가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게다가 집 바로 옆에 있는 공원에 위치했었기에 차로 1분이면 갈수 있는 거리였다. 나는 아무일 없을거고 괜찬을테니 걱정하지말라고 편히 자고 있으라 당부를 한다.

 

오랜만에 본 지인들은 나 포함 모두들 세월의 무게를 이길수 없는 얼굴이 되었고 다들 아빠가 되어 있었다. 너무나 방가운 마음에 열심히 몸을 풀고 있었는데 갑자기 날씨가 너무나 쌀쌀해지고 비가 많이 내렸다. 전후반 45분 경기였는데, 나는 골을 넣지 못했지만 컨디션은 너무나 좋았고 아직 짱짱하다는 혼잣말을 하며 열심히 뛰고 있었다. 그렇게 전반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하여 지고 있었기에 나는 더더욱 열심히 했으며, 경기 종료 약 20분전 공중볼을 따낼려고 하늘위로 높이 점프를 한다. 하늘에 떠 있는 순간 갑자기 "팍" 하고 폭죽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고, 그 순간 나는 땅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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