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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질문-기타]
대학 1학년, 실패가 두려워 애초에 회피하는 아이에게 해주실 조언이 있으실까요?

후지어 | 2023.12.22 11:05:28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이제 대학에서 한 학기를 마친 제 자식 이야기입니다.

1학년 1학기 성적을 4.0 만점에 1.6을 받아 왔습니다. 7과목 중에 3과목에서 겨우 점수를 받고 4과목은 아예 학기 중간부터 수업을 안들어 갔다고 하더군요. 중서부 주립 대학을 다닙니다. 집 근처이지만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너무 늦지 않게(!) 얘기하면 부모는 언제든 너를 도와주겠다, 고 이번 학기 내내 몇 번을 강조했습니다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될대로 되라고 내버려 두고는 이 결과를 받아왔습니다.

 

아이의 성향은, 좋아하는 것에는 제법 매달리지만 자기랑 안맞다 싶거나 좀 싫다고 느끼면 쉽게 손을 놓아버립니다. 학교에서 Marching band를 하는데 여기는 열심히 참여합니다.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고 규율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역시 자유롭게 다녔지만, 대학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진 자유 및 그에 따르는 self management를 제대로 핸들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잠과 식사 모두 불규칙 합니다. 그래서 아침 수업을 번번히 빼먹고 밤참을 자주 먹습니다. 최근 들어 살이 많이 불어서 1-2년 사이에 근 40 파운드가 쪘습니다.

고2부터 음악으로 진로를 정해서 고등학교에서 AP 과목들도 듣긴 했지만 책상에 앉아서 각 잡고 공부해본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평소에 책도 읽지 않고 취미는 게이머 유튜브 틀어놓고 PS4로 게임하기 입니다. 진단은 받아보진 않았지만 ADHD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공부하는 전공이 아니라 음악이니까 대학에서 서바이벌 할 수 있지 않을까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악기 다루는 것을 좋아해서 관악기는 웬만한 건 다 불 줄 압니다. 대학에 에세이 쓸 때에는 이것이 큰 장점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이건 오히려 단점인 것 같습니다. 한 악기를 열심히 파다가 맞닥뜨리는 한계, 그것을 뛰어넘는 경험을 해보지 못하고 다른 악기로 넘어가 버렸던 게 아닌가...

 

애와의 관계는 전혀 강압적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가 알아서 할 일이다" 라는 말들이 이 어린 애에게 지나친 책임감으로 짓눌려 온 게 아닌가 하는, 돌이켜 보니 느껴지는 후회까지 들 정도입니다. 집안에 음악가가 한 명도 없어서 음악으로 진로를 정할 때도 많이 말렸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뜻을 존중해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충분히 했습니다. 지금까지 사준 악기 값만 해도 ㅎㄷㄷ... 1.6 받아온 성적표를 보고서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았습니다. 학점 3.0을 유지 못하니까 너의 장학금이 날아갔고 앞으로 loan을 얻고 part-time job을 얻어야 할 거다 라는 정도 얘기를 했습니다. 미래에 수많은 문들이 여전히 열려있긴 하지만, 몇몇 중요한 문을 닫은 것 역시 사실이라고 얘기했습니다.

 

P2와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면 봄 학기 다니는 게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대학을 계속 다니며 졸업을 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드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장학금은 이미 날아갔고, 애초에 가난한 예술가가 되는 것을 탐탁치 않아 했기에 음악 학사학위 역시 저는 큰 미련이 없습니다. 다만 이 사건을 계기로 애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뭔가를 느껴서 각오를 다지고 노력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삶은 너무 힘들 것 같기 때문입니다.

애랑 좀더 많은 얘기를 해봐야겠지만 지금은 대화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본인도 충격이고 (본인은 2.x 정도는 나올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메타인지가 너무나 떨어집니다 ㅠㅠ) 힘든 것은 회피하고 싶어하는 성향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애랑 얘기하면서 근본 원인과 처방이 나와겠습니다만 지금 P2와 얘기한 몇가지 방향은

- 내년 가을 또는 이르면 봄부터 휴학하고 gap year를 가지면서 본인의 길을 스스로 탐구해 나가기를 기대해 보기

- 집중 못하기, 회피적 성향 등을 고려해 볼 때 전문 카운셀러를 만나보기

- 각오를 듣고 action plan을 세워서 그걸로 봄 학기를 보내면서 잘못된 생활 습관 고치기

- (체력 테스트를 통과할지는 모르겠지만) US Army 같은 곳에 지원하기

 

본인도 혼란스럽겠지만 저 역시 갈피를 잡기 힘듭니다. 제 스스로의 경험에 비춰봐서 좋은 결과를 예상하고 뭔가를 해도 좋지않은 결과가 나올 때가 많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책임감을 강조한 것 역시 그 한 가지 예입니다. 저로서는 제 자식을 이해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아재들은 다 아실 "프린세스 메이커" 라는 게임을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저는 애를 공주로 키우려고 매 턴마다 최선의 선택(!)을 했지만 어느 순간 그 아이는 사냥꾼이 되어 있던 경험... 나는 애를 결코 공주로 키울 줄 모르는 사람인데.. 지금까지 최선이라고 했던 그 선택들이 애 입장에서는 최선이 아니었겠구나 하는 후회들...

 

게임이라면 다시 시작이라도 하겠지만, 이미 18살 먹은 한 애가 제 앞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인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님들께서는 어떻게 자식을 훌륭히 키워내셨나요? 이런 역경을 이겨내고 건실한 청년으로 자란 분들은 혹시 본인 얘기를 저에게 좀 해주실 수 있을런지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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