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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나눔]
기부, donation, 성금 등등 해 보신 적 있으시죠? 우리는 왜 기부를 하는 걸까요?

papagoose | 2014.09.13 01:42:48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이번에는 물건이 아니라 그냥 이야기/생각 나눔입니다. 낚시성 분류라고 뭐라하지 마시고... 막상 잡담으로 분류하려니 그런 내용은 아닌 것 같아서 이곳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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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헌금도 하고, 가끔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성금도 내기도 했구요, 그리고 또 아주 아주 가끔씩 뜬금없이 자선단체에 소액 기부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부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까운 마음이 듭니다. 웃기죠? 교육받은 사람이라서 뭔가 기부를 하면 괜히 스스로가 대단한 사람처럼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닌지 혼자 스스로 생각해 보고, 스스로의 천박함에 한탄을 하고는 합니다....


금전적인 기부든 재능 기부이든 하여간 이 기부에 대해 나는 왜 이렇게 야박할까 라고 갑자기 반문해 보게 되는 일이 오늘 생겨서 마적분들과 나눠 보고자 합니다. 우리도 서로 서로 재능 기부하며 이 게시판에 머무르는 것 아닌가요? ㅎㅎㅎ


제가 오늘 느낀 것은 기부라는 것이 진정으로 상대방의 어려움을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는 것이구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이 내가 한 기부가 헛되지 않고 다시 돌아온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는 점 입니다. 이 헛되지 않고 돌아 온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확신을 못하기 때문에 더 큰 기부 문화로 확산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게 해 준 실화 한가지를 오늘 들었습니다.


흔히 헌금이나 기부를 할 때, 이것이 올바르게 쓰이는 지에 대해 의구심을 표현하면 항상 돌아오는 말이 '너의 몫은 기부까지이며 그 이후는 쓰는 자의 몫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마라' 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긴 서론은 그만하고 오늘 아버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저희 가족은 명절을 지나고 첫번째 토요일에 성묘를 갑니다. 오늘이지요. 아침에 일찍 내려갔다가 저녁이 된 이제야 서울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한마디로 구구절절한 사정은 많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농사일을 하시게 된 분입니다. 물려 받은 것 없이 고생하시면서 군대를 제대한 젊은 시절부터 어머님과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조금 나이드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5-60년대는 정말 한심했다고 합니다. 폐허의 한국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정말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 한가지 희망의 빛을 보신 것이 있으셨답니다. 미국에서 한국을 여러가지 면에서 도와주던 때였는데, 당시에 미국의 Pfeiffer Heifer 재단이라는 곳에서 한국의 농촌을 도와 주고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기 위해 여러가지 사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젖소(milk cow) 송아지를 한국 농촌에 공급하는 것이었답니다. 아버님이 그것을 보시고 신청을 해서 우유가 뭔지도 모를 한국에서 처음 젖소를 기르게 되셨다는 것이죠. 쌀농사 밭농사를 짓는 것보다 목축을 하면 좀 미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셨답니다. 지금이야 이런 환경이 많이 변했지만 당시에는 큰 도전이셨다고 합니다. 저도 어릴 적 그 첫번째 송아지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하여간 저는 이런 이유로 목장집 아들로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이 송아지가 어떻게 한국까지 온 것인가 하면, 바로 미국의 농촌에 있는 농부들이 자기 집의 송아지 한마리를 기부하면 그것을 재단에서 받아서 한국에 공급해 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심사를 거쳐 이것을 받은 저희 아버님처럼 잘 키워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신 분들도 있지만 못 그러신 분도 있고 그랬다고 합니다. 그런 몇십년의 세월을 거쳐 나름대로 이쪽 분야에서 성공을 하시고 지방 축산업 단체의 선출직 조합장도 하시면서 다른 분들과 뜻을 모아 과거에 받은 기부를 돌려 주자는 데 의견을 같이 하셨답니다. 벌써 10여년도 넘은 예전의 일이랍니다. 여러명이서 송아지를 마련하고 베트남, 연변 등지의 낙후된 곳에 송아지를 보내고 하셨다는 것을 성묘를 하러 가는 차안에서 이야기를 해 주시더군요. 뭐, 보낸 송아지가 잘 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아직 없으시답니다... ㅎㅎㅎ


요기까지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몇년전에 이때 도움을 받으셨던 한국분들이 예전에 송아지를 기부해 주었던 미국내 곳곳의 농장들을 방문하기로 일정이 마련되었답니다. 미국 깡촌을 다니면서 그 곳 분들과 홈스테이하면서 같이 지내고 예전 이야기를 하는 그런 자리인거죠!


어느 날 주일에 교회에 모여 pot luck으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저 위에 쓴 미국-한국-동남아로 이어지는 송아지 이야기를 했더니, 나이 많으신 미국 할아버지 한분이 그러더랍니다. 그 동안 많은 곳에 송아지를 보냈지만 (한국에만 보냈겠어요? 여러 나라에 똑 같은 일을 했겠지요.) 한국처럼 성공하여 다시 이렇게 돌아와서 만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게다가 다시 기부를 이어 간다니 너무 기쁘고 흥분되는 일이다. 라고요...


당시에 아버님이 우리는 이제 경제적인 기반이 어느 정도 이루어 졌으니 앞으로도 계속 낙후된 나라에 송아지 등의 도움을 주는 기부를 계속할 예정이다. 그 동안의 도움에 감사했다 라고 했답니다. 이때 그 안에 있던 6-7살쯤 된 아이가 나오더니 주머니에서 5센트짜리 동전을 내밀더랍니다. 자기도 이 돈을 기부하고 싶다고... 아~ 눈물나는 이야기입니다.


몇 십년에 걸친 부모님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과 기부의 결과가 선으로 돌아오는 현장을 목격한 이 어린아이의 가슴에 새겨진 '기부 DNA'는 책과 교육으로 배운 나의 기부 철학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그냥 나누고 싶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 추석은 달이 무척 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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