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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여행기]
캅보디아 씨엠립에서 3. 뜨거운 안녕

사리 | 2015.01.25 16:06:27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근 1년 사이 세 번째로 이곳에 왔네요. 

그리고 각 여행당 한번씩 이곳에 글을 남긴 꼴입니다. 

아마 이곳엔 더 오지 않을 것 같네요.. 하지만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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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일들이 겹치면서 다시 씨엠립에 오게 되었다. 나는 그저 금토일월의 일정이 갑작스럽게 모두 취소되었을 뿐이다. 씨엠립에서 일을 하고 있는 친구는 몇 가지 고민이 있어서 SOS를 쳤고, 별 반응이 없자 숙식 전부 해결과 엄청나게 좋은 맛사지집 발견이라는 떡밥을 내걸었다. 얼마전 어이없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가 몹시 불편하던 차에 솔깃하긴 했다게다가 분리 발권으로 여차저차 하면 큰 돈 안들이고 왕복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더군다나 그곳은 생맥주 한잔이 500원밖에 안하는 천국 아니던가. 싱가폴에서 거지같이 궁상맞게 살다가 그곳에서 주는 떡밥 야금야금 물어 먹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어쨌든 나는 10년 만에 말레이시아 항공을 타고 어느덧 씨엠립에 도착해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동네 친구인 이 녀석은 이곳에서 일을 한 지 2년이 훌쩍 넘어간다. 시내에서 한참 흙길을 타고 들어가는 작은 마을에 초등학교 건물도 짓고 상수도가 제대로 갖추어져있지 않아 건기 때면 물 때문에 고생이 심한 이곳에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쓸 수 있는 수로 시설도 만들고 그외 여러가지 국제 원조 활동을 하고 있다. 여름엔 40도가 훌쩍 넘어가 숨쉬기가 고역인 이곳에서 미친 듯이 땀을 흘려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고, 때마다 한국에서 오는 대학생 자원봉사단을 교육시키기도 한다.

 

작년에 두 번째로 이곳에 왔을 때에는 학교 완공을 앞두고 문제가 있었다. 현지 건설 업자 중의 한 명이 계약 위반을 하고 도망갔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쓸 건물이라 유리창도 튼튼한 걸로 창틀도 튼튼한 걸로 더 신경써서 준비했었는데, 이 업자가 창틀을 비리비리한 놈으로 설치하고는 냅다 도망간 것이었다. 업자가 튀었다는 소리를 듣고 하루종일 업자를 추적에 나선 그를 보는 건 꽤 스릴있고 재미난 일이었다. 언제 캄보디아에서 도망간 하청업자 잡아나서는 걸 해보겠는가여튼 결국엔 잡아 냈고 창틀을 다시 만들어서 어느 정도 튼튼한 놈으로다가 해놨단다. 몇 달 지나고 보니 벌써 망가진 게 생기긴 했지만 말이다.

 

이런 유명한 관광지에 현지에서 오래 산 친구가 있다는 건 꽤 근사한 일이다. 낡은 공항에서 내리면 20년을 봐온 친구가 삐끼 아저씨들 사이로 무슨 화투장에 비광 아저씨처럼 서 있는 것도 반가운 일이고, 가이드북이나 블로그가 아닌 최근의 핫플레이스로 놀러 다니고 먹으러 다니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수입해온 다 낡아빠진 이스타나 봉고차 차체에다가 마력이 아주 딸리는 작은 엔진이 붙어 있어 오르막길이라도 오를라치면 빌빌 대기가 감기약 주워먹은 망아지 같은 차를 타고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니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이처럼 한 곳에 있지 않을 것들이 창의적으로 함께 있기도 한데, 이스타나 차체에 1500cc도 안될 것 같은 다른 차에서 떼온 엔진 그리고 열쇠는 벤츠인 자동차를 타 볼 수가 있다.

 

오고가는 사람들도 많고 새로 생기고 없어지는 곳들도 많다. 시내 야시장에서 일식 돈부리를 하던, 여행자로 왔다가 잠시 주저 앉은 것으로 보이는 게 분명한 일본에서 온 힙스터들은 이미 식당을 접고 떠난지 오래이고, 지난 번에 맛있게 먹은 곳은 주인이 바뀌어서 별로가 되었고, 그 사이 새로운 건물이 여기저기에 들어서서 잠시 이곳이 어딘가 싶기도 하다. 여행자 거리인 펍스트릿에서는 최근 한 사회적 기업이 과일 주스 판매하는 방법도 가르치고 노점도 일괄적으로 만들어주었는지 200미터가 안되는 길에 똑같이 생긴 과일 주스 가판이 20개가 넘는 듯 했다.

 

관련 기관들의 예산 문제와 바뀐 정책 그리고 이런 저런 행정문제가 겹치면서 친구는 2년 넘게 해왔던 이곳에서의 활동을 조만간 접어야 하는 판국이다. 어떻게든 유지시켜 자기가 다니고 있는 마을만이라도 좀 살만하게 만들고 싶었던 그 마음을 아는지라 철수가 거의 확정적이된 상황에서 이 녀석은 가끔씩 상실감에 젖곤 한다. 시내에서 한참 흙길을 따라 가는 마을은 그래도 근사한 학교 건물도 지어놔서 아이들이 땡볕에서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마을 회관도 어느 정도 수습을 하고 왔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조만간 떠날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건 그동한 함께 일해 왔던 현지 동료들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실업자 처지가 될 생각에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많았나보다.

 

현지 직원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고교 졸업후 혼자 영어 공부를 열심히해서 힘들지만 가이드로 일하며 두 아이의 가정을 꾸리고 있는 직원도 있고, 한국 회사에서 온갖 멸시와 욕을 먹어가며 눈치를 보는 게 몸에 베어 마음이 아픈 직원도 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청소부 직원은 시내에서 자전거로 한시간도 넘게 걸리는 외진 마을에 살고 있는데, 여름철 40도가 훌쩍 넘는 길을 그렇게 달려올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도 한다. 가끔 그녀가 무단 결근을 하는 날도 있기는 한데 출퇴근길이 어떤지 알고 맡은 청소는 끝내주게 하는지라 연차 쓴다고 생각하니 별 것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단다. 정말로 똘똘하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대학을 다니지 못했던 직원도 있고, 직원끼리 커플이 맺어져 얼마전 결혼식을 올린 직원도 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자기보다도 훨씬더 똑똑하고 치열하게 살았고 성실한 사람인데 조금 부자가 된 나라에서 태어난 이유로 이들에게 관리자가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가끔 살고 있는 방향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언제 떠나야 할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직원들에게 작년부터 조금씩 앞길을 터주고 싶었는데, 두 아이의 아빠이자 성실하고 스마트한 직원에게는 야간 대학을 진학시켜서 사비로 대학 등록금을 대주고 있었다. 여기 온지는 얼마 안되었지만 남들이 3천불을 견적으로 내오는 힘든 일을 단돈 8백불로 아주 훌륭하게 치러내며 꼼꼼한 일처리와 빠른 언어 습득을 보여준 싱글여성  B는 대학에서 회계 공부를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 또한 대학에 보냈다고 한다. 아직 글을 모르는 청소부 직원은 적어도 미용기술이라도 배우면 먹고 사는데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생각중이라고 하고, 한 번도 지각 없이 성실하게 운전을 해준 운전수에게는 오토바이를 살 돈을 모으면 뚝뚝을 도와주는 식으로 하면 밥벌이는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밤마다 술을 먹는 게 걱정이라고 한다. 내 앞길 하나 챙기는 것도 힘에 부쳐하고 있는 나를 앞에 두고 이런 저런 현지직원들의 앞길 걱정하고 있는 친구를 보니, 참 어른이 되었구나 싶으면서 내가 참 어린냥을 부리고 사는구나 싶었다. 다행히 결혼한 커플은 집이 아주 형편이 어려운 것까지는 아니고 남편은 최근 다른 직장에서 더블잡으로 일을 하고 있으니 아주 걱정할 것까지는 없을 것 같단다.

 

이들이 대학 졸업을 해서 철수를 하더라도 다른 직장을 좀더 수월하게 구할 수 있었으면 했지만 야속하게도 여러 문제 때문에 갑작스럽게 철수해야하는 상황에 온 것이다. 나 또한 이곳에 세번이나 왔다갔다 하면서 함께 밥도 먹고 주섬주섬 이야기도 나누었던 이들이라 눈에 밟히는데, 이 녀석에게는 오죽할까 싶기도 하다. 등록금이 한 사람당 한 번에 400불 정도밖에 안된다는데 그 돈을 쉽게 내어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 그냥 내 먹고 살기에도 급급한 학생 신분이라는 게 꽤나 미안하기도 했다. 이곳에 자원봉사 다녀왔던 애들이 하나 둘 직장을 잡기 시작한 애들도 생겼으니 그곳에서 모금도 좀 해볼 생각이란다. 나도 친구들에게 좀 삥을 뜯어 보겠다고 했다. 나한테 술 사주는 것 대신에 몇 만원이라도 좀 내놔라 할 요량이다. 내 능력이 안되니 그거라도 해볼 수밖에.

 

두세달 이내로 이 친구도 철수하고 나면 내 평생 이곳에 또 올 일은 아마 없을 것 같다. 앙코르와트 같은 유적지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씨엠립에 이렇게까지 왔던 이유는 20년지기 동네 친구와 그리고 그 친구가 공들인 마을 그리고 그것을 위해 함께 일하던 성실하고 따뜻한 이들에게 어떤 안식을 얻기도 하고 음식도 나누면서 나 즐겁자고 왔던 터였는데 조만간 내 방과 내 침대가 어엿하게 있었던 이 친구의 집도 그 사람들이 모여있던 사무실도 문을 닫고 사라질 것이다. 다시 오지 못할 곳일 것 같지만, 이곳에서 만났던 그 훌륭했던 사람들이 다가올 날들이 조금이라도 무섭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싱가폴에 돌아가자마자, 한국에 있는 정규직 친구들에게 삥을 뜯어 보겠다고 다짐한다. 곧 파파구스님이 치를 떨었던 이곳 공항으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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