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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여행기]
스페인 여행- 그라나다 2 ( 사진 첨부합니다)

sleepless | 2015.05.01 07:43:38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다음날 예약해둔 알함브라 입장시간은 오후 5시 반이여서, 아침시간은 아주 넉넉했습니다. 
다행히, 두번째 날은 다른 호텔을 예약을 해 둔 참이라서, 
서둘러 짐을 싸서 첵아웃을 했습니다. 

두번째 날을 보낼 호텔도 큰 호텔 체인이 아닌 작은 호텔이라 걱정이 좀 되었는데 
호텔에 도착하고 보니, 안도가 되었습니다. 

Saray 호텔이라는 곳인데, 호텔은 알함브라를 모티브로 디자인을 한듯 보였습니다.
아주 깨끗하고 스탭들도 모두 친절했으며 호텔방도 아주 넓고 만족스러웠어요. 
조식이 포함시켜서 예약을 했는데, 아침도 아주 훌륭했어요. 
그라나다에서 다른 호텔 포인트를 사용하실수 없는 상황이라면, 강추합니다.
성주간 기간이라서 150유로에 아이용 침대 따로 있는 방, 아침 부페 포함이였구요, 
주차비는 15유로를 따로 냈습니다. 
한가지 단점이라면, 그라나다 시내에선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알함브라까지는 택시비 8유로 정도 냈구요. 

http://hotelgranadasaray.com/


일단 호텔에서 나와서 그라나다 시내로 가서 점심을 먹고, 알함브라로 출발합니다. 

알함브라는 입장시간이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야간 입장이 따로 있구요. 
전 그라나다는 한 낮보다는 이른 아침이나 아주 늦은 시간이 관람하기에 좋다고 해서, 
아예 늦은 시간으로 예매를 했습니다.

알함브라는, 나스르궁/ 헤네랄리페/ 까를로스 5세궁/ 알카사바 이렇게 크게 네 장소로 나눌수 있구요. 
예매표에 입장시간은, 사실은, 나스르 궁의 입장 시간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표에 4시반이면 4시반에 알함브라를 입장하는 게 아니고, 
오후 타임인 2시부터 언제든지 입장이 가능합니다. 

알함브라의 나스르궁은, 알함브라 궁의 안쪽에 있습니다. 
고로, 그 시간에 맞춰 들어가시려면 적어도 30분 정도 먼저 입장하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저희는 2시경 입장을 해서 다른 곳들은 미리 다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나사리 궁을 보고 나오는 걸로 일단 계획을 했습니다.

입장하려는데, 안내원이 말하기를, 
오늘은 알카사바를 오픈하지 않는답니다. 
왜냐고 물으니, 프로세시옹 행렬이 그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그 장소를 폐쇄한답니다. 
아, 알함브라에서도 프로세시옹의 저주는 계속 되는군요 ㅠㅠ


드디어 알함브라에 들어섭니다. 
가슴이 쿵쿵 뛰네요. 
사실 알함브라는 오래전부터 와보고 싶었던 곳입니다. 
어릴적에 카데라의 " 알함브라의 추억"  기타연주를 듣고나서, 
막연하게나마 알함브라를 추억하는 게 이런 음악을 만들게 한다면 
그곳은 정말 엄청난 곳임에 틀림이 없다는 확신이 들었던거 같아요. 


나중에 알게 된 건, 카데라는 유부녀였던 제자를 짝사랑했으나, 거절을 당하자
실연의 상처를 안고 여행하다가 알함브라에 와서 헤네랄리페 궁전의 분수를 보다가
그 물방울 떨어지는 것에 영감을 얻어 그 기타 연주곡을 완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음악만 듣고 상상하던 스토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나, 
그러나,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합니다. 

이 카데라의 기타연주의 영향도 있었겠으나, 
오늘날 우리가 알함브라를 만나게 된 것은 
또 다른 두명의 아주 특별한 은인덕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거 같습니다.  
그 두명이 아니였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함브라를 방문하기는 불가능했을 지도 몰라요.

이사벨라와 페르난도왕이 알함브라를 이슬람으로부터  빼았았을 때,  알함브라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이사벨라여왕은  이슬람의 많은 장인들과 기술자들에게 좋은대우를 약속하고 남게 했답니다. 
힘으로 이슬람을 몰아내고 그라나다를 정복했으나, 
그들에겐 이슬람인들이 가지고 있던 기술이 없었습니다. 

특히, 로마인처럼, 알함브라는 그 높은 궁 안으로
다른 산에서 수로를 만들어 물을 끌어들이는 아주 복잡한 수로시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복잡한 것들을 유지하고 보수할 기술이 당시 카톨릭 지배자들에겐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재미있지 않나요? 
이슬람인들이 로마의 수로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것이? 

사실, 우리에게 이슬람 문화의 업적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늘 그러듯, 역사는 이긴자의 입장에서 씌여지니까. 
게다가, 이슬람포비아가 있는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대주의적 역사교육을 받은 우리로선...

로마가 게르만계 서고트 족에 의해 무너지고, 중세는 암흑의 시대로 빠집니다. 
도 그럴것이, 로마를 무너뜨린 건, 로마가 야만인이라고 부르던 그 세력이였으니까요. 
로마보다도 더 발달한 문명이 로마를 무너뜨렸다면, 
지금 인류의 이야기는 좀 많이 달랐을 거 같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로마인들은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군인들마저 
모두 용병의 힘을 빌리고 자신들은, 끝없는 향락에  빠져 있어서 ( 3B 포함 ㅎㅎ)
그 용병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적군으로 변해서 성밖에 진치고 앉아 
성안으로 들어 오는  음식이 모두 차단되었던 그 순간마저도
전차경주과 글라디에이터의 싸움등 향락을 멈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로마를 함락시킨 그 야만인들은 과학기술의 문명을 몰랐습니다. 
야만인들에 의해 로마인들이 죽고 로마가 폐허로 바뀌고, 
우럽은 로마의 엄청난 건축과 과학기술을 이어가 줄 후세 문명을 만나지 못한 채 
수백년 동안, 암흑의 시대를 거치는 동안,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의 기술과 과학을 이어갔던 건, 바로 이슬람 세력이였습니다. 

코르도바는, 그런 의미에서, 인류에게 과학기술의 다리 역활을 했던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도시입니다. 
흑. 이번 일정에서 코르도바를 마지막까지 손에 들고 고민하다 
마지막에 제외를 시킬 때, 그런 역사적인 장소를 못 가보는게  너무 너무 아쉬웠습니다.  

코르도바는, 10세기경 유럽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였고
이미 도서가 백만권이 넘는 퍼블릭 도서관이 있었으며
많은 학자들과 과학자들이 그곳에 상주하며 토론을 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리스 로마의 과학과 기술에 많은 관심이 있었으며, 교육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습니다. 
당시에 일종의 대학교와 같은 학교를 만들어서, 
아이가 어릴 때부터 대학자와 과학자들이 교육을 전담했을 정도로 교육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알함브라의 수로를 이슬람인들이 만들어낸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사실은, 로마의 수로보다도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수로였습니다. 
로마의 수로가 아쿠어덕처럼 오픈되어 있던 곳이 있던 것에 반해
알함브라의 수로는 땅굴을 파서, 그 땅굴로 물이 흘렀고, 
게다가, 그 땅굴을 보수하는 것을 생각해서 사람이 다닐수 있는 높이로 파두었으며 
중간 중간 사람의 진입이 용이하게 문도 따로 만들었단 사실.
정말 대단하죠? 
관심있으신 분들은 유투브에서 알함브라 다큐를 한번 찾아보세요. 정말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왕이 바뀌고 오만해진 카톨릭왕은 이슬람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이슬람 기술자들은 하나 둘 스페인을 빠져 나가서  
알함브라를 보수하고 유지를 할 기술자들이 없어서, 점점 알함브라는 그 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스페인왕임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어를 제대로 할 줄 몰랐던 카를 5세는, 
전형적인 이슬람 건축인 알함브라에 르네상스 건물을 짓겠다고 알함브라의 건물을 허물면서까지, 
카를 5세 궁전을 짓기 시작하지만, 끝내 완공하지 못하고 포기하고 맙니다. 
현재는, 하늘이 뻥 뚤린 원형 건물이 알함브라안에 아주 쌩뚱맞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 학설엔, 아마도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건물의 팬티온을 본 뜬,  돔 천장을 만들려고 했으나 실패했을거라고 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알함브라는 버려져서 폐허가 되어 거지들과 도둑의 은신처로 쓰이고 한때는 집시들이 들어와 숨어살기도 하다가, 
나중엔 나폴레옹군대가 스페인을 점령했을 땐 알함브라를 요새로 쓰면서 나사르궁을 감옥으로 썼다고 하죠.
알함브라의 굴욕 ㅠㅠ
나폴레옹이 퇴각할 때는 적군이 알함브라를 요새로 쓸것을 염려해서, 
호세 가르시아라는 한 절름발이 병사에게, 남아있다가 군대가 떠나면, 전 알함브라를 날려 버리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그 병사는, 아름다운 알함브라를 차마 불태우지 못하고, 명령을 어깁니다.  
감옥으로 쓰이고 집시들의 은신처로 쓰이던 폐허를 보면서도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알함브라의 아름다움을 후세에 전해주고자 했던 그 병사의 엄청난 용기가 없었다면
오늘의 알함브라는 잿더미로 사라져버렸겠죠. 
생각해보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그렇게 간신히 불타버리는 것은 면했으나, 여전히 폐허로 남아있던 알함브라에 또다른 은인 한명이 찾아옵니다.  
미국인 작가 Washington Irving.  그는 텅빈 폐허같은 궁전안에 서재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 살면서 알함브라에 얽힌 전설등을 모아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책을 출간합니다. 
바로 알함브라 이야기. Tales of the Alhambra . 
그 책은 유럽과 특히 미국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았고, 
그로 인해, 알함브라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스페인은 알함브라를 국가 유적지로 지정하고 재건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세계에 공개가 됩니다. 

워싱턴 어빙의 심미안이 없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알함브라의 존재를 알지 못 했을 확률이 높아요. 
그래서인지, 알함브라엔 그의 초상화가 아주 크게 걸려있어요. 그라나다 입장에서 보자면, 엄청 고마운 인물일테니까요.

그렇게 어렵게 만나게 된 알함브라를 프로세시옹 덕분에 다 볼 수 없다니. 아 진짜!!! 
그러나, 다른 곳을 보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자는 체념을 하며, 알함브라를 돌아다녔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분들이 올리신 알함브라 후기와 대동소이 하여
전 그냥 알함브라의 추억, 기타연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UCJkwBNtTE



granda_herallife.jpg

어떠세요? 물방울 소리가 들리는 거 같으신가요? 



친구와 카톡을 하다가 스페인 여행 어땠냐 묻길래, 
이 글 링크를 보냈더니, 친구가 말하길

사진 한장 안 올리고 그 따구로 성의없이 글 올리면 욕 안 먹냐? ㅎㅎㅎ

그래서 사진 몇장 올립니다. ^^








granda_gerallife2.jpg


granada_alhambra.jpg

granada_alhambra6.jpg

granda_alhambra1.jpg

granda_albayzin.jpg


granada_procession1.jpg

granada_procession3.jpg

친구가 프로세시옹이 대체 뭔데, 그리 괴롭히는 거냐 고 묻길래 ㅎㅎㅎㅎㅎ
허접 사진이지만 올려봅니다.

대낮에 하는 프로세시옹은, 밤에 하는 거랑은 아주 많이 차이가 났어요.
밤에는 어둡기때문에 저절로 종교행사에 집중에 되는 반면
낮은 많이 어수선한 느낌이였어요.

미국의 KKK 가 저옷을 따라입은 건 정말 아이러니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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