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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여행기]
잘 다녀왔습니다

사리 | 2015.05.04 06:20:25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방글라데시에 잘 다녀왔습니다. 

다녀와서 꼬박 일주일을 아파서 누워 있었습니다. 

오늘 드디어 병원에 가서 항생제 때려 맞고 여러 약을 투하했더니 

그나마 살만 합니다. 


여태까지 제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여행을 꼽으라면 

2010년 쿠바 일주였는데, 이번 여행으로 기록을 갱신했습니다. 

처음에 알지도 못하고 나라시 자동차 잡아서 막 싸돌아다녔는데

알고봤더니 그게 이쪽에서 납치+실종되기 딱 좋은데다가

제가 막 돌아다닌 동네가 우범지역으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네요..


그렇게 가난한 곳은 처음 봤고

그렇게 죽음이 흔한 곳도 처음 봤고

그렇게 재난이 흔한 곳도 처음 봤습니다. 


유엔 등을 비롯한 국제기구들과 여러 구호단체들은

방글라데시 식수를 깨끗한 물로 하겠다며 

70년대부터 열심히 우물을 팠는데 

이게 비소 오염이 된 물이라 

현재에도 남한인구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비소 중독 상태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죽었구요. 


제 인생에서 이렇게 열심히 살아본 열흘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하루에 서너시간도 못자고 준비하고 현장에 나가고,  사람들을 만나고,

매일매일 기록하고 말이죠. 

자기 전 쓴 열흘치 여행기가 200자 원고지로 730장이 넘더군요 ㅡ.ㅡ;


네팔에서 지진이 있던 날,

저는 붕괴된 라나플라자 바로 뒷편에 있는 피해자의 집에 있었습니다. 

남루한 콩크리트 건물이 갑자기 휘청거리며 흔들리길래

혼비백산해서 우리 모두는 뛰쳐 나왔죠. 

이 건물도 무너질까봐 무서워서요. 

다행히 건물이 붕괴된 게 아니라 지진이었습니다. 

2013년 4월 24일은 천이백명 가까이 사망하고,

아직도 이백여명이 실종된 최악의 산업재난의 날이었는데,

2015년 4월 25일은 네팔에서 그렇게 강진이 났네요. 

현재까지 7천명이 넘는 사망자가 보고되고 있구요. 


아직도 사건 현장은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했습니다.

유골이 아직도 현장에 돌아다니구요,

사건 당일 밤, 건물주 밑에 깡패들이 사체들을 어떤 웅덩이에다가 마구 던져 

숨기려는 바람에 그렇게 유골조차 찾지 못한 가족들이 너무 많습니다. 

유골이 있어도 가족조차 찾지 못한 무덤도 200구가 넘었습니다. 

게다가 무덤은 관리가 안돼있어서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는 것들도 많았구요.. 


펀딩 받은 것에서 경비로 쓰고 나머지를 무너진 봉분 다시 세우는 일에 꼭 쓰고 싶었는데

어떻게 일을 해야 제대로 할 수 있나 궁리중입니다. 


2주년 되는 날, 현장에서 바지 가랑이부터 엉덩이까지 쭉 찢어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동네 바보처럼 사람들에게 제 빤스 다 보여주고 다녔네요... 

시위하고 오열하던 사람들도 제 바보 빤스 놀이에 빵빵 웃어도 주시고;;

근데 숙소로 돌아와서 벗어보니 

그 찢어진 미국에서 산 토미힐피거 바지가 메이드인 방글라데시더군요... 

고향에서 떠나기 싫었나 보다 하고 그땅에 놓고 왔습니다. 

원래 꼬매입거든요 ㅡ.ㅡ;;;


많이 배웠고 많이 슬펐고 많이 웃기도 한 여행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많은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전달할지는 궁리중입니다. 



다음 여행은... 2주 뒤에 발리로 갈 예정인데;;
발리에 가서 차근차근 원고 정리하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여러분들께서 걱정해주시고 
지지도 많이 해주셨는데
다녀왔으니 보고는 해야하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주저리 남겨봅니다. 



Screen Shot 2015-05-04 at 11.56.03 PM.png


잔해.jpg


데모.jpg


마.jpg

들어가던 길.jpg




무덤.jpg

다카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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