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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자는 도중 Fire Alarm이 울리면

JSBach | 2017.01.02 18:38:57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Fire Alarm이 울립니다. 잠자리가 익숙치 않아 이제 겨우 잠들었는데, 귀를 째는 듯한 알람 소리에 잠을 깨야 하니 여간 짜증나는게 아닙니다. 그리곤 이내 알람이 울리는 스피커를 손으로 막아 봅니다. 워낙 겁이 많은 아이가 놀랄까 싶어 최대한 소리를 줄여보고자 하는 생각만 합니다. 몸은 천근만근 이게 꿈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꿈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 엄마는 벌써 옷을 챙겨 입고 무언가를 주섬주섬 가방에 담습니다

 

사실 이게 처음이 아닙니다. 불과 1년 반 전에 거의 비슷한 경험을 했더랬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Fire Alarm 소리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나도 이렇게 놀라는데 아이가 얼마나 놀랄까 싶어, 알람 소리를 듣고 제일 먼저 한 행동이 베개로 스피커를 틀어 막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건 연습 일거야, 담당자가 버튼을 실수해서 잘 못 눌렀을 거야, 시스템이 에러 나서 잘못 울리는 걸 거야, 금방 소리가 멈출 거야…’ 와 같은 희망 어린 망상만 되풀이 할 뿐,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그렇게 한 4~5분쯤이 흘렀지만, 알람은 여전히 울리고 있고, 복도에서는 사람들의 인기척이 나기 시작 합니다. 정말 사람들이 나왔을까 싶어 살짝 문을 열고 보니, 사람들이 정말 방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제서야 나가야 하나 보다 싶어 부랴부랴 챙깁니다. 일단 뭘 입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 신발이 어디 있는지 조차 헷갈립니다. 양말은 신어야 할지 벗어야 할지, 지갑이 먼저인지 핸드폰이 먼저인지, 방 키는 어디에 두었는지, 가방은 가져가야 할지 두고가야 할지, 그리고 똑 같은 고민들을 아이를 위해 한 번 더 합니다. 다행히 여름이라 대충 입고 대충 챙기고 복도로 나왔습니다. 그나마 2층이라 다행입니다. 계단을 찾아보는데 잘 안보입니다. 겨우겨우 건물 밖으로 나가보니 많은 투숙객들이 이미 나와 있습니다. 다들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호텔 건물내 불꽃이나 연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곧이어 경찰차가 오고 불자동차가 한 대 도착했습니다. 옆건물의 다른 호텔 사람들은 창문을 열어 우리를 구경합니다. 조금 쪽팔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흘러간 후, 호텔 직원이 방으로 들어가도 좋다고 합니다. 뭐지? 하면서 방으로 향하던 중 마주친 다른 방 손님에게 물어봅니다. 투숙객 하나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다 일어난 에피소드라 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참 괘씸합니다.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그 담뱃불에 골탕을 먹은 것입니다. 하지만 좋은 경험 한 것으로 퉁 치고, 이게 훗날 날 살려 줄 수도 있을 거라 위로하며 첫 경험을 마무리 한 적이 있습니다

 

훗날이 일년 반 만에 다시 찾아 왔던 겁니다. 전 똑 같은 시행착오를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베개로 막고 있던 스피커를 재빠르게 손바닥으로 막고 있는 것만 달라졌을 뿐, 1년 반 전의 좋은 경험이라 했던 lessons learned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비몽사몽에 일단 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추스릴 수 있었고, 그러나 역시 별일 없을 거야 라는 생각이 저를 지배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 같습니다. 방문을 열어보니 전기 스파크 날 때 나는 타는 냄새가 납니다. 덜컹 겁이 납니다. 부랴부랴 챙깁니다. 다행히 이번에도 2층입니다. 그리고 자동차 키도 챙겼습니다. 추운 새벽이라 차 안에서 버틸 요량이었습니다. 새벽 1시쯤 시작한 대피가 3 30분쯤 끝났습니다. 로비에 비치되어 있던 밴딩 머신의 모터가 타면서, 연기와 타는 냄새가 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정리 좀 해 봐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이나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입니다.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면 3번째는 살아남기 힘들겠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1.      알람이 울리면, 무조건 나가자. 이게 쉬운 말 같은데 두 번 다 몸이 따르지 못했습니다.


2.      Check-in 할 때 비상구를 눈으로 꼭 확인하자. 상황이 벌어졌을때 비상구 사인 찾아 나가면 되지 라고 쉽게 생각했는데, 막상 그 사인이 눈에 안들어 오더군요.


3.      전망을 포기하고 저층으로 가자. 고소공포증이 있는 저로서는 불만 없습니다. 지난 여름 31층에서 묵었던 기억이 나면서상상만으로 아찔해 지는군요


4.      신발 위치를 잘 정해서 그 곳을 명심하자. 그 급박한 와중에 신발부터 찾던 제가 우습더라구요.


5.      긴급 상황시 입고 나갈 옷을 분명하게 정해 놓고, 쉽게 착복할 수 있게 구분해 놓자. 계절과 날씨를 감안해야 밖에서 떨지 않겠구요. 이걸 정해 놓지 않으니까 그 와중에 이걸 입어 말어 하는 상황이 생기더군요.


6.      방키, 셀폰, 지갑, 자동차키 정도는 한 곳에 모아 놓고, 그 옆에 비닐봉지 하나를 놓아두자. 금부치나 중요한 노트북 등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고민 좀 하셔야 할 것 같아요.


7.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부부가 역할분담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 같아요. 물론 아이 수와 연령에 따라 필수 지참물도 달라질테구요.

 


새해에도 즐겁고 안전한 여행에 조금이라도 도움 되셨으면 해서 저의 어리석은 경험담 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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