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차례를 앞당겨 치루고 모두 함께 동네 수도원에 갔다.
이곳을 하루 개방하는 행사에 처가 초대받아 다 함께 가기로 했다.
생물학자이자 수사인 한 원로 교수를 주인공으로 작년에 처가 만든 다큐멘터리를 상영했다.
그간 몇번을 봤을 1호도 제법 진지하게 봤다.
비록 20여분이지만 지루했을 법 한데 2호도 잘 참고 지켜봤다.
상영이 끝나자 3호는 박수를 쳤다. 찬사가 아니라 지루함의 끝을 알리는 환호였으리라.
동물적 감각으로 간식대를 찾아 레몬에이드를 담는 아이들. 아, 그많은 컵이 일회용이 아니다.
처가 인사를 마치고 무리를 빠져나와 건물을 둘러 봤다.
안내판에 소개된 인물의 서명은 음각으로, 종이와 색연필로 서명을 복사할 수 있었다.
사소하지만 다른 것들. 보통 파는 용기 보다 긴 모종 통. 그만큼 뿌리가 길게 내려 건강하단다.
망치든 이 분은 예수일까 요셉일까? 뱅글뱅글 돌며 골몰하는 1호.
수도의 공간이라 그런지 산책하기도 좋게 잘 가꿔져있다.
특히나 잘 가꿔진 이곳, 예전에 서너번 왔던 기억을 더듬어 데려갔다.
성모상이 있는 기도처다. 주변이 아늑하고 경관이 수려해서 교인이 아닌 나도 반해버린 곳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구석 한켠에서 엉뚱한데 관심을 쏟고 있다.
개구리다. 자리 하난 기가 막히게 잡았다 했다. 이곳 오는 사람이 해칠 일은 없을 테니...
시원한 잔디 사이로 포장길을 낸 십자가의 길.
신화를 좋아해 성경 이야기까지 섭렵한 1호가 아는 척 나선다.
나는 혼자 좀 더 걸어 묘지로 향했다. 처음엔 삶 지척에 묘를 둔 이곳 문화가 참 거북했다.
그렇지만 이젠 묘지가 언제 부턴가 '메멘토 모리', 마음을 가다듬는 공간이 됐다.
혼자 묘지를 산책하고 오니 아이들은 여전히 벌레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수도하는 이곳 수사, 수녀님들의 갤러리. 그러니까 공방이다.
작품을 보기 보다는 선인장 틈을 비집고 거미를 보는게 더 좋은 아이들.
한참을 거닐다 집에 가자고 차에 올랐는데 처가 알고 지내는 수사, 수녀님과 마주했다.
대화가 길어지니 아이들도 다시 '놀이 모드'로 전환했다.
나도 차에서 내려 1, 2, 3호 따로 앉혀 기념 사진 한장 찍었다.
그리고 잔디밭 한가운데로 달려간 2호가 땅을 파기 시작한다.
이번에도 씨를 심겠단다. 씨를 주어다 주는 1, 3호가 함께 지켜본다.
막 다섯가족이 돼서 이곳에 왔다. 5년만이다. 그때 없던 '십자가의 길'엔 그네 의자가 있었다.
그때 유모차에 있던 3호는 100일 전후, 딱 요만했다. 반갑다 1, 2, 3호 아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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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앞당긴 차례이긴 했지만 나름 추석 분위기 났던 하루였습니다.
비록 종교를 갖고 있진 않지만 종교인을 만나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차분해지고 넉넉해 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동안 잊고 지내던 이곳을 찾아 새 기운도 얻는 듯 했습니다.
특별한 명소나 관장지가 없는 동네이긴 합니다만
구석 구석 평범하면서도 정이 가는 곳이 많은데
이곳 수도원도 그런 곳 중에 하나였는데 그만 놓치고 있었네요.
5년전 얼굴이 지금도 보이네요^^
키울때는 몰랐는데 그렇더라고요. 근데 그게 독사진 보면 종종 헛갈릴 때도 있어요. ㅠㅠ
감사합니다. 그 순간 찍은 사진이 두장 있어서 어느것 올릴까 잠시 고민했었습니다. 내친김에 마저 올려 봅니다.^^
오호~~5년전만 해도 정말 아가들이네요
아빠 미소에 담긴 좋은 기 받고 가는 좋은 아침이에요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그때만 언제 키우나 했는데 훌쩍훌쩍 커버렸네요.
한가위 하루, 마저 기분좋게 마감하시길 바랍니다.
다복함이 느껴지는 따뜻한 가정입니다. 오하이오님과 사모님의 많은 노력이 있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가 더 어렸을 때는 계획에 방법까지 잔뜩 쌓아두고 노력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무슨 노력을 하는게 정말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점점 더 비워나가는 느낌도 들고 오히려 가끔은 너무 막 키우나 싶기도 할때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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