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를 미리 극복하기 위해 하루 앞당겨 런던 왔는데, 일요일 하루종일 나갔다 왔지만 저녁되어 혼자 있으니 심심하네요. 그래서 블로그는 아니고 뻘로그 함 나눠봅니다.
어떤 교훈을 주거나 숨은 의미 전혀 없이, 그냥 한명의 출장러가 삶을 나눈다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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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시간 보내... 맛있는 것 많이 챙겨 먹고”
비행기 안에서 아침식사 먹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는 내 모습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옆자리에 아무도 없어서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아침에 문을 나설 때 건네준 아내의 말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눈물이 나다니... 내가 왜 이럴까?
나는 출장러
며칠 전에 ‘마일모아’라는 한인커뮤니티 사이트에 가입했다.
왠만한 커뮤니티 웹사이트는 원하면 마음대로 가입할 수 있지만, 어쩐 영문인지 이 사이트는 대략 1년에 딱 한번, 그 것도 24시간만 가입기간을 오픈해서 회원가입을 허락한다. 멤버가입 안하면 글을 달 수가 없는데, 이 사이트는 굳이 댓글 안달아도 기존 멤버들의 정보력과 참여도 높은 댓글들을 읽다 보면 꽤 많은 생활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래도 사람심리는 참여하고 싶은 법인지라, 몇달 전 부터 소위 말하는 ‘눈팅’만 하다가 이번 기회에 1000명 넘는 신입동기(?)들과 함께 가입했다.
글 많이 달면 상 주는 것도 아닌데, 며칠내내 신나게 댓글놀이도 하며 즐거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여행관련 토픽은 물론, 재테크, 가정생활, 진로고민을 포함한 다양한 토픽에 대하여 자유롭게 대화를 하고, 꼰대질 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서로 자유롭게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는 참 매력적이다. 주인장님이 계속 이런식으로만 운영해줘도 무척 고마울 것 같다. (물론, 좀 더 직접 꿀팁 글을 조금만 더 자주 올리시면 좋겠고, 핑크배경 좀 어떻게...)
엄밀히 말하면 외롭지는 않다. 하지만, 그랬다는 듯이 누군가와 비슷한 고민거리를 나누고 폭넓은 경험담을 통해 나의 시야를 넓고 삶의 통찰력을 깊게 가꿀 수 있는 이 사이트의 매력은 실로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여기서 알게 된 단어: 출장러.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남의 돈으로 여행을 다니는 걸 아무래도 부럽게 생각하던데 내가 그런 출장러님? ㅎㅎ
컨설팅 분야는 아니지만, 거의 원하면 아무때나 미국내 출장을 다닐 수 있는 흔치 않은 직장을 갖고 있다. 해외출장도 1년에 3-4번은 갈 수 있고 해외출장의 경우 대부분 비즈니스를 타게 되어 마일 모으기에 꽤 괜찮은 잡이다. 아직도 안가본 곳은 많지만, 최소한 출장으로 다녀본 곳이 어느정도 축적되다 보니 여행에 관한 대화에 편하게 끼어들 수 있는 점은 장점인 것 같다.
이 출장러가 올해 들어와 첫 출장을 가게 되었다. 영국과 밀라노. 이 것도 원래는 영국만 가는 건데, 이탈리아 직원과 통화하다가 ‘나 이때 이때 영국 있을 건데’하니 마침내 유럽지역 영업부 회의가 있는데 와서 프레젠테이션 해줄래?라고 해서, ‘어 그래’ 이런 식으로 쉽게 결정해서 만들어낸 출장이다. 내가 생각해도 무슨 부사장이나 임원급이 할 대화 수준일 것 같지만, 사실 난 부사장도 아니고 임원도 아니다. 그냥 회사에서 나를 믿어주는 것 같다. (며칠 전에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다른 직원은 부서의 예산절감 문제로 밀라노에 가려다가 못가게 되었다고 해서, 아, 내가 얼마나 편하게 직장생활 하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이러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상황이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갈까? 미래는 모르지만, 막연히 예측을 던지자면 올해 안으로 내가 직장을 옮기든지, 아니면 뭔가 다른 작은 변화가 오지 않을까 싶다. 경제도 2-3년 마다 트렌드나 분위기가 바뀌듯이, 2-3년이라는 기간은 직장생활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내가 바꾸고 싶어 지든지, 주변이 나에게 바뀌기를 바라든지.
예전에 나 같은 동료를 봤으면 내심 부러워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의 내가 부럽지 않다. 딱히 어려운 일도 없는데 눈물을 살짝 흘리며 출장을 떠나는 이유는 평소에 똑같은 말을 장난끼 가득 넣어서 말하는데, 오늘은 같은 말에 진정성이 더 느껴졌다.
“재밌는 시간 보내... 맛있는 것 많이 챙겨 먹고”
작년에 아이가 아파서 병원다니고 할 때 내가 가야하는 출장 과감히 끊고 몇달이고 옆에 있어준 게 기억나서 그런 걸까?
원래 11월에 갔어야 하는데, 두 세번 미루는 나를 지켜봐서 그랬을까?
아이들을 위해 내가 좋아하는 특색있는 음식을 평소에 못 먹은 게 미안해서 그럴까?’’
설마 며칠전에 ‘난 출장 가는 유일한 이유는 마일과 포인트 모아서 우리 가정 여행에 보태기 위한거라구’라며 아부성 있게 말한게 살짝 불쌍해 보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와이프는 평소대로 장난끼 있게 말했는데, 출장을 안다녀도 충분히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이제 찾고 싶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초라하게 느껴져서 그런걸까?
아마 모든 것이 한 덩어리로 뭉쳐서 눈물의 습격으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잘 모르겠다.
확실히 아는게 있다면, 지금 드는 생각은 무사히 일정 잘 마치고 아빠가 사온 선물 찾으며 안길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정도.
와이프도 뭐 챙겨줘야지.
아무래도 마일과 포인트는 신용카드로 모으는 게 가장 좋은 방법 같다.
2019년 2월 9일
토요일 집에서 뒹굴고 싶지만
새벽부터 올라 탄 비행기 안에서
도코가.
P.S.: 인터넷 없이 몇시간 동안 덩그러니 있어야, 비로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출장의 시간도 나름 의미가 있는 건 뜻하지 않은 함정. ㅎㅎ
재밌게 읽었습니다. 같은 2019년 새내기로서 마일모아에 대한 미묘한 감정과 고마움 격하게 공감합니다...
그쵸. 놀러가려고 출장간것고 아닌데 괜히 미안할때가 있죠. 그나저나 와이프님이 이글을 보시면 도코님 궁디 팍팍~~~해주시겠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이 마일모아 땜에 내가 고급 호텔라운지에 앉아 뭐하는거죠... 핑크색 화면의 아이패드 들여다 보는 모습에 눈물 핑~~~ ㅋㅋㅋㅋㅋㅋ
와이프가 100% 안보는 걸 알기 때문에 글을 올렸습니다. 안그러면 발목 잡히는데 이런 글을 절대 안올렸죠. 궁디 퐝퐝은 담으로 기약하는 것으로.
재미있어요. ㅎㅎㅎ 다음 2편 기다리겠습니다.!
1편 중 1편이라는게 함정!
이거 쓰다보니 쓰는 것도 재미는 있는데, 생각보다 ‘덩그러니’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아야 저는 가능할 것 같아요.. 인터넷 있으면 여기 들어와 있으니 ㅠㅠㅠㅠ
갑자기 눈물이 나는 내 모습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welcome to the 늙은이 club !
오 제가 늙은이 클럽? 이렇게 당황하고 황송할 수가... 이게 늙은 징조라니 갑자기 더 슬퍼지는데요??
갑자기 더 슬퍼지는데요??
40에서 60 까지는 게속 슬퍼져요
downhill
60-70 까지는 행복하고
70 이후로는 뭐 how many good summers left? 세는 단게
헉. 근데 60-70는 왜 행복한거죠?
ㅋㅋ 저도 안 되봐서 모르죠
근데 4-50 대에 부모님 돌아가시죠
금방 돌아가시면 왕창 슬프고 나은데
오래 아프다 돌아가시면 아이고
노인네가 말은 안 듣고 양로원 가자면 갖다 버린다고 생각하고
점점 어린애 같아지고
측은하고 화나고
x4
주로 80 전후해서 돌아가시니
내가 60이 되면 부모님 스트레스는 없고
40-50 대에 애 대학 졸업하니 돈 들데도 없고
그때까지 직장 다니면 소득은 더 높고
회사에서도 좀 자유롭고
60-70 대는 애들 보러도 다니고
여행도 하고
걸어다니기도 하고
70+ 에서는 잘 못 걸어요
집에만 잇고 아프고
사모님이 이 글을 보고계신다면 쪽지로 구조요청을 하세요 ㅋㅋㅋ
사실 난 부사장도 아니고 임원도 아니다.
난 오너 아들이다
ㅋㅋㅋ 에구, 잠시 어깨 들썩한게 표현으로 나오고, 그 표현 덫으로 히고님이라는 매의 눈에 잡히고.
와이프도 뭐 챙겨줘야지.
와이프: ok 게획대로 되고 잇어!
제가 쓴 글에 딴지 걸게 실로 많군요.ㅠㅠ
작가의 생각:
그동안 ‘도코맨의 뻘로그’를 사랑해주신 독자들 독자에게 감사드립니다.
엄밀히 말하면 외롭지는 않다
뜻: 외롭다
ㅋㅋㅋ
갈기 갈기 찢기는 나의 자존심.
근데 혼자 라운지에서 읽다가 빵 터졌어요. 리얼리티 프로가 따로 없네요.
그래도 출장러 부럽습니당. ㅋㅋ
작품 정리:
도코 씨는 40대 초중반이 되어서 노화도 오고 여성 호르몬도 나오게 되니
아무 이유없이 눈물도 나오고
여성스런 센티함의 감정이 들게 되어서
그동안 무심코 지나치던 일들이 새롭게 보이고
아름다운 상념에 젖습니다
여러분 편견은 이렇게 위험합니다.
저는 20대 때도 와이프보다 자주 눈물 흘리는 예술성 감수성이 풍부한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애초부터 애늙은이었다?
@대박마 님의 최신 연구에 의하면
남녀는 바이네리한게 아니라
0-1 사이의 연속 구간의 한점이라구요
도코님은 남자 70프로 여자 30프로 인걸로요
하필 제가 비행기에서 본 영화가 Bohemian Rhapsody라서 이게 참 이상하게 다가오네요.
전 바이너리가 좋아요ㅠㅠㅠㅠ
이분 양자 역학 하신분....
양자역학이
물질에도 최소 단위가 잇듯이
전기도 연속처럼 보여도 전자 하나의 전하가 최소 단위 듯이
시간이나 공간에도 연속이 아닌 비연속의 최소 단위가 잇다는 뜻인가요
그렇다 치면
그냥 무의미한 연속 비연속의 사변을 넘어
실제 우리에게 주는 의미잇는 임플리케이션 은요?
ㅋㅋ 이분 진짜 이과....
지금 성당 왔는데....
주님을 믿으세요.
전 이미 믿어요 아멘
PATER NOSTER,
qui es in caelis, sanctificetur nomen tuum.
Adveniat regnum tuum.
Fiat voluntas tua, sicut in caelo et in terra.
Panem nostrum quotidianum da nobis hodie,
et dimitte nobis debita nostra
sicut et nos dimittimus debitoribus nostris.
Et ne nos inducas in tentationem,
sed libera nos a malo.
Amen.
구글 번역 해 봤습니다. 후덜덜....
노장자가 우리에게주는 의미있는 임플리케이션은요?
양자역학은 과학의 도가사상!
라임 죽이네요...
노자...
장자...
양자...
전 거의 50대 50.... 드라마 보고 울어요..... ㅋㅋ
ㅎㅎㅎㅎ그래서 출장러의 삶은 싱글일때 즐겨야...쿠울럭
저는 여전히 부럽습니다 ㅠ. ㅠ 거기다 유럽 출장이시라니...
물론 출장과 오피스의 균형이 적절한 포지션을 잡게되면 얼마나 좋을까요...ㅎㅎㅎ
싱글일 때보다 신혼때가 최고라 생각됩니다.
@얼마에 님의 습작 의욕은 셧댜운 해제에 봉인된 것인가...
2편도 올려주세요.
Back home flight때 컨디션 되면 해보겠습니다. 이게 얼마에 님처럼 장기휴재가 될 수도....
마일과 포인트는 카드로 모으고, 티어는 출장으로 모으는거 아닌가요? ㅎㅎㅎ
오며가며 하시다가 "내, 오다 주었다" 할만한 작은 귀거리나 목걸이 하나 사고, 예쁜 카드 하나 사서 "내 아를 낳아도" "고생 많데이. 나랑 같이 살아줘서 고맙고, 뭐 거시기 뭐냐... 사... 사... 좋아한데이" 라고 써서 같이 주시면 됩니다 ㅎㅎㅎ
"글 많이 달면 상 주는 것도 아닌데"
> 상줘요. 7만글 이벤트가 얼마 남지 않았네요. (물론, 뻘글만 쓰면 상 없구요.)
주인장님까지 찾아오시다니 감사드립니다!
오... 상 주는 것 맞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
어느정도 비슷한 처지에 있는 출장러 입장에서 많은 부분이 공감되네요. 비행기는 비즈니스 타고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좋은 대접, 맛있는 거 먹어도 혼자 있는 시간은 별로 즐겁지 않죠. 건강 잘 챙기고 좋은 거 먹고 다니라는 아내의 말이 고마우면서도 남겨져 있는 애들 생각에 얼른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크죠. 그래도 출장으로 얻는 마일, 엘리트 등급에 따르는 보너스, 아멕스 플랫 x5등을 꼼꼼히 잘 챙기면 즐거운 가족 여행을 가질 수 있어서 오늘도 이 아빠는 비행기에 오릅니다.
Virtual 토닥토닥요. ^^
좀전에 런던 외곽 고속도로에서 뺑뺑이 돌다가 지쳐 들어왔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뺑뺑이라는 표현이 참 적절합니다.
쓸데 없이 Roundabout이 많고 복잡해서 5mile거리의 식당을 65분만에 찾는 기적.
한국메뉴가 많은 스시집이었는데요...
오징어볶음을 시켰더니.. 달랑 오징어 볶음만 주는 거 있죠?
그래서 밥이나 반찬 없냐고 물었더니, 반찬 없다고. 밥은 한공기 주더군요.
오징어 볶음은 뭐랄까... 6개월 냉동실에 방치해둔 오징어에 고추가루만 발라 태운 맛이었어요 엉엉.
기름기만 좀 첨가했어도 말을 안해요 말을...
그래도 매콤한게 고달팠던 저로서는 꾸역꾸역 먹고 계산하러 갔더니
계산하는 non코리안 직원이 '아멕스가 되야 하는데 요즘 잘 안되요. 딴 카드 없어요?'
그래서.. 아, 이 아멕스는 법인카든데, 해보고 안되면 내 비자카드로 할게, 함 긁어봐.
오케이, 하고 긁었더니, '어 되네..'
이런 양심없는 식당 주인님. 아멕스 transaction fee 아까워 거짓말 시키고, 반찬 없이 밥도 없이 그런 저콸리티 음식을 팔아도 되냐구요???
혼자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내글에 내가 뻘댓글 답니다.. 출장러는 오늘도 참 수고했어요.
(흑한 직업은 아니고, 배부른 소리인 거 알지만, 기분입니다. 기분.)
혼자 가면 어딜가도 뭘먹어도 별로인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출장러는 부럽습니다!
아흙 럭셔리 출장은 고사하고 전 컨퍼런스도 안보내줘요 ㅠㅠ 말해야 출장러가 될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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