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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뜬금없는 감성글_한국에서 걸려온 전화

양돌이 | 2019.03.09 12:03:04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친애하는(?) 마모회원님분들 안녕하세요-

 

제가 사실 이런 글을 쓰고 있을때가 아닌데, 시험공부하다 머리식히자고 눈팅 중에 @복숭아 님 글을 보고 용기내서 첫 글다운 첫 글을 올려보기로 했어요. 

 

이제 한달 쯤 된것 같네요. 

여기 미국시간으로 밤 9시 정도였나... 평소에 카톡하면 이모티콘으로만 답장하시던 아부지께 전화가 옵니다. 

이제 사실 우리 엄마 아빠 장인 장모님께서도 모두 나이가 있으시기 때문에 이렇게 엄한 시간에 한국에서 전화가 오면 가슴 한켠이 싸해집니다. 

다행히 엄마 아빠 문제로 전화하신건 아닌거 같아요, 아빠는 분명 술한잔 하신 목소리시지만 차분하게 말씀하십니다. 

할머니가 이제 가실 때가 된 것 같다고...

 

저에게 조부모는 이제 외할머니, 할머니, 그리고 처가쪽 외할머니 이렇게 세분 계신데 그 중 친할머니께서 제일 정정하셨거든요. 

3년전에 한국 갔을때도 그때 당시 6갤이던 제 첫아이 업으시고 산책도 하셨었고. 

그래서 항상 조부모님 일로 이렇게 연락이 오면 그건 신장이 안 좋으신 외할머니실거라고 생각했기때문에 너무 놀랐었습니다. 

 

아빠 말씀이 갑자기 몇주사이에 악화되셔서 지금 벌써 의사는 며칠을 버티기도 힘드실거라고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아빠가 여기 다 정리되면 다시 연락할게, 아빠가 너 지금 상황 내가 아니까 그냥 거기서 할머니 편하게 가시게 기도나 많이 해줘..라고 말씀하시는 아빠 목소리 뒤에, 

뭔가 설명할 순 없지만 '그래도 니가 와줄수 있으면 좋겠어' 라고 말씀하시는것 같았어요. 

제가 지금 수련중이라서 마음대로 스케쥴을 내기가 정말 정말 어렵습니다. 그거 당연히 아빠도 알고 계시구요. 

근데 아빠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정말 가서 하루만 있다 오더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빠 목소리 뒤에 느꼈던 감춰두셨던 속내음이, 

아마 맞았던 것 같더라구요. 제가 간다고 하니까, 평소 같으면 쓸데없는 헛소리 말고 니 할일이나 하라고 하셨을 아빠가, 

그래, 그럼 조심히 와-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바로 다음날 출발하는 비행기편을 알아봤습니다. 그 와중에 두 걸음마쟁이들이랑 미국에서 혼자 씨름해야될 아내가 안쓰러워서, 

최대한 빨리 돌아오는 비행기를 알아보는데 아내는 또 자기 걱정말고 이왕 가는건데 가능하면 하루라도 더 있다 오라고 합니다.

이 와중에 서로 그 하루가지고 옥신각신하다가 한국에서 도착하는 날 포함 이틀있는 걸로 하고 비행기표를 샀습니다.  

이 날이 수요일밤이었는데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게 있더라구요. 제가 또 동남부 시골에 살아서 한국가려면 갈아타고 커넥션도 나빠요ㅜ

 

비행기표를 사고 나서 캐리어에 옷가지를 넣다가 문득 제 정장을 넣어가야하나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순간 가슴이 아린게 느껴졌습니다. 정장을 넣어야할 것 같은데, 입을 일이 없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

(정장은 가져가지 못했어요. 미국와서 한번도 안입었는데, 나잇살이 들어서 안 맞더라구요...또르륵). 

 

그래도 한국가는데 엄마 아빠 외할머니들 뭐라도 사드리고 싶은 생각이 납니다. 시간은 벌써 12시가 넘어서 연 곳은 CVS 밖에 없더라구요. 

가서 초코렛이랑 파스, 비타민같은거 카트에 쓸다시피해서 담아가져와서 캐리어에 꾹꾹 눌러담았습니다. 

애들 방에 가서 코 골며 자고 있는 애들 한번 보고 , 아내한테도 아침에 일어나지 말라고 당부하고 쪽잠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출발부터 인천도착까지 총여정 시간이 거의 22시간 정도였는데, 아빠가 말씀하신 할머니 상태가 계속 걱정되더라구요. 

제발 랜딩했을때 슬픈 소식이 카톡에 와있지 않기를 빌면서 비행했습니다. 

공항도착하니, 나오지 마시라고 당부했는데 (예상대로) 엄마가 나와계시더라구요. 아빠는 지금 병원에 계신데 할머니께서 너 이륙한다음에 더 나빠지셔서, 

지금 바로 병원에 가야될것 같다고...3년만에 보는 엄마랑 안부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채 병원으로 향합니다. 

그 와중에 엄마는 제가 헬쓱해졌다면서 안쓰러워하시는데... 정장이 살쪄서... 안맞아서... 못들고 왔다는 말은 차마 못합니다. 

 

병원 중환자실에 들어갔는데, 제가 기억하는 마지막 할머니 모습이랑 너무 다르신 모습으로 누워계시더라구요ㅜ

숨 쉬시는게 버거우셔서 가녀린 몸 전체를 들썩거리시면서 계시는데 뵙자마자 울음이 터졌습니다. 

가끔 할머니께 전화드리면 이 나이때 할머니분들처럼 당신 하실만만 하시고 제 말은 듣지도 않으시거든요.. 

근데 제가 온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아무 말씀도 못하시더라구요. 

이게 증명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의 오각중 제일 마지막까지 살아있는게 청각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말하면 니가 온지 아실거라고. 

아빠가 저 이륙한 다음에 급격히 나빠지셨을때 손자 오고 있으니까 좀만 더 힘내라고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거짓말처럼, 제가 할머니 뵙고 15분 후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정말 저 때문에 마지막까지 버티고 계셨던 거라면, 얼마나 힘드셨을지..

할머니께서 사랑하신 손자 손녀들이 여러명있는데, 그래도 마지막 곁을 지킨 손자가 제가 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어요. 

 

이렇게 해서 이틀동안 할머니 곁도 있어드리고, 장례까지 참석하고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사이사이 시간에 그리웠던 엄마 아빠랑 얘기도 하고, 친척분들도 뵙구요. 

엄마가 그래도 맛있는거 먹고싶었던것 좀 부지런히 먹고 가라는데, 아내도 없이 혼자 먹으려니 그런 생각도 안 나더라구요. 

 

미국으로 다시 출국하기 전날 자기전에 엄마 아빠한테 편지를 쓰는데 정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새벽이라 배로 감성적이긴 했는데... 제가 그때 편지 쓰며 느낀 감정들이 정말 딱 @복숭아 님글에서 느껴졌던 감정들, 그 글의 댓글에 녹아있던 감정들이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엄마 아빠와 내가 같이 보낼 시간은 이렇게 빨리 가고 있는데, 

나는 그 시간들을 이렇게 멀리 바다 건너 살면서 그냥 손가락 틈으로 흘려보내고 있구나..

지금 두 아이들이 자라는것도 가까이서 보고 싶으실텐데, 흔한 할아버니 할머니들이 느낄 행복도 난 드리지 못하고 있구나..

두분께 무슨 일이 생기면, 난 정말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있어야할 그 시간에 곁에 없을수도 있겠구나..

정말 많은 생각들을 했습니다. 

미국에 직장그만두고 저 따라와서 두 아이 키우고 있는, 지금쯤 독박육아에 시달리고 있을 아내 생각도 나고..

자기네 할머니 할아버지는 왜 이렇게 멀리 사는지 아직 이해가 되질 않는 애들도 생각나고..

 

결국 그렇습니다. 사람들에게 각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가치들이 다 다를텐데요. 정말 마지막에 덜어낼거 다 덜어내도 저희에게 남아있을, 

단 하나의 무조건적인 안식처는 가족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제일 와닿는 사람들은 이렇게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마일모아 가족분들이 아닐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원래 집을 떠나 새로운 집을 바다 건너 마련하셨겠지만, 

언제나 그 막연한 그리움은 남겠지요. 한국이 얼마나 미세먼지로 공기가 안 좋던, 정치사회적인 이슈로 곪고 있든지간에요..

그 곳에 남겨둔 가족걱정과 더불어서요. 저희가 선택한 길에 딸려온 어쩔수 없는 과제같습니다. 

 

한달 전에 할머니 보내드리면서 느꼈던 일련의 감정들을 누구보다 더 잘 공감해주실 분들이 여기 계신것 같아서 써봤는데 마무리가 너무 힘드네요 :)

이런 온라인상 안식처를 제공해주시는 주인장님께 뜬금없는 감사를 드리면서 마쳐야겠습니다..

아.. 오늘 공부 망했네요. 당분간 마모 자제해야겠어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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