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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우리는 이 난리를 얼마나 더 견뎌야 하는가

edta450 | 2020.03.22 21:19:15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Disclaimer: 저는 병원에서 일하지만 임상의사가 아니고, 바이러스학이나 감염병/역학 전공도 아닙니다 (미생물면역학쪽 일을 합니다). 요리로 치자면 중국집 주방장이 이탈리아 음식를 평론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뭐 어차피 요리는 MSG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참조한 몇 가지 자료들이 있는데, 최근의 논문 몇 편(일일이 주석을 달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http://kassenlab.weebly.com/uploads/2/3/7/8/23788971/coronavirus_and_epidemic_spread-11march2020.pdf 와 https://medium.com/@tomaspueyo/coronavirus-the-hammer-and-the-dance-be9337092b56 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적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현대의학은 근거중심의학(EBM:evidence-based medicine)을 근간에 놓고 있습니다. 왜 이 약이 듣는가, 어떻게 듣는가, 이런 것들을 과학적으로 밝혀서 환자를 치료하는데 사용하려고 합니다.  임상시험을 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죠. 

근데 그렇게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전지구를 휩쓸고 있는 지금의 판데믹과 같은 케이스입니다. 이렇게 큰 사이즈의 사건을 실험실에서 재현하거나 임상테스트를 한다는 건 과학적이나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죠. 그래서 다들 잘 아시는 모델을 만들어서 시뮬레이션을 합니다.

 

사실 감염병 모델(SIR)은 간단합니다. 일단 전세계 인구를 병에 걸릴사람(susceptible), 걸린사람(infected), 걸렸다 나은사람(또는 사망한 사람: recovered or retired)으로 놓습니다. 걸렸다 나았는데 또 걸리는 건 (최소한 이번 바이러스가 지나가는 동안은) 없다고 가정합니다 (참고로 이 모델에서 백신은, S 그룹을 바로 R 그룹으로 바꿔버리는 치트키입니다. 반면에 치료제는 아래에서 설명할 R0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지요. 하지만 우리의 케이스는,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는 백신도 치료제도 없이 이 감염병에 맞서야 하는 암울한 상황 (소위 nonpharmaceutical intervention: NPI) 입니다).

 

그리고 나서, 걸린사람이 걸릴사람에게 얼마나 빠르게 병을 옮기는지, 걸린사람이 얼마나 빨리 낫는지를 고려해서, 단위 시간당 환자의 수 증감을 미분방정식의 형태로 만듭니다. 여기에 오만가지 요소들이 개입하죠-사망률이라든가, 잠복기간이라든가, 무증상자의 비율, 무증상자가 감염시킬 수 있는 정도 등등… 근데 이 모든 값을 뭉뚱그린 개념으로 가장 간단하게 쓸 수 있는 값이 바로 감염지수(R0)입니다. 개념적으로 보자면, ‘한 사람의 걸린사람이 걸렸다 나은 사람이 되기 전에 몇명의 걸릴사람을 감염시키는가’ 하는 값이죠. 이 R0가 1보다 크면 거시적으로 볼 때 순감염자의 숫자는 늘어나고, 작으면 줄어듭니다. 그래서 사실 전체 인구의 70%가 감염되어야 판데믹이 종식된다는 식의 얘기는, ‘그럴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R0가 1보다 낮아지면, 환자 한 명이 낫기 전까지 미처 한 명을 감염시키지 못하는 것이기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모든 인구를 감염시키기 전에 마지막 감염자가 낫게 될 수도 있죠. 이 결과는 초기조건에 의해서 아주 크게 좌우되는데, 문제는 중국에서 폭탄을 엄청나게 크게 키워서 전세계로 돌렸습니다(...)

 

한가지 아주 중요한 건, 이 감염지수가 상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게 왜 상수가 아니냐 하면… 같은 바이러스라도 모든 감염자들은 전부 다른 행동패턴을 보입니다. 단순히 더 아프냐 덜 아프냐의 차이도 있지만, 이 사람이 감염을 일으키는 행동을 얼마나 했느냐도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죠. 31번 환자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증상 발현하자마자 자가격리하고 확진까지 밀접접촉자 0명을 찍은 모범적인 케이스도 있듯이요. 즉 감염자들마다 개개의 R0를 갖는 셈이고, 대책을 마련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감염자들의 행동을 제어해서 R0의 전체평균을 ‘떨어뜨리고 유지하느냐’ 하는 싸움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R0를 떨어뜨릴 수 있을까요? 지금 각국 정부들이 하고 있는 모든 대책들이 R0를 떨어뜨리려는 시도입니다. 감염자 개개인에 대한 격리조치는 물론이고, 다중에 대한 여행제한, 지역통제, 학교폐쇄부터 시작해서, 개인방역(손씻기, 그리고 효용에 대한 불확실성은 아직 좀 있는 것 같지만 마스크 착용) 같은 것들이죠. 극단적인 가정을 해 볼까요? 지금 이순간부터 우리 모두가 먹을걸 싸들고 마일모아 접속되는 독방에 들어가서 3주간 지낸다고 해 보죠. 그러면 걸린사람-걸릴사람간 접촉이 0이기때문에, R0는 0이 됩니다. 더이상의 감염이 없는 상황이라면, 바이러스가 활동하는 한 사이클(격리 직전에 감염됨-감염이 끝남)만 지나면 감염증은 종식되게 됩니다.

 

…근데 아시다시피 이건 불가능합니다. 다른 것 없이 ‘빡세게 이삼 주 자가격리하면 괜찮지 않을까?’ 에 대한 일차적인 답은 No인 이유가, 아직도 플로리다 비치에서 춤추는 아이들이 있어서 R0가 그렇게 효과적으로 떨어지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 SARS-CoV2의 R0 추정치는 대충 2.5정도가 됩니다 (참고로 COVID-19은 병명입니다. 이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SARS-CoV2이고요. AIDS와 HIV의 관계같은거죠). 이걸 Stay-in-shelter를 하더라도, raw R0가 순식간에 절반 이하로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많이 봐줘서 1이 된다고 한다면, stay-in-shelter하는 동안에 순감염자 수는 더이상 늘어나지는 않지만,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stay-in-shelter가 끝나면, R0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고, outbreak은 반복됩니다. 언제까지? R0를 1 이하로 만들 수 없다면, 전 인구의 거의 다가 걸릴 때까지..

 

(물론, 셧다운을 통해서 추가 감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걸 줄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소위 flatten the curve-병원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고, 중증환자들이 치료를 받아서 죽지 않을 기회를 마련해주기 때문이죠. 지금 이탈리아에서 일어나는 상황-병상과 의료진이 없어서 생존희망이 없는 환자들을 포기해야하는-을 떠올려보시면 됩니다)

 

근데 그렇게 느릿느릿, (전 인구가 감염될때까지) 몇 달이고 1년이고 하는 시간을 집에서만 보낸다면... 이쯤 되면 '지구에게는 인류가 코로나바이러스고 코로나바이러스가 비누'라는 농담이 그렇게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우린 그냥 망한걸까요? 다행히 상황이 마냥 절망적이지만은 않다는게 현실적으로 나타납니다. 몇몇 나라들이 확산을 그럭저럭 억제하고 있죠. 특히나 바로 아래의 차트를 보면, 수천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국가 중에 한국의 케이스는 상당히 주목할만 합니다. 과학자가 모델이 틀렸다고 좋아하는 건 흔치 않은데, 그럼 저 위에서 뭘 빼먹었을까요?

 

covid19confirmed.png

R0를 줄이는 방법에 여러가지가 있다고 했지만, 확진자를 밝혀내고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들을 테스트하는 소위 ‘contact tracing’이 중요한 정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감염자가 증상을 발현하는 순간 테스트를 하고, 격리를 시키고, 거기다가 감염자가 되면 밀접접촉한 사람들까지 테스트를 하고 양성으로 나오면 격리를 시킵니다. 이렇게 되면, 앞에서 말한 여러 상수들 중에서, 걸린사람이 나을 때까지 감염시키는 걸릴사람의 수, 그리고 무증상 감염자가 감염을 퍼트릴 확률을 효과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contact tracing도 아주 높은 수준으로 관리가 되지 않으면 별무소용이라는건데.. 대충 R0=2.5정도의 현재 케이스라면, 80-90%의 밀접접촉자를 관리/격리할 수 있어야 R0값을 1 이하로 줄일 수 있는 걸로 다른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네, 한국에서 미친듯한 검사수와 식겁할 수준의 동선추적으로 커버하고 있는 바로 그겁니다. 그 덕분에 한국은 전면적인 이동제한을 걸지 않고 학교만 닫는 수준에서 통제를 하고 있죠).

 

현재 비교적 성공적으로 감염을 컨트롤하고 있는 나라들-싱가폴,대만,한국-에서도, 앞으로도 감염자는 계속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자국내 신규케이스 0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나 한국은 신천지로 인해서 수천 케이스가 발생했고, 거기에서 파급된 감염의 위험성이 상존합니다. 그래도 지금처럼 100%에 가까운 contact tracing을 할 수 있으면, 느린 속도로 신규확진자가 감소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앞으로 2주간 신규 케이스가 유의미하게 떨어져서, 학교들이 개학하고 R0가 올라가더라도 방역역량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수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럼 미국은요? 안타깝게도 미국은 훨씬 암울한데(…) 일차적으로는 아직도 검사캐파가 안 나오기때문에 R0를 contact tracing으로 줄일 수가 없습니다. 다른 분들이 쓰신 것처럼 이런 상황에서는 확진 여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고, 제한된 캐파를 중증환자와 의료진들이 감염되지 않는지에만 모니터링 하기에도 바쁠겁니다. 일단은 폭발적인 증가세를 막기 위해서라도 전체 population에 대해서 lockdown을 할 수밖에 없고요. stay-in-shelter를 하면서 동시에 전쟁하듯 물량을 급격히 확보해서 감염자를 걸러내야하는데.. 문제는 개인정보보호법때문에 contact tracing 자체가 쉽지 않을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이 MERS때 호되게 당하고 감염병관리법을 만든건 정말 국가차원의 예방접종이었습니다). 차선으로 고위험군을 전수방어하고, 대규모 지역감염을 통제하는 수준에서 치명률을 관리하고, R0를 조금이라도 떨어뜨리는 치료제가 수 주 내로 발견되기를(지금은 신약을 새로 만들고 이런거 아니고, 지금까지 쓰던 항바이러스/항생제들을 미친듯이 돌려서 조금이라도 듣는 조합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대할 수밖에 없을겁니다. 그게 안 되면 백신인데,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 만들기 힘들기도 하거니와, 아무리 잘 돼도 일러야 올해 말은 돼야 투여가 가능한 상황이 되겠죠. 

 

마지막으로, 우리가 지금 전혀 알고있지 못한 한 가지 정보는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는)이 바이러스의 무증상 감염성에서 오는데, 바로 ‘과연 현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벌써 감염이 되었다가 나은 상태인가’하는 겁니다. 이걸 알아내기 위해서 필요한 테스트가 바로 항체 테스트죠 (잠깐 논란이 되었지만, 항체 테스트는 감염 여부를 알아내는데에는 별 쓸모가 없습니다. 바이러스가 감염되고 한참 있어야 항체가 생기고, 감염이 끝난 뒤에도 계속 남아있으니까요). 충분한 숫자의 걸렸다 나은사람을 확보할 수 있으면, 이 사람들을 적극적인 방역업무에 투입할 수도 있고, passive immunization(걸렸다 나은 사람의 혈액에서 항체를 추출해서 중증환자에게 투여하는 방식)을 고려해 볼 수도 있습니다. 감염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면 도리어 쓸모가 많아지는, 아이러니한 전략이기도 하지요...

 

...어설픈 분석은 이쯤 하고, 지금도 불철주야 현장에서 헌신하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이것이 모두 끝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저기에 치료가 필요한 아픈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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