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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오랜만에 잡은 손은 따뜻했네요.

참울타리 | 2020.03.29 16:56:44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댓글 남겨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일기장에 쓸 법한 이야기들이라 쓸까 말까 고민했었아뇨. 마스크도 나눔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고마운 마모 식구분들께 제가 그 나눔 받은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진료하는지 가끔 올리는 것이 고마움을 표현하는 게 아닐까 싶어 끄적여 보았습니다. 일일히 댓글에 삼사인사 올리면 글이 계속 앞에 나와있을까봐 작은 업데이트로 감사의 인사를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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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은 코비드 사태로 하루 하루 전시를 방불케 할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가지만 병원의 병상은 코비드 환자만으로 채워져 있는게 아닙니다. 거의 모든 병원들이 감염 방지를 위해 방문자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가운데, 요즘 회진 때는 환자 방문도 해야 하고 보호자들에게 전화해서 업데이트 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입니다.

 

 육십대말 난소암이 복강에 크게 퍼져서 장폐색을 일으킨 할머니가 입원했어요. 치료를 위해 과거에 다수의 수술과 항암요법을 받으신 분인데. 종양 내과의사가 이제 더 이상 쓸 약이 없다고 환자분한테 이야기 했고 환자는 흔히 이야기 하는 콧줄을 달고 콧줄에 석션을 달아 장에 고여있는 체액을 배택하는 치료를 하고 있었어요. 환자분은 호스피스 의사와 이미 이야기를 마쳤고 자신의 죽음을 수용하고 자택으로 가서 홈호스피스 치료를 받으면서 마지막 나날을 보내기로 결정된 상황이었어요.

 

  "닥터. Xxx, 병원 오기 전에 토할 거 같은 게 너무 힘들어서 그랬는데 이 콧줄이 많이 도움이 되네요. 콧줄을 달고 퇴원하는 법이 있을까요?"

 

 "보통 호스피스 때는 정말 필요한 라인이 아니고는 모두 제거하는 것이 원칙인데 제가 호스피스 회사에 한 번 알아볼께요."

 

 보통 콧줄은 그 자체가 정말 괴로운 기억이라 환자들이 많이 뽑아버리기도 합니다. 콧구멍에서 위나 십이지장까지 연결된 긴 줄인데. 장폐색이 일으키는 통증이나 오심감이 워낙 심해서 환자분은 그걸 가지고 퇴원하고 싶어하시는 것이었어요. 콧줄 라인 유지만이 필요한게 아니고 그걸 석션기에다가 달아서 계속 체액을 배액해야 하는데 그게 집에서 홈호스피스 회사가 해 줄 수 있을지를 알아보겠다고 약속한 거예요. 병원 사회복지사와 이야기 하고 호스피스 회사가 콧줄 관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 듣고 그 날 저녁에 퇴원 결정이 내려졌어요. 오후에 환자분이 오늘은 집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사회복지사 통해서 연락이 왔네요. 입퇴원은 전적으로 의사 책임이기 때문에 입장이 곤란한 사회 복지사는 제게 연락을 하게 된 거였어요.

 

 "환자분께서 최종 결정을 하셨지만 오늘은 환자분께서 마음의 준비가 완전히 안 된 것 같이 보이네요. 호스피스 결정하시고 가시는 분인데 아무리 코비드로 난리지만 시간을 좀 더 드리고 싶네요. 오늘 환자분 퇴원시키지 않아도 돼요."

 

 다음날 그분은 좀더 맘의 안정을 찾으시고 제가 다음 날 회진 때 환자를 방문합니다.

 

 "I just want to check on you if there is anything else I can do before I send you home today."

 

 왜 어제 퇴원하지 않았는지 어쨌는지 그런 질문은 필요 없습니다. 가족 관계가 정말 나쁘지 않은 이상 보통은 병상을 지키는 가족들이 한 둘은 꼭 보이는 가족들이 꼭 보이는데 코비드 비상 사태 때문에 아무도 병상을 지켜주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쓸쓸해 보입니다. 할머니가 활짝 웃으시며 오늘은 좀더 낫다고 고맙다고 하십니다.

 

 저는 회진 돌 때 왠만하면 환자들과 악수하고는 했는데 코비드 사태 이후로는 악수가 환자 쪽에서도 의사쪽에서도 꺼리게 된 행위가 된지 꽤 되었습니다. 호스피스로 퇴원하신다니 이제 이 할머니를 다신 볼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지병이 많거나 약을 제대로 드시지 않는 분들은 자주 병원에 입원하시기 때문에 어떤 분들은 또 하나의 가족마냥 익숙해 보이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호스피스 환자의 경우 다시 병원에 재입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할머니 잘 지내세요... 마스크 뒤의 얼굴 표정이 할머니에게 잘 전달되었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할머니 또한 오른 손으로 제 오른 손을 쥐어주십니다. 오랜만에 잡은 다른 사람의 사람 손은 참 따뜻했습니다. 코비드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중요하고 저는 할머니 방을 나서며 감염관리를 위해 알코올로 열심히 손을 닦아내야 하겠지만. 아직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부드러운 할머니 손길을 통해 그 분의 마음이 제게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참 이게 제가 그리워하는 소소한 행복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 다시 손을 맞잡고 타인의 체온을 느끼는 일이 또다른 일상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오랜만에 잡은 손은 참 따뜻했고 제 마음까지 따뜻해 지는 경험이었네요. 할머니가 보내실 삶의 마지막 나날들에서 이름도 기억 못할 동양인 의사와의 악수가 할머니 마음 속에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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