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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이직 준비하다 계속 다니게 된 이야기

된장찌개 | 2020.07.12 17:39:20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무척 개인적인 잡담입니다.

 

최근 몇 년간 현재의 회사에서 무척 스트레스 받으며 일해오다 이직 준비해왔던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내 의사에 무관하게 시키는대로 하라는 조직 문화, no라고 말하는 순간 찍히고 어느 순간 내 자리를 파고드는 다른 새 팀원들. 미국인데 옛 한국이나 중국식 수직적 복종 문화가 이 팀에 있었습니다. 사내에서는 팀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는 곳이고 적어도 Layoff에서는 안전했으니까요.

이름은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볼만한 텔레콤 관련 회사 중 하나입니다. 이전에는 제 업무가 R&D성격이 강했는데요 R&D가 (싸고 말 많은) 중국으로 넘어가면서(중국팀이 못한 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머리좋고 뛰어난 실력자들 굉장히 많습니다) 팀 성격이 product delivery 로 바뀌면서 어느 순간 단순 업무 중심으로 바뀌더군요. 실무에서 점점 손 떼게 되는 구조.

 

버티면서 여기저기 이직도 준비하고 면접도 떨어져 봤지만 결국 내가 제일 잘할 수 있고 압도적인 설명이 가능해야만 이직이 가능하겠더군요.

(확실히 인맥이 있다면 그 부담이 적어지긴 하는 것 같습니다)

자격증도 따고 실무도 놓치지 않으려 해왔지만 그 체력가지고 가정에 충실하려니 매일 새벽까지 공부하다 잠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올 초에 드디어 숨이 막힐정도로 답답하고 죽을 것만 같아서 드디어 다시 본격적으로 잡서치 및 지원을 또 합니다. 거의 분기마다 반복됐습니다.

결국 거의 동시에 한 군데는 Internal Job market 그리고 나머지는 다른 (경쟁)회사로 지원했더랬죠.

운 좋게도 내부 잡 마켓에서 좋은 결과를 받았는데(상황인지라 연봉 빼고 다 원하는대로 해줬습니다), 타사 지원은 코로나 터지면서 7월초까지 연락이 없다가 지난 주에 갑자기 화상 면접을 보자고 합니다. 처음부터 NDA에 희망 연봉도 쓰라고 하면서 말이예요.

 

일부러 20%를 올려서 넣어봤는데 반응이 그래도 옵니다. HR도 3명이나 붙어서 공을 들이는게 보입니다. 현재 4차까지 면접을 마치고 최종(으로 판단되는) 하이어링 매니저와의 5차 면접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말인데요, 면접을 하다가 끝나기 전에 살짝 던져보는 질문에 이상하게 덥석 물면서 친절하게 설명해줍니다. 이전 팀과 똑같은 상황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게 싫어서 이직하려했는데 같은 이야기를 듣다니. 소름이 확 끼치더군요. JD과 실제 업무가 차이가 있었구요.

 

결국 P2에게 상의를 요청하고 답을 구했습니다.

P1: 나 투잡 뛸까? 지금 회사에서 다니면서도 돈을 더 벌 수도 있는데.

P2 曰, 그럴거면 그 시간에 회사 옮겨서 일 더해서 돈 더 벌어야지. 왜 투잡이야? 그리고, 만약 지금보다 연봉을 계획보다 40% 더 올려줘도 진짜로 갈꺼야? 아니잖아. 돈 좀 적게 받아도 맘 편하게 다니고 싶잖아. 그렇게 몇년을 다닐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전에 그 회사 한국서 다녀봐서 알잖아. 또 지옥으로 들어가려고?

 

라고 얘기해주더군요. 돈을 더 받아도 제 정신적/육체적 건강과 가족을 생각하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제 몸도 이미 나이가 들어 하나 둘씩 고장나고 있다는것도 큰 요소이긴 하네요. 

 

지금 다른 팀에 들어온 상황에서 받았던 오퍼로 간다고 담당 HR들에게 이메일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평생 적당히 벌고 아껴 쓰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삼아온 모토 중의 하나가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누구랑 일을 같이 하느냐가 더 크다". 나를 인정하고 믿어주는 곳이라면 내가 더 성장하고 품위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사실 타사는 한국서의 제 인생 첫 직장이기도 했지만 특유의 업무와 문화가 안 맞아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돌아가는 것도 우습네요.

이메일 보내고 와인 따서 P2랑 주말이 있는 삶으로 다시 돌아가려 합니다.

주저리주저리 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다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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