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개인적인 잡담입니다.
최근 몇 년간 현재의 회사에서 무척 스트레스 받으며 일해오다 이직 준비해왔던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내 의사에 무관하게 시키는대로 하라는 조직 문화, no라고 말하는 순간 찍히고 어느 순간 내 자리를 파고드는 다른 새 팀원들. 미국인데 옛 한국이나 중국식 수직적 복종 문화가 이 팀에 있었습니다. 사내에서는 팀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는 곳이고 적어도 Layoff에서는 안전했으니까요.
이름은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볼만한 텔레콤 관련 회사 중 하나입니다. 이전에는 제 업무가 R&D성격이 강했는데요 R&D가 (싸고 말 많은) 중국으로 넘어가면서(중국팀이 못한 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머리좋고 뛰어난 실력자들 굉장히 많습니다) 팀 성격이 product delivery 로 바뀌면서 어느 순간 단순 업무 중심으로 바뀌더군요. 실무에서 점점 손 떼게 되는 구조.
버티면서 여기저기 이직도 준비하고 면접도 떨어져 봤지만 결국 내가 제일 잘할 수 있고 압도적인 설명이 가능해야만 이직이 가능하겠더군요.
(확실히 인맥이 있다면 그 부담이 적어지긴 하는 것 같습니다)
자격증도 따고 실무도 놓치지 않으려 해왔지만 그 체력가지고 가정에 충실하려니 매일 새벽까지 공부하다 잠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올 초에 드디어 숨이 막힐정도로 답답하고 죽을 것만 같아서 드디어 다시 본격적으로 잡서치 및 지원을 또 합니다. 거의 분기마다 반복됐습니다.
결국 거의 동시에 한 군데는 Internal Job market 그리고 나머지는 다른 (경쟁)회사로 지원했더랬죠.
운 좋게도 내부 잡 마켓에서 좋은 결과를 받았는데(상황인지라 연봉 빼고 다 원하는대로 해줬습니다), 타사 지원은 코로나 터지면서 7월초까지 연락이 없다가 지난 주에 갑자기 화상 면접을 보자고 합니다. 처음부터 NDA에 희망 연봉도 쓰라고 하면서 말이예요.
일부러 20%를 올려서 넣어봤는데 반응이 그래도 옵니다. HR도 3명이나 붙어서 공을 들이는게 보입니다. 현재 4차까지 면접을 마치고 최종(으로 판단되는) 하이어링 매니저와의 5차 면접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말인데요, 면접을 하다가 끝나기 전에 살짝 던져보는 질문에 이상하게 덥석 물면서 친절하게 설명해줍니다. 이전 팀과 똑같은 상황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게 싫어서 이직하려했는데 같은 이야기를 듣다니. 소름이 확 끼치더군요. JD과 실제 업무가 차이가 있었구요.
결국 P2에게 상의를 요청하고 답을 구했습니다.
P1: 나 투잡 뛸까? 지금 회사에서 다니면서도 돈을 더 벌 수도 있는데.
P2 曰, 그럴거면 그 시간에 회사 옮겨서 일 더해서 돈 더 벌어야지. 왜 투잡이야? 그리고, 만약 지금보다 연봉을 계획보다 40% 더 올려줘도 진짜로 갈꺼야? 아니잖아. 돈 좀 적게 받아도 맘 편하게 다니고 싶잖아. 그렇게 몇년을 다닐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전에 그 회사 한국서 다녀봐서 알잖아. 또 지옥으로 들어가려고?
라고 얘기해주더군요. 돈을 더 받아도 제 정신적/육체적 건강과 가족을 생각하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제 몸도 이미 나이가 들어 하나 둘씩 고장나고 있다는것도 큰 요소이긴 하네요.
지금 다른 팀에 들어온 상황에서 받았던 오퍼로 간다고 담당 HR들에게 이메일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평생 적당히 벌고 아껴 쓰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삼아온 모토 중의 하나가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누구랑 일을 같이 하느냐가 더 크다". 나를 인정하고 믿어주는 곳이라면 내가 더 성장하고 품위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사실 타사는 한국서의 제 인생 첫 직장이기도 했지만 특유의 업무와 문화가 안 맞아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돌아가는 것도 우습네요.
이메일 보내고 와인 따서 P2랑 주말이 있는 삶으로 다시 돌아가려 합니다.
주저리주저리 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다시 행복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더 도전해서 연봉 올리는걸 추천하겠지만, 건강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겠죠. (제가 항상 말하듯이 건강은 은퇴준비의 0순위..)
타사 오퍼는 최대한 부드럽게 잘 정리하셔서 미래에 혹시 좋은 기회 생기면 다시 consider해줄 수 있도록 잘 마무리하실 수 있으면 더 할 나위 없겠네요.
감사합니다. 건강이 받쳐줘야 다음도 있는 것 같아요. 가능하면 다음을 기약하는 메시지를 담아 미안한 이메일을 보냈어요.
공감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가끔 돈보다도 맘편히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드네요.. 그런데 말씀하신 한국계 회사는 삼성일까요? ㅎㅎ (또 지옥으로 들어간다니...)
제 상황을 보면 건강이 우선인 것 같아요. 타고난 건강도 길러진 체력도 워낙 좋지 않아서 가늘고 길게 가는게 저만의 방향으로 보이더라구요.
아 그리고 회사의 정체에 대해 부정(?)은 하지 않을께요 =) 촉이 .... ㄷㄷㄷ
저도 지금 하는일 재미있게 하고 몸도 그전에 오피스에서 컴퓨터 많이하고 출장 많이다닌던 job보다 좋은데... 가끔 뜬금없이 리쿠르터들이 연락와서 20% 이상 오른 연봉으로 꼬실때 마다 마음이 심난한것은 고백하는 사실입니다.
괜히 가족 핑계 되면서 그때마다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 연봉이 그냥 주는것도 아니고 일도 책임도 그만큼 크다는것도 아는지라...
전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는데 소용돌이에 빠져들기 싫은 나름의 소심함(?)이 조금은 아쉽지만... 아직까지는 이생활을 즐기고 싶어요.
직장인인지라 마음속에는 늘 사직서와 업데이트된 레주메를 들고 사는 인생이지만... 상황이 주언진것 안에서 가족과 직장생활 발란스 유지하면서(아니 줄타기 하면서) 살아갑니다.
네 저도 워라밸이 중요해서 연봉이 어른만큼 일과 책임도 커진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요. 희비가 롤러코스터 타듯만 하지ㅡ읺았으먄 좋겠어요
살짝 알아보셨듯이 정말 원하시면 어디든 가실수 있을거에요. 직장인의 입장에서 '적당한 연봉 + 마음의 평화 + 건강 + 가족의 행복' 이런 밸런스를 찾는 일이 쉽지 않은데, 된장찌개님의 선택이 옳은선택이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직장 옮기는 입장에서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데 좋은 글 나눔 감사합니다
이직이란 결정도 운세의 흐름에서 잘못될수도 있는 길이기도 하고 잘될수도 있는 길인데 후회만 하지 않으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어차피 사람은 그 시점에서 최선의 선택을 모두들 하기 때문에 나중에 일이 틀어질 경우 후회를 하냐 마냐인데 후회만 하지 않는다면 어느 쪽을 택하든 최선의 선택이었으니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저 역시 부모님 용돈 따박따박 받으면서 학교다닐때는 몰랐는데, 사회생활하면서 보니 을 중의 을인 저 자신을 발견하고 이직 또는 다시 학교 갈까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데 현실적인 내용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곡을 찔러주셨어요. 고민을 어떻게 할지 한참 고민했는데 이 또한 큰 부담이 되더라구요. 나의 결정에 후회가 없으니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확실히3 님도 저도 현실적인 고민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평범한(?) 존재인가 봅니다 =)
행복하시다니 됐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뭔가 정리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요.
그나저나 워라밸이 중요하다곤 해 놓고 정작 @요리대장 님처럼 음식을 잘 하고 싶은데 p2의 요리 기준에 전혀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누구랑 일을 같이 하느냐가 더 크다". 나를 인정하고 믿어주는 곳이라면 내가 더 성장하고 품위있는 삶을 살 수 있다 - 이게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연봉 더 주는 직장으로 옮겨야 하나 분기마다 고민하는데 매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믿어주고 마음 편하게 해주니 이만한 곳은 없겠다 생각하네요ㅋ
맞아요. 아무래도 신뢰와 좋은 팀웍이 중요한 버팀목이 아닌가 싶어요.
한국에서 군대 가기전에 복학생 선배가 해준 말이 생각 나네요.
"최전방 GOP 가더라도 고참이 좋으면 천국이고, 최후방 부산에 배치가 되더라도 고참이 뭣같으면 지옥이야.."
맞습니다. 경험에 의한 이런 방향은 제 인생관에도 크게 영향을 주게 되었구요. 돈보다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생각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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