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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사랑한다면 만나지 마세요. (코비드)

참울타리 | 2020.12.15 02:05:43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오늘 스크럽 입고 재채기마트 갔다가 백인 아저씨가 마스크를 주머니에 넣구선 과일을 고르는 모습을 보았어요. 마스크 쓰라고 권유했다가 봉변 당하는 세상이지만 그 아저씨가 마스크를 가지고 있으면서 쓰지 않는 건 동양인 마켓에 대한 비하와 조롱까지 느껴지는 행동이어서 불편했어요. 그 아저씨의 모습과 호흡기를 달고 고생하는 환자 모습이 오버랩 되어 뭐라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더라구요.

 

나 : Sir, would you please put your mask on? It’s in your pocket.

아저씨 : I have decided not to put my mask on because of secondary reasons.

나 : may I ask why you have secondary reasons not to use it?

아저씨 : Concern of fungal infection.

 

 이 대목에서 뚜껑 열리더라구요. 진균 감염이 걱정될 정도의 면역 수준이면 오히려 마스크를 끼셔야지 어디서 거짓말이라고...

 

나 : I’m a medical doctor. what you talk is such a B.S. 

아저씨 : you and I may have different ideas.

 

 하면서 뒷걸음질치며 사라지시네요. 마스크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간 봐가면서 마스크를 쓰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라고 느꼈어요. 친구들한테 이야기 했더니 총 맞을 일 있냐고 걱정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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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가 되면 낙엽이 지고 색이 바랜 나뭇잎은 중력을 이기지 못해 떨어져 나가고 봄에 다가올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는 하나의 의식처럼, 자연의 대원칙 아래 한세대는 나이 들면 쇠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점차 스러져 갑니다.

 

 오늘은 90세 할머니가 손녀에게서 코비드를 옮아서 병원에 온 케이스를 봅니다. 할머니가 아직까지는 심한 증상을 보이진 않는데... 할머니가 걸어다니시니 산소 부족 현상이 심하게 나타나는 것이 보입니다.

 

할머니 : 최근에 손녀가 다녀갔다가 확진되었는데 거기서 옮겼는지 모르겠어...

나 : 할머니, 아마도 그런 거 같아요. 할머니 지금 코비드 병증으로 보았을 때 심하진 않은데 혹, 나중에 심해져서 기관삽관이 필요하면 하시겠어요? 쭉... 기관삽관에 대해 설명해 드림.

할머니 : 필요하면 해야지...

나 : (제대로 이해 못 하신 거 같은데... 일단은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머니 : 나 이제 90세야. 이제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어...

 

 자연이 할머니를 부르실 때가 된 것인지 아직 아닌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른 70대 멕시칸 환자,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고생하다 자리 잡으신 거 같은 아저씨입니다. 심한 호흡 부전으로 분당 80회 호흡을 하도록 상황이 안 좋아졌습니다.

 

나 : 아저씨, 상황이 너무 안 좋아요. 지금 상황은 기관 삽관해야 할 거 같아요. 이 가쁜 호흡을 아저씨 몸이 못 따라가요. (스패니시 인터프러터가 열심히 설명해 주심.)

아저씨 : (뭐라 말은 못하고 모든 게 좋다는 의미에서 엄지를 치켜세우심)

나 : 아저씨, 아저씨가 어떻게 치료를 받고 싶은지 저는 확인하고 아저씨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고 싶어요.

 

 대부분의 환자는 이 단계에서 얼굴에 밀착하는 양압기를 달고 있고 숨이 엄청 가쁘기 때문에 정상적인 대화가 힘듭니다. 힘들게 와이프 전화번호를 구해 전화합니다. 누구도 이야기 하지 않은 이야기고 힘들지만 직접적으로 이야기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나 : I'm so sorry but am afraid to say that he is not going to make it.

 

 순간 수화기 너머에서 와이프의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회한이 담긴 울음입니다. 차라리 저한테 이 나쁜 예후를 원망하는 나쁜 소리를 했으면 덜 불편하겠다 생각이 듭니다. 잠시의 울음 뒤 멕시칸 간호사의 통역은... 선생님은 영웅이고 감사하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이게 뭐라고 정말 이 질환은 사회에서 경제적 사회적 육체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을 이렇게 희생시켜 갑니다. 딸래미들과 이야기 해서 결정하겠답니다. 그러라고 말씀드리고... 다른 환자를 돌보러 갑니다. 결국 기관삽관 후 proning position (급성 호흡 부전 치료를 위해 엎드린 자세로 유지하는 것)을 하고 있는 환자분을 오늘 유리창 넘어로 바라봅니다.

 

 가족들의 고통, 그것을 결정하기까지 그 마음은 이해합니다. 다만... 환자분의 겪으셔야 할 아픔과 고통은 의사로서 감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친한 중환자실 간호사가 있어... 창문을 바라보다 이야기 합니다.

 

나 : 정말 고통스럽네... 편안하게 가셨으면...

간호사 : 코비드 환자 때문에 이 병동이 연 이래로 (두 달 전) 내가 본 살아남은 케이스들을 딱 두 껀이야. 두 껀 다 LTAC (장기 재활이 필요한 사람이 가는 병원)으로 갔어...

 

 추수감사절을 맞이 해서 반가운 마음에 손녀는 할머니를 찾아뵈었을 것이고 그 댓가로 할머니는 마지막일지 모르는 잔인한 겨울을 보내게 되었네요. 매일매일 죽어나가는 사람을 보는게. 아무리 죽음을 가까이서 보는 의료진이라고 할지라도 몹시나 정신적으로 지치게 되는 2020년 겨울입니다.

 

 "사랑한다면 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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