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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할머니의 마지막 인사.

참울타리 | 2022.01.21 19:01:12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86세 할머니셨습니다. 제가 삼일 전부터 돌보기 시작한...

 

자기 관리 잘 하시고 액티브한 생활 습관으로 몸무게도 정상 몸무게를 유지하시고 덕분에 별 지병 없이 건강하게 생활하시는 분이셨습니다.

 

할머니가 갑자기 진행된 황달로 병원 입원하셨습니다. 시티 검사 결과 암으로 의심되는 종양이 확인이 되고 조직검사로 췌장암이 의심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우선 진행되는 황달을 막기 위해 담관에 스텐트 삽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담즙 배설을 위해 배액관 삽입을 했으나 그마저나 담즙 배액이 잘 되지 않습니다.

 

 할머니는 더더욱 노래져 가고... 소모성 질환인 암은 할머니 단백질 수치를 떨어뜨려 여러 군데 붓기가 진행됩니다.

 

 수술적 치료를 고려하기 위해 일반 외과 컨설트를 진행합니다. Whipple 이라는 큰 수술이 옵션으로 나왔는데 이 수술은 췌장/담관/담낭/위의 일부를 절제하는 아주 큰 수술입니다. 

 

 오미크론으로 면회가 제한된 코비드 시대에 60대의 아들과 80대의 노모는 전화로 앞으로 어떻게 치료를 할지 이야기합니다.

 

아들 : "어머니, 제가 그 수술에 대해서 좀 리서치를 해 봤는데... 엄청 큰 수술이고 경험 많은 센터에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더군요. 수술한다고 해도 전체적 예후는 좋지 않고요."

환자 :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아들 : "저는 어머니 하고 싶은 대로 지지할꺼예요."

환자 : "수술해도 전체적으로 예후에 크게 차도가 없다면 나는 별로 수술하고 싶지 않구나..."

 

 할머니의 얼굴에서 의연함을 느낍니다. 삶에 대한 애착은 누구한테나 있을텐데... 가야 할 때를 알고 결정하는 모습에서 존경심까지 느껴집니다.

 

 호스피스 미팅을 진행합니다. 환자 분 아들/ 딸이 궁금한 것을 묻습니다. 가족들의 관심사는 집으로 호스피스를 갔을 때 더 잘 고정할 수 있는 프로시져를 할 수 있는지입니다. Interventional radiologist와 이야기 합니다. 전에도 두 번 시도했고 별 효과가 없었는데. 다시 한 번 해 보겠다고 합니다.

 

나 : "할머니, 가족분들이 배액관 고정하는 걸 원하시는데 하시겠어요? 전체적인 예후에는 영향이 없지만, 배액관이 빠질 우려가 있어서요."

 

 할머니 다시 한 번 배액관 고정 시술을 받으러 가십니다. 하지만 역시 다소 큰 암덩어리 때문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할머니 회진을 위해 할머니를 찾아갑니다. 어제 시술이 성공적이지 못한 게 아쉽다는 마음을 전하고 맘이 어떠신지 물어봅니다. 할머니 울컥하시면서 제 손을 잡으십니다.

 

나 : "할머니, 어제 제가 아드님/따님 처음 뵈었는데 할머니를 참 아끼는 마음이 전해지는 것을 보니 정말 자녀분들을 잘 키우셨네요. 할머니 86세시잖아요. 하나님께서 어느 분들은 좀더 일찍 부르고 어느 분들은 조금 더 늦게 부르고 하는데... 제가 감히 할머니 삶을 이야기 하자면, 할머니는 정말 아름다운 삶을 사신 거 같아요. 제가 할머니 나이 정도 되어서 갈 때가 되었을 때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환자 : "맞아요, 나는 길고 행복한 삶을 살았어요. 그래도 막상 죽음이 다가온다니까 무섭네요."

나 : "무섭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지요. 신이 우리가 태어날 때 미리 일러주시지 않듯 우리도 또 언제 갈지 모르잖아요. 저는 할머니가 마지막 순간까지 너무 고생하시지 않으셨으면 해요."

 

 할머니의 가느다란 손길에서 따스함이 전해집니다. 마스크를 쓰고 face shield까지 했지만 가까이서 할머니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합니다. 

 

환자 : "정말 고마워요. 사랑합니다."

나 : "네, 저도 고마워요."

 

할머니 손을 놓고 방을 나오며 가슴에서부터 울컥하는 감정을 다스려 봅니다. 누가 보지 않을까 걱정하며 눈가에 젖은 물기를 닦아냅니다. 오늘도 마지막 인사를 이렇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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