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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미술감상(2/7), 아는 만큼'만' 보일 수도

오하이오 | 2022.04.28 19:38:10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레스터(Paul Martin Lester)의 `비주얼커뮤니케이션`을 보면 헉슬리(Aldous Huxley)는 "많이 알수록 많이 보게 된다(The more you know, the more you see.)"고 했다고 합니다. 헉슬리의 이 말은 1942년 쓴 책 `보는 기술(The art of seeing)`에 나왔다고 하니 이후 우리는(아마도 유홍준 교수께서 처음으로) `아는 만큼 보인다`로 쓰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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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그러셨듯이 저 역시 부연 없이 바로 공감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 말을 부정하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도 없이 지금은 일상을 지배하는 명제가 된 듯합니다. 그래서 부작용도 생긴 것 같습니다. 특히나 미술을 보고 즐기고자 하는 경우에요. 안다는 것, 지식이라는 것은 미술을 보고자 할 때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미술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이야기 같아 신영복 교수의 책 `처음처럼`에 있는 두 이야기를 옮깁니다.

 

  노인 독서   

글을 잘 모르는 노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공장 출역이 없는 일요일은 하루종일 감방에서 지내야 되요. 특히 그 노인은 지겨워 죽을 지경이었나 봐요. 일단 책을 하나 잡았어요. 아침부터 시작해서 읽다가, 한잠 주무시다가, 점심 먹고 또 읽다가 주무시다 가를 반복하였어요. 책표지도 떨어져나간 낡은 '현대문학'이었어요. 

그 현대문학의 수필 한 편을 하루종일 걸려서 읽었어요, 저는 그분이 주무실 때 얼른 읽었지요. 저녁에 제가 다가가서 독후감을 요청했지요. '독서'라는 말에 무척 미안해했어요. 한사코 사양하다가 딱 한 마디로 독후감을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그 수필을 쓴 사람이 우리 나라의 유명한 여류 수필가였어요. 제가 이름은 여기서 대기가 불편하지요. 그 노인의 독후감은 이렇습니다. "자기(수필가)집 뜰이 좁아서 꽃을 못 심는대나 뭐 그런 걸 썼어!" 였어요. 못마땅하다는 투가 역력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정확하게 핵심을 짚어내었습니다. 여러분들이나 우리같이 먹물 좀 든 사람들은 그 여류 문인이 펼치는 현란한 언어구사에 사로잡히게 마련이죠. 그러나 이 노인에게는 그것들이 무력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무식이 훨씬 더 날카로운 통찰력이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은 총격이었습니다.

 

   대의   

큰 대(大), 옳을 의(義)를 이름자로 쓰는 '정대의'라는 젊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참 좋은 이름이지요. 그러나 절도 전과가 벌써 세 개나 돼요. 그 친구를 볼 때마다 대의를 위해서 살기를 바라고 대의라고 이름 지었을 그 할아버지가 얼마나 속상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요. 

어느 날 제가 이름의 내력을 물어봤어요. 그게 아니었어요. 그는 돌이 채 안된 어린 아기였을 때 버려진 고아였습니다. 할아버지가 있을 리 없었어요. 자기가 버려진 장소가 광주의 도청 앞 대의동(大義洞) 파출소 옆이었어요. 그래서 '정대의'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날 당직 경찰이었던 정 순경의 성을 따고, 대의동 파출소의 '대의'를 합해서 고아원에 입적시켰던 이름이었습니다. 고아원에서 자란 그 30년이라는 세월이 어떤 아픔과 고뇌로 얼룩졌는지 저로서는 그것을 다 알 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대의'라는 문자를 통해서 그 사람의 인생을 읽으려고 했던 저의 그 창백한 관념성이 굉장히 부끄러웠습니다. 광주에 내려갔을 때 일부러 시간을 내어 대의동 파출소를 찾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 서니까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저의 관념성이 더욱 부끄러웠어요. 언어와 마찬가지로 문자와 논리가 만들어내는 지식인의 심볼리즘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이 역시 '나의 대학시절'의 초년에 만난 충격이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절대 참인 명제는 아닐 겁니다. `아는 게 힘`이고 `모르는 게 약`인 것이 동전의 양면 같듯이, (적어도 미술을 보는 데 있어) 안다는 것은 도움이 되기도 하고 방해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혹시 먼저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미술관 다니기를 늦췄거나, 작품을 봐도 즐겁지 못한 게 알지 못해서라고 자책하셨다면, 혹은 아는 만큼만 보는 것에 그쳤다면 그 `아는 만큼`에서 벗어나셔야 시작할 수 있고, 즐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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