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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니편이 되어줄게, 괜찮다 말해줄게 (feat. 고등학교 퇴학썰, 커피소년)

AFF레스큐 | 2023.04.20 08:38:19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마모에서 많은 도움도 받고, 따뜻한 말씀들도 많이 들으면서 이제서야 고백할 용기가 난것 같습니다. 자신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털어놓는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데 나약하네'라고 말해왔지만, 스스로도 누군가에겐 털어놓고 싶었나봅니다.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익명성 뒤에 숨을수 있기에 이제야 용기가 난 것 같기도 하구요. 가족 말고는 아는 사람도 없는,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사연있어 보이기 싫어서 거짓말해왔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보다 힘드셨던, 저만큼 힘드셨던 분들께 '괜찮다고, 내가 니 편이 되어줄게, 괜찮다 말해줄게'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feat. 커피소년, "내가 니편이 되어줄게")

 

혹시라도 불편하시다면, 혹은 마모에 맞지 않다면 자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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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혼가정 출신입니다.

요즘에야 한국도 이혼률이 높아져서 마냥 특이한 경우는 아니지만, 제 주변에선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괜히 '이혼가정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낙인 찍힐까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원인제공자셨습니다. 몇가지 에피소드만 말씀드리자면....

 

어머니는 당시 어머니 세대에선 정말 소수만 거쳐가는 박사과정을 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당신 세대의 일반적인 여성처럼, 집안에서 선을 보라고 하면 선을 봐야 했고, 그렇기에 운동권으로 최루탄 숱하게 맡을만큼 반골이었지만 집에서 시키시는 대로 선을 보고 첫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죠. 그리고 그때의 일반적인 여성상에 맞게 '결혼을 했으니 자식을 낳아야지'에 맞게 저를 가지셨습니다. 갑자기 들어선 아이 때문에 박사과정을 고작 6개월 남기고 자퇴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건 당신 인생의 천추의 한이 되었죠. 그렇기에 저는 어릴때부터 '내가 니 때문에 박사도 때려쳤는데', '6개월만 더 있었으면 내가 교수도 했을텐데'를 정말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그만큼 희생을 크게 겪고 낳은 아이이기에, 어릴때부터 제게 기대치가 많이 높으셨습니다. 포기했어야 했던 대가만큼 잘 키우고 싶으셨겠지만 저에겐 버거웠던것 같아요. 포기하셨어야 했던 길에 대한 회한이 많으셨는지, 그 기대치에 못 미쳤을땐 화도 많으셨죠. 그렇기에 당장 저에게 '어머니'라는 단어가 주는 기억은 이런것 뿐이네요.

 

하교 후 학원에 가는 동안, 본인이 키가 작으셨기에 저라도 키 크게 키우고 싶으셔서 멀리까지 가서 제가 잘 먹었던 간식을 사오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천천히 먹는 편이었고, 학원에 도착할때까지 그 간식을 다 먹지 못했죠. 학원 앞에 주차한 후, 어머니는 동네가 떠나가라 ㄱㅅㄲ, ㅅㅂㄴ 소리를 지르면서 남은 간식을 저에게 던지고 말 그대로 '처'발랐습니다. 주변 상가, 그리고 길 가던 사람들이 쳐다보더군요. 부끄러워서 떼낸 밥풀이 얼굴에 남았는지, 학원에 가려고 엘레베이터를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경비 아저씨가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들켰다는게 너무 부끄러웠던게 기억나네요. 그분이 물어보시기 전까지는 나름 익숙했던 상황이라 눈물을 누르고 있었지만, 너무 부끄러워서 결국 엘레베이터에서 눈물이 터졌습니다.

 

'어머니'라는 말은 그런 기억뿐이기에, 유학 중 여름방학때는 한국에서 SAT학원을 다니기 위해 귀국했을때도 어머니와는 떨어져 있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쓸데없고 이해 안되는 행동이지만 기껏 본가에서 나왔으면서 그 방의 주소를 어머니께 알려드렸습니다. (나중에야 이야기해주셨지만, 제 상태를 알고 계시던 아버지는 제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제가 자살할까봐 어머니에게서 떼놓고자 조기유학을 보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본가에 보내는 대신 서울에 방을 하나 얻어주셨구요. 실제로 그 때부터 저를 봐 왔던분들은 열몇살짜리 애 얼굴에서 단 한번도 웃음을 본적이 없어서 소름돋았다고 하더라구요) 어머니는 저와 함께 있으려고 제가 얻은 방에 아예 올라오셨습니다. 워낙 당하고 사는게 익숙했던 저는 거부할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러던 날 중 하필이면, '다시 미국 가기 전에 아빠랑 여행이나 한번 가자'라는 전화를 어머니가 들으셨고, 하필 며칠전 같이 여행 가자는 제안을 거절했기에 어머니는 많이 화를 내셨습니다. 어느 순간 정신차려보니 식칼을 본인 목에 겨누면서 '자식이랑 여행 갈 자격도 없는 애미는 죽어야겠네'라고 악을 지르고 계셨습니다. 경찰도 출동하고, 난리도 아니었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상황이 너무 익숙해서 별로 놀라지도 않았던 제가 더 놀랍네요.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저도 많이 지쳤었는지, 어이 없는 실수를 하게 됐습니다.

제 학교에는 아주 전설적인 AP 수업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이 맡은 이후로는 아무도 A를 받지 못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죠 (확인할 길은 당연히 없었습니다). 오히려 깡다구가 치솟은 저는 매주 나오는 2장짜리 숙제에 매번 최소 20장씩 써서 냈고, 결국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하지만 저같은 반항심 있는 똘I는 그런다고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년동안 수업을 듣고 역대 최초로 그 선생님 수업에 A+가 나올 정도로 죽도록 그 과목을 팠습니다. AP 시험은 당연히 껌이었죠. 그런데 대체 왠지 모르게, 제가 만든 정리노트를 감독관이 시키는대로 가방에 넣고 그 가방을 제 자리 밑에 두는 대신, 바로 앞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이상하게 말을 듣기는 싫었고, AP시험 중에 화장실 쓰게 해줄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제 딴에는 오해 받을 일 없다고 생각해서 거기 버린거였죠. 그런데 하필 AP시험이 진행되는 중 maintenance 직원분이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그 정리노트를 발견했고 시험관에게 보고했습니다. 'AP시험 쉬는시간 중 학생들은 화장실에 갔다 + 그 화장실에서 cheat sheet이 발견됐다 + 이 필체는 한명밖에 없다' 가 겹쳐서 저는 빼박 부정행위를 계획적으로 한 학생이 되었고, 그날부터 매일 2시간마다 교장+Dean에게 번갈아가며 취조를 위해 불려갔습니다. 부정행위 없이도 AP시험 만점은 누워서 떡먹기였기에 계속 항변했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더군요. '저 3가지 조건이 겹치는건 너밖에 없고, 넌 부정행위를 했다'라구요. 거기다 같이 AP시험 친 다른 한국인 학생이 본인도 불려가는게 피곤했는지 '걔가 화장실에서 무슨 종이를 보는걸 봤다'라고 거짓증언까지 했습니다. 결국 1주일 동안 수업중에 불려가고, 자다가 불려가고, 밥먹다 불려가면서 지쳐가다보니 그냥 편해지고 싶었습니다. 

 

'그래, 내가 처음부터 부정행위 할 생각으로 cheat sheet만들었고, 일부러 그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렸고, 쉬는 시간에 그 화장실 가서 봤다'라구요. 물론 몸은 편해졌습니다. faculty는 제 '자백'을 Collegeboard에 보고했고, '우리 학교는 일체의 부정행위를 허락하지 않는 깔끔한 학교다'를 위해서인지 그 다음날 저는 'We can no longer have you as __ student'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연히 제 F-1 비자는 terminate되었고, 추후에 알게 됐지만 이 기록은 CBP도 아무때나 볼수 있더군요.

 

그리고 몇년 후 입국심사때 세컨더리룸에 불려가서 CBP officer가 'Why were you expulsed from your high school?"을 들었을땐, 기억 한켠에 가둬두었던 여러 날의 악몽이 되살아났습니다. 미숙한 날의 어이없는 실수 때문에, 언제라도 신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슬픈 사실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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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걸 떠나서,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맨 (오해할 짓을 한) 제 실수를 변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해할 짓 한 놈이 잘못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날 그 상황에선 저를 쳐내는게 학교를 위해 저를 희생시키는 선택이었을수도 있고, 각자의 사정에서 최선의 선택은 다르단건 인정합니다. 다만 어쩔수 없는 외국인/미국에 사는 동양인으로선 더욱 조심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위로가, 누군가에겐 타산지석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저와 같은 아픔이 있으신 분들께는 '그래도 우리는 과거의 슬픔에 굴복하지 않았다고, 우리는 그보다 강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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