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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아내를 만나게 해준 그 실낱같던 인연 - How I met the love of my life.

잭울보스키 | 2023.07.06 09:23:16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아내를 만나게 해준 그 실낱같던 인연 - How I met the love of my life.

 

사랑하는 회원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

 

얼마전에 어느 회원분께서 배우자를 만나게 된 사연 이라는 주제로 글을 올리셔서 저도 댓글로 제 사연을 올리려 했었는데 게으름을 피우다가 그만 기회도 놓치고 그 글을 찾을 수 가 없어 따로 글을 올려봅니다.

 

1983년에 아내를 처음 만났으니 벌써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기념으로 글을 올릴까 하는데 사연이 조금 길지만 되돌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당시 저는 졸업을 앞두고 80년대의 암울한 현실에 숨이 막혀 유학을 결심하고 집 근처 미국 목사님부부님 댁에서 몇몇 젊은 친구들과 함께 영어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이 공부방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습니다.   아내는 대학 2학년에 재학중이었는데  그 목사님이 목회를  하시던 미국인 교회에서 일요일이면 피아노 반주자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죠.  키가 늘씬하고 성격이 명랑 쾌활하여 같은 클래스메이트로 좋은 인상을 받았지만 그 당시 저의 우선 순위는 미국유학이었기 때문에 그 이상의 관심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봄에 저는 졸업을 하고 여름에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낯선곳에서의 학업과 생활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겨울방학이 시작되어 무료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한국에서 같이 영어공부를 하던 그녀가 떠올랐지만 아는거라고는 학교 이름과 학년 , 그리고 전공뿐이었습니다.  요즘처럼 이메일이나 카톡 이런게 없던 시절이라 그녀의 학교 과사무실로 안부 편지를 보냈습니다. 물론 답장을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겨울방학이라 집에서 놀던 아내가 시내 나온김에  왠일인지 학교에 가보고 싶었답니다. 간김에 과 사무실에도 들렀는데 마침 퇴근하려던 과사무실 직원 언니가  아내에게 미국에서 왔다며 편지 한통을 내 주었습니다. (여기서 첫번째 인연의 끈이 맺어졌나봅니다. )  

 

한편 미국에 있던 저는 편지를 보냈지만 역시나 하고 원래 별 기대 하지 않았던데다 곧 학기가 시작되어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어달의 시간이 흐른  어느날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쉬고 있는데 누군가가 제가 살던 아파트의 문을 두드리더군요. 나가보니 6-7세 정도 되어보이는 작은 미국 아이가 한손에 편지봉투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건 그녀가 제게 보낸 답장이었고 어떻게 그 편지가 그 아이의 손에까지 들어갔는지, 시간은 왜  그리 오래 걸렸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고맙다고 하고 문을 닫으려 하는데 그 꼬마가 수줍게 말을 건네더군요. “ 제가 우표수집이 취미인데요 , 그 봉투에 붙어 있는 우표 제가 가져도 될까요 ?”  물론 저는 기꺼이 떼어주고 다시한번 고맙다고 말하고 돌려보냈습니다.  아마 우표를 갖고싶어 근처 우체통에 넣어도 되는데 일부러 갖고 온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 아이로 인하여 끊어질것만 같았던  저와 아내의 인연이 다시 맺어졌습니다.

 

이렇게 실낱같이 가늘었던 인연이 두번의 우연으로 다시 이어지고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편지가 오고가기 시작했고 그 사이 아내는 졸업을 하고 뜬금없이 전공과는 전혀 다른 국적 항공사의 flight attendant로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경쟁률이 200:1 이었었다고 본인이 얘기한 기억이 나는데 아마 미국인 교회에서 일하며 익힌 영어실력, 유서 깊은 모 여대에서 영어를 전공했고 제법 큰 키에 붙임성있는 명랑 쾌활한 성격 이런게 모두 한몫한듯 싶습니다.  본인 셩격에도 잘 맞았을겁니다. 

 

한번은 이런일도 있었습니다. 아내가 탄 비행기가 뉴욕에 오면 승무원들은 당시 맨하튼에 있는 호텔에 묵곤 했었습니다.  어느날 아내에게서 뉴욕으로 온다는 전화가왔었는데 당시 저는 학위가 끝나가는 학생이었고  final exam 기간이었습니다. 그때 처음 미국와서 타던 말썽부리던 차를 처분하고 제게 뭐가 씌였는지 빨간색 컨버터블 2인승 스포츠 카를 지도교수님의 코사인까지 받아서 사게되었습니다. (교수님께 코사인해달라고 서류를 내밀었는데 그때 교수님께서 “저 미친놈” 이러셨을거 같습니다. ㅎㅎ)   

 

어쨌거나 아내에게 새로 산 차를 자랑하고 싶어 final 시험도 제끼고 아내를 만나러 가다가 필라델피아 어디선가 과속으로 단속에 걸려 그 당시에는 거금인 140불정도 현찰로 벌금을 내기도 했었습니다.  우여곡절끝에 그날 밤 10시쯤 맨하튼에 입성 ,  아내를 만나 제 차에 태우고 시내를 몇바퀴도는 짧은 만남을 가진다음 숙소에 내려주고 저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는데 이미 시험은 끝났더군요.  그래서 교수님께 이실직고하고 약혼자가 미국에 와있는데 너무 보고싶어 얼굴만 보고 밤을 새워 지금 돌아왔다고 말씀드렸더니 시험지를 내주시며 저쪽가서 시험보고 끝나면 제출하라고 하시더군요.  그 교수님과는 제가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30여년간 해마다 연락을 주고 받다가 몇 년전 작고하시고 지금은 부인과 안부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후 시간이 흘러 저도 졸업을 하고 바로 직장을 잡았고 아내와도 약혼을 하고 일단 서류상으로 결혼을 하여 이민수속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아내가 오면 무슨일을 해야할까 서로 상의를 한끝에 다니던 항공사에 사표를 내고 종로에 있던 컴퓨터 프로그래밍 학원에 등록을 했습니다.  그리고 88 올림픽을 앞두고 1987년도 칼기 폭파사건이 터졌습니다. 아마 사표를 낸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을겁니다. 지금도 저는 제가 아내에게 생명의 은인이라고 얘기합니다. 

 

1988년 6월 결혼식을 끝내고 둘이 미국으로 온 다음 일주일후에 아내를 데리고 근처 커뮤니티 칼리지에 컴퓨터 사이언스과에 등록을 시켰습니다.  제 직장이 아내의 학교와 가까와서 점심시간이면 서로 만나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미국온지 두어달이 지난후 , 제 경험으로 볼때 학교다니며 파트타임으로 미리 경력과 인맥을 쌓는게 나중에 취업에 유리할거라고 아내에게 조언을 해주었더니 그 다음날부터 제 직장과 가까이 있는 주 정부에 잡 오프닝이 있는 사무실마다 혼자 직접 찾아다니며 이력서와 응모원서를 돌리더군요. 그런지  얼마후에 한곳에서 연락이 오고 졸업할 때 까지 그곳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다가 졸업을 하고 정식으로 풀 타임 포지션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운전면허를 따기위해 제가 데리고 다니며 운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부부사이에 운전을 가르쳐주다보면 부부싸움이 종종 생기곤 한다는데 기계치인 아내를 가르치다보면 저도 모르게 신경이 예민해지고 속터질일이 많았습니다.  속터지는 운전교육을 간신히 끝냈던 어느 무더웠던 여름날. 아내도 속이타고 힘들었던지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하더군요. 화가 제법 났던터에 속편하게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하길래 제 입에서 별로 좋지 않은 소리가 나오고 결국 아내는 서러움에 눈물을 펑펑쏟고 말았습니다.미국와서 시차적응도 하지 못한채 학교를 시작했고 제발로 관공서 문을 두드리며 취직을 했을 정도로 열심히 살려고 하는 아내에게 그깟 아이스크림이 뭐라고 그랬던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그때 아내의 눈물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1990년 여름 가족들의 권유로 워싱턴주로 이주를 하였습니다. 저는 미리 취직이 되었지만 아내는 이제 막 졸업을 하고 풀타임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저 때문에 아쉽게도 직장을 포기하게 되었고 얼마전 구입한 집도 팔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무  불평없이 잘 따라와 주었고 첫아이를 임신했던터라 집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출산후 첫 아이가 돌이 채 지나지 않았던 12월의 어느날 아내는 다시 직장을 잡고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어머님의 말씀에 의하면 아내가 첫 출근을 하던날 자고 있는 아이를 보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지 눈물을 흘리며 나가더라고 하시더군요.  그말을 전해들은 제 마음도 무척이나 아프고 미안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어느새 3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저와 아내도 은퇴를 하고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참 여러가지로 감사하고 고마운일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그 실낱같이 가늘게 끊어질듯한 인연을 맺게해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이 참 고맙게 느껴집니다.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저와 아내는 지금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겠지요.   긴 세월을 저와 함께 같은길을 걸어온 아내가 새삼 고맙게 느껴집니다. 

 

글을쓰다보니 옛기억이 주마등 처럼 떠 올라 회고 투의 글이 되어버렸네요.  평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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