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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 정리를 못하면 박스에 잘 넣어놓기라도 해라 (청소/정리 이야기)

음악축제 | 2023.12.20 10:01:40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오늘은 좀 부끄러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정리를 못하면 박스에 잘 넣어놓기라도 해라"

예전에 20대 후반에 저의 employer께서, 제 책상에 자꾸 이것저것 쌓여가고, 그래서 그걸 옆에 내려놓고 또 이것저것 쌓아놓고 하니까 지나가다 답답해서 하신 한마디.

 

그 한마디가 제 정리습관의 방향을 정하는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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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 물건 정리를 잘 못해요.

군대가면 관물대 정리하는 것부터 배우고, 군대에서는 누가 강제하니까 그 생활을 유지하는 법을 배웁니다만..

전역하면 초기화되더라구요.

 

정리를 못하는 나름의 변명은 있습니다.

"바닥에 다 늘어놓은 것처럼 보여도 다 어디 있는지 내가 알고 있어서 그렇게 두는 거니까 손대지 마세요 그럼 내가 그게 어디 있는지를 못 찾잖아요!"

어릴 때 방 꼴딱서니를 보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부모님이 정리를 해주시면 저는 늘상 그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사실이긴 했습니다.. 어지러워보여도 난 뭐가 어디에 있는지 다 아는데, 부모님이 서랍장에 박스에 넣어놓으시면 전 또 그게 어디 있는지 한참을 찾아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바닥에 이것저것 늘어져 있는 방에 있으면 그걸 보는 타인도 심난하지만, 당사자도 정서적으로 심난한건 매한가지라는걸 언젠가부터 깨닫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제 employer에게 그 말을 들은 뒤부터, 뭔가 정신없을 때마다 바닥에, 주변에 있는 것들을 다 박스에 담아서 일단 깨끗한 모양이라도 만들어놓으면 그 심난함이 사라지곤 했습니다. 박스에 담긴 물건은 내일의 내가 정리해줄테니까요. (그 박스들을 안만들고 깨끗하게 하는 방법은, 아직 탐구하고 있습니다.. ㅎㅎ)

그러다가 조금 더 심난함이 깊어지면, 그날은 대청소하는 날입니다.

꼭 그 '청소'에 대한 동기부여는 한밤중에 됩니다. 밤 열시에 시작해서 새벽 두시쯤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를 보면 아주 스트레스가 다 풀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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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정리하는 방법.. 좋은 책도 영상도 많습니다만.. 경험적으로 생각해보면 몇가지의 원칙이 있겠습니다.

1) 평평한 공간에 물건을 두지 말것.. (곧 이것 저것 쌓이게 됨)

2) 물건은 항상 수납하고, 수납공간의 categorization을 잘 해서 물건 찾을 때 힘 빼지 말것 (레이블링이 도움이 되죠)

3) 작업공간과 수납공간을 분리해서, 작업공간은 항상 작업이 끝난 후 원상태로 되돌려 놓을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4) 수납공간보다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 말 것 <-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데..

 

수학을 잘 하면, 각각의 조건을 수치화 해서 계산식을 만들어서 한 공간에서 보유할만한 적정한 물건의 양을 estimate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튼 인간은 아날로그한 존재이니까, 대충 보고 정리가 안되면 뭐가 안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고, 그럼 그 조건들을 클리어해나가다보면 더 깨끗하게 살수 있겠지요.

대체로 4번은 그 자체로 문제일 뿐 아니라, 다른 문제들을 더 심화시키는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수납공간보다 물건이 많다 = 어딘가 물건이 던져져 있다 는 뜻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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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부부가 살때는 좀 나은데, 자녀가 생기면 장난감, 책, 육아용품 등이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더군요.

저희는 장난감을 그렇게 많이 사는 편이 아닌데도, 주변에서 주시는 것들만해도 점점 쌓여서 어느새 적정량 이상의 물건을 갖게 됩니다.

아이는 갖고 노는건 잘해도 치우는건 잘 안하려고 하니까.. clean up 교육을 시켜도, 무질서도는 점차 증가하게 마련입니다.

 

하루는 애기 씻기고 재우고 거실로 나왔는데..

난장판.jpg

사실 뭐 이게 하루이틀일은 아니죠.. 정도는 다르지만 육아의 고충중 하나는 물건정리가 아닌가 싶어요.

정리하는데는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데 어지르는건 한순간..

 

샤워야 보통 제가 해줘도 엄마에게 애기 재우는걸 보통 부탁하니까, 거실 뒷정리는 제몫입니다.

그런데 이날은 왠지 확 치밀어오르더라구요...^^

13갤런 봉투 하나 꺼내다가 다 집어넣고, 저기 보이는 문 열고 side porch에 치워버렸습니다.

 

다음날 딸아이가 나오더니

"어.. 자동차들이랑 공룡이 어디 갔지?"

하더니 아빠 눈치를 슥 보더니 그냥 다른 거 갖고 놀더라구요..

글쓰다보니 왠지 눈치보게 해서 미안하지만, 정리할 수 있을만큼의 장난감 숫자를 유지해주는 것도 부모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걸 어떻게 다시 풀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박스에서 쓰봉으로 바뀌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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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finished 지하가 있는 단층집으로 이사온 후, 지하에는 자꾸 박스가 늘어갑니다.

대충 플로우 차트는 이렇습니다.

1) 일단 만만한 방부터 바닥을 깔끔하게 치운다

2) 로봇청소기를 돌린다

3) 로봇청소기 경로를 예측해서 박스 들고 다니면서 바닥에 있는 물건들 담는다.

4) 모든 박스는 내 서재로 모인다.

5) 당장 매일 쓰는 물건들 다시 꺼내서 원위치 시키고, 애매한 물건들은 지하로 내려보낸다.

6) 1~5를 반복한다.

 

이렇게 청소하니 일단 좋은 것:

1) 집이 금방 깨끗해진다. 아무리 어지러워도 로봇청소기보다만 빠르게 움직이면 일단 집 바닥을 항상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누가 뭘 어지르던.. (저희는 주로 저와 제 딸이 그럽니다..)

2) 자주 쓰지 않는 물건은 언젠가 자연스럽게 지하로 간다. 집에는 항상 필요한 물건만 남는다.

 

안 좋은 것:

1) 박스가 지하에 쌓인다.

2) 어쩌다 가끔 쓰는데 꼭 필요한 것을 찾기 어렵다..

 

지하실에 카펫이 하나 있는데, 한달에 한번씩 박스 다 엎어놓고 보물찾기를 합니다.

몇번 하다보니 categorization도 잘 되어 있지요

1) 아이 물건

2) 전자제품 및 부속

3) 공구

4) 각종 잡화

5) 영수증, 청구서, 체크

그래서 요즘은 좀 발전되어서, 지하실에 각각의 물건들을 위한 구역이 있습니다. 틈틈히 접이식 책상 펼쳐놓고 물건 분리도 합니다.

그런데 몇번 해보니까 가끔 현자타임이 오지요. 이렇게 쌓아두고, 박스에 넣어놓고 안쓸 것들을 왜 샀나.

 

요즘은 지하실에 쓰레기봉투 큰거 하나 두고, 한달에 한번씩 버릴 물건들, 굿윌로 버릴 물건들 나눠서 의식적으로 정리합니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아마 지하실에 평생 박스 몇십개 쌓아두고 살지 않겠나 싶습니다..

나중에 그 임플로이어 분께 기회 되면 여쭤봐야겠습니다.

"이제, 박스에 넣는건 제법 잘하는데, 그 다음엔 뭐하면 될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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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work flow organize 방법 중의 고전인 Getting Things Done에 이런 차트가 있습니다.

아마 비슷한 식으로,, 정리 flow chart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GTD.jpg.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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