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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나름 인간적(?)인 구조조정을 겪으며 느낀 점

복숭아 | 2024.03.07 14:37:53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대기업에서 일하며 느낀 점을 쓰고 새해가 된지 얼마 안되어,

회사 구조조정이 발표됩니다.

 

헤드쿼터 - 디비젼 - 리젼으로 나뉘어져있는 저희 회사는,

제가 속해있는 리젼이 전체 회사에서 제일 작았습니다.

1월의 어느 금요일, 재택하는 날이라 동료들과 수다를 떨 수 없는 날인데

저희 디비젼에 있는 제일 큰 옆동네 리젼과 저희를 merge해 "Reorganize"하겠다는 이메일이 옵니다.

처음엔 이게 무슨의미인지 몰랐었는데, 결국 layoff는 layoff긴 했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저는 운이 좋게 안전하고, 새 리젼 팀에 흡수되어 똑같은 일을 하지만 드디어 팀과 매니저가 생겼습니다.

원래도 얘기하고 질문하고 지내던 사이기도 하고, 매니저님이 너무나 플렉서블해서 저에겐 엄청난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 몇몇 "distinct"한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 없이 그자리 그대로 안고가지만,

디렉터 and above는 거의 다 layoff되고 (상대 리젼 사람들이 포지션 차지),

매니저 이하 레벨의 대다수는 merge되는 리젼과 중복인 포지션이라 (사실 저도 중복인데 운이 좋았을 뿐) 같은 자리를 놓고 인터뷰를 다시 보는, 헝거게임을 시작합니다.

의외로 회사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매일 그냥 농담따먹기하고 일 대충 하고..ㅋㅋ

저희 애널리스트 및 매니저들은 저희야 어리고(?) 잡 구하기 쉬우니 괜찮지만 오히려 가정 있고 경력이 더 길어 잡 구하기 힘들 디렉터들을 더 걱정했고요.

참 좋은 오피스, 사람들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헝거게임이 시작되고,

저희쪽에서 대다수는 분명 큰 리젼쪽 사람들을 더 뽑을거고 이건 다 그냥 formality지 그냥 레이오프에 불과하다 라고 생각했는데,

다 마무리되고 나니 의외로,

80% 정도는 리젼 및 디비젼으로 오퍼를 받았고, 

새 리젼의 시작은 이번주 초 부터였지만 layoff 당하는 사람들도 이번달 중순까진 출근하고 월급받고 severance package도 받으며,

아직도 몇몇은 인터뷰중이라 희망이 있습니다.

 

보통의 layoff는 어느날 갑자기 팀이 사라지거나 없어져 그냥 말그대로 해고인데,

그나마 저희는 2달 정도 유예기간도 주고, 다른 자리로 옮겨갈수도 있게 되서,

조금 인간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저에게 전화위복이 되어서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걸수도 있죠)

 

작년 제가 멘토들에게 어떻게하면 승진할수 있나요 라고 물어보고 다닐때 한 VP님이 말씀하시길

"물론 나도 노력을 했지만, 회사생활 하다보면 생각치도 못한 흐름이 나를 여기로 데려왔다고 생각한다" 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런거같습니다.

 

제 전 보스였던 시니어 디렉터님은 16년을 일하고 하루아침에 layoff되었었으나 똑같은 직책으로 헤드쿼터에서 일하게 되었고,

제 동료 한명은 시작한지 2개월밖에 안되서 자기가 뭘 알겠냐고 이렇게 잘리는거겠지 했는데 디비젼으로 가게 되었고,

다른 동료 한명은 거의 15년을 2시간 반 거리에서 출근하느라 매주 호텔 잡고 일주일에 이틀만 출근하는데 이번에 디비젼으로 가며 40분 거리 출퇴근으로 줄었고,

저도 이렇게 이런 흐름에 휩쓸려 생각치도 못한 전화위복이 되었네요.

이렇게 계속 살아남아 휩쓸려 다니다보면, 저도 언젠간 VP쯤 되려나요.ㅋㅋ

회사 생활 또한 많은 사람들이 사라질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동료 대부분을 매일 그대로 봐서 변한게 딱히 없습니다.

 

처음엔 회사생활 오래 해봐야 정말 남는게 없구나, 잘리면 끝이구나 싶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생각은 유효하지만,

이것도 나름 신선한 경험이네요.

올해는 mass layoff가 좀 줄어들고 안정화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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