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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겨울, 알래스카 3 - 2012년 12월 28일.

사리, 2014-04-29 2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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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그곳에 살고 계시는 사람들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명을 쓰고 각색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우선 놔두어 봅니다. 

다른 곳에 옮겨 가지 말아 주시고... 

알래스카에 행여 가서 이분들을 만나더라도

"아 그 분이시죠???" 같은 것들 하지 않으실 걸로 믿습니다... 


대부분의 분들과 아직도 가끔씩 안부를 묻는 친구들이 되었습니다.

약간 걱정 되지만, 믿고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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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8일

알래스카항공 10시 40분 비행기를 타고 페어뱅크스에 도착했다. 

600킬로 정도 되는 거리를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기차를 타면 12시간 정도가 걸리고

비행기로 오면 50분 정도가 걸린다. 갈 때는 기차를 타고 돌아갈 예정. BA 마일 4500으로 알래스카항공 타고 옴. 


공항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려고 갔더니, 시내버스는 이미 떠나고 두어시간 뒤에나 온다고 한다. 주저하다가 택시를 타기로 한다. 

하지만 택시도 이미 다 떠난 상태. 같이 택시를 기다리는, 어디서 도굴 좀 했을 것 같은 포스의 웨인 할아버지.  

중국에서 운난성 리장에서 두어달 가까이 불교 명상을 하고 왔단다. 샹그릴라에 가보고 싶어서 그곳에 있었다고 한다. 아.. 그 놈의 샹그릴라… 

웨인이 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었고, 영하 15도의 길바닥에서 떨다가 그는 핑크 택시를 타고 떠났다.

택시회사에서 실수로 두대를 보내게 되어 나도 덩달아 오래 안 기다리고 탈 수 있었다. 


뾰족하게 들어선 침엽수에 쌓인 눈속에 빌리의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그저께 “알래스카 이 바닥에서 가장 마음씨 좋은 할머니야”라는 목소리를 갖았다던 그 빌리였다. 

헌데… 빌리 할머니는 내가 전화해서 예약한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적어 놓지도 않았단다. 

손님이 없는 비성수기라서 언제든지 방이 있기 때문에 그냥 들어오란다. 

방을 고르라는데, 요즘 한참 비염이 심해져 코를 좀 고는 바람에 다른 사람을 방해할까봐 걱정된다… 했더니 걱정하지 말라며 프라이빗 룸을 내어준다.

원래는 80불짜리인데, 손님도 없는 비수기니깐 그냥 다른 사람이랑 같은 값에 하루 30불에 있으란다. 

빌리 할머니는 40년동안 이곳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해왔고, 

키가 침엽수처럼 큰 아들과 함께 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짐을 풀며 도미토리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했다.

학부 2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써니라고 불러달라는 중국 남학생이 하나 있고,

플로리다에서 왔다는 백인 트랜트가 있다. 

거실에 나와서 빌리 할머니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있는데, 써니가 아이패드가 사라졌다며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다. 

어젯밤에 쓰고 가방에 넣어두었는데, 이게 왜 사라졌냐며… 트랜트는 오늘 체크아웃할 거라면서 나가려고 한다. 

그런데 써니가 갑자기 그 아이를 따라간다. 

집앞에는 트랜트를 데리러 온 픽업 트럭이 하나 있었는데 막아 선다. 

덩달아 빌리 할머니와 (반팔만 입은) 그 침엽수 같은 아들이 따라 나가 차를 둘러 싼다.

써니가 가방 좀 봐야겠다고 했다. 써니는 보조석 앞자리 문으로 막아섰고, 빌리 할머니 아들래미는 차 앞쪽을 빌리는 옆을 호위했다. 

저러다가 아이패드 없으면 난리 날텐데… 저렇게 가겠다는 걸 막아서는 게 불가능한데… 마땅한 증거도 없는데 저러다 정말 큰일나겠다 싶었다. 

몇분의 실랑이 끝에 트랜트의 자켓에 숨겨져있던 아이패드를 찾아냈다. 세상에! 

빌리 할머니 침엽수 아들은 경찰에 신고를 하고, 번호판을 사진으로 찍는 사이 그들은 달아났다. 


써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러하다. 

어젯밤에 같은 도미토리에서 자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단다. 

트랜트는 돈이 다 떨어졌고, 그래서 이곳에서 사냥을 해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밤에 같이 기타치고 노래부르며 놀았단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나간다는 게 이상했고, 어제 체크인을 했을 때 같이 있었던 친구가 사라져 있는 것도 수상했단다. 

빌리 할머니는, 어제 두명이 예약도 없이 들어와서 하룻밤 잔다고 했고, 그러라고 했는데 한 놈만 잠을 자고 한놈은 어디론가 사라졌단다. 

그 다른 한놈이 아까 그 트럭을 갖고 온 놈이라고 한다. 


갑자기 번뜩 빌리 할머니는, "얘들이 어제 계산한 신용카드도 훔친 카드일 수 있어"라며 카드사에 전화해보겠다고 한다.

거실에 있던 이곳의 투숙객인 조앤 할머니는 아침에 현관에 있는 전화로 누군가와 약속을 맞추고 있었다는 걸 들었다고 증언을 했다.

빌리 할머니의 침엽수 아들은 가는 길 막고 못가게 잡아 수색하는 거 불법인데, 범인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냐며 범인이어서 참만 다행이란다. 


카드사랑 전화하던 빌리 할머니가 소리를 지른다. 

“훔친 카드였어!”


그때 극적으로 경찰이 들어온다. 써니에게 자초지종을 물어 본다. 

나는 그 놈들이 밤에 와서 해꼬지를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했고, 특히나 밤에 오로라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가 

아시안 남자라고 나한테 보복하면 어쩌나 살짝 우려도 됐다. 

경찰 아저씨에게 걔들이 다시 와서 이상한 짓할까봐 좀 걱정된다고 하니, 

씨익 웃으며 도망가는 거 두놈다 잡았다고 알려준다. 

지금 경찰서 유치장으로 데려가고 있는 중이란다. 

경찰이 써니에게 설명하며 재판이 열리는데, 한달뒤에 대배심이 있을 것이다. 

너가 와서 재판에서 DA 질문에 대답하고 증언도 해야한다고 했다. 

써니가 듣더니 “DA가 누구죠?”라고 묻는순간, "아…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구나"싶다. 

난 왜 저 경찰관이 하는 말을 다 알아 듣겠는가… 클로져와 굿와이프의 덕이다 이 모든게. 

써니가 난감한 표정으로 “저 보스톤 사는데요… 한달뒤에 어떻게 여기 와서 하죠..?”라고 했더니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경찰이 떠나고 거실에 써니와 조앤 그리고 나 셋이 앉아 사건 정리를 했다. 

조앤은 매릴랜드에 사는 65살의 아주머니였는데, 이곳에 20년전으로 이사온 동생을 보러 지난 12월 17일에 도착해서 1월 2일까지 장기 투숙 중이라고 한다. 

조앤은 재판 배심원 앞에서 증언을 하고, 검사와 경찰이 사건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재판이 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을 해줬다. 

써니가 이곳에 한달뒤에 와서 어떻게 증언하냐고… 고민하길래 내가 대뜸 “스카이프 해! 아님 찾은 아이패드로 페이스타임을 하든가. 뭐, 안되면 비디오 증언을 해. 

왜 드라마에서 특수한 경우나 애기들이 피해자일 경우는 비디오로도 하잖아”라고 했다. 

조앤은 헌데 스카이프와 비디오 증언이 약간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미국 법에서는 재판에서 피해자가 증언하면서 검사가 누가 그랬냐고 물으면 가해자를 손가락으로 지목하며 “저놈이 그랬어요”라고 극적으로 해줘야 하는 건데,

스카이프로 하면 어디다 해야하냐고 하는 거다.

아… 조앤은 이윽고 이들이 다른 범죄가 있을 수도 있고, 지방 검사가 얘들 샅샅이 뒤지거나 유죄협상 해서 서로의 범죄 까발리게 하는 가능성도 주욱 읊어댄다. 



 써니가 방으로 옮겨가고 나는 조앤이 궁금해졌다. 

매릴랜드에서 남편과 개 두마리 새 한마리와 기니피그와 함께 사는데,

이 동물들을 어디다 맡길 데가 마땅치도 않고 맡아주는 곳에 돈 주고 맡기는 것도 싫고 해서 부부가 따로 휴가를 떠난다고 한다.

45년동안 결혼생활했는데, 휴가를 굳이 같이 보낼 필요는 없지 않냐고 한다.


이곳에 넷째 동생 조가 20년전에 와서 정착하고 있고, 2000년부터 2년마다 와서 동생을 보고 간다고 한다. 

동생은 옆에 창고를 개조해서 큰 허스키 한마리를 키우면서 살고 있고, 자기는 그 허스키를 조카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조는 이곳에서 홍반장 같이 마을 이곳저곳을 고치면서 살고 있단다. 

이 주변에는 두명의 조가 살고 있는데, 조앤의 동생은 그냥 조이고 다른 조는 티피 조라고 부른다고 한다.

왜냐하면 티피조는 앞마당에다가 미국 원주민 텐트(티피)를 짓고 거기서 잠을 잔다고 한다.

영하 40도에서도 거기서 침낭 펴놓고 살기 때문에 티피조라고 부른단다. 


 조앤과 이런 저런 얘기하다가 “제가 개썰매도 좀 타고 싶긴 한데요, 개썰매 좀 아세요?”라고 했더니 

방끗 웃으며 개썰매 찌라시들을 주욱 포트폴리오처럼 보여주면서 그렇지 않아도 자기도 개썰매 좀 타려고 계획하고 있었단다. 

이동네 개썰매 좀 끈다는 유명한 집에다가 어제 이메일을 했는데 아직도 연락이 없어서 다른 집을 컨택해보려고 한단다.

그럼 내일 같이 가면 어쩌냐고 했다. 공동구매하면 좀더 싸게 해줄 수도 있지 않겠냐고 했다. 저 위에서 듣던 써니가 그 공구에 참여하고 싶단다. 


 배차 시간이 요상하긴 했지만, 이 동네는 대중교통수단이 잘 되어 있었다. 

조앤은 자기는 환갑이 넘어서 버스비도 꽁짜라고 자랑을 한다. 

조금 있다가 동생 조랑 시내에 나가서 여행자센터 구경을 가려고 한단다. 여행자센터가 그렇게 좋다는 소리를 들었단다. 

나도 같이 따라가면 안되냐고 했다. 


 얼마 뒤 조가 왔고 우리 셋은 꽁꽁언 길을 걸어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버스를 타고 주욱 가서 여행자 센터를 구경했는데, 여기도 아주아주 멋있었다.

전시들도 아주 훌륭했고, 알래스카에서 원자력 발전 같은 것을 못하게 막은 학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외 이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의 생활 등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아주 멋졌다. 

특히 화장실의 표지판이 재밌다. 오는 내내 서먹했던 조가 점점 말을 시작한다. 

로비에서 나오는 영상을 보더니,

“너 저 다큐멘터리 꼭 봐야해!”라고 한다. “뭔대요?” / “여기서 혼자 집짓고 30년동안 산 사람 얘기야. 저것봐봐. 수동 톱자루로 직접 나무 자르고 있잖아. 

저거 잘라서 이제 오두막 짓고 거기서 혼자 사는 거야.” / “의료보험도 없었겠네요?” / “하하하, 그렇지! 야생의 삶을 살겠다고 한 건대!”.. 

제목은Alone in the wilderness 였고, 샴페인 가서 도서관에서 빌려 보기로 한다. 

여행자 센터 다 봤는데 너는 뭐 할 거냐고 묻는다. 그냥 별로 할 일은 없고 뭐 좀 먹어야겠어요.라고 했더니 자기네들도 밥 먹으러 갈 생각이었단다. 셋

다 모두 점심이 늦었다. 4시즈음이었으니..


 조가 이 동네에서 가장 환상적인 음식을 먹는 곳으로 가자고 한다. 좋다고 했다. 

어가면 된다고 했다. 걸었다. 설원을… 다리를 건널 때, 조가 말한다 

“이거, 사실은 이  길 밑이 강이다! 이건 다리야 원래.” 강이 꽝꽝 얼었고 그 위는 누군가가 차로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알래스카 간다 통보했을 때 엄마가 “다 좋은데 얼음판 위에만 가지마, 얼음엔 꼭 숨구멍 있어서 홀딱 빠지면 끝이야…” 꽁꽁 언 강의 경관이 좋았다. 


 영하 이십도… 덜덜 떨면서 한참 걸어 간 곳은… 조가 완전 맛있는 집이라고 데려가던 곳은…


Mayflower Buffet이라는 중국집 부페였다. 미국의 왠만한 동네에는 하나씩 있는 중국식 부페. 


그런데… 해산물로 가득했고 맛도 너무 좋았다. 게다가 나의 훼이보릿 영어 단어중의 하나인 메이플라워라니!

 같이 밥을 먹으며 아까 도둑질 얘기를 시작했다

. 조 아저씨는 “500불 넘으면 Grand Theft가 되어서 더 심각해 지는데..” 그랬더니 조앤이 “와이파이만 되는 모델이라고 했어.” / “그럼 다행이네…” 라길래 

끼어들어서  “근데 32기가 짜리래요…”라고 하자 “앗 그럼 500불 넘을 거잖아!”라고 하며.. 큰일 났다고 한다. 

조앤이 “그런데 훔친 카드도 썼어”라고 하자 조가 “연방범죄가 돼 그러면.. 큰일이다 걔들…”이란다. 

부페 한 접시를 해치우는 동안 우리는 걔들이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 아저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마 이혼을 하고 20년전에 이곳으로 와서 야생의 삶을 살고 있단다.

딸이 하나 플로리다에 살고 있단다. 그리고 지금은 강아지 링고를 자식삼아 키우고 있단다. 링고가 너무 하얘서 매일 눈밭으로 산책을 나가면 개랑 눈을 구별할 수가 없단다. 

언젠가는 애가 하도 안오길래 소리지르고 휘슬도 불고 별 난리를 쳤는데, 알고보니 옆에서 그냥 앉아있어서 얼마다 황당했는지 몰랐다 한다.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두통이 급습했다. 조앤이 웃으면서 “너 뇌가 얼고 있지?”라고 말한다. 우롱차를 건네며 이거 먹어서 빨리 온도 높여봐… 


 조앤이 장갑 좀 사러 가자고 해서 눈밭을 가로 질러 겨울용품 가게에 갔다. 맘에 드는 장갑이 없어서 그냥 나오려는데, 

버스 시간이 안맞아 가게에서 좀더 있어보기로 했다. 

캠핑용품을 살피며 조는 프로판과 부탄의 차이점을 설명해준다. 

밖에 있는 온도계가 영하 20도이자 조가 “오늘은 정말 따뜻하군, 여름이야 여름!”이란다.  

또 한 번 눈밭을 걸어 버스를 20분동안 기다리다 거의 쎄미 동태가 되어 버스를 탔다. 


 조앤이 자기는 숙소에서 2킬로 정도 떨어진 어썸한 스포츠 용품점 가서 장갑을 볼 건데 너는 숙소로 먼저 갈래 아님 같이 갈래라고 한다. 

같이 간다 했다. 스포츠 용품점에서 자전거로 만든 자전거 타는 사람이 재미있었고, 

일반 자전거 바퀴의 2.5배는 되는 이곳에서 타는 자전거도 구경했다. 

울로 짠 벙어리 장갑을 사고 싶었는데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결국 이곳에서도 허탕. 


 버스를 타고 갈 줄 알았는데, 걷는단다. 아… 영하 25도란다. 눈밭을 걷는다. 

연기가 폴폴 나오는 오두막이 보인다. 저게 뭐에요?라고 묻자 “태국 음식점”이란다.


조가 갑자기 “저 건물 보이지? 저기가 2008년 오바마 첫 선거 때 민주당 이 고장 헤드쿼터였어”란다. 

“알래스카는 계속 공화당인데 대학 다니는 애들이 90프로가 민주당이니깐, 대학교 앞에다가 지은 거지”라고 한다. 

조앤이 “저기를 봐!”란다. 하늘에서는 정말 달덩이가 떠있다. “이티가 지나가도 안 어색하겠어요!”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숲길로 들어가서 한참을 걸었다. 앞으로도 걸어보고 옆으로도 걸어보고. 군데군데 있는 집들 사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듣고… 


 숙소에 오니 자전거를 가져온 일본인 신참이 있다. 

겐조인가 겐치인가 하는 친구인데, 자전거 여행을 할 거란다. 

그래서 “그 바퀴로는 어림 없을 거야”라고 하며 내가 본 신세계 자전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오사카에서 세금 회계일을 하고 있고 휴가 받아서 오늘 이곳으로 왔단다. 오로라를 보려고. 


 왔더니 장기투숙하고 있는 또 한명 샬롯과 인사를 했다. 샬롯은 영국에서 왔고, 이곳에 대학 시절 교환학생을 왔단다. 

석사를 하다가 마치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다시 석사를 마치려고 하고, 마치면 이 고장 학교에 박사과정을 지원할 거란다. 

전공을 뭐 하려고 하느냐 했더니, Northern Studies라고 한다. 

그게 뭐냐고 했더니, 일종의 지역학 같은 거고 인류학이랑 정치학의 통섭적 학문인데, 자기는 북극 탐험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단다. 


 이윽고 티피조가 왔다. 봄에 와서 지금까지 티피에서 생활한다. 이곳에서는 정육점에서 일을 한단다.  

왜 굳이 거기서 자냐고 했더니 돈도 아끼고 싶고, 사실은 자기가 야생에서 얼마를 잘 버티며 살 수 있는가를 시험해보고 싶어서란다. 

거실과 샤워만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하고 나머지 생활은 이집 마당에 쳐 놓은 티피에서 하는 거였다. 

티피에서 침낭에서 자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텐트 안에 자기가 쉰 숨 때문에 생긴 성애들이 낀단다. 

한달에 한번은 그 성애를 다 털어주는데, 2주전에 했을 때 성애만 5킬로를 떼어냈다고 한다. “내가 5킬로짜리 얼음을 만든 거야! 숨만 쉬어서!!” 장하다고 해줬다. 


 조앤과 내일 개썰매를 상의했다. 

알고 보니 개썰매 좀 끈다는 그 집은 이번 시즌 일을 안하는 것 같단다. 

그러더니 두 군데를 보여준다. 한 곳은 어떤 아주머니가 있는데, 그 분이 왕년에 개썰매 참피온이었단다.

그곳에 한 번 가볼까 했더니 샬롯이 그 아주머니 요즘 몸이 아파서 안하는 것 같더라..라고 한다. 

그래서 다른 곳에 전화를 걸어 알아보니, 내일 오전에 전화를 준단다. 내일 날씨에 따른 개컨디션도 살펴야 하니 오전 10시즈음 전화를 준단다. 


 써니는 나보고 내일 버스타고 40분 정도 가면 있는 North Pole이라는 마을에 가란다. 

산타가 사는 동네라고 한다. 미국에서 애들이 산타에게 편지를 쓰면 이곳으로 배달되고 이곳 사람들이 답장을 써줘서 싼타 동네가 되었다 한다. 

조앤은 이번에 크리스마스에 거기 가서 산타 만나고 왔다며 포옹하는 사진을 보여준다.

진짜 만화에서 나오는 산타처럼 생겨서 “이거 사람인 거죠?”라고 했더니, 조앤이 정색을 하며 귀에다 대고 “싼타야”라고 대답했다. 


 거실에 다들 모여있다. 컴퓨터 화면을 모두 쳐다보며. 여기서 50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서 5분마다 사진을 전송하는데,

거기서 화면에 어느 부분이 녹색으로 바뀌면 몇 분 뒤에 나가서 보면 오로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모두들 그 화면을 넋놓고 보고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도, 오래 머무는 사람도, 이제는 익숙하게 오로라를 봤을 사람들도, 

이제 막 도착한 나도. 그렇게 화면을 쳐다보며 오로라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다. (그 실시간 사진 전송 사이트는 일본 정부 사이트인 것 같은데.. 정말 “일본”느낌이 살짝 든다)


 일본 겐치가 안보이길래 올라가 보니 침대에서 혼자 멍하게 있다.

수줍음도 많긴 하지만, 영어를  아주 많이 힘들어 했다. 오로라를 밑에서 모두 기다리고 있고, 어떤 화면을 봐야하는지 설명해줬다. 

밥을 못먹었는데 어떻게 해야하냐길래 먹을 거 있냐고 물으니 컵라면을 가져왔단다.

밑에서 물 끓여서 먹으면 되니 와서 같이 오로라나 기다리자 하니 알겠다며 내려왔다. 그가 가열차게 끓인 컵라면은 카레면.  


중국인 써니와 일본어로 얘기를 한다. 써니는 어렸을 적 아부지가 일본에서 박사 과정을 해서 초딩 시절 5년을 그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거의 한가지 언어만 하는 미국인과 일본인, 두가지의 언어와 한가지 언어를 걸치고 있는 한국인, 그리고 세가지 언어를 하고 있는 중국인. 

그런 그림이다. 식탁에서는 언어들이 스윗칭 되면서 대화가 이어진다. 


 신이 있다고 믿느냐, 야생의 삶을 시험해보고 싶다는 티피조는 박사 과정에 가겠다는 샬롯에게 왜 굳이 뭐하 공부를 하려고 하냐고 묻고 있고, 

조앤은 옆방에 있는 빌리 할머니에게 페이스북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며 종종 멋진 사진들을 보여준다. 


커피포트를 가운데 두고 다들 거실에 두런두런 앉아있다. 

언제 한 번 본 사람들은 아니지만... 누군가 말했다던 일시적 자율공간이란 이런 것인가 싶다.

뜨개질을 하고 책을 보고 인터넷을 하고..

각자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지만 귀 한쪽은 상대들에게 열려있어

언제든 이야기에 들어갔다 나오는 그런 모습. 



 빌리 할머니는 오늘 마음을 다쳤다. 40년 동안 이런 일이 없었다. 

문을 잠그지도 않고 누구나 열쇠없이 자유롭게 왔던 곳이었는데… 

얼마전에는 오후 5시에 오겠다던 아이가 연락도 없이 새벽에 와 놓고서는 방이 없다고 하자, 그 부모가 인터넷에 거짓말로 악평을 올려서 마음 고생도 있었다 한다. 

이런 일까지 벌어졌으니 빌리 할머니에게는 참으로 슬픈 날이다. 


오로라 실시간 전송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서 한참 있다가 들어온다. 

오로라가 보이면 서로에게 소리 질러 알려줄 거라는 무언의 약속이 있고.. 

영하 25도 정도되는 곳이지만, 정해진 순서도 없지만, 화면만을 믿기 보다는 그렇게 차례차례 나가고 있다. 


보름일 것 같은 달이 떴고, 달만으로 이렇게 세상이 밝아질 줄은 예전엔 몰랐다.

그렇게 모두들 기다리고 있다. 




(이 마을에 달 뜬 사진은 빌리 할머니가 조앤에게 보낸 사진을 포워딩 받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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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댓글

armian98

2014-04-29 21:52:59

이야! 역시 재밌습니다.
읽다보니 조앤롤링 느낌도 나고요.. ㅎ
사진의 개가 썰매를 끈 건 아니죠?

사리

2014-04-30 22:48:17

사진의 개는... 조 아저씨의 자식인 링고에요 ㅎㅎ 


기돌

2014-04-30 06:58:34

스토리 너무 재밌네요. 등장하시는 분들 얘기도 참 재밌습니다. 쭈욱 읽어 나갈때는 소설 같은 분위기였다가 아래쪽에 사진을 보면서 아~~~ 이게 그장면 사진이구나 하면서 현실로 돌아옵니다.

사리님 글 잘 쓰시네요^^

Livingpico

2014-04-30 07:34:53

후기 재미있습니다!!!

저번에 말씀하셨던 개도 보이는것 같고, 저기.. 화장실 표지판.ㅋㅋㅋ 

차도남

2014-04-30 19:43:29

저도 진짜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기 까지 한데요. 사진을 올리셔서 믿지 아니면 그냥 자작하신 글로 착각할 것 같네요ㅎㅎ 사실 저도 페어뱅스는 여름에만 딱 두번 가봐서 겨울의 그곳은 어떨지 상상이 잘 되지않아 사리님의 글로만 페어뱅스의 겨울 풍경을 그려봅니다. 한 겨울에는 앵커리지에서도 조차 밖에 서 있고 걸어다니는 것이 힘든데 페어뱅스에서 버스를 타고 걸어 다니시다니 정말 용감하시네요..  글도 정말 잘 쓰시지만 저는 사리님이야 말로 여행을 즐길 줄 아는 분 인 것 같아 부럽습니다. 버스를 타고 길을 걷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는 모습들이 너무나 인상적이네요.. 마모를 알기전 여행가면 한국 민박집에서 여행객들과 같이 이야기하던 옛날 생각도 나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편이 제일 솔솔한 재미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혈자

2014-05-02 02:00:37

아 이거 1편 대박 2편 중박에서 다시 3편은 초대박 필인데요? 흥미진진합니다.


근데 급히 여행하신 분이 이렇게 에피소드를 많이 만드실 수도 있는겁니까? 증거사진 구글에서 퍼오셨죠!!! ㅋㅋㅋㅋ

혈자

2014-05-02 02:01:13

자세히보니 사견현장도 있네요 덜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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