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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겨울, 알래스카 4 - 2012년 12월 29일

사리, 2014-04-30 22: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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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9일

오로라를 기다렸다. 새벽 5시까지. 
북쪽에서 30마일 떨어진 곳에서 오로라의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나갔더니 구름이 끼어 있었다. 
구름낀 사이로 연두색 빛깔이 보인다. 저것이 오로라일까 아닐까? 물론 아니었다. 

10시즈음 느즈막히 일어나니 조앤이 개썰매 참피온과 이야기가 되었단다. 
근데 그쪽까지 가는 버스가 없어서 택시를 타야한다고 한다. 
개썰매장은 주소도 없는 곳이었는데 개썰매 참피온이 말해준 길 찾는 방식은
 “어느 길을 타고 오면 식당 하나가 보일 거에요, 거기서 한 3마일정도 주욱 들어오시면 될 겁니다.” 

택시비도 알아보고 썰매값도 알아보니, 100불이 넘는 돈이 들어서 포기하기로 했다. 
갑자기 조가, 지나가다가 이 동네 근처에서 개썰매 광고를 본 것 같다며 수소문 해보니, 어제 자전거 타는 자전거가 있는 그 뒤에 있었다.
전화를 해보니, 오늘은 안되고 내일에서야 가능하단다. 내일은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앵커리지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써니가 가보라던 노스폴(north pole)에 가기로 했다. 
일곱살 때, 절에만 열심히 다니셨던 아버지가 싼타 복장을 하고서 선물을 주었다는 걸 깨닫고는
싼타에 대한 일말의 미련 조차 없었지만, 조앤과 써니가 하도 가보라해서 어쩔 수 없었다. 
산타 마을에 가봐야지… 산타 우체국과 산타 거리도 있겠지… “
지금도 싼타가 있어요?”라고 묻자 “그 동네 싼타는 365일 상주중인 것 같더라”라고 조앤이 말해준다. 

 버스에 타기 전 어제 밤 조가 버스정류장에 이 동네에서 가장 먹어주는 장난감 가게가 있으니 꼭 가보라고 해서 갔다. 
링고에게 줄 럭비공 하나를 사고 순록인지 사슴인지 녹용이 아주 큰 사슴같은 것을 기념품으로 사서 챙겨서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보니, 순록인지 사슴인지 그 장남감은 “호주 디자인상”을 수상했고 호주에서 디자인 했으며 물건은 중국에서 만들었단다. 
알래스카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게다가 알래스카는 부가가치세도 받지 않으니 잠깐 전시되어 있던 것을 제외하고는,
카드 명세서에 알라스카에 있는 장난감 가게에서 산 것을 제외하면, 호주 디자인상 받은 중국제 순록인 거다.
 
20킬로 정도 떨어진 노스폴로 향한다. 시내에 있는 버스 환승센터에서 한 번 갈아타야 한다.  
환승 시간이 30분 정도가 있어서 여적 구경하지 못한 시내를 구경한다.
낮술이나 한 잔 하고 산타를 만날까 해서 하루에 네 시간 있는 낮 시간에도 기여코 열려있는 바에 들어갔다. 
담배 연기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자욱했고, 바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미 충분히 취한 상태였다. 대부분 원주민이었고… 

기분 좋게 낮술하기에는 낮시간이 너무 짧아서 아깝기도 하거니와 아직 잠도 덜 깼으니 차라리 커피를 마시자는 생각에 발길을 돌렸다.
환승장 앞에 있는 커피집에는 말끔하게 차려 입은 누가 봐도 “우리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라고 써 있는 사람들이 앉아있다. 
주문을 받던 대학생으로 보이던 점원이 책을 읽고 있다. 콜레라시대의 사랑.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구나!” 라니,
“어 완전 재밌어, 너도 읽었어?” 라길래 “읽긴 읽었는데, 나는 에이즈 시대의 사랑을 더 재밌게 읽었어.”라고 했다. 
그건 뭐냐고 묻길래 아프리카 어떤 나라에서 인구 1/3이 에이즈 양성 반응을 보이는데, 
그런 상태에서 젠더와 친밀성이 어떻게 변동하는지에 대해서 쓴 인류학책이야 라고 대답했다. 
낭만을 깬 건가…

카페에는 예전에 갖고 놀던 장난감이 있었다. 
수평으로만 움직이는 것과 수직으로만 움직이는 굴림쇠가 있어서 모래판에 그림을 그리고, 
뒤집어 흔들면 그 그림이 사라지는… 초딩 때 갖고 놀던 것과 딱 똑같은 것이었다. 소원을 담아 정성스럽게 썼다.
“오로라여…”라고.

 노부부와 함께 버스를 타고 노스폴로 향한다. 
알래스카 지도를 보다보니 맨꼭대기에 Barrow라는 마을이 보인다. 
어름에는 저기까지 자동차를 타고 갈 수 있을까? 
위키페디아에서 찾아보니 세계에서 9번째로 북극점에 가까운 마을이고 주로 북극/북극해 관련 연구와 작업을 주로 하는 마을인가보다. 
뒤에 있는 부부에게 물어봤다. 거기까지 자동차 타고 갈 수 있냐고. 
아저씨가 웃으면서 자동차로 갈 수 없단다. 그럼 어떻게 가야하냐고 물으니 비행기를 타고 갈 수밖에 없단다. 

젊었을 적 아저씨가 그곳 기지에서 일을 했었다고 한다. 
아저씨의 이름은 테리, 알래스카 서북쪽 우나라클릿이라는 마을 출신인 원주민 아주머니는 노라. 
보청기를 한 아저씨와 이가 몇 개 듬성듬성 빠진 아주머니.그 둘은 결혼을 했고 다른 마을에 살다가, 
몇 해 전에 이곳 페어뱅크스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아들은 아주머니의 고향 마을에, 딸래미는 캘리포니아 버뱅크에서 살고 있는데 여름이면 캘리포니아에 친척들 일도 도와주고 딸도 만나고 온단다.
이곳에서 살면 한달에 난방비가 얼마나 나올지 궁금해졌다. “한달에 난방비 얼마나 내요?”라고 묻자 “렌트에 포함되어 있는데?”라 한다. 
아.. 더 궁금만 해졌다. 

여름엔 알래스카에서 어디를 가야하는지 알려준다. 
어떤 곳에 가면 빙하를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빙하 관광할 적에 손으로 만질 수도 있는데 지금은 금지되어 있단다. 
“글로벌워밍이 아니라 핸드워밍으로 빙하가 사라질까봐 걱정됐나보네요!”라고 했더니 두분다 신나게 웃는다.
운이 좋으면 빙하의 일부분이 갑자기 녹아서 떨어지는 걸 볼 수도 있단다.
테리에게 “그럼 관광하다가 빙하 파편 맞아 죽을 수도 있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럼 진짜 운이 좋은 죽음이지 않겠냐는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테리와 노라는 연말인데 심심하기도 하고, 한해 가기 전에 산타 클로스나 보고 싶어서 가는 길이라고 했다.
방향이 같으니 같이 가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렸다. 
예상과는 다르게 거대한 산타 동상이 있다. 예사롭지 않은 몸의 곡선이다. 산타의 궁뎅이를 찍었다. 
노라에게 “싼타 궁뎅이를 찍었어요!!!”라고 했더니 노라가 방긋 웃으며 “그럼! 산타는 궁뎅이지!”라고 말해준다. 
노라가 테리에게 “저 녀석 싼타 궁뎅이 찍었다!”라니깐 테리는 “저렇게 큰 궁뎅이 보기도 힘들 거야”라고 말해준다. 

얼음과 눈이 펼쳐진 곳에 아기자기하게 있을 싼타의 마을과 싼타 우체국을 기대했었지만… 
마주한 것은 산타 쇼핑몰이었다. 아.. 여기는 미국이었지!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됐다. 

중국 사람들이 거의 절반
. 피곤해 죽겠다는 표정을 한 싼타가 아이들과 사진을 찍어준다. 
그 피로에 한 숟갈 얹고 싶어서 사진을 청했다. 싼타에게 특별 부탁을 했다.
“저는 나쁜 사람이니 저를 혼내 주소서…”라고 했더니 “혼내는 건 내 일이 아니다, 나는 선물을 주는 사람이다”라며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다. 
엉거주춤 무릎을 꿇고 산타에게 영세를 받는 꼴이 되었다. 
쇼핑몰 안에 전시된 꼬맹이들이 보낸 편지와 50년대 크리스마스 물건들을 보면서
테리는 “나 어렸을 적에 있었던 물건들이야!”하면서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얘기를 해준다. 

 어제 새벽에 오로라를 기다리면서 써둔 연하장을 노스폴에 있는 우체통에 넣었다.
기념품 파는 곳을 무심히 지나다가 (미국 기념품 가게 어디든 가면 있는) 알래스카 차번호판에 노스폴이라고 써 있고
그 위에 LEE라고 이름이 써 있는 작은 열쇠고리가 있다. 
이거 하나 사보자 하면서 짚다가 문득 조앤과 조의 이름도 찾아보니 다행이 있어 샀다. 
눈길을 걷다가 눈이 좀 높게 쌓여 있으면 테리는 늘 먼저 가서 노라의 손을 잡아준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테리와 노라가 담배를 꺼내 피운다. “너도 한 번 피워 볼래? 이거 맛이 참 좋아” 
말보로 72인가 하는 담배라는데 이번 여름에 캘리포니아에 갔을 때 아주아주 많이 사왔다고 자랑한다. 
둘이 다정하게 피운다. 여름이 찾아오면 이곳에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테리가 주소를 적어 준다. 
꼼꼼하게 쓴 손글씨. 오늘 한나절 같이 보내면서 느꼈던 그 인상이 그대로 담겨진 글씨체였다. 

오늘은 앵커리지에서 기차가 오는 날이다. 그래서 빌리의 게스트하우스에도 사람들이 많다. 
일본 직장 초년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4명이 왔고 그 뒤에도 한둘씩 더 들어왔다.
들어올 때 나는 무슨 일본 국가대표 봅슬레이팀원들이 오는 줄 알았다.
왜 왔냐고 물으니 오로라 보러 왔단다. 봅슬레이는 아니었나보다.

마사오라는 아이가 왔다. 마사오는 세계여행을 시작했고 첫 목적지가 바로 알래스카라고 한다. 
알래스카와 라스베가스를 거쳐 멕시코와 중남미를 거쳐 유럽엘 갔다가 돌아갈 예정이란다. 
대학을 가지 않았는데, 안간 걸 후회하고 있고, 지난 4년동안은 일본에서 영어강사를 해왔단다. 
서른이 되어서 갑자기 더이상 그렇게 살긴 싫어서 세계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마음 먹었단다. 
이모는 시집 안간다고 여행 떠나는 길에 잔소리를 퍼부었고, 엄마는 언젠가 자신이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단다. 

여기서 만난 일본 남자아이들이 더듬더듬 자기 이름을 말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한 다음에 
내가 한국 사람인 걸 알고는 처음으로 묻는 질문이 “너 카라 아냐?”인데, 
마사오는 카라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제 겐치는 내가 장난삼아 “카라가 누구야?”라고 하자 
그 수줍은 목소리와 엉덩이로 “라라라라라라라”하며 카라 엉덩이춤을 추며 “정말 얘들을 모르냐?”라고 하지 않았던가. 

 서른살의 여성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같은 고민을 하는 건가. 
서른살 때 직장을 떠난 친구들이 내 주변만 하더라도 얼마나 많았던가. 시
집이나 가라지 하는 친척 사회의 겐세이와 저것이 언젠가는 떠날 줄 알았다는 부모의 이야기는 얼마나 반복되었던 레파토리였던가. 
 언제까지 여행을 할 거냐니깐, 돈 떨어질 때까지 할 거란다. 
남미 가서는 스페인어도 배울 거라고 한다.
그래 많이 배우고 즐기렴… 근데 나 처음 여행가서 돈 털려서 바로 며칠뒤에 다시 지네 나라 돌아간 애들 꽤 많이 봤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는데, 
“거기가서도 생면부지 사람한테 초를 치고 자빠졌구나!”하고 할 것 같은 친구들의 아우성이 저절로 들려 관뒀다. 

 오늘 하루 종일 목도리 뜨개질을 하고 있는 조앤이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리포팅을 하라고 해서 주욱 읊고 검사를 받았다. 
조앤에게 열쇠고리를 주니 꼬옥 끌어 안아 준다. 
링고를 위한 럭비공을 보여줬더니, 내일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축구팀 경기가 있는 날인데 정말 타이밍이 절묘한 선물이라면서 좋아한다. 

 싸우디아라비아 출신에 학부 2학년 아이들이 들어왔다. 오늘은 무슨 군대 훈련소 같은 느낌이다. 
일본 20-30대 직장 남자 5명, 학부 2학년들인 중국남자 한명 사우디아라비아 남자 두명.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남자아이들은 고등학교 동창인데 둘이 크리스마스부터 뉴욕에서 같이 보내고 있다가 온 거란다. 

일본 남자 아이들도 초식끼가 좔좔 흐르고 나는 이제 초식이다 못해 자웅동체 혹은 플라나리아로 전향되었다고들 하니… 
논산훈련소 같은 인구 구성이지만 느껴지는 분위기에서 갑자기 무엇인가 정리되는 기분이다.
오로라가… 전세계 초식남들의 로망이었던 거구나… 아….. 

 한 남자가 들어온다. “난 똑똑한데 야생의 체험을 하러 왔어!”라고 얼굴에 써 붙인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미국인 써스틴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왔고 엔지니어란다. 써스틴가 싸우디 초식 둘이 배고파 죽겠는데 어디서 무얼 먹어야 하냐고 한다. 
길을 알려주는 것도 좀 불안하고, 오늘은 왠지 내가 어제 받은 것만큼 새로온 사람들에게 해줘야 할 것같아서,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같이 나갔다. 
근처 태국음식점이 있는데 아직 열었는지는 모르겠고, 그 옆에 주유소에 딸린 가게는 늦게까지 연다니 
안돼도 거기서 먹을 것 좀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한 20분을 같이 걸어갔다. 미국 초식, 싸우디 초식들은 모두 공대남. 

눈길에 뽁뽁 소리가 나는 게 재밌는지 “계속 이런 소리가 나?”라길래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싸우디에서 산 이들에게 눈길을 걷는 게 얼마나 레어한 경험이었겠는가)
“어 계속 그래, 헌데 눈길 걷다가 갑자기 평평한 바닥 걸으면 뭔가 울렁 거리는 게 이상한 기분 난다?”고 말했다. 
써스틴이 “앵? 너 운동화 신었어?”란다. “응 왜?” / “체육관 가서 러닝머신 뛰러 가는 거야? 너 신발 이것만 갖고 왔어?” 
/ “어! 내 신발 중엔 가장 두꺼운 거야…” / “헐 미쳤어! 이 추운 곳에 눈길 걷는데…” 싸우디 초식들도 말을 거둔다. 
눈길을 걸을 일 없는 이들은 눈길 걷는 신발을 모두 신고 있었다…
무슨 탄소 섬유로 만들어서 전혀 발이 시렵지 않다는 신발이라는 둥… 바닥에 무슨 미끄럼 방지가 있다는 둥… 
각자의 신발에 대한 기능을 친절히 설명한다. 
“이베이에서 35불이면 살 수 있어!” 그래.. 참 고오맙다.. 그렇게 자랑을 하던 써스틴이 갑자기 덩그렁 미끄러졌다. 
안미끄러지고 특수 탄소섬유로 만들어서 절대로 춥지 않다던 그 신발이 그가 자빠질 때 가로등 빛을 받아  번쩍였다. 
보란듯이 내달려 줬다! 그냥 아디다스 운동화 신고도 이렇게 안미끄러지고 잘 달린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달까. 

 타이레스토랑의 매장은 십분전에 닫았고 차갖고 와서 픽업하는 드라이브인만 가능하다고 한다. 
굳게 걸어잠긴 문에다 대고 
“저희는 차가 없는데, 차 없으면 먹지도 말란 뜻인가효? 이 아이들이 배가 고프답니다. 새해가 밝아오고 있어요, 좋은 일 좀 하세요”라고 소리쳤더니, 
주인 아주머니 빵 터지면서 “그래 와서 먹어라 먹어!”란다. 
주인아주머니한테 내가 비아냥과 읍소를 하고 있는 사이, 매장이 닫혔고 드라이브인만 가능하다는 표지판을 보고 지레 포기해버린 이 초식 세명은 
드라이브인에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차 뒤에서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 가지가지 한다. 개떨듯 떨면서 차 뒤에서 셋이 순서기다리며 올망졸망 기다리고 있는 것이 가관이다. 

“야! 들어와! 여기서 먹어도 된대!”라고 소리지르니깐 은혜 받은 얼굴로 뛰어 들어온다. 
 써스틴은 똠양꿍을 “스파이시”레벨로 시켰다. 
아마즈인가 하는 싸우디 초식남의 절정 – 잘쌩기고 말도 문장 만들어서 하지 않고 단어를 던지는 식으로 말하는 차사남 즉 차가운 사막의 남자도 
팟타이에서 똠양꿍으로 바꾸며 자기도 스파이시를 먹겠단다. 
초식남이지만 순둥이인 나머지 아이는 “팟타이요~ 저는 그냥 안맵게 해주세요…”라고 하고. 

내가 “똠양꿍 괜찮겠어? 난 그거 잘 못먹겠던데… 그리고 너네 매워도 괜찮겠어?”라고 했더니, 괜찮다고 한다.
서스틴이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한참 일장 연설 듣고 있다가 음식이 나왔다. 
써스틴을 꽤 잘 먹었지만… 차사남, 한 숟갈 먹더니 얼굴에 붉은 기운이 돈다.
“너 진짜 괜찮겠니?”했더니 “응 조금 맵지만 맛있네”란다. 새우를 집어 든다… 먹는다… 울컥 한다… 못봐주겠다… 
맨밥을 건네며 “야 이거 먹어서 넘겨. 그럼 덜 매워”라고 했다. 밥을 우역우역 먹는다. 
“야 건더기 물에다 한 번 행궈 먹든가.. 나 초딩 때 그렇게 먹었었어. 그럼 덜매워”했더니 
그건 자존심 때문에 차마 못하겠고 죽어라 맨밥을 입에 넣는다. 쎈척 하더니… 

 밤하늘에 별을 쏟아진다. 
써스틴이 핸드폰을 꺼내서 저기 별자리가 궁금한데?하더니 어떤 앱을 실행시킨다. 
촛점을 달에다 맞추자 위치 인식을 해서 지금 보고 있는 별들이 무슨 별인지 별자리까지 뜬다… 
세상에… 어썸! 
공대애들과 다니면 이런 거 건지는 게 꼭 하나즈음은 있다. 

갈 때와 다른 지름길로 가고 있는데 차사남이 계속 이 길이 맞냐고 물어본다. 
너무 멀리 오고 있는데 숙소가 안보인다고 투덜댄다. 맞는 길이라고 하는데 계속 제촉하고 의심한다. 
또 물어보는 순간 바로 앞에 숙소가 딱 나왔다. 막 달려간다… 숙소에 들어가면서 “나 사실은 너무 추워서 죽는 줄 알았어…”
노스페이스로 무장하고 특수 신발까지 신었다면서… 그래 한국 출신이 싸우디 출신보단 추위를 덜 타겠지.. 

 숙소에 와보니 일본 초식남들… 테이블에 모여 앉아 원카드를 하고 있다. 
조앤은 알래스카에서 고래가 얼음에 갇혀 미국과 러시아가 쇄빙선으로 구출한 스토리의 영화가 나온다며 보란다. 
영화 속에 사라페일린이 기자로 나온단다. 실제 이야기였고 그당시 사라페일린이 기자로 보도를 했었단다.
그 화면이 영화에 나온단다. 사라 페일린이 기자였구나… 근데 기자였는데 왜 그렇게 멍청한가 했더니, 이 질문 자체가 얼마나 멍청한 질문인가 싶다. 
조앤은 “저냔은 여자들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주기만 해! 여성에게 수치야!"라고 화를 버럭낸다.
조앤과 조... 미국의 건강한 워킹 클래스 집안의 출신으로 둘다 민주주의와 다양성에 대해서 지식보다는 믿음과 신뢰를 갖고 살았다.
그런 그들에게 티파티의 사라페일린은 얼마나 혐오스러운 사람이었을까. 

 써스틴이 따라다니면서 말을 시킨다. 
세시간 넘게…  자기가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일주일 내내 일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행복하단다. 
미국에서 만난 오덕 싱글들의 특징들을 거칠게 일반화해보자면,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자기가 자기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일장 연설을 계속 한다는 것이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자기 친구가 칼텍에서 하는 실험을 도와줬단다.
친구는 보잉사에서 공기 흐름과 힘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는데, 보잉 787 제작에 참여했고 이번에 새로운 실험을 해서 그때 도와줬단다. 
아무리 말을 잘라도 따라다니면서 떠들어서 죽겠는데, 보잉 787이라는 말에 귀가 번뜩! 이야기를 들어보니양력 같은 것을 실험한 것 같다.
양력과 같은 무슨 날게에 미치는 공기의 압력과 영향이 이론적 가설로만 계속 존재했는데 실증적으로 증명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이번 실험을 통해서 실재로 했단다.
(정확히 양력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무슨 날개와 속도 그리고 힘에 대한 어떤 것이었고, 별로 깊게 묻고 싶지도 않아서 설피 들었다)
이 실험을 위해서 지하에 5층 규모로 땅을 파서 실험실을 만들고 블라블라블라… 
 (서스틴은 오늘 침대가 없어서 바깥에 신발장 앞에서 추위에 떨며 잘 예정이다..) 

내가 설피 듣자 이제는 이야기 주제를 담배로 바꾼다. 
자기가 어떻게 담배를 피우게됐으며 어떻게 변화했는지… 머리가 아프고 기운이 없어지길래 담배를 끊어봤단다. 
니코틴 패치가 도움이 된다고 해서 붙이기 시작했는데 니코틴 패치에 중독되어 어쩔 땐 3장을 붙이고 있기도 했단다. 
아.. 이 아이 참 물어보지 않는 걸 계속 말한다. 담배는 끊었지만 이제 씹는 담배를 한단다. 
비행기나 기차안에서 하면 아주 마음이 편하고 좋단다. 실험실에서 나갈 수 없을 때에도 이게 최고란다. 
갑자기 나가더니 불쑥 씹는 담배 한 통을 내민다.. “너도 언제 해봐!” 알래스카에서 온 첫날부터 다 담배다. 
김수현 닮은 눈치우는 청년도 밤길을 걸어갈 때 불뜩 “이거나 피우면서 걸어가”라고 하질 않나, 
신호 대기에 서 있으면 그렇게 담배 달라는 사람들이 오지 않나… 
태리와 노라도 불쑥 맛좋은 캘리포니아에서 사온 담배를 피워보라고 하지 않나… 
정작 캘리포니아에서 온 써스틴은 씹는 담배 한통을 불쑥 내밀지 않나… 내가 흡연자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어떤 소통들이 담배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오늘은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 예보에 의하면 “3레벨”로 페어뱅크스에서 관찰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했다.
하지만 조앤은 지난 2주간 오로라가 나타나지 않았다며 오늘이 마지막 밤인데 못보면 어쩌냐고 했다… 
개썰매도 못타게 됐는데… 날씨에는 구름이 많이 낄 거라고 한다.
북쪽 지역의 실시간 사진을 보니, 오로라가 얇게 있길래 혹시나 하고 나가보았다.
헌데… 길이 끝나는 지평선 지점에 붉은 빛깔과 푸른 빛깔이 스치며 어스름하게 보인다. 
저것은 오로라일까? 달려갔다. 길을 따라 지평선쪽으로. 바람을 가르며 달려간다… 

그것은..
그것은…

경찰차였다. 누군가 음주운전을 하다가 잡힌 것 같다…. 
경찰차의 경광등이 멀리서 번쩍번쩍댄 것이었다.. 
아…아…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 거칠게 춥다. 

다시 들어와서 앉아… 12시에서 2시 사이가 가장 보기 좋은 시간이라는데… 
결국 개썰매도 오로라도.. 원했던 어떤 것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 같다.. 

신발장에서 잔다던 써스틴에게 내 침대에서 자라고 했다. 
나는 오로라 나오나 지켜 보려고 새벽 늦게까지 깨 있다가 아침 일찍 나가야 해서 거실에서 소파에 있다가 나가려고 하던 참이라고.. 
써스틴이 쎈척한다. 밖에서 잘 수 있을 것 같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새벽 2시가 넘고 있다….

겐치가 내려온다. 내일 자기는 다른 곳으로 간다고, 자전거 여행을 드디어 시작할 거라고. 
인사를 주고 받다가 갑자기 겐치가 거실의 컴퓨터 화면을 가르키면서 “오로라데쓰!!!”라고 외쳤다.

진짜로 오로라가 하늘에 갑자기 쫙 퍼졌다. 달려나갔다.
하늘에 푸른빛이 가득하다. 소리를 지르며 길 건너 더 잘보이는 깜깜한 곳으로 달려갔다. “

오로라데쓰 오로라데쓰 스고이 스고이!” 서스틴도 달려나오고 다들 나왔다. 하늘엔 오로라가 가득하다.

오로라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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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댓글

쌍둥빠

2014-04-30 23:16:32

오로라를 보셨군요! 사리님이 느끼셨던 쾌감이 글로 전해집니다 ㅎㅎ

하늘향해팔짝

2014-05-01 06:48:24

우와아. 오로라. 오로라는 가을부터 봄까지 볼수 있다던데 여름에는 정녕 못 보는건가요? 겨울 너무 추울거 같고 가져갈 옷도 없어서 겨울은 못 갈거 같은데요. 알라스카도 여행 리스트에 추가 했습니다.

역시 글발 정말 좋으시네요. 수필이나 소설 읽는거 같아요. 공짜로..심봤어요.

반니0102

2014-05-01 06:55:02

이렇게 아름다운 오로라를 사진으로 보다니... 안구정화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리님 :)

차도남

2014-05-01 21:27:22

하하 오로라 아니 노던 라이츠를 보셨군요... 사리님 글을 읽으니 겨울의 페어뱅스를 꼭 가보고 싶어지네요. 올 겨울에 한번 페어뱅스 가족 여행을 해봐야겠네요..치나 온천은 못 가셨나봐요.. 담에 또 방문할 기회가 있으시면 치나 야외 온천에서 별이나 노던라이츠를 보면서 온천욕을 즐겨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편도 무지 재밌게 읽었습니다.

사리

2014-05-01 22:19:57

치나 온천은 여름에 갔었습니다. 한 겨울에는 사람이 워낙 많고 비싸서 엄두도 안나고 혼자간 여행이라 최소한의 경비로 최대한 사람들과 묻어 다니면서 노는게 목적이었거든요.

그곳 온천은 여름에 부모님과 자동차 여행 + 크루즈 하면서 처음에 갔었어요 ㅎㅎ 

여름에도 아주 좋더라구요.. 무엇보다도 온천에 사람이 저희밖에 없어서 진짜 다 내것인양 누리고 왔지요. 

armian98

2014-05-01 21:49:40

항상 소설 읽는 기분으로 재미나게 연재 읽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오로라 스고이네요!

사리

2014-05-01 22:21:08

@쌍둥빠 @하늘향해팔짝 @반니0102 @armian98 


캄사합니다! 

혈자

2014-05-02 02:08:11

오로라..오로라다 ㅠ_ㅠ

알라스카 뽐뿌를 받게될 줄이야... 털썩 Orz


추운동네는 리스트에 없었는데 말입니다요 >_<;;


그나저나 원카드라니... 초식남들은 원카드를 치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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