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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호수 salt lake city 솔트레이크

절교예찬, 2012-08-08 15: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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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조금 늦은 솔트레이크 시티 salt lake city 후기입니다.

솔트레이크 공항은 마치 시골 간이 정류장을 연상시키는 작은 공항입니다.

그래서 렌터카 회사들도 공항터미널 바로 옆에 있어서 따로 셔틀이 필요없습니다.

Security 통과 전에는 따로 식사 할 곳도 거의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 스타벅스 하나 뿐입니다.

대신 공항 근처 호텔들에서 무료 셔틀을 자주 운행합니다.

제 숙소는 당연히 Radisoon이었습니다.

도시가 작아서 공항 - 숙소 - 다운타운 거리가 아주 이상적이었습니다.

 

=====================================================

 

지금이야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외국인을 내국인만큼 쉽게 볼 수 있지만

1980년대 말, 내가 고등학교를 다녔던 소도시에서는 외국인을 별로 볼 수 없었다.

어찌나 외국인이 드물었던지

이제 막 영어를 배운 조금 용감한 학생들은

서양사람만 만나면 그가 미국인인지 아닌지를 따질 겨를도 없이

자기 손목에 시계를 차고서도 무조건 What time is it now? 라고 물었고,

그걸 무용담으로 만들어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그 소도시에 그나마 가끔 보이던 외국인들은

늘 검은 양복, 하얀 와이셔츠에 둘씩 짝을 지어다녔으며

늘 웃는 낯이었다.


영어라곤,

교과서로밖에 배울 수 없었던 환경에서

"'진짜 영어'를 배우려면 그 사람들을 사귀면 된다"는 소문이 우리들 사이에 퍼져있었지만

"저 사람들한테 한번 걸려들면 죽을 때까지 그 사람들이 믿는 종교를 믿어야된다"는 헛소문도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아는 한 내 주변 친구들 중에는 그렇게 간 큰 짓을 하는 아이들이 없었다.


그런 시절로부터 25년이 훌쩍 지난 오늘,

나는 그 하얀 와이셔츠에 늘 웃는 낯을 가진 사람들의 본거지에

내 발로 찾아왔다.


 

내가 이 도시를 찾은 이유의 90%는 소금 호수에 있지만

정작 나에게 이번 여행의 보람을 준 건

이 몰몬교도들이 오랜 세월 이 도시에 이루어놓은 것들이었다.

바다보다도 훨씬 염분이 높고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의 광할함이

나에게 감흥을 주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다.

나는 어느새 제국의 규모에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사람들은 여전히

깔끔한 옷에 웃는 낯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아니, 내가 이들에 대해 잘못알았던 게 있다면

1980년대의 한국같은 작은 나라에까지 전도를 다녀야할만큼

교세를 확장하기 급급한 줄 알았던 이 몰몬교가,

알고보니

반대로,

멀고 먼 한국같은 나라에서까지도

순전히 자비로 이곳까지 자원봉사를 올 정도로

신앙심 깊은 사람들로 탄탄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남의 글을 온전히 이해하기 시작한 이래로 내가 가지게된 몇가지 믿음 중 하나가

"(경멸적 의미의) 촌스러움이란 편견의 깊이와 비례한다" 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 문화 혹은 종교를 관용하지 못하고

'이상한 것'으로 폄하하는 것이야말로 갈등과 분쟁의 근원이다.


솔트레이크 시티의 가장 큰 볼거리는 템플 스퀘어라고들 말하지만

그 바로 옆의 돔형 건물에 세계 최대 규모의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

건물은 음향학적으로 설계되어 작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50미터 뒤쪽까지도 들리고

그래서 마이크 없이 이야기를 한다.

시간에 잘 맞추어 가면 바로 그 세계 최대라는 오르간 리허설 (30분)을 들을 수 있다.

시간에 대어 갔더니 마침,

좋아하는 곡이 두곡이나 들어있다.


유홍준은 지리산 좋아하는 사람은 모짜르트 보다는 바흐를 좋아할 거라고 했지만

그건 편견이 지독한 유홍준의 생각이고

나는 바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곡 중에 좋아하는 곡이 딱 하나 있었는데

마침 그 곡이 연주되었다.


Jesu, Joy of Man's desiring / Bach

(embed 하는 법을 모르겠군요)

그냥 눌러서 들으시길.

http://www.youtube.com/embed/AkTKhnoBDto


 

<iframe width="420" height="315" src="http://www.youtube.com/embed/AkTKhnoBDto"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다른 한 곡은

딸아이를 업어 재우느라 동네 마당을 돌아다니면서

휘파람으로 자주 불어주던 곡인데

제목을 미쳐 몰랐던 노래,

 

Come, Come Ye Saint

영국 민요를 편곡한 모양이다.


일요일 아침엔 이곳보다 더 큰 곳에서

매주마다 합창 공연이 있다.

이 공연은 1929년부터 미국 전역에 매주 방송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일요일 아침 돌아갈 비행기 시간이 조금 빠듯했지만

시간을 내서 참석했다.


 

이 사람들의 안내를 받으며 건물 안을 구경할 때도,

세계 최대 규모라는 파이프 오르간 리허설을 체험할 때도,

그리고 이 아름다운 화음을 감상하면서도

나는 단 한번도 이들로부터 어떤 종교적 강요나 유혹같은 걸 받아보지 못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잠시 내가 부끄러웠다.

하지만 나보다도 더 부끄러워할 사람들은 따로 더 많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잠시 생각한다.

최대 규모의 파이프 오르간이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최고 수준의 합창이,

만약 없다면... 이라는 가정을 해본다.


왜 세상의 종교는 늘,

사람들을 감동시킬 어떤 장치들을 만드는데 힘을 쏟는 걸까?

 
 
 
* 통제가 어려운 유아를 동반할 경우 방음장치가 된 다른 방에서 감상하게 되는데
아내 말로는 감동이 확-떨어진다는군요.
 
** 먹지 말아야할 곳: 여행 다니며 사전 준비를 별로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서 도착 후에 구글링 해서 한국블로거가 추천한 솔트레이크 '최고 유명 맛집'
'Bambara' 라는 곳에 갔습니다. 가지마세요.
대신 시도는 해보지 않았지만 솔트레이크 최古 식당 'Lambs grill' 이 좋아보입니다.
 
***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렌터카가 공항에 바로 붙어있어 편합니다. 하지만, 소금호수 빼고 다운타운만 보실 생각이라면 렌트비 대신 시내에 숙소를 잡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2 댓글

스크래치

2012-08-08 16:09:43

좋은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자주 올려 주세요.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 문화 혹은 종교를 관용하지 못하고

'이상한 것'으로 폄하하는 것이야말로 갈등과 분쟁의 근원이다."  


정말 가슴에 와 닿는 말씀입니다.

유자

2012-08-08 16:20:20

저도  바하의 이 곡을 참 좋아해요. 특히 이 곡은 제가 마음이 힘들거나 외로움을 느낄 때 가만 머릿속에서 맴도는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이 비워지고 마음이 차분해지게 해 준답니다.

같은 곡을 좋아하신다니 더 반갑네요.

수필같은 여행기...참 좋습니다 ^^

절교예찬

2012-08-08 17:03:01

Mac mini 1세대 사진첩 프로그램에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곡이에요. 그래서 알게됐어요.

유자

2012-08-08 17:15:23

^_^ 전 어려서 피아노 배울 때 마지막으로 배운 곡이에요. 그 땐 몇 년동안 치던 피아노가 너무 지겨워서 하루라도 빨리 관두기만을 바랬거든요.  미처 이 곡을 다 끝내지도 않고 관뒀는데 많이 후회되요.


스크래치

2012-08-08 17:37:47

저도 피아노 그만두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초등내내 쳤는데...좀 더 열심히 재밌게 배웠으면 좋았었겠단 생각을 합니다...

iimii

2012-08-08 17:49:36

전 어릴 때 배우다가 대학 가서 다시 배웠는데 ... 좀 달랐어요. 어릴 땐 기계적으로 쳤는데, 커서는 곡 자체를 알고 쳤다는 느낌이.... 어릴 때 만큼 빨리 늘지 않아서 아쉽긴 했어요. ㅠ  절교예찬님 여행기는 같은 사물을 이런 각도로 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  (읽다가 딴 생각을 하고는 돌아와서는 진짜 못말린다는 생각을 잠시 했어요 ㅎㅎ) 

스크래치

2012-08-08 17:55:49

ㅎㅎ 대학 때 교양 수업으로 피아노 했었는데 저도 그 때는 재밌게 한 학기 쳤어요. 근데 도,레,미,파 대신 C, D, E, F 이렇게 불러주는건 한 한기 끝나도 도저히 머리와 손이 안되데요. ㅎㅎ

김미형

2012-08-08 17:42:12

문학적인 감성이 풍부한 여햏기입니다. 유홍준교수님의 말이 제게는 맞는것같네요. 설악산보다 지리산을 좋아했고 모짜르트보다는 바하를 좋아하고 피아노보다는 바이올린을 좋아하고...

그런데 구리광산은 안가셨나요? 인공위성에서보면 만리장성과  구리광산만보인다는... 

절교예찬

2012-08-08 18:39:31

아, 제 블로그와 동시 연재를 하다보니 (제가 지리산 잘 다니는 걸 아는 제 블로그 친구들만 생각하고) 앞뒤 다 짤라먹고 썼습니다.

제가 산 중에 지리산을 사랑하여 1989년 2월 첫발을 내디딘 이래로 약 2백여회 올랐습니다.

그런데 전 바흐음악이 너무 종교적이고 무거워서 싫더라구요.

물론 유홍준 선생도 딱히 통계적으로 한 말이라기 보다는 "지리산이란 다른 산보다 그런 중량이 있는 산이다"라는 걸 우회적으로 (하지만 여전히 권력적으로) 표현한 거 겠지요.


유홍준 선생에 대한 논란은 다음에 직접 뵙고~~^^

바다

2012-08-08 19:36:11

올 겨울 salt lake city쪽으로 스키여행가려고 준비중인데 때마침 이런 정보를~~  ^^ 감사합니다.   다운타운 호텔들도 공항으로 무료셔틀이 있나요?  있으면 다운타운에 머무르는 몇일은 그냥 렌트카 없이 지내도 되면 좋을것 같네요. 

절교예찬

2012-08-09 07:49:46

제가 다 알아보진 못했지만 쉐라톤 같은 경우 셔틀이 있고 라디슨은 없다고 나옵니다.

아시겠지만 그래도 노파심에 말씀드리자면 카약같은 곳에서 대충 검색한 후 나오는 호텔에서 amenity 찍어보시면 공항셔틀 여부가 나옵니다.

솔트레이크 한국식당도 있습니다. 

작고 초라해보였지만 맛은 괜찮았습니다.


MultiGrain

2012-08-09 14:52:45

20대때 친구랑 Salt Lake 지나다가 끝도 보이지 않는 넓은 호수가 있다는게 너무 신기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일부다처제를 했다는 그들이 좀 괴상해보이기도 했던 때이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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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이름표 달고 다니는 말일성도들은 참 신기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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