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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드라마 -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

후지어 | 2019.08.19 01:16:34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싸구려이지만은 않은 불륜 이야기

동네 편의점에 불이 나는 것으로 드라마는 시작합니다. 내 마음 속의 불이지요. 잔잔하던 일상에 불을 지를 누군가를 만나고 결국 잿더미가 되고야 말 우리의 주인공들.
지은과 창국은 자식은 없이 사랑이, 믿음이 라는 이름을 가진 두 애완조를 기르며 사는 젊은 부부입니다. 어느 날 사랑이는 창 밖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사랑없이 믿음만으로 유지되는 결혼 생활 속에서 지은은 정우와의 설레는 만남을 가집니다. 급기야 혼자 남은 믿음이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립니다. 믿음이 외롭지 말라고 데려온 산새, 희망이만이 홀로 남아 이미 망가진 지은네를 지킵니다. 사랑은 돌아올 희망이라도 있지, 이미 사라져버린 믿음이 회복될 희망은 있는 것일까요?


천국을 맛본 자

늘 나를 외롭게 하던 창국과 너무나 다른 사람, 정우가 나타났습니다. 이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정우 역시 유학 시절 외로움 반, 동정심 반에 별 애정없이 결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살아보니 배우자는 나와 너무나 다른 사람입니다. 정우에게 지은은 내 영혼의 동반자 같습니다. 이제 이 사람 없이는 못살 것만 같습니다. 둘은 서로에게 구원인 것이지요.
불륜을 해본 사람은 압니다. 현재가 행복하다면 다른 사람에게 눈길이 갈 일도 없습니다. 현실이 불행하고, 결혼 생활은 내 마음과 다르게 흘러가고, 급기야 나의 결혼은 심사숙고없이 이루어졌던 실수였구나, 라고 판단 또는 기억 조작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다만, “별 사람 있겠어”, “사는 게 다 그런거지” 라는 나와의 타협 속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 조건이 적당히 맞는 사람을 짝으로 맞이했었던 것이지요.
그러다 이 사람을 만났습니다.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만난 것입니다. 불륜의 댓가는 너무나 잘 압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잃고, 사회적 평판도 잃고, 직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천국을 맛본 자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별 값어치 없게 느껴지지요. 세상이 내게 등 돌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 등돌리면서 우리 둘만의 천국에서 천년만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상처받은 자들

지은과 정우, 당사자들이 무언가를 잃는 것은 그들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그들 곁에 있던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는 점, 그것이 바로 불륜이 비난받는 지점입니다. 열렬히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껴주려는 마음을 갖고 있던 창국이 상처를 받습니다. 지은을 딸처럼 여기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챙겨주던 시어머니도 상처를 받습니다. 사회적 성공이라는 허영이 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민영이 상처를 받습니다.
“모든 것을 용서하마. 집에만 돌아와다오” 라는 창국의 태도와 달리, 민영은 아끼던 장난감을 빼앗긴 영악한 소녀처럼 행동합니다. 마치, 내 남편을 빼앗기는 것은 “지는 것”이니까 난 이기고야 말거야, 라는 태도.
창국도, 민영도 제 관점에서는 이해가 힘듭니다. 배우자의 마음이 그렇다는 걸 다 알면서, 볼 꼴 못볼 꼴을 다 봤으면서, 그렇게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혼남/이혼녀가 되는 게 두려운 걸까요? 내 것을 빼앗기지 않았으니 난 승리! 이러면서 마음은 딴 데 가 있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살 수 있는 것일까요? 이들에게 일어난 일들은 과연 회복가능한 사건이기나 한가요?


삶은 기나긴 여행

사는 게 별 것 있겠어?
남들도 다 그러고 살아.
사랑 타령 하고 앉아있네.. 부부는 자식 보고 정으로 사는 거지.

이런 생각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를 잠식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니면, 지은의 표현에 의하면 “아직 천국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일 수도 있지요.

“삶은 기나긴 여행입니다. 어디를 여행하느냐보다는 누구와 여행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디에 사느냐보다는 누구와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라는 지은의 대사는 이 모든 번뇌 끝에 내린 결론이겠지요. 하지만, “이 긴 여정을 이미 함께 시작한 사람과, 어떻게 하면 즐겁게 여행을 마무리할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성숙한 여행자가 아닐까요?” 하는 질문을 지은에게 던지고 싶기도 합니다.

이제 2회 남았습니다.
소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영화 <남과 여> 처럼 도덕적 부담감에 한 쪽이 손을 놓아버릴까요?  <The Painted Veil>처럼 원래 배우자를 재발견하게 될까요? <밀애>, <English Patient>처럼 한 쪽이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실락원>처럼 자살을 택할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흘러 <Anomalisa>처럼 한 쪽이 권태를 느낄 수도 있고 <Before Sunset>을 거쳐 <Before Midnight>까지 가면서 둘은 건강한 새 출발을 할 수도 있지요.
무엇이 되었건 결말은 제게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잠시 쉼표를 찍으며 상념에 잠길 시간을 안겨준 이 드라마에 이미 감사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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