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우연히 알게된 내용인데요.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알아야 할 역사라 생각하여 공유하고자 합니다.
간단히 내용을 요약을 해보았고 혹시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https://www.youtube.com/watch?v=lVN6Q3kyYWQ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혹시 영어가 편하신 분은 이 링크를 보시면 됩니다. https://umdarchives.wordpress.com/2014/06/24/pyon-su-americas-first-korean-college-student/
변수 (Pyon Su): 역관의 자식으로 태어나 중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어학실력으로 어린 나이에 일본사행 수행원과 조선 최초의 견미사절단 보빙사의 일원으로 뽑혀 조선인 최초로 미국땅을 밟고 세계일주를 한 후 귀국합니다. 그 후 고종을 도와 조선의 개화를 추진하면 차관보까지 승진합니다. 하지만 1884년 갑신정변때 역적으로 몰린 변수는 김옥균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 한 후 미국으로 건너와 1886년에 메릴랜드 농과대학 (University of Maryland College Park) 에 입학하여 쟁쟁한 명문가 자제들을 제치고 1891년 수석 졸업을 하며 졸업식때 대표연설까지 하게 됩니다. 그 후 미국 농무성 (USDA)에 직원으로 근무했으며 졸업을 한 해 10월 모교에 자료를 찾으러 방문 했다 돌아가던 길에 열차 사고로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청년 변수는 발전된 다른 나라들을 여행하며 한국에 농업이 일단 발전해야 한다고 굳게 믿어 농과대학에서 공부를 하였고 언제가 고국으로 돌아가 고국의 농업을 부흥시켜 강국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안타까운 삶을 마감한 변수 이지만 그의 숭고한 정신은 메릴랜드 주립대에 그의 이름을 붙인 기념관과 함께 대학정문입구에 소개되며 이어지고 있습니다.
멋집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네. 정말 멋지고 안타까운 삶이라 생각됩니다.
그 대학으로 입학할 뻔해서 정보통신부 장관을 할뻔하신 분하고 두분 얘기는 좀 들어봤었습니다.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시간되시면 그 분 이야기도 풀어주세요! 학창시절 제일 좋았했던 과목이 역사였는데 삶에 치이다보니 이런 분을 이제야 알았네요.
찾아보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후보자였군요..
메릴랜드대학에 Jong H Kim Building도 있습니다.
아래 링크 공유드립니다..
https://ko.m.wikipedia.org/wiki/%EA%B9%80%EC%A2%85%ED%9B%88_(%EA%B3%BC%ED%95%99%EC%9E%90)
https://eng.umd.edu/facilities/kim-building
변수라는 이름은 정말 처음듣는데 갑신정변실패후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고 일본으로 도망갔다 미국까지와서 대학졸업까지한점은 서재필박사와 거의 비슷하네요. 아마 일찍돌아가셔서 잘 알려지지 않았나 보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나름 최초란 타이틀이 있는데 너무 안알려진것 같아요. 최근 안일해진 제 삶에 귀감이 되는 분입니다.
보빙사 썰...
1. 세계 순방 도중 수에즈 운하를 지나가며 잠시 이집트를 들렸는데,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피라미드를 직접 구경한 조선인이 됨. 안내를 도왔던 선교사 측에서 당시 피라미드 등반 및 탐사를 권하였으나, 보빙사 8인은“천한 백정의 무덤이라도 함부로 밟지 않는 게 예법이거늘, 하물며 다른 나라의 국왕의 무덤을 밟는다는 건 어느 나라 예법이냐”따졌다는 기록이 있다함...
2. 샌프란시스코 팔레스 호텔에서 엘레베이터를 처음 타보고 지진이 난 줄 알고 매우 놀랐다함...
보빙사 8인: 퍼시벌 로웰, 홍영식, 민영익, 서광범, 우리탕, 현흥택, 미야오카, 유길준, 최경석, 고영철, 변수(뒷줄 오른쪽)
위 사진의 보빙사 8인중에 최경석이라는 분 또한 변수 선생 못지 않게 농업에 관심이 많으셔서 미국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조선으로 귀국하자마자 여러가지 농업관련한 사업들을 진행 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원래 무관 자격으로 동행 하신걸로 아는데 사진에 보면 뒷줄 중앙에 제일 키크신 분이라고 하네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 ....
https://m.blog.naver.com/korocamia/220813810354
variable이 먼저 떠오른 이과생 자수합니다..
변수가 사람이군요
전 한인 졸업생 숫자에 무슨 변수가 있나 생각했습니다
무식해서 죄송..
전 이분 워싱턴 DC에 있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방문했을 때 공사관 설명해주신 분께서 알려주셨었어요. 시간은 좀 달리해서 상하이/헤이그/워싱턴DC 에 있는 임시정부/이준열사기념관/공사관 순서로 방문했었는데 마지막 공사관에서 당시 분들이 어떤 루트로 이동했는지를 설명 듣고 꽤 많은 생각과 동시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공사관에는 을사오적에 해당되는 분의 사진들도 있는데 이 사람은 빼구요;;)
구한말 시기는 너무 다이내믹해더라구요. 오히려 다이내믹한 것에 비해 기록이 생각보다 없어서 많이 아쉽기도 합니다.
갑신정변에 참여한 인물 중에 "윤치호"라고 있는데 쿠데타 실패후 미국으로 도피하여 아틀란타의 에모리 대학에서 공부했지요. 그 당시에 매일매일 영어로 일기를 썼는데 그 중 일부는 "윤치호 일기"라고 해서 출판도 되어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엄청나게 대단하게 보이지만 미국에서 지내면서 인종차별을 무수히 겪었고 참담한 조선의 현실에 분노한 나머지 결국 흑화해서 친일파가 되고맙니다;;; 물론 말년에 광복한 한국을 보며 본인의 행적을 뒤늦게 후회하면서 생을 마감하긴 하지만.. 현실에 굴복한 개화지식인의 삶을 보며 씁쓸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더라구요.
분명 엄청난 인종차별과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수석졸업까지 하고 대단한 분인것 같습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동기들이 속한 명문가 집안들에서 변수가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서포트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변수라는 귀에 익은 이름을 들으니 몇년전 일이 생각나네요.
제가 2014년 부터 2015년 까지 일년동안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서 근무를 했었습니다. 당시에는 비공식 개관이라서 일반인은 관람이 안되었고 한국 정부관련 인사들만 들려가는 식이라 제가 정식 학예사가 아님에도 방문객들을 위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보빙사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해서 관련인물들에 대한 공부를 해야 했고 그중 미국에서 생을 마감한 변수나 서광범 같은 분이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족으로 당시 공사관을 현재의 박물관으로 바꾸는 공사를 준비중이었는데 전 주인인 젠킨슨씨 부부가 가꾸던 조그만 정원을 잔디밭으로 갈아 엎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저런 화초와 작은 나무가 있었는데 특이하게 한국에서먹는 부추가 일부 군락을 이루어서 자라고 있더라구요. 사실 미국인이라면 그냥 잡초로 치부 하고 신경도 안썼을 텐데 뜬금없이 워싱턴DC의 흑인동네에서 부추가 자라고 있는것이 참 특이하다 생각을 하다가 이 정원이 120년 전 주미대한제국공사관시절 부식을 조달하던 텃밭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치를 담그기 위해 조선에서 종자를 가져와 심어서 이런저런 부식을 만들기 위해 활용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중 부추만 강한 생명력으로 100년넘게 피고지고를 반복하면서 살아 남아있었을 거라는 생각과 조만간 잔디밭으로 갈아 엎어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그래서 그 부추를 캐내어서 집으로 가져와 뒷마당에 심었습니다. 저희는 그것을 백년부추라 이름 짓고 매년 봄마다 잘라내어 잘 무쳐 먹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추론에서 벌어진 일이라 큰의미는 두고 있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살아있는 역사를 보존했다는 작은 자부심도 있기는 하네요.
와 멋지네요. 부추 스토리가 꼭 영화 미나리같이 다가오네요.
시간이 허락되면 한번 방문해 보고 싶어지네요.
정말 멋지시네요....그 시기에 수석 졸업이라니 참 반성을 하게 되는 듯하네요.
자살 하셨을수도 있다는 글에 슬프네요. ㅠㅠ
그리고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한국에서 죽음을 당했다고 하는데 정말 그 심정이 어땠을지....파란마장한 삶이네요. 역시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가 가장 중요한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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