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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여행기]
어쩌다 뉴욕 #1

사리 | 2014.09.25 05:38:35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어쩌다 뉴욕 .. 1


홍콩 공항 유나이티드 퍼스트 라운지. 밤을 꼬박 새고 온 탓에 잠이 쏟아진다. 10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파올로 누티니가 뉴욕에서 콘서트 한대. 바로 삼일뒤. 요즘 날씨는 얼마나 좋을까?”라고 하자, 친구녀석은 “그냥 다녀오지 그래?”라고 했다. 


이상하게 딱 한 가지에만 충동적인 게 있다면 놀러 다니는 것이다. 숙박을 예약하고 간 게 언제였더라…. 

숙소 조차 예약하지도 돌아올 티켓도 없이 그냥 편도로만 다니는 신세다 - 물론 부모님이랑 여행할 때는 제외하고. 

이런 충동질 때문에 “버퍼”로 친구놈을 둔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신중한 사람이자 내 망나니짓들을 컨트롤하는데 타고난 친구. 

그래서 그 충동을 털어 놓은 것인데, 되려 불붙은 성냥에다 가스통 열어재낀 꼴이 되었다. 

“그냥 다녀오지 그래?” 그 말은 뭔가 갑자기 정언명령처럼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계속 “귀에다가 좋은 노래 좀 라이브로 꽂아 넣고 싶다…”라고 몇달째 비맞은 스님처럼 중얼중얼 했으니… 

미국과 유럽 그리고 서울과 도쿄 정도를 벗어나면 귀에 좋은 연주를 듣는 일은 굉장히 힘들다.. 

미드웨스트 작은 도시에서 동네 밴드들이 하는 정도의 공연도 듣기 힘들다.


게다가 파올로 누티니라니… 

“생일 축하해”라면서 한 친구 녀석이 2009년 씨디 한장을 내밀었다. 

“신발 하나로 이런 노래 만들더라. 앞으로 되게 잘 할 것 같고..” 그게 누티니 1집 앨범이었고 난 그 음반을 좋아했다. 

게다가 5년만에 내놓은 2집은 정말 머리통을 한 대 후두려 맞은 기분이었다. 

타이틀 better man이 처음 시작할 때, 싱가폴 도심 한 가운데서 얼음땡 놀이 하듯 그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었다. 

스코틀랜드인가 어디인가… 영연방공화국의 한 시골마을에서 피쉬앤칩스집 아들래미로 태어나

(너무 영국적인 계급재생산의 루트처럼) 당연히 피쉬앤칩스 가게를 물려 받아 살 거라고 생각했던 그는 

음악교사였던 할아버지가 부추겨서 가수가 되었고 스물 예닐곱에 이런 음반까지 만들어 냈다.


찾아보니 같은 날 제이슨 므라즈도 공연을 한다. 

므라즈가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유명하지 않았던 시절. 

1집을 막 내 놓았을 때, 나는 홀딱 빠져버렸고 므라즈가 라디오 방송국에 홍보용으로 돌린 씨디까지

이베이에서 구입하면서 긁어 모았었다. 2집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고… 

그래서 한동안 “빠질”을 좀 했었다. 

헌데.. 3집 I’m yours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그 다음 앨범부터는 거의 가스펠..

세계 평화와 사랑으로 충만해진 앨범은 전체를 듣기가 힘들게 됐고

그렇게 한국과 싱가폴, 미국에서 했던 공연을 따라다녔었는데, 어느덧 미련이 없어졌다. 


이틀을 망설이다가 결국 유나이티드 마일 디벨류 전에 만들어 놓은 티켓을 다시 조리해서 퍼스트로 만들었고

장난 삼아 발권 및 취소했던 유류할증료 덤핑 티켓을 다시 발권했다. 그냥 가는 거다. 

마감이 정말로 코 앞에 남겨진 원고를 들고… 


밤을 새서 공항 도착해서 홍콩 공항에서 10시간을 대기하던 중에 몸이 여기저기 쑤시고 아파온다. 

“미쳤지 미쳤지.. 게다가 숙소도 하나 없이 이게 뭐야… 몸이 쑤신다 쑤셔… 게다가 내 지금 경제 형편으로 뉴욕을? 미쳤어…”라는 

후회가 텍사스 물소떼처럼 닥치면서 갑자기 화가 난다. 


서울에 있는, 그 충동질을 부추겼던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승질을 바락바락 낸다.

니 새끼는 말리지 못할 망정, 왜 휘발유를 들이 부어서 사람 이 고생을 시키냐며 지랄이란 지랄은 남의집 지랄까지 꾸어다가 부리고 있다. 

“날씨 선선한데서 계속 걷고, 좋은 노래 듣고 싶다고 한지가 너 벌써 몇달이야… 그냥 가. 후회하지 말고.” 라는 대답. 

나쁜 놈.. 그렇게 말하려면 통장에 입금이라도 시켜주고 부축이든가… 내 주제에 지금 이게 다 왠말이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홍콩에서 대기 후 바로 타이항공으로 방콕을 가서 바로 다시 도쿄로 레드아이 비행편. 

물 먹은 솜처럼 무겁고 쑤시는 누추한 몸땡이를 이끌고 비행기에 들어선 순간… 올드 클래식 747의 퍼스트 자리가 맘에 들어버린다. 

게다가 승무원이 “동뻬리뇽”이에요 라고 하면서 따라주는 샴페인에 갑자기 기분이 무지개가 된다. 

내 돈주고는 못사먹지만, 동뻬리뇽은 요상하게 그 사치스럽고 팔랑팔랑한 느낌이 있어 이렇게 얻어 먹게 되면 뭔가 호사스럽게 느껴진다. 

그렇게 오만 지랄의 굿판을 펼친 게 갑자기 미안해서 “보딩하자마자 동뻬리뇽 따라준다. 잘 왔어. 미안해”라고 문자를 넣었다. 

이렇게 세시간도 안돼 미안해 할 거면서 그렇게 호들갑은… 하여간 얄팍하기가 미농지 같은 사람이다. 


다시 도쿄에서 열시간 정도 대기.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숙소도 구하고 해야하는데.. 이거 숙박비가 장난이 아니다. 

맨하탄에서 벗어나긴 싫고, 쓸만한 숙소는 왠일인지 400불이 훌쩍 넘어간다. 망했다. 

이틀 숙박비면 내 싱가폴 한달 방세…. 어우야, 사람 잡겠다. 

뉴욕에서 좀 떨어진 시골에서 살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했다. 

“너 각하 스토커니? 왜 따라 다니고 그래?”라는 반응. 몰랐다, 각하가 뉴욕에 오실 줄은… 


머리를 굴리다가 IHG 포인트 35000으로 하루 잘 수 있는 곳을 찾았고,

포인트 구입 두배 프로모션으로 해서 포인트를 샀다. 대략 200불 정도에 1박을 할 수 있는 꼴이 되니… 

어쨌든 첫날은 이렇게라도 버텨보자는 마음이 더 절박했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포인트 구매 결제. 


그런데… 그런데… 포인트가 바로 적립이 안된단다. 48시간 정도 걸릴 수 있단다. 젠장! 망했다!

도착해서 바로 이 짐을 끌고 공연장으로 가야하는데… 나는 어디에서 오늘밤을 자야하지? 노숙이라도 해야하나? 

핫와이어도 프라이스라인으로 다들 만만치 않은 가격만 뱉어낸다. 

그동안 내가 숙소도 안잡고 그냥 막 나설 수 있었던 건… 그나마 숙박비가 쌌기 때문이야. 뉴욕은 절대 그런 곳이 아니라구… 

이 망할 놈의 도시!


내 평생 비행기에서 먹는 한끼 식사가 그렇게 끊임 없이 나오는 걸 처음 먹어보는,

여태껏 타본 퍼스트 클래스 중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밥을 먹어보고는, 책을 집어든다. 

정유정, 7년의 밤. 대단한 문장에 구성… 뒤늦게 등단했는데, 이런 괴물이 나타나다니… 

군더더기 없는 짧은 스타카토로 문장을 후리면서 끌고가는 호흡이 대단하다. 


서너시간 눈을 붙이고, 이제 도착해서 어떻게 하나 궁리를 한다. 

우선, JFK 공항에서 와이파이로 IHG 포인트 들어왔나 확인하고, 방 남은 곳에 예약을 하고…

그러면 대략 다섯시 이십분 정도가 될 거고… 공연이 여덟시.

JFK에서 버스 타고 나와서.. 블라블라블라블라… 


JFK도착. 글로벌 엔트리로 사뿐히 나가는데 세관이 잡았다. 

“방문 목적이 무어냐?” / “글쎄… 아! 오늘 콘서트 간다!” / “누구 콘서트냐?” / “파올로 누티니다. 어썸한 사람이다.” / “헐… 모라모라모라모라” / “그래서 나 더 검사할 거 있음 물어보고 아님 빨리 내보내라. 곧 공연 시작이다” / “알았다 가라”


공항에서 보잉고를 잡아 IHG 접속! 오늘밤만 제발 재워주세요!

헌데.. 포인트가 아직 적립이 안됐다. 정말 눈앞이 캄캄해지고 멘탈은 붕괴직전. 

IHG에 전화한다.. “내가 말이지, 좀 불쌍한 상황이야. 어제 포인트 구입했는데 아직 적립 안됐는데 빨리 처리해주면 안될까? 나 좀 급해…”

상담원이 알아 보겠다고 한다. 이십분 뒤. 전쟁터에 나갔다 죽은 줄로 알았던 아들래미가 돌아와도 이런 기분일까.

포인트가 들어왔다. 35000이 맨하탄에서 젤 싼데… 평점이 높은 스테이브릿지에 1박 예약. 


공항에 나와 에어포터 버스를 탑승. 근데 미국서 쓰던 지갑을 열어 보니… 현금이 단돈 1불이 있다.

10불이면 10불, 100불이면 100불이지, 딱 1불이 있을게 뭐람… 

 카드로 버스 요금 16불을 결제하고 대충 보니 호텔에 짐 내려 놓고 가도 될 것 같아서 포트 오소리티행으로 갔다. 


멍청이. 

퇴근 시간이 겹친다는 걸 깜빡했다. 그 계산도 못하고 버스를 타다니.. 

버스 기사는 “오늘 유엔 무슨 큰 행사가 있어서 시내가 곳곳이 통제되니깐 오래 걸릴 거고~~~” 

아 제발… 망했다… 각하가 이 행사 때문에 오셨구나… 난 망했네… 


버스는 역시 맨 앞자리이다. 큰 통유리로 밖을 보면 계속 영화 보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초딩마냥 맨 앞자리를 타면 그렇게 신이 난다. 

앞자리에 앉아서 굵은 뱀처럼 꼬여버린 차들을 본다. 고속도로 진입하려는 나들목. 

갑자기 앞차를 가로 막으며 한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은다. 싸움이 벌어진다. 

어디서 기도를 서도 될 것 같은 두 양반이 차에서 내리지 않고 욕을 해댄다. 

뒤에서 차가 꼬일대로 꼬이고 빵빵 대기 시작한다. 

가로 막혔던 차가 핸들을 돌려 나가려고 하자 막았던 차가 엑셀을 밟더니 그 차를 쾅 하고 받아버린다.

“어썸!”이라고 소리쳤다! 한심하단 표정으로 보고 있던 버스기사 “웰컴투뉴욕!” 이란다. 

12분을 그 실갱이를 보고만 있었다. 결국 경찰이 와서 옆으로 빼고 둘은 영화처럼 양손을 하늘 위로 하고 어깨를 으쓱하며 “왓??”이라며 항변한다.

재미있긴 하지만, 공연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환장하겠다. 


포트오소리티에 내려서 똥마려운 퇴근길에 지하철 화장실에 내달리는 것처럼 두세블록을 걸어 체크인. 

7시 40분. 공연은 8시. 할렘근처 아폴로 극장. 

구글맵을 찾아보니 자동차로 20분. 

7시 42분. 단돈 1불밖에 없으면서 택시를 잡아 탔다. 카드 되죠? 

A9 도로 타고 암스테르담 에비뉴쪽으로 가주세요. 주소는…. 

공연장 앞에 택시 도착 8시 3분. 팁을 넉넉히 드리고 내린다. 달린다. 


공연장 진입 성공!

그런데… 누티니는 좀 있다 나오고 우선 오프닝으로 신인가수가 몇곡 노래한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똥줄 탈 필요는 없었는데.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도쿄에서 샤워를 하고 왔지만 머리는 떡이 져있다. 

맥주를 두잔 시켜 배고픔을 달래 본다. 

누티니가 나온다. 


귀가 호사다.




* 어쩌다 뉴욕 1편은 aicha 님의 후원에 보답하기 위해 헌정(?)합니다 :) spg 프로모션으로 받은 티켓마스터 50불 바우쳐를 선뜻 주셨고, 그 덕에 제가 공연을 볼 수 있었어요. 

 aicha님 고마워요! 

  + 체크아웃해야해서 후다닥 쓸 수밖에 없었네요.. 할 얘기 많았는데..


사진 1.JPG사진 2.JPG20140924_101313_resized.jpg20140924_112852_resize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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