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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어쩌다보니 다시 JFK 공항이었다.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시골 구석으로 가서 친구네 집에서 기거,
어쩌다보니 자동차를 끌고 나이아가라로, 토론토로, 그리고 몬트리올로 향했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친구부부는 때마침 몬트리올에서 재즈패스티발이 열린다한다.
특히 베이루트가 야외 공연을 하고, 티켓도 따로 필요없다고 해서 그곳으로 갔다.
미친 사람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며 공연장을 향했고
두어시간 전에 도착한 우리는 맨 앞으로 자리를 잡았다.
공연 30분전즈음, 맥주도 더 사야겠고 화장실도 다녀올 요량으로 자리를 떴다.
맥주를 사려고 하니 카드를 안받는단다.
지갑엔 미국 달러화만 있다.
근처 쉐라톤 호텔(?)로 가서 환전을 하려고 했더니 투숙객이 아니라 안된단다.
지갑에는 현금카드도 없다.
결국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야 했다.
맥주를 사려고 말이다.
그렇게 맥주 여섯캔을 품에 안고 자리로 돌아가려고 보니
공연장 앞은 6.25때 중공군이 저렇게 내려왔나 싶을 정도로
눈깜짝할 사이 인산인해였다.
옆에 다른 공연이 끝나자 사람들이 다 그쪽으로 몰린 것이다.
인파를 뚫기 시작했다.
불어를 몰라도 온갖 욕은 다 먹고 있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공연장에서 파는 맥주답지 않게 엄청 차가워서
닭알처럼 품고 있는 내 가슴이 다 얼어 붙어 온다.
결국 중간즈음 가다가 더이상은 갈 수 없어서 중도에서 포기.
뒤로 나가 음악 소리가 잘 들리는 길바닥에 맥주 여섯캔을 내려놓고 주저 앉았다.
손과 가슴은 차갑고 얼굴은 상기됐고 욕은 다 먹은 나라 잃은 모습으로.
“목이 엄청 마른가봐?”
먼저 그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물어온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털어 놓았고 마시고 싶으면 맥주를 가져다 먹어도 된다고 했다.
베이루트는 공연을 시작했고 홀짝홀짝 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삼십대 후반 혹은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선이 날카롭게 생긴,
곱상하게 잘 생긴 사람이었다.
보스턴에서 나고 자라 학교를 마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일을 시작했단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었고
피차 헤어져야 했을 때 태국으로 배낭여행을 하고
그 남자는 일본으로 자신은 캐나다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몬트리올에서 한 여자를 보고는 한눈에 반해 결혼을 했단다.
물론 결혼 전 자신이 일본에서 있었던 일은 지금의 아내도 알고 있는 일이란다.
결혼하고 8년 정도는 아주 행복하게 살았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이 힘든 일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10년정도 되었을 즈음, 어떤 친밀성의 위기가 찾아왔단다.
아직도 인간적으로 좋아하지만 더이상 남은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고,
할 말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으며
같이 그렇게 서로를 엮고 있는 것이
피차 못할짓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뿐이었단다.
차라리 싸울 일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단다.
결혼 카운셀러도 만나보고 여러 상담도 받아 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한 카운셀러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모두 다 타버린 상황,
그래서 가장 해결하기 힘든 케이스일 것이라고 말을 했단다.
물론 이 마음은 이 남자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 또한 마찬가지였다.
문득 레이먼드 카버의 한 부부의 모습이 그런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슬럼프일 거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에게 더욱 잘하려고 노력할수록 마음은 더욱 어두워졌고
서로를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결혼을 유지하는 것은 서로가 외로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별거에 들어갔다고 한다.
행복했던 순간을 이야기 할 때,
지금의 숨막히는 상황을 이야기 할 때,
순간순간 보이는 텅빈 눈빛은
내가 직접본 사람의 눈빛 중에 가장 외로운 눈빛이었지 싶다.
그렇게 공연 내내 그가 살았던 이야기와 젊었을 적 이야기
그리고 지금은 다 타버렸지만 한때는 아름다웠던 결혼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그렇게 맥주 여섯캔을 비웠다.
앵콜곡도 끝났다. 친구들과 내 가방을 찾으러 자리를 일어났다.
그 남자도 덩달아 일어났다.
“혹시 오늘 같이 있으면 안될까?”라고 묻길래,
실실 웃으면서 “데이트 신청이야?”라고 물었다.
어깨를 들썩거리곤 쭈뼛대며 “응”이라고 말한다.
박장대소를 했다.
“근데 어쩌지? 난 돌아가야하고 남자랑은 데이트를…”이라 했더니
그가 “아… 창피해. 괜히 말했다”라고 하며 수줍어 한다.
가야할 시간, 그가 두 팔을 벌렸고
나 또한 두팔을 벌려 그를 살짝 안아주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난 내 이야기를 참 못하는 사람이야. 근데 모르겠어. 어쩌다 너에게 그렇게 다 털어 놓았는지는… 그냥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들어 줘서 고마워”라고 말을 한다.
문득 영화 빌리엘리어트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빌리가 런던으로 가기 전에 자기를 좋아했던 게이친구한테 작별을 하는 장면.
그 영화가 생각나기도 해서 장난삼아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해주었다.
그 사람도 킥킥대고 웃더니 답장으로 내 볼에 뽀뽀를 한다.
“이제 간다. 행운을 빌어. 너의 이혼에도 그리고 다가올 새 인연에게도.”
“고마워, 언제 또 볼 수 있겠지?”
“살아 있다면 어디선가 마주칠 수도 있겠지!”
그렇게 헤어졌고 일행을 찾았다.
처음본 남자품에 얼싸 안겨 볼에 뽀뽀 하고 온 얘기를 했더니 다들 박장대소.
공교롭게도 그 날은,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합헌이라는 결정이 난 날이었고,
오랜만에 서울에 있는 게이친구녀석에게 전화를 해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니
“이년아! 아주 90년대 청춘영화 찍고 왔구나!!!”하더니만
“ㅆㄴ… (차마 직접 못쓰겠다 이 단어는) 정작 나는 거미줄치는데 왜 엄한 너한테 들러붙냐..”며 욕만 된통 먹은 그런 한 여름의 몬트리올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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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댓글
재마이
2015-08-13 09:04:19
계속 보면서 조마조마했습니다... 언제 그 캐나다친구는 커밍아웃하나 ㅎㅎ
아이마
2015-08-13 09:05:30
사리
2015-08-13 09:08:15
@재마이 @아이마 글을 쓰고 붙이는 과정에서 중간에 짤렸었네요... 다시 마지막을 옮겼습니다
똥칠이
2015-08-13 09:20:53
"하지만 10년정도 되었을 즈음, 어떤 친밀성의 위기가 찾아왔단다.
아직도 인간적으로 좋아하지만 더이상 남은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고,
할 말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으며
같이 그렇게 서로를 엮고 있는 것이
피차 못할짓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뿐이었단다.
차라리 싸울 일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단다."
이런 대화가 잉그리쉬로 되신다는게 부럽습니다. 그나저나 아가씨 소식은 없고..
해아
2015-08-13 16:47:29
하늘향해팔짝
2015-08-13 09:46:04
사리님 글은 역시 최고.마치 글속에 등장하는 카버가 쓴 소설 같아요.
사리님 엄청 편안하게 생기셨나봐요.
사리
2015-08-13 22:05:16
papagoose
2015-08-14 14:13:09
싱크율 99%
이거 다시 찾느라고 게시판 한참을 뒤졌네요. ㅋㅋㅋ
뽀뽀를 논할만 하지는 않을 듯... =3 ==33
사리
2015-08-14 20:43:19
아.. 지금 저한테 개같이 생겼다고 하신 거에요...? @.@
papagoose
2015-08-14 20:58:50
갸가 개였어요? =3 ==33
duruduru
2015-08-15 01:27:09
사나운 사나이, 늑대같은 남자였던 듯.....?
사리
2015-08-15 02:09:24
늑대개...
duruduru
2015-08-15 02:51:19
전 그냥 사진만 보고 느낀 감상을 적은 것뿐인데.....
당연히 사리님을 직접 뵌 적은 없고.....
제 15 글자를 이렇게 3 글자로 압축하시면......
정답이라고 말할 수밖에......?
마일모아
2015-08-13 12:13:40
사리
2015-08-13 22:05:56
마일모아
2015-08-14 02:10:50
조폭스런 외모 때문에첫 대화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 이런 맥락이었는데 설명이 부족했네요. 죄송요. :)사리
2015-08-14 04:33:40
아오....
duruduru
2015-08-14 04:43:49
우아......
rondine
2015-08-13 14:01:45
duruduru
2015-08-13 16:57:20
한 달에 한 번씩 단편영화를 찍는 남자.....
Maza
2015-08-13 19:01:45
진짜 단편 영화 한편 본 것 같네요... 와우...
CoRe
2015-08-13 19:12:02
정말 영화 한 편 본 느낌이네요 :)
Moey
2015-08-14 01:47:31
사리
2015-08-14 04:33:28
아.. 밤늦게 도착해서 아침 일찍 나오느냐고 토론토에서는 거의 시간을 못보냈습니다... 죄송하옵니다
Moey
2015-08-14 10:45:52
담번엔 내가 몬트리올로 따라가야지 ~~~~ ㅎㅎ
monge
2015-08-14 04:59:07
마치 단편 웹소설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ㅎㅎ
armian98
2015-08-14 10:50:07
결론: 사리님은 "유부" + "남"에게 인기가 있다?
aicha
2015-08-14 13:30:32
중동병인지, 무식해서인지 자꾸 베이루트, 베이루트 하니까 난 레바논 거리 생각만 .... - -
narsha
2015-08-14 15:29:36
사리님은 재즈 사랑하시나봐요. 지난번 어쩌다 뉴욕에서도 아폴로 극장에서 누티니 재즈 공연 구경가셨던 거 같은데... 덕분에 누티니 찾아서 들었었는데 이번에도 베이루트를 찾아봐야 겠네요. 베이루트 그래서 저도 중동만 떠오르던데....
그나저나 친구분이 사리님한테 이년아 그래서 지금 헷갈려요. 요번 글이 좀 난해...
사리
2015-08-14 20:43:55
원래 오빠들은 남녀 가리지 않고 그 욕으로 통일하시는데...
sugarapple
2015-08-18 05:55:42
사리님을 보고 일본에서 만난 옛사랑이 생각나서 마음을 털어놓기가 쉬웠나봐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조폭같이 생긴누군가한테 털어놓고 소통할만큼 그사람의 마음이 어느정도 정리가 된 상태처럼 보이네요. 좋은글 잘읽었어요. 사리님은 마모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