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버스 회사 이야기 2

씨즌 1을 쓴 게 3년 반 정도가 지났는데

오늘 씨즌 2를 쓰게 되네요. 

 

씨즌 1은 "여기를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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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의 자식 셋 중에 그나마 첫째딸이 가장 사람에 가깝다는 것은 그 동네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일이었다. 

 

아들은 멍청한 망나니로 유명했다. 

술을 먹고 깽판을 치지않나 힘없는 애들을 골라 왕따 시키질 않나... 서울서 수천만원의 과외 선생을 데려다 붙여도 성적은 바닥을 기기는 커녕 바닥을 새롭게 창출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당시 그 동네에서 방구 좀 낀다 하는 사람들이 망나니 자식을 “처리”하는 것은 서울로 유학을 보내는 일이었다. 서울은 돈도 많이 들고 불량식품도 많이 있고 까딱하면 박카스 박카스 중독에도 걸릴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들의 체면을 위해 서울 유학은 꼭 필요했다. 일단 속내를 모르는 사람들은 서울서 학교를 나왔다 하면 학교와 상관 없이 똑똑하다고 보는 시절이기도 했고 부모 입장에서도 자식이 눈에 안보이는 게 중요하기도 했다. 물론 그 부모들은 애가 공부도 안하고 돈이나 쓰고 놀러다닐 것은 뻔히 알았다. 하지만 한 가지의 알량한 기대는 있었다. 서울말은 배워오겠지. 

 

큰 아들은 그렇게 서울로 갔다. 

물론 누구나 쉽게 예상했듯 전국구 망나니로 거듭나는 시간을 보냈다. 가까스로 고등학교에 진학은 했지만, 사고를 계속 치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는 서울말을 아예 알아 듣지 조차 못했다. 제아무리 돈만 주면 되는 듣도 보도 못한 고등학교였지만 그는 그곳에 있을 수 없었다. 결국 그의 부모는 그를 시골로 다시 불러 자신들이 재단을 소유한 고등학교에 전학을 시키려고 했다. 

 

그 고등학교는 그 시골의 유일한 고등학교였다. 

물론 버스운항과 등의 동네 버스 회사에 맞춤식 특성화된 실업계반도 있었다. 반경 100km에 마땅히 갈 고등학교가 없었던 터라, 그곳은 어느 정도 중학교 성적이 받춰줘야만 하고, 그렇기에 그 학교는 전학도 쉽게 받지 않았다. 전학을 받을 때면 그 학교만의 전학 시험을 통과해야했다. 

 

하지만 그 큰아들이 전학을 오겠다는 그 해에, 전학 시험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전과목을 시험보았는데, 그 해에는 서울말만 시험을 보기로 바꾼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문도 몰랐다. 물론 문과반 담당 교사들과 행정실 직원 몇몇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전학 시험을 서울말 시험으로만 바꾸었는데도, 그 큰아들은 떨어지고야 말았다. 서울말을 입으로 하기는 커녕 글자도 제대로 못읽는 수준이었다. 

 

학교에는 비상이 떨어졌다. 버스회사 부부는 그동안 큰아들의 똥꾸녕으로 들어간 돈이 아깝기도 했지만, 지 새끼가 어떻든 간에 그 학교로 전학을 시키는 것은 행정실 직원들과 교사들이 해야할 일이었다. 그들은 노발대발 화를 내었다. 하지만 직원들과 교사들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학교 전학은 성적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그나마 내세울 게 서울말이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는데, 비빌 언덕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전학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 교장은 아이디어를 냈다. 일단 학교는 달라진 입시 제도에서 국어 듣기 평가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를 행정적으로 “서울말 도우미”로 채용했다. 서울에서 살다가 온 사람이면 되는 일이었다. 서울말 자격시험이나 구술 시험도 없었다. 그는 학교에 그렇게 채용 되었다. 물론 학교에 나가서 일은 하지 않았다. 그후 학교는 새로운 전학 제도를 만든다. 최종학력이 고등학교 중퇴자이면서  학교에서 현재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제도를 만든 것이다. 학업을 마치지 못한 학교 구성원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였다. 물론 한번도 서울말을 다른 이들에게 도와 본 적이 없는 서울말 도우미 큰아들이 유일하게 이 제도로 합격을 해서 이 학교로 전학생 신분이 되었다. 물론 그 해 이후 이 제도는 폐지 되었다. 

 

 

그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동네 유지들 사이에서도 너무 개차반 아니냐며 꺼리는 것이었지만 그나마 진상 레벨로 치자면 남편도 한레벨 하지만 그 엄마는 지존급이라고 했었다. 그 아빠네 집이 막 시골 마을 버스로 장사를 시작했을 때 땅부자였던 그 엄마집에서 돈을 대주어서 나름대로 시외버스계에서는 큰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단다. 그래서 그 엄마는 집안에서 위세도 당당했고, 그 위세만큼이나 지랄력도 나날이 증가했다. 

 

그들이 나은 삼남매도 지랄력이 상당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큰딸이 가장 순한 편이라고 했다. 착각하면 안되는 것이 일반 사람들에게 순하다가 아니라, 그 세명 중에서 순하다는 것이다. 큰딸은 그나마 덜 지랄 맞다는 아빠를 닮았고, 작은딸은 미쳤다는 표현이 더 걸맞는 엄마를 닮았다. 큰딸은 좀 둔한 구석이 있었지만 작은딸은 영악하며 지랄 맞았다. 큰 아들은 너무 멍청한 것 자체가 지랄 맞은 것이었다. 물론 사람들은 버스차장에게 50원을 50원짜리 하나로 주지 않고 10원짜리 5개로 줬다며 버스 차장을 내리게하며 버스에서 난동을 부렸던 큰딸만을 기억하지만 말이다. 

 

작은딸은 요상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어떨 때는 털털해 보이기도 했다. 서민처럼 막걸리에 소주를 말아 먹기도 했고, 때로는 시골 친구들과도 어울리기도 했으며, 피씨방에서 게임도 하곤 했다. 그렇게 논다고 해서 그가 성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갑자기 미친 듯이 화를 내거나 주먹을 휘두르곤 했다. 

 

작은딸은 찌라시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자기네 버스 찌라시랑 쿠폰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싶다며 부모를 졸랐다. 부모 눈에는 “기특하게도” 서민처럼 바닥에서부터 일을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시골에는 몇몇 찌라시 업체가 있었는데, 그 중 큰 곳 하나에서 인턴으로 들어간다. 엄마 아빠는 자기네 버스회사에서 과장으로 찌라시 만드는 일을 관리하는 일을 할 수 있는데도 굳이 찌라시 회사의 맨 밑바닥부터 시작한다는 딸이 기특하기도 했다. 

 

물론 찌라시 회사는 그 딸을 인턴으로 받기는 했지만 인턴이 아니라 몇 달 뒤 찌라시 광고주가 될 거라는 건 명확했다. 상전 인턴이었다. 상전 인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 하는 것을 구경 시키면서 대접해주는 일이었다. 곧 있으면 자기네에게 찌라시를 맡길 큰 광고주인데 밑보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찌라시 관광을 온 인턴이었던 작은 딸에게는 생각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다. 자기를 담당하고 있던 찌라시 팀장에게 반한 것이었다. 잘 생겼으며 위트 있고, 찌라시쟁이답게 종종 종잡을 수 없는 창의력에 그는 반해버렸다. 죽자살자 그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사랑이었다. 물론 팀장에게는 상전 인턴이 자기에게 애정공세를 퍼붓는 것은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전 인턴이 보이는 또라이짓과 잘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에 아주 살짝 마음이 흔들리긴 했다. 물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할지라도, 잘 보여두어서 나쁠 건 없다고도 생각했다. 어차피 자기와 결혼할 수는 없을 거라는 걸 뻔히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알듯모를듯한 시간이 가면서, 그 둘은 시골의 논두렁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그 팀장에겐 머리가 터지는 시간이었다. 논사이로 난 길에는 사람도 차도 없었고, 해는 조금씩 뉘엿뉘엿 지고 있었으며 차안의 분위기는 뭔가 멜로멜로 하긴 했다. 그때 팀장의 전화기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한번 무시했지만 연이어 오는 전화에 그가 받았다. 일 때문일 수도 있었기에. 

 

“야이 개새끼야. 너 내 딸 데리고 논두렁 가 있지? 너 같은 천출이 어디 감히 내 딸을 넘봐?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너 그 논두렁이 니 무덤 되는 줄 알아 이 새끼야.”

 

그 작은딸의 엄마였다. 입에 못담을 험한 욕을 몇 초 사이에 후다닥 듣고 협박까지 받은 터라 팀장은 멘붕이 됐다. 그 작은딸도 상황이 무엇인지는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로 알게 됐다. 그 둘은 다시 차를 돌려 나왔다. 

 

상전 인턴 생활을 끝내고 작은 딸은 버스 회사로 돌아갔다. 

찌라시 담당으로 들어갔다. 

그가 일을 시작하면서 그 버스 회사의 찌라시가 조금 멋져졌다는 평도 돌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찌라시 업계의 금기를 넘어 서는 일이 존재했다. 

찌라시 업계에는 나름대로 규칙이 있었다. 한 회사에 일감을 따러 갈 때, 그들은 그 회사에 자신들이 어떻게 찌라시를 만들지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그리고 회사는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시안을 고르곤 했다. 업계의 나름 윤리는, 서로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보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찌라시는 아이디어와 창의력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서로의 아이디어를 유출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회사들도 그것을 인정하여 각각 프리젠테이션을 따로 시켰다. 

 

작은딸이 찌라시 발주 파트에 들어가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작은딸은 찌라시 회사들을 한데 모았다. 이런 식이었다. ABCD 네 찌라시 회사를 한 강당에다 부르고, 동시에 프리젠테이션을 시켰다. 그리고선 “각각 보신 후 좋은 아이디어 잘 참고 해서 다음번 시안을 가져와. 오늘 A 찌라시는 일단 탈락. 다음주에 BCD 가져와!” 

찌라시 회사들이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돈을 받기도 전에 유출하는 꼴이었고, 그 아이디어를 참고해서 다음 버젼을 만들어 오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유출된 아이디어는 다른 회사 프리젠테이션으로도 써먹을 수 없이 다른 회사에 고스란히 넘어가는 일이기도 했다. 찌라시 업계에서는 말도 안된다고 했지만, 그 동네에서 워낙 버스 회사의 찌라시 분량이 많았기 때문에 제대로 항의는 할 수 없었다. 찌라시 업계에서는 저것이 업계 인턴와서 이 업계의 원칙과 윤리를 가져다가 싹 파괴해서 지들이 홀랑 먹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몇몇 찌라시 업체는 늬들 따위 우리는 상대 안하겠다 하며 나가기도 했다. 동네에서 잘 나가는 회사를 모기업으로 둔 찌라시 업체여서 그럴 수 있는 배짱도 있었다. 

 

얼마전 그 작은 딸은 어떤 찌라시 팀장에게 보리차를 던졌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은 큰딸에 이어 작은딸도 저러는구나 했지만, 

사실 찌라시 업계 사람들은 이보다 더 한 짓을 그가 해왔기 때문에 놀라지도 않는다. 

찌라시 업계의 가장 기초적인 예의와 윤리를 돈으로 무너뜨린 사람이 보리차 던지는 정도로 사람에 대한 예의를 벗어난 일을 하는 것은 그닥 큰 일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네 신문에 소식이 전해지자 작은딸은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놀러 갔다고 한다. 

 

큰 딸에게 당한 버스 차장은 얼마전 스트레스를 하도 받아 머리가 아파 타이레놀 값으로만 100만원을 썼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큰 딸은 얼마전 동네 논두렁 콩 축제에서 콩깍지를 들고 동네 한바퀴를 신나게 뛰며 돌아왔다. 

큰 아들은 얼마전 노인 게이트볼 도 협회장을 맡게 됐다. 

단 한 번도 우승을 못했던 자기네 회사 후원 노인회 게이트볼 팀이 얼마전 도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물론 그곳에 자기네 버스회사 임원을 최고 힘있는 자리에 꽂아 넣었다. 게이트볼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을 말이다. 어떻게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작은 딸은 보리차를 던지고 동네를 떠났다. 

어떻게 돌아올지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예전만큼 화를 내지 않는다. 

 

그냥 그 버스회사에게 “우리의 바퀴”라는 말을 뺏자는 말 정도만 나오고 있다. 

 

그 집은 오늘도 잘 굴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