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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藝感), 바니타스

오하이오, 2019-10-19 23: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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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vanitas_01.jpg

꽤 알려진 그림이지만 처음 봤을 때 갸우뚱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바닥 공중에 뜬금없다 싶게 낯선 물건 때문입니다. 

 

1019vanitas_02.jpg

비스듬히 보면 제대로 보인다는 해골 모양.

숨기 듯 그린 것도 그렇지만 굳이 왜 흉측한 물건을 그렸는지...

 

1019vanitas_03.jpg

나중에 보니 해골은 종종 등장했습니다.

이런 그림을 묶어 '바니타스(Vanitas) 그림'이라고 했습니다.

 

1019vanitas_04.jpg

라틴어인 바니타스는 '헛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성경 전도서에 자주 등장한다고 합니다.

그중 한 구절 1장 2절을 보면 "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Vanitas vanitatum, dixit Ecclesiastes; 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 

 

해골은 '인생 무상' 즉 '죽음을 잊지 말라'는 상징물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바니타스 그림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그림'이라고도 하는가 봅니다.

 

1019vanitas_05.jpg

정물화에 정물의 하나로 쓰인 해골 달리

여성에게 쥐어진 해골은 여느 바니타스 그림과는 달라 보였습니다. 

 

1019vanitas_06.jpg

작가는 바니타스 그림이 유행하던 17세기 조르주 드 라 투르입니다.

조금씩 모양은 다르지만 비슷한 해골 쥔 여성의 그림을 여럿 그렸습니다.

 

1019vanitas_07.jpg

여성의 표정이 차분하고 편안하게 느껴지지만 슬프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헛됨을 깨닫는 다는 것은 허무에 빠지는게 아니라 

아웅다웅하는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 같습니다.

 

1019vanitas_08.jpg

바니타스 상징물로서의 해골은 무상을 일깨워 세상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경고하고,

그로 얻은 안식을 통해 삶을 세상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라고 일깨우는 것 같습니다. 

 

1019vanitas_09.jpg

그러다 나만의 바니타스 상징물도 있지 않을까 하다가 떠 올린 카메라가 있습니다.

사라지는 해골과 달리 기록을 남기는 카메라, 역설적인 내 바니타스 상징물.

결국 사라지지만 있는 동안 다 남는 내 흔적, 

하루하루 거짓 없이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야겠다(Carpe diem)는 다짐을 담아 

조르주 드 라 투르의 그림을 흉내 내 찍었습니다.

 

그렇게 내 다짐대로 살고 나서는,

천상병 시인처럼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20 댓글

로스앤젤리노

2019-10-19 23:32:02

미술 쪽에도 조예가 있으시군요!!

해골에 그렇게 큰 의미가 담겨있는줄은 몰랐습니다 :)

오하이오

2019-10-20 08:00:08

흉측해 보이기만했던 해골 그림에 그런 뜻이 있었더라고요. 

그런 그림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니 그 때도 꽤 다사다난했나 보다 싶고요.

케어

2019-10-20 14:25:30

사진 잘찍으셨네요.

디지탈 카메라 보급, 우리가 살고있는 정보화 세대 

어떻게 보면 모순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아날로그 카메라 시절에는 찍는 사진 하나 하나가 필름/현상비용이 들어가고 부피도 있으니 정성껏 마음먹고 찍어 보관했었는데.

이제 무조건 많이 찍고 한두장씩 건지는게 당연시화 되죠.

아무나 정보를 생산해내고 보급할수 있으니 여기저기서 "정보"는 차고 넘치고.

최근 사이월드 "사태"처럼 넘처나는 정보에 무엇이 중요한 정보인지, 어떻게 어디에 보관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희미해져 가고.

지금우리가 500년전 생산된 정보를 보는 시각과 500년 후에 우리가 생산한 정보를 보는 시각이 어떻게 다를지 궁금해지네요.

오하이오

2019-10-20 18:44:35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사진이 많이 흔해졌습니다. 정보라는 것도 그렇고요. 지금 우리가 만들고 소비하는그걸 보는 후대의 가치 판단 기준은 확실히 다르겠지만 그게 어떨지 짐작하기란 쉽지 않겠네요. 그래도 제가 수백년전 바니타스 그림을 보고 느꼈던 그런 느낌이 당시 작가나 감상자들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니 적어도 인간의 기본 감정을 꽤 뚫는 작품을 보는 시각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맥주는블루문

2019-10-20 15:07:54

오하이오님 버전의 바니타스 좋네요. 해골 대신 카메라 컨셉이 와 닿습니다. 

오하이오

2019-10-20 18:45:46

긴 세월 오랜 성찰로 그려진 그림과 제 단견이 비교될 수가 있기야 하겠습니까만은 칭찬해주니 감사합니다!

똥칠이

2019-10-20 16:44:03

오늘 주제는 제수준에선 약간 심오하지만 ㅎㅎ 

마지막 사진은 멋지네요

덕분에 교양이 +1 증가하였습니다.

오하이오

2019-10-20 18:47:18

아고 심오라니요. 심오하기론 그 끝도 없을 것 같은 BTS를 꽤 뚫는 분께서 엄살이 심하세요^^ 멋지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크롱

2019-10-20 16:48:51

마지막 사진 너무 멋지네요.

저 전도서 말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에요.

오하이오님 쓰신 글들과 사진들 모아서 단편 사색집 내셔도, 사서 읽고 싶을만큼 늘 잔잔한 여운을 주시네요~

오하이오

2019-10-20 18:57:21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까지 느낌을 줄거라곤 생각을 못했네요.

제가 이번에 전도서를 검색해서 주욱 흝어 봤는데 정말 '바니타스'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오더라고요. 자칫 그 뜻을 허무하다로 받아 들이면 어쩌다 걱정도 들던데, 읽고 나니 교인들 께서 여련히 알아서 읽을텐데 괜한 걱정을 했다 싶었습니다. 저 같이 교인이 아닌 사람도 성취감에 취해 들떴을 때나 그 반대로 크게 낙심했을 때 읽으면 참 차분해 질 것 같아요. 그래서 북마크 해뒀습니다. 

Monica

2019-10-20 18:55:29

저 아리따운 분이 오하이오님??!! ..정말 멋져요!!

해골과 카메라....이런거 생각하신 오하이오님이란 사람은....정말 ...좋은 노래도 감사합니다.  이런 분 밑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참 부럽네요.

 

 

오하이오

2019-10-20 19:04:35

하하 참 제가 아리땁다는 말을 다 들어 보네요. 순전히 (남자 치고) 마른 몸에 긴머리 덕 같네요. 하긴 그렇게 생각하신 분이 두어 사람 더 있었습니다. 지하철에서 제 엉덩이를 더듬던 사내가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고, 저녁 해운대 바닷가 산책하는 데 같이 한잔 하자고  소리치던 사내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무시하고 지나가니 화가 났는지 달려와 내 어깨를 잡아 젖히더니 얼굴 보고 그러더라고요. "아재 아잉교? 와 머릴 길랐는교?" 내 탓이라네요. 하하. 

Monica

2019-10-20 19:12:03

푸하하하하하하하......  정말 빵 터졌어요.....오하이오님이 이렇게 절 웃기실지 정말 몰랐어요.. 부산 사투리...ㅋㅋㅋ

 

이 선전이 딱 생각나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U8mjbpqsOTI

 

오하이오

2019-10-21 06:33:11

하하 공감이 가는(김태원 가수께) 광고입니다. 이런 요즘이야 다르겠지만 예전엔 '긴머리=여자'라는 확고한 등식이 있던 시절이라 저만해도 별별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성실한노부부

2019-10-20 21:24:36

해골은 연기처럼 사라진 누군가의 삶에 나의 삶이 겹치면서 가슴이 가라앉게 하는 것 같습니다.

 

오하이오님의 사진은

오하이오님의 손이 무게감있게 올려있는 사진 속의 카메라 안에

1,2,3 호들, 오하이오님, 사모님, 그리고 정다운 친구들, 이웃들과의  많은 아름다운 추억과 행복한 삶의 이야기가 꽉 차 있을 것 같아 

카메라 안을 돌려보면 행복해 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되니 오하이오님의 카메라는 행복의 판도라 상자 같은 느낌입니다.

오하이오

2019-10-21 06:44:05

저 뿐만 아니라 많이들 즐거울 때라거나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사진에 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카메라에는 행복한 모습이 가득하긴 합니다. 그래선가 제 경우는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함도 심지어 작은 슬픔 정도도 추억으로 만들고 웃음짓게 만들어 주기도 하긴 하네요.

 

미처 생각 못했는데 카메라는 '행복의 판도라 상자'는 저 한테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할 수 있는 멋진 말 같아요. 게다가 사진(Photography)가 '빛-그림'이라는 뜻에서 시작했다는데 그 빛과 행복은 아주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행복의 판도라 상자'  정말 좋네요.

트레블러

2019-10-21 09:28:08

마지막에 올려주신 홍순관님 노래를 플레이하고 다시 올려주신 사진과 글을 감상하니 더욱 좋네요!!

바니타스란의미를 생각하니 법정스님의 무소유에서 나온 "본래무일무"가 생각나네요.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오하이오

2019-10-21 11:34:27

말씀 듣고 보니 법정스님의 무소유도 '바니타스'와 맥을 같이 하는 말 같습니다. 어렴풋이 얻은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긴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를 살면서 더더욱 마음조차 먹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만큼 실천하면 이세상을 더 아름답고 살맛나게 만드는 마음가짐 같습니다. 저도 덕분에 생각을 더 넓혔습니다. 감사드립니다.

ddudu

2019-10-21 20:39:39

오하이오님의 사진을 볼때마다 뭔지는 모르지만 참 좋다라는 느낌이 많았는데 역시 이런 인문학적인 내공이 있었네요. 저도 저 그림안에 왜 해골을 그렸을까 하며 궁금한적이 있었습니다. 좋은글과 사진 항상 감사합니다.

오하이오

2019-10-22 07:56:56

내 정서와는 많이 달라서 그런가 저도 해골이 눈에 많이 튀긴 했네요. 좋은 느낌 갖고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살아온 세월이 느껴지는 묵은 자잘한 감상이 아닐까 싶은데 인문학적 내공 높게 쳐주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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