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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풍이 몰아쳤던 직장에서 살아남은 이야기

맥주한잔, 2018-10-12 14: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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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ANG 은 아니지만, 미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테크 관련 대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부서는 한때는 중요했지만, 점점 중요성이 떨어지는 제품을 담당하고 있는 조그만 팀이었고 제가 그 팀의 매니저 였습니다. 한때는 저 포함 5명정도의 팀였지만, 지난 달 기준으로 3명만 남아 있었습니다. (저하고 +2명)

 

저는 (정말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한때는 열심히 많은 일을 해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월급만 축내는 생산성 떨어지는 그냥 노땅 개발자일 뿐입니다. 회사가 아직 스타트업 이던 시절 입사했는데, 회사가 엄청나게 커진 지금은 저화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거의 모든 동료들은 다들 승진해서 VP, 시니어 디렉터, 최소한 디렉터이고, 그 시절 입사했던 사람들중 아직까지도 그냥 매니저인 사람은 저 뿐입니다. 승진을 못하고 있는 제일 큰 이유는, 영어가 안되서 라고 생각하는데, 뭐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냥 가늘고 길게 가자는 생각에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뭔가 불길한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한지는 벌써 1년쯤 됐습니다. 이제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앞으로 계속 유지할 것 같지도 않은 제품군을 위해 이 팀을 계속 유지하느냐 마느냐에 대해 이야기들이 돌기 시작한 걸 느꼈습니다. 뭐, 윗선에서 결정하는 걸 제가 어찌 할 도리가 없으니 그냥 신경쓰지 않고 하던 일이나 계속하는 거 외엔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분위기는 이 팀을 없애 버리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거 같이 보이더라고요. 그게 언제가 될지 시간의 문제였지 팀의 운명은 정해진 거 같았습니다.

 

3달쯤 전 (7월) 갑자기 제 위의 디렉터가 저를 부르더니 이야기 합니다 (그 디렉터는 저보다 늦게 입사했지만 빨리 승진해서 제 위의 보스가 되어 있는 사람). 네가 있는 부서를 없애버리려고 한다. 그런데 회사에서 오래 일했던 너를 내보내는 건 큰 손실이라고 사람들이 이야기 하므로, 너에게 두가지 옵션을 주겠다. 네가 하고 있는 분야의 개발을 계속 하고 싶다면, 회사의 다른 사업부로 옮기도록 해주겠다. 그러면 타주에 있는 그룹으로 옮기는 거지만 relocate 할필요 없이 remote 로 일할 수 있게 해주겠다. 만약, 네가 업무 분야를 바꾸더라도 이곳에 남아 이곳 사람들과 계속 일하고 싶다면 xx부서로 옮기도록 해주겠다. (그 xx 부서는 회사에서 제일 중요한 코어 부분입니다. 절대 아무도 터치하지 못하는 회사의 주인공에 해당하는 부서입니다.) 

 

정말 고마운 배려였습니다. 부서를 없애버리려 하는데, 윗사람 몇명이 굳이 저를 위해서 "쟤는 내보내지 말자" 하고 저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준 모양입니다. 게다가, 저를 배려해서 저렇게 두가지 옵션까지 제시해주니 저로서는 더할나위 없이 감사한 일이지요. 한가지 마음에 조금 걸리는 건, 제 밑의 부하직원 2명에 대해서 까지 제가 어찌 손 써줄 방법은 없었습니다.

 

(부하직원 2명의 스토리도 매우 흥미진진한 이야기 꺼리인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쓰겠습니다. 한명은 지난 몇달 동안 채용, 구조조정, lay off 가 이어지는 과정동안 몇차례나 기적적으로 기사회생 하면서, 짤리는 걸로 결정났던 운명을 마지막 순간에 몇차례나 뒤집어 지금은 안정적으로 팀에 안착한 케이스이고요. 다른 한명은 한두번의 실수, 대단한 실수도 아니고 새로운 팀의 업무 파악을 위한 트레이닝 세션 중에 집중 안하고 셀폰 들여다보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며 새로운 팀의 매니저에게 찍힌 실수였는데요. 그거때문에 독선적이고 성격 드러운 매니저가 얘를 짤라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은? 이 직원은 그 성격 드러운 매니저랑 한날 한시에 동시에 lay off 당하게 됩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참 미안하네요.)

 

아무튼 그 두가지 옵션의 제안을 두고 고민을 좀 하다가, 멀리 있는 사업부로 옮겨 remote 로 일하는 것 보다, 생소한 분야라고 해도 수년동안 얼굴을 이미 익혔던 옆의 부서 사람들과 일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옆의 부서로 옮기게 됐습니다. 사실 자존심이 조금 상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제일 오래된 직원중 하나인데, 아직까지 그냥 조그만 팀의 매니저 (그것도 앞에 senior 도 안붙은 그냥 매니저) 였던 것도 조금은 자존심 상하는 일인데, 이제 매니저 타이틀도 버리고 남의 부서의 그냥 개발자로 백의종군 하라는 것이니, 남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그것도 신경 쓰이고,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새로 옮기게 된 xx부서는 정말 날고 기는 탁월한 시니어 개발자들이 이미 몇명 포진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아무튼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 빨리 업무를 파악하려고 지난 두달쯤 매일 밤늦게까지 머리 싸매고 공부를 하는데 진짜 어렵더라고요. 이젠 옛날만큼 머리도 안돌아가고, 눈도 침침해서 소스코드 들여다보고 이해는 거녕 글자도 잘 안읽혀집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내고 있던 중. 그 디렉터가 또 저를 부르더라고요 (제가 옮기기 전엔 제 바로 위 보스였는데, 제가 새로운 팀의 개발자로 옮긴 이후론 제가 더이상 팀의 매니저가 아니니 제 보스의 보스, 두단계 위의 보스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더니 또한번의 놀라운 이야기를 합니다.

 

네가 있는 부서의 매니저를 lay off 시키려고 한다. 사람들과 이야기 해보니, 그 자리에는 네가 제일 적임자라고 해서, 그가 나간 후에 네가 그 팀을 매니지 해줬으면 한다. 어떻게 생각하니?

 

이건 정말 믿어지지 않는 제안이네요. 전에도 매니저였고 이번에도 그냥 새로운 팀의 매니저를 맡으라는 거라, 비록 승진은 아닌 거지만,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서의 매니저를 저같이 영어도 버벅거리는 사람에게 맡아서 해보라니 이건 매우 놀라운 제안이기도 했고, 기회이기도 하지만 또 책임이 막중한 느낌도 듭니다. 아무튼 어제, 제 부서의 매니저는 lay off 당해 짐 싸서 나갔고, 이제 제가 그 팀의 매니저라고 공식적으로 발표가 되었어요.

 

처음 두가지 옵션을 받고, 같은 업무를 하는 다른 사업부로 옮기지 않고 다른 업무를 하는 이 부서로 옮겼던게 억세게 운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한번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팀이 통째로 날아가버릴 때, 굳이 저를 위해 목소리 높여준 윗사람들이 있었고, 매니저를 짜를때 제가 새로운 매니저로 적격이라고 또 목소리 높여준 사람들이 또 있었다는 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제가 인복이 있나봅니다.

 

104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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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벌

2018-10-13 12:29:19

정말 축하드립니다~ 인생역전 드라마같아요~ 얼마나 묵묵히 노력하셨을지 상상이 됩니다~ 좋은 일 더 많이 생기시길 기원합니다~^^

spinatus

2018-10-13 15:31:22

정말 축하드려요.  글을 읽는 제마음이 감동으로 차 오릅니다. Lay off 문턱에서 평사원으로 좌천에 굴하시지 않고 성실과 노력으로 임하시는 자세가 눈에 보입니다. 새옹지마가 따로 없네요. 무궁한 발전을 기원해 봅니다.

Scoopy

2018-10-13 15:36:57

로그인해서 댓글 달게 만드는 글이네요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미국에서 직장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가슴에 꽃히는게 많은 글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지난 몇십년 동안 성실하게 일한 걸 주위분들이 알아 본 것 같아요 

^^

앞으로도 승승장구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moondiva

2018-10-13 19:11:42

축하드립니다! 맘고생 많으셨을텐데 앞으로 더 안정되고 재밌는 직장생활이 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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