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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언제서부터인지 크리스마스에도 일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된 것이 되었습니다. 겨울이란 계절적인 특성으로 병원에는 환자 수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지요.
오늘은 평소보다도 더 많은 수의 환자를 보는 크리스마스였습니다. 겨우내 코비드 환자의 폭발적 증가로 의료진의 환자 부담이 커진 탓이지요.
오늘은 비코비드 병동 당번입니다. 평소와 같이 환자 차트 리뷰를 마치고 각 병동으로 회진을 돕니다. 80세 초반의 할아버지가 뇌출혈로 병원에 실려오셔서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Step down unit (일반 병동보다는 더 중한 환자가 입원해 있는 병동)으로 얼마 전 오셨습니다.
자발 호흡을 하지만... 신경학적으로는 손상이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환자분은 소리에 반응해서 눈을 미약하게 뜨는 정도고 가족들을 알아보거나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뇌손상으로 가래를 제때 뱉어낼 수 있는 능력도 손상을 입어서 간호사 선생님의 석션 횟수가 점차 늘어가는 상황이었어요. 폐는 이미 흡인성 폐렴으로 손상을 입어 많은 양의 산소가 없이는 산소포화도를 유지시키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크리스마스 날이지만 할아버지의 와이프, 할머니께 전화를 드립니다. 메리크리스마스라는 말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할아버지 상태에 대해 업데이트를 해 드립니다.
"Given his extensive damage to his brain, I'm afraid to say that he may not have a meaningful recovery."
할머니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으신 듯 계속 담담하시다가 제가 호스피스에 대해 설명을 쭉 드리고 comfort care를 권유하는 단계에 다다르자...
흐느끼며 말문을 여십니다. 할아버지가 이제 더 이상 회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잘 아신다며 호스피스 케어에 대해서도 동의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만... aggressive care를 중지하고 comfort care (환자분의 통증이나 고통을 줄여주는 치료)로 바꾸기 전에 할아버지를 보고 싶으시답니다.
할아버지 상태를 보아하니 comfort care로 바꾸면 오늘이라도 돌아가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흐느끼며 말씀을 이어나가십니다. 지금도 고통 속에 있을 수도 있는 할아버지를 생각했을 때, 자신의 이런 선택이 할아버지보다도 자기를 생각해서 내리는 다소 이기적일 수 있는 선택이란 것도 아신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임종을 지켰으면 좋겠다는게 지금 자신의 가장 큰 바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코비드 전이라면 무척 간단한 문제였습니다. 오셔서 병동 룰 대로 지내시면되니까요. 특히나, 호스피스 환자에 대해서는 방문시간도 다소 관대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병원의 방문자가 전면 금지되는 코비드가 창궐하는 시대의 겨울입니다.
나 "Let me see what I can do. I will make it happen."
수화기의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할아버지를 볼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이 묻어나옵니다. 병원 방문자 관리를 맡는 간호사분한테 연락합니다. 이 방문이 이 환자분의 치료에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그 분께 여러 번 주지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대답은 안된다고 아주 강경하게 나옵니다.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긴합니다. 얼마 전 일주일 한 번 방문 가능에서 코비드 상황이 아주 심해지자 전면 면회 금지로 바뀐터라 예외를 인정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할아버지 상황에... 묘수를 찾아냅니다. 완화 의료팀과 미팅을 잡으면 예외적으로 환자 방문이 가능해졌던 것을 기억해 낸 것입니다. 완화 의료팀 nurse practitioner분께 전화하고 상황을 설명합니다. 오늘 크리스마스고 너무 갑작스럽지만 이 가족에게 이 면회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인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오늘 꼭 미팅을 잡아서 방문을 가능하게 하고 싶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결과는... 삼십분도 안 되어서 미팅 시간이 잡히고 환자분 따님과 와이프분이 할아버지를 뵈러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제가 어떤 과정을 통해 그 만남을 가능하게 만들었는지. 아마도 모르실겁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내가 소중한 누군가에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선물로 줄 수 있있습니다. 전화를 끝내고 무언가 마음이 꽉 차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몸은 힘들지만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가 된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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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댓글
뽀요뽀요
2020-12-25 23:42:28
따뜻한 크리스마스선물 하셨네요. 진정한 산타 라고 생각됩니다.
참울타리님 따뜻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되세요 >_< 건강하세요!
왕새우튀김
2020-12-25 23:46:10
따뜻하신 선물 하셨네요. 감사드립니다.
edta450
2020-12-25 23:46:58
늘 수고 많으십니다. 큰 선물 하셨어요.
TheBostonian
2020-12-25 23:57:49
아.. 읽고 나니 눈가에 이슬이..ㅠ
크리스마스인데 쉬지도 못하시고 고생하셨네요.
늘 최전선에서 애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hohoajussi
2020-12-26 00:01:59
고생 많으십니다- 메리크리스마스에요!
민데레
2020-12-26 00:10:22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늘 수고가 많으시네요.!!!
땅부자
2020-12-26 00:17:54
수고하십니다.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답찾아
2020-12-26 00:19:02
따뜻한 크리스마스, 감사합니다.
꿈꾸는세상
2020-12-26 00:27:29
가족들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정말 큰 선물을 해주셨네요.
늘 따뜻한 마음과 글에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입니다.
어기영차
2020-12-26 01:11:50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내가만난마일세상
2020-12-26 01:25:49
참울타리님을 보며 아직 세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구나란 생각이 드네요. 그 보이지 않는 작은 수고와 따뜻한 마음이 분명 할아버지와 가족들에게 전해졌으리라 믿어요.. 닉네임같이 정말 환자들의 참 울타리가 되어주셔서 제가 괜히 뭉클합니다.. 어디에서든 메리크리스마스!
전설따라
2020-12-26 01:48:05
진정한 울타리가 되 주셨군요, 참 울타리님.
아아주 큰선물 주셨어요, 산타 의사선상님.
감사 합니다, 아우 눈물 나...
베리메리 클수마수 그리구 행복한 새해 맞으세요~
그대가그대를
2020-12-26 02:25:27
고생하셨습니다.
환자를 먼저 생각하시는 따뜻한 마음씨에 제가 다 감사합니다.
항상 쉽지않은 일이지만 일선에서 그렇게 최선을 다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아직 이렇게 저희가 버텨낼수 있나봅니다.
당연해서 잊기쉬운데,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궁금마왕
2020-12-26 03:01:34
울컥하네요... 저 역시 저희 가족을 배려해준 의료진 분들의 배려를 받아본 당사자로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nonfiction
2020-12-26 03:06:32
마음이 꽉 차는 기분을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svbuddy
2020-12-26 03:11:00
우울한 연말에 따뜻한 이야기 나누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2021년은 조금 더 희망이 보이는 한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Cactus
2020-12-26 03:25:11
고생이 많으십니다. 앞으로도 계속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여러모로 감사드립니다.
modu
2020-12-26 03:55:42
참울타리님의 따뜻한 마음에
눈가에 ..... 울컥하네요.
좋은 성탄선물 감사합니다.
Gadin
2020-12-26 03:57:13
기능적으로 일하는 의사분들이 많은 세상에 환자의 입장에서 배려하시려 애쓰시는 모습에 경의를 표합니다.
Nbor
2020-12-26 04:17:33
성탄 저녁에 울컥하네요. 감사합니다.
Bob
2020-12-26 04:24:24
저도 몇달전 아버님을 한국에서 떠나보내면서.. 코로나로 인해서 임종을 지키기가 너무 힘든 상황이었는데, 임종 직전에 1인병실을 간신히 들어갈 수 있어서, 몰래몰래 한명씩 가족들이 그 병실에 모여서 의미있는 임종을 해 드렸습니다. 그때도 의료진이 면회가 안되는 상황 등 룰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눈 감아 주셔서 가능했긴 했습니다. 한국이니까 가능한 것도 있었는거 같구요, 아무튼 의료계에 계시는 분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HoSoo
2020-12-26 04:49:31
선생님, 안구에 습기가 차오르는데 이건 무슨 증상인지요. 항상 너무 수고가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이다음에 저나 제 가족이 혹시나 아플때 꼭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네요...
메리크리스마스 되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jjirons
2020-12-26 06:11:50
먹먹해지는 글입니다. 쓰신 그대로 몸은 힘들지만 (참울타리 님뿐만 아니라 관련된 모든 분들의) 기억에 남을 크리스마스이겠네요. "I will make it happen" 이라는 말은 그 할머니께는 평생 잊혀지지 않을 한마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마음에 남는 글 고맙습니다.
샌프란
2020-12-26 06:46:21
코비드가 종식되면 참울타리님의 경험담을 읽고 싶은 1인입니다.
여러모로 깨닫는 것이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Superfresh
2020-12-26 07:00:02
사람을 생각하는 큰 배려를 배웁니다.
달콤한휴가
2020-12-26 07:30:54
가슴이 따뜻하면서도 먹먹해지는 글이네요.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마일모아
2020-12-26 08:51:55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rlambs26
2020-12-26 09:13:58
정말 좋은 일 해주셨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여행벌
2020-12-26 09:23:59
크리스마스에 잊지못할 감동스토리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생 많으십니다~~~
된장찌개
2020-12-26 09:47:48
가족들에겐 설명하시지 않으셨어도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인 걸 알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번에 부모님 중 한 분이 뇌출혈로 수술 받으셨는데도 못가봬서 그 심정을이해합니다
첼리스트
2020-12-26 09:51:37
좋은 경험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들에게 슬프지만 그래도 큰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favor
2020-12-26 14:45:16
따듯해요~ 감사합니다 메리크리스마스 ~~
하늘향해팔짝
2020-12-26 15:59:42
아침부터 눈물 바람이예요.
너무 슬픈데 소중한 선물이네요.
ColdHead
2020-12-26 19:48:51
따뜻한 얘기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느끼지만 의료진분들, 특히나 최일선에서 수고하시는분들은 멘탈이 강하신듯해요... 조심하세요...
Billion
2020-12-27 04:05:50
감동이에요 ㅠㅠ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참울타리님 같은 의료진분들 정말 존경해요. 건강 조심하세요!
태현맘
2020-12-27 10:00:43
글 읽다가 눈물이 났어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연말 잘 보내시길 빕니다.
레드크
2020-12-27 10:09:55
잘 읽었습니다. 병원이야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