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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기록에 관한 짧은 생각

잭울보스키 | 2021.01.16 20:06:58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편안한 주말 보내고 계신지요 ?  

 

여러대의 컴퓨터에 흩어져 있는 사진들과 파일들을 한군데로 모아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중에 제가 5년전인 2016 초에 저희 산악회에 올린 글이 눈에 띄어 개인적인 신변잡기의 글이지만 심심풀이로 읽으시라고 공유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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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대한 짧은 생각

 

 

아내와 처음 산행을 시작했을 때가 2013년도 10,그냥  청바지에 셔츠 , 무거운 자켓 걸치고 산행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이 멋있다는 말만 듣고 레이크 세렌으로 갔습니다.  고생도 하고 땀이 식으면서 몸이 떨리는 저체온증도 경험했었지만 직장과 집만 쳇바귀 돌듯 오가던  저희에게는 신세계였습니다.   물론 겨울 산행에 대한 아무 지식도 장비도 없었기에 2013년도 겨울은 그냥 보내고 2014년도 4 부터 장비를 조금씩 갖추어 가며 정기적으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엘리베이션 게인을 일년에20,000 피트 정도로 목표를 정했습니다.  2년이 안된 지금 산행 기록을 보니 게인이 10 4 6 13 피트로 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걸은 거리는 360마일, 오레곤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276마일이니까 많이 걸은 셈이군요.  시간상으로는 11 16시간 21분을 꼬박 쉬지않고 걸은 결과입니다.

 

 

 

저는 이런 마일을 모으고 있습니다.

 

오늘 호숫가를 산책하면서  사색에 잠겼습니다.  나는 굳이 이런걸  기록을 할까 ?

 

 

아마 저의 기록에 대한 습관은 지금은 이세상에 안계신 아버지로 부터 물려받은것 같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아주 오랫동안 일기를 오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시면서 일기장들을 저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일기라기 보다는 일상의 기록이라 말하는게  사실에 가까울것 같군요.

 

 

아버지의 일기는 일체의 감정과 군더더기가  배제된 주어와 목적어, 그리고 동사로만 구성된 그야말로 기록입니다. 아버지의 일기에서는 맛있었다, 즐거웠다, 기뻤다, 등등과 같은 형용사는 찾아 수가 없습니다.  마치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읽는것 같습니다.  

 

 

평생을 써오신 아버지의 일기는 급성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날에 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당신의 일기장을 펼쳐보실 기회도 없이 영영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그날밤, 아버지의 방에서 일기장을 꺼내 읽어보았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신날 부터 돌아가신날 까지 빈칸으로 남겨진 일기장이 너무 가슴이 아파 , 아버지가 너무 그리워서 , 한번만 다시 보고 싶어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빈칸들은 손으로 메꾸어 아버지의 일기장을 완성시켰습니다.

 

 

우리의 기억은 애초부터 불안정하기 때문에  잊지않기 위해 기록을 합니다.  초등학교를 들어가기도 전인 어린 나이때  저는 제법 똘똘했나봅니다.  어머니가 처음 가시는 곳은 저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저를 떼어놓기 싫어서가 아니라 다음에 그곳을 다시 찾아 갈때면 제가 귀신같이 길을  알고 찾아 갔기 때문이라고 하시더군요.  인간 내비게이터로 활용하신거죠.  

 

 

성인이 되어 직장에서도 제법 기억력이 좋다는 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려서의 총명함과  젊어서의  명민함은 아침 이슬처럼 사라져 버리고 저도 기록을 하지 않으면 기억을 하지 나이에 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그러셨던 처럼 저도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저의 일기는 아버지의  일기와 너무 닮았습니다. 일체의 감정을 배제한 기록 자체입니다.  부전자전인 모양입니다. 

 

 

호숫가를 거닐며 계속 생각에 잠겼습니다.  기억력은 점점 떨어지는걸까 ?  나이가 먹어 기억을 관장하는 뇌세포가 소멸하는 생물학적 현상일까 ?  삶이 복잡해지면서 가지 일에 집중을 없어서 일까 ?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속에 살고 있습니다. 굳이 원하는정보를 얻기위해 우리의 뇌를 자극시키지 않아도 원하는 정보는 어디에나 널려 있습니다.  모르는 길을 갈때도  지도를 몇번이고 들여다 보고 외워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스마트폰의 길안내를 받아 지시하는대로  따라만 가면 되니까요.  수동적으로 정보와 지식을 받아 들이는데 익숙해진 뇌는 더이상 일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이상 일을 필요가 없는 뇌가 쪼그라 들을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지탈 혁명의 혜택을 즐기고 있지만 마음은 과거 아날로그 시절을 그리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봄이 오면 텃밭에 씨를 뿌리고 채소를 가꿀 희망에 가슴이 부푸는가 봅니다. 그리고 주말이면 모든걸 뒤로하고 산으로 가는가 봅니다.  배낭을 메고 스틱을 짚고 산을 오르는 일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행위입니다.  우리 산악회 회원들은 디지탈의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행위를  적절히 배합시킨 삶을 살고 계시는 현명한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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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10116_084641514.jpg

아버지의 낡은 일기장들. 이전의 것들은 찾을수가 없고 제가 보관하고 있는 일기장들중에 첫 해가 1973년이니까 지금부터 48년 전이군요.

 

KakaoTalk_20210116_084747193.jpg

그리고 업그레이드된 저의 일기장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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