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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감상(6/7), 감상자의 부단한 탄생

오하이오 | 2022.05.06 21:45:04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신영복 선생은 자신의 책 '담론'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책’이 강의실을 떠나 저 혼자서 무슨 말을 하고 다닐지 걱정이 없지 않습니다. 책은 강의실보다 작고 강의실에는 늘 내가 서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하면 모든 텍스트는 언제나 다시 읽히는 것이 옳습니다. 필자는 죽고 독자는 끊임없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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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저자의 죽음`을 이야기 했던 바르트(Roland Barthes)의 생각과도 같다고 합니다.

 

여기서 책을 미술로, 독자를 감상자로 바꾸어도 그 의미가 바뀌지는 않겠죠. 이 말대로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시대와 공간을 달리해 만들어졌던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작가의 뜻이 고스란히 반영되어서는 아닙니다. 새로운 감상자가 새롭게 봐주면서 작품의 생명력을 길고 넓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겠죠.

 

논리적이고 현학적 평론(혹은 그 같은 감상) 보다, 투박하더라도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낸 감상은 작품의 생명력을 더 더해준다고 생각해요. 논리적 평이 주류를 이른다면 감상의 다양화와 대중화를 억눌러 작품 생명의 한계를 짓는다고 생각하거든요. 논리적이고 현학전인 평을 주도하는 분들은 대체로 미술을 감상보다는 탐구를 대상으로 삼는 분들(미학자나 미술사가, 비평가들 등)인데, 보통의 감상자들조차도 그 틀에 갇히는 걸 봐 왔습니다. 보고 느낀 감정이 잇지만 그걸 논리적으로 지식을 더해 표현해야 한다면 말수도 줄 수밖에 없을 것 같고요. 때로는 논리에 치중하다 보면 느낌에 솔직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게 되기도 하고요. 결국 감상자는 논리와 현학의 틀에 갇히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미술을 비롯한 예술 작품의 가장 큰 의미는 `감상`의 대상일 것입니다. 더러 분석의 대상으로 삼거나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잘 짜인 `미술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분들은 감상자의 투박한 감정도 존중해야 하고, 감상자는 솔직한 자기감정 표현에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해야겠죠.

 

미술이 아닌 와인이긴 합니다만 감상의 예가 될 것 같아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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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신의 물방울' 주인공이 포도주를 마시자 퀸의 음악이 들리는 듯했다는 순간입니다.

 

`파워풀`하고 녹아내리는 듯한 맛이 프레디 머큐리의 달콤하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연상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포도주를 마실 때마다 풀밭에도 가고, 어릴 적 살던 집이며 기억하는 모든 곳을 끌어냅니다. 언뜻 봐선 포도주가 환각을 유발하는 마약으로 느껴질 정도이긴 했습니다만 감상은 그런 것 아닐까요. 미술 작품을 보고 떠올려지는 내 속의 무엇이 있을 때 `감상 잘했다`라고 하는 거겠죠.

 

그런데 포도주 좀 마신다는 친구에게 그거 어땠냐고 물으니, 드라이하니 마니, 타닌이 어떻고 바디감이 어땠고 할 때 저는 친구 입을 막고 싶죠. "분석 말고, 난 네가 어떻게 느꼈는지가 궁금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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